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Noodle talk

[푸드칼럼] '정'이 한 가득 담긴 효창동 잔치국수

 

 

 

원고의뢰를 받은 날이 김연아 선수가 소치동계올림픽에서 부당한 판정을 받고 온 나라가 떠들썩하던 그 다음날 이었다. 그래서 원고의뢰 전화를 받자마자 자연스레 가장 먼저 떠오르던 국수집이 효창동 "맛있는 잔치국수" 집 이었다. 대한민국 최초의 스피드 스케이트선수의 이름이 "이효창" 이라는 사실은 실제 효창동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최초 형성된 선입견이 나를 효창동으로 이끌었다. (효창동은 사실은 조선시대 정조의 장남 문효세자의 묘원인 孝昌園(효창원)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우리가 기억하는 잔치국수

 

그랬다. 무의식에 의해 만들어진 선입견의 세계는 맛에도 예외 없이 적용된다. 아니 소리와 더불어 가장 강력한 선입견을 만드는 것이 맛이다. 그래서 면으로 만든 세상의 수 많은 음식 중에 가장 소박하고 단순하고 쉽게 만날 수 있는 음식이 "잔치국수"라는 선입견은 스스로 잔치국수의 한계를 규정짓고 그 범위를 벗어나는 잔치국수는 왠지 불편하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는 효창동 "맛있는 잔치국수" 집은 그 선입견에 딱 부합하는 수준의 잔치국수라고 할 수 있다. 

 

 

<잔치국수><잔치국수>

 

 

 

 

맛 외에 뭔가가 있다.

 

음식점을 평가할 때에 맛 보다 더 중요한 게 뭐가 있을까? 맛이 좋으면 어떤 불편함도 용서하는 우리 분위기에서 특이하게도 이 집은 맛 보다 더 평가를 받는 것이 있으니 감히 잔치국수에서만 거론할 수 있는 소박함 가운데 가득 담긴 "정"이랄 수 있다. 이 집은 장안 최고의 맛집이 아니다. 더 화려한 맛의 잔치국수 집이 더 있다. 그러나 내가 그 주인의 가족 같은 대우를 받으며 뿌듯한 마음을 안고 나서는 집은 이 집 뿐 이다.


수년 전부터 차로 지나 다니면서,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차는 물론이고 지나다니는 사람 조차 드물었던 곳에 홀로 모퉁이에 덩그러니 서 있던 이 집을 유심히 봐 오면서 과연 손님이 몇 이나 올까... 의구심을 품었던 집이다. 그런 곳에서 17년 전에 이 집을 열었으니 당시의 그 절박함이 지금도 겉으로는 고스란히 남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지만 지금은 편안하고 정이 묻어나는 곳이 되었다.

 

<효창동 '맛있는 잔치국수'>

 

 

 

소박하지만 정도를 간다.

 

육수는 반드시 고향인 거제산 멸치만을 고집한다. 거제산 멸치만 가능하다고 믿고 있다. 깔끔한 맛을 위해 고추씨도 넣고. 고명은 부추와 계란지단과 김가루, 호박이 뭉텅뭉텅 들어간다. 특히 계란지단은 양도 양이지만 두께가 두툼해서 흉내만 내는 여느 집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웬만해서는 곱빼기를 시킬 필요가 없을 양이지만 굳이 곱빼기가 필요하면 그냥 양 많이 부탁만 하면 된다. 국수도 여느 잔치국수 전문집들 같이 면을 미리 삶아 두고 주문 후에 육수에 헹구는 것이 아니라 주문 받으면 그때야 건면을 삶기 시작하기에 조금 시간이 걸린다. 면을 큰 육수 통에 담갔다가 건짐을 반복하면서 육수의 농도가 옅어져서 운이 나쁘면 멀건 육수를 먹게 되는 시장 칼국수와는 육수를 담는 방법부터 다르다.

 

<'육수 작업'과 '계란 지단'>

 

 

 

푸짐한 국수 한 그릇은 공덕을 쌓는 것이다.

 

김 할머니는 경상도 사투리가 강해 다소 퉁명스럽게 보일 수 있어도 말 몇 마디 나누면 금새 속정을 느낄 수 있다.

마지막에 그 "정"의 실체를 알아 보기로 했다. "할머니 이 집은 맛도 맛이지만 다른 집에 비해 굉장히 양이 푸짐한 것이 가장 차별화 되는데 뭐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했더니 "이승에서 배고픈 사람들에게 구난공덕을 쌓아 그 덕에 40년 전에 먼저 간 신랑이 저승에서 평안해지길 기원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정말 놀랄 만 하지 않은가? 이 소박한 잔치국수 안에 이런 사연이 있었다니...

 

<'잔치국수 말기'와 완성된 잔치국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