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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칼럼] 소수민족 마을 따라 먹거리 여행, 인심 좋고 맛도 토속적인 민족마을 천호동채, 조흥고진, 용척제전

소수민족 마을 따라 먹거리 여행, 인심 좋고 맛도 토속적인

민족마을 천호동채, 조흥고진, 용척제전

 

 

 

시골 오지를 다니다가 집 밥을 먹는다면 그 여행은 행복하다. 진수성찬일 리는 없지만, 사람의 정을 함께 먹어서일까 오래도록 추억에 남는다. 중국 귀주는 동네마다 소수민족 마을이다. 귀양에서 계림 가는 길 용강(榕江) 현에는 동족마을(侗寨)이 있다. 아무 집이나 노크하면 환하게 웃으며 반겨준다. 아이들은 신나서 따라다니며 이방인 옷차림과 말투가 신기하다. 낯선 마을로 들어간 여행자 역시 신이 나긴 마찬가지.

 


인구 300만 명 가량인 동족은 광동 지방을 근거지로 오랫동안 살았던 월족(百越)의 분파다. 소수민족의 이름은 대체로 한족이 정한 것이라 비하하는 경향이 있다. 동족 역시 ‘산굴에서 사는 사람’이라는 동인(峒人)을 따랐다. 중국공산당이 정권을 잡은 후 ‘산적’이라 불렀다고 비천하지 않다. 나름대로 역사와 전통문화, 생활 환경까지 결코 민족 자긍심이 뒤떨어지지 않는다. 마을 입구에 우뚝 선 고루(鼓楼)는 동족 문화를 상징하는데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꿋꿋하고 높다. 마을 영토 표시이자 광장이다.

 

 

 

<산보마을에서 만난 아이들(왼쪽 위), 동족 전통음식 엄어(왼쪽 아래), 동족 상징 고루(오른쪽)>

 

골목에서 아이들이 줄줄이 따라오기에 용돈을 주고 한참 놀았다. 그 사이 저녁상이 차려졌다. 입맛에 너무 맞춤이라 놀랐다. 사시사철 귀한 손님이 오면 내놓는다는 엄어(腌鱼)에 눈길이 간다. 흰 밥에 얹어 먹으니 짭짤하면서도 쫄깃하다. 하천에서 잡은 신선한 물고기를 손질한 후 배를 갈라 그 속에 소금물에 절인 찹쌀을 넣고 항아리를 밀봉해 100일 이상 서늘한 곳에 보관한다. 고춧가루도 함께 넣어 매콤하기도 하고 홍어처럼 약간 삭힌 냄새조차 생각보다 꿀맛이다. 생선을 절여 보관하는 방식이 남방 민족의 오랜 전통이다.

 

2000년에 개방돼 15년이나 됐지만 여전히 순수한 모습 그대로 간직한 곳으로 삼보(三宝) 마을이라 부른다. 전설에 의하면 조상들이 동, 남, 북 하천 3곳에서 물이 흘러와 큰 호수를 이루고 살았다. 어느 날 하천에서 각각 용이 내려와 호수에 모여 살았는데 9일 낮과 밤 동안 내린 홍수로 둑이 무너지자 남쪽으로 사라졌다. 훗날 호수가 가물자 그 속에서 3개의 용 문양 보물이 남았다는 것이다. 동족의 토템이 아닐진대 용이 등장한 것을 보면 누군가 바꿨겠지만 신화 같은 전설이 있어서일까, “동족 민간 고사의 왕국”이란 칭호를 받고 있는 마을이다.

 

 

 

<조흥마을의 고루광장(왼쪽), 단체로 잔치 중인 마을(오른쪽 위), 설거지하는 동족 아낙네(왼쪽 아래)>

 

삼보 마을에서 동쪽으로 1시간 가량 달려가면 “천하제일 동족 마을” 조흥(肇兴)이 있다. 이미 배낭 여행자에게는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골 6곳 중 하나로 선정되는 등 꽤 유명하다. 2007년에는 미국 <국가지리>가 펴낸 ‘세계에서 가장 매력적인 33곳 여행지’로 선정돼 알려졌다. 온 사방이 하천으로 연결돼 있고 곳곳마다 높이 솟은 고루가 자리를 잡고 있으며 주로 염색업과 농업으로 살아가는 마을이다. 개량하지 않고 남겨둔 몇 안 되는 신천지다.

