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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odle talk

[푸드칼럼] 설렁탕과 라면의 만남, 규코츠라멘의 현장을 가다

 

 

 

 

일본 혼슈의 돗토리현은 대게철이 한창이다. 대게는 다리가 마치 대나무마디처럼 이어졌다고해서 붙어진 이름이다. 어디를 가나 커다란 집게를 과장해 그린 간판이 여행객을 "어서 옵쇼"하고 부른다. 우리나라 영덕이나 울진에서 잡히는 그 대게다.

돗토리현의 유명한 관광지인 돗토리사구에서도 주인공은 대게다. 고운 아기피부 같은 사구는 태양 빛을 오롯이 받아 황금색으로 빛난다. 알베르 까뮈가 사랑했던 알제리의 빛이 이보다 찬란했을까! 산인해안국립공원의 특별보호지구로 지정될 만큼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남북으로 2.4km, 동서 16km 펼쳐진 사구의 풍경은 별나라에 도착한 듯한 착각마저 든다. 한 푼이라도 더 벌려는 낙타가 여행객을 태우려고 "크릉" 소리를 내며 윙크한다.

 

<돗토리사구>

 

 

 

사구 앞의 소담한 관광상품 판매점겸 식당. 식도락 여행객에게는 바다의 보물 같은 큰 대게 상이 한상 차려져있다. 작은 화로에는 고시히카리(일본 쌀 품종의 한 종류)가 잘 익어 모락모락 김을 내고 그 앞에 대게가 떡하니 “어서 옵쇼”한다. 일본에서 대게 생산량이 1위인 곳답다.

 

<돗토리사구 앞의 관광상품판매점 겸 식당의 대게 상>

 

 

 

식도락 여행객이 지나칠 수 없는 곳이 시장이다. 시장은 그 지역을 대표하는 제철음식의 잔치 상이다. 돗토리현의 가로시장. 인심 좋은 장사꾼들이 여행객을 손짓한다. 온통 대게다. 다리를 쩍 벌리고 진열대를 한 뼘도 남김없이 차지한 채 여행객을 기다린다. 여행객들이 한 가게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우리네 수산물시장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먹거리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뭡니까?”라고 묻는 여행객에게 주인은 공짜로 먹을 기회를 준다. 대게의 내장이다.

 

<가로시장의 대게 내장>

 

특유의 비릿하면서 고소한 맛이 귀신의 혀 놀림도 이보다 빠를 수 없을 정도로 흡입하게 만든다. 본래 내장은 장기간 유통이 힘든 법. 가게 주인은 “한 번 가열하고 조리한 후 판다”고 한다.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겠는가! 여행객이 밥값 치르기에 나섰다. 허리를 버드나무 가지처럼 구부렸다 펴고 엄지를 터미네이터의 주인공처럼 올리고는 “오이시이, 오이시이(맛있다)”를 외친다. 시장이 온통 웃음바다로 출렁인다.

 

 

 

시장에서 독특한 어묵을 만나자 여행객들의 가슴은 또 뛴다. 두부어묵인데, 생선이 30%가 들어간다. 이름 그대로 나머지는 두부다. 가난하던 시절 질 좋은 콩 생산지였던 이 지역사람들이 개발한 향토음식이다. 카레, 참치, 도미, 파 등 들어간 재료에 따라 맛이 여러 가지다.

 

<두부어묵>

 

 

 

돗토리역에 도착하자 반가운 손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구수한 돗토리현의 명물인 규코츠라멘(우골라면)이다. 비행기에 몸을 실을 때부터 궁금했던 맛이다. 다채로운 면요리가 발달한 일본은 우동이나 소바 만큼이나 유명한 것이 라멘이다. 지역 명을 단 특색 있는 라멘만도 수십 가지다. 맛과 재료에 따라 종류도 다채롭다.


한국에서는 흔히 고기가 베이스하면 돈코츠라멘(돼지뼈를 우린 국물이 베이스인 라멘)이 먼저 떠오른다. 규코츠라멘은 소뼈 우린 국물이 맛의 기본이다. 우리네 설렁탕이나 곰탕에 국수 돌돌 말아 먹는 것과 뭐에 다를까 싶긴 하지만 차이가 있다. 역전앞 상점거리의 규코츠라멘전문점 주인은 “우리 동네가 원조다”라고 외친다. 푸짐한 규코츠라멘 한 그릇은 743엔(우리 돈 약 7800원).


1940~50년대부터 돗토리현 사람들에게 사랑받아온 규코츠라멘은 돈코츠라멘보다 담백한 맛이 매력이다. 일본식 된장이나 간장, 소금 등을 넣어 종류를 다양화했다. 국수를 만 우리네 설렁탕이 국물의 진한 맛에 압도당해 면이 체면을 세울 틈이 없는 것과는 달리 규코츠라멘은 면과 국물이 적당히 서로의 영역을 인정해 균형을 이룬 맛이다.

 

<돗토리현의 명물인 규코츠라멘(우골라면)과 라멘전문점>

 

 

 

돗토리현문화관광국 국제관광추진과 나가타 요이치계장의 다지마규에 관한 얘기를 들으면 규코츠라멘의 맛의 비밀을 짐작할 수 있다. 돗토리현의 인접지역인 효고현은 고베규(일본 와규의 종류)가 유명한 곳이다. 효교현의 현청소재지인 고베시의 이름을 딴 고베규는 푸아그라(거위 간) 버금가는 맛이라는 세계적인 평을 듣는다. 나가타계장은 “고베규의 원조는 계단식 논이 있는 다지마 지역의 송아지였다. 19세기 다지마 지역에 들어온 유럽인들이 농업용으로 사용되는 다지마 소를 맛보고 반했다”고 한다. 일부가 그 소를 고베시로 가져와 레스토랑을 열면서 고베규의 명성이 시작됐다고 그는 말한다. 돗토리현은 자연스럽게 질 좋은 소의 유통이 가능했다.

 

<돗토리현과 효고현 료칸의 가이세키음식>

 

 

 

최근에는 도쿄 시내에도 규코츠라멘집이 눈에 띈다고 한다. 5~6년 전부터 불기 시작했다는 규코츠라멘의 인기는 우리네 사골국물문화도 한몫했다고 보는 전문가의 진단이 있다. 한류 바람의 영향이다.

 

< 돗토리현의 큐코츠라멘(우골라면)>

 

돗토리현의 자랑할 만한 면 요리가 라멘만 있는 것은 아니다. 1950~60년대부터는 ‘하루젠 야기소바’가 인기를 끌었다. 돗토리현의 하루젠고원 지역에서는 주로 먹었다고 해서 붙어진 이름이다. 마늘, 양파, 사과, 양배추, 닭고기와 면을 볶고 독특한 된장소스로 버무린 볶음국수의 맛은 돗토리현을 대표하는 면 요리로 발전했다. ‘물고 뜯고 씹는’ 사이 귀 볼을 당기는 여행지의 옛 얘기는 즐거움을 더한다. 구라요시지역의 오쓰부키산에는 우리네 선녀와 나무꾼과 비슷한 설화가 내려온다. 다만 한 가지가 다르다. 선녀는 아이들을 버려두고 올라갔다. 여행객들은 “모성애가 없는 선녀도 다 있군”하면서 웃는다. 여행의 참맛은 그 지역을 혀로 생생하게 체험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