 

 

 

<조흥마을 거리(왼쪽 위), 전통 방법으로 염색하는 할머니(왼족 아래), 조흥마을의 종족 아이(오른쪽)>

 

조흥으로 들어서니 동네 어른을 모시고 잔치를 벌이고 있다. 광장에는 밥 50인분은 하고도 남을 부뚜막이 4개나 있다. 설거지하는 아낙네 손길이 분주하다. 하천 옆을 따라 좁은 골목 길을 걷는다. 사람도 개도 많지만 서로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 마치 낙원에 온 듯한 마음으로 걷다가 골목에서 노는 아이들과 만났다. 한동안 묘족 아이가 가장 예쁘다고 떠들고 다녔건만 조흥 동족 아이들이 눈이 더 맑고 인상적이다.


고루마다 호랑이, 용, 물고기, 닭이 조각돼 있고 악기를 다루고 춤을 추는 사람들의 조각도 이채롭다. 탑처럼 높은 누각에는 농사짓는 사람이나 돼지를 잡거나 짐을 옮기는 그림이 그려진 것도 독특하다. 높아서 다 보이지는 않지만, 봉황, 물고기, 꽃, 꿩 등을 그려놓았는데 설화일지도 모를 코드가 무궁무진하다. 한 마디로 누각 종합예술이다. 하천에 비친 모습도 감탄할 만하다. 해가 지자 마을은 황홀경으로 변한다. 조명을 밝히니 용을 비롯한 동물이 불타오르는 듯 장관이다. 하루 밤 지내는 것으로는 너무 아쉬운 마을이다.

 

 

 

<동족 조흥마을의 고루 조명에 비친 화려한 용을 비롯 조각과 그림>

 

동족 마을을 벗어나 동쪽으로 계림 방향으로 4시간을 달려가면 다랑논으로 유명한 용승제전(龙胜梯田)이 나온다. 55개 소수민족 중 인구가 가장 많은 민족은 약 1,800만 명의 장족(壮族)이다. 다랑논이 아름답고 가파른 형세라 ‘용 등뼈’ 용척(龙脊)이란 이름으로 알려진 평안(平安) 마을은 장족 마을이자 요(廖)씨 집성촌이다.


전망이 확 트인 2층 민박집에 짐을 푼다. 안개가 자욱하더니 바람이 불자 늦가을의 온화한 논이 서서히 드러난다. 주인은 밥을 하기 시작한다. 이곳의 명물은 대나무 속에 쌀, 잡곡, 버섯과 양념을 넣어 만드는 죽통밥(竹筒饭)이다. 저녁 시간이 되자 온 마을에서 대나무 타는 냄새가 진동한다. 통 굵기도 아이들 주먹 하나가 들어갈 정도로 넓다. 대나무 통에 토종닭을 넣고 요리한 죽통계탕(竹筒鸡汤)도 있다는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 포기하고 죽간과 버섯, 양념을 넣고 삶은 국물에 닭을 넣은 샤부샤부를 먹었다. 닭고기 먼저 먹은 후 산나물을 삶아 반찬으로 죽통밥과 함께 먹으니 구색이 많다.

 

 

 

<장족 평안마을의 죽통밥을 짓는 아주머니들(왼쪽 위, 아래, 오른쪽 아래), 쌀과 콩 등을 넣은 주식 죽통밥(오른쪽 위)>

 

아침에 일어나 주인에게 죽통밥을 다시 특별 주문했다. 이번에는 양념을 빼고 오로지 밥과 버섯, 콩만 넣고 불에 태워 달라고 했더니 웃는다. 역시 훨씬 담백하다. 요리할 때 중국 소금이나 향료를 버리고 좋아하는 재료만 넣어 먹어도 좋다.


평안 마을 산마다 다랑논 관람대가 있다. 산골마을인 데다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 길을 찾아가기가 쉽지 않다. 최대경사가 50도에 이르는 마을을 다 벗어나도 다시 산길을 30여 분 오르면 칠성반월(七星伴月)에 이른다. 북두칠성이 보름달과 짝을 이룬 모양을 말하는데, 작명의 천재 중국인이 어떤 모습을 보고 그랬을까 궁금하다. 정상에 서니 한가운데 물에 잠긴 둥근 논이 보인다. 주변에도 ‘별’처럼 생긴 논이 보이지만 꼼꼼하게 봐도 일곱 개인지는 아리송하다. 반대쪽 산에는 구룡오호(九龙五虎)도 있다니 용이나 호랑이를 요리하듯 다루는 말솜씨 하나는 인정해야 한다.

 

 

 

<칠성반월이란 멋진 이름이 붙은 다랭이논>

 

귀주 성 귀양에서 시작해 광서 성의 계림에 이르는 길은 소수민족의 터전이다. 소수민족 나라로의 여행은 늘 흥겨운 맛과 함께한다. 물고기의 신선도를 유지하고 감칠맛 나게 삭혀 먹기도 하고 대나무 속에 담긴 향긋한 내음을 익혀내는 정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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