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Noodle talk

[푸드칼럼] 운남 소수민족 문화여행 - 다리와 리장의 쌀국수

파란 하늘 구름 따라

운남 소수민족 문화여행 - 다리와 리장의 쌀국수

 

 

 

중국 서남부 변경 운남(云南)은 56개 민족 중 절반이나 산다. 인구는 많지 않지만 '하늘 여행'이란 찬사가 아깝지 않은 멋진 여행지이다. 우기가 있기는 하지만 파란 하늘이 눈 부신 땅이자 소수민족 정서가 정겨운 마을이 구름처럼 곳곳에 많다. 중국 로큰롤 가수로 유명한 쉬웨이(许巍)는 “여행(旅行)”이란 노래에서 ‘한가한 마을 어딘가에 멈추면, 모든 소란은 멀리 사라지네!’라며 애잔하게 노래하는데 하늘과 구름이 어우러진 자연과 이국적인 소수민족의 문화, 음식 여행하기에도 참 좋은 곳이다. 인천공항에서 직항도 있으니 ‘멀고도 가까운’ 여행을 떠나봐도 좋겠다.

 

4세기부터 백족(白族)이 사는 역사문화도시 다리(大理)에는 병풍처럼 바람을 막아주는 뒷산 창산(苍山)이 있다. 이름처럼 푸르고 신선하며 능선 따라 걷는 길은 오밀조밀하고 부드럽다. 해발 약 4,200m 최고봉에 쌓인 설산에는 일년 내내 눈이 머물고 코발트 사이를 흐르는 구름과 선녀가 내려올 듯한 샘, 대리석으로 유명한 돌까지 4가지 모두 흰색을 파묻고 있는 산이다. 3천 년 이상의 역사 기록을 지닌 백족 고향답다. 1시간가량 말을 타고 오르면 당나라 시대 처음 지었다는 도관(道观) 중화사(中和寺)에 다다른다.

 

 

 

<창산 오르는 길(왼쪽), 중화사의 반찬(오른쪽 위), 중화사 지붕 밑 문양(오른쪽 아래)>

 

도사들이 수행하는 곳에서 간단한 식사를 팔 줄은 몰랐다. ‘절밥’은 간혹 먹어봤지만 ‘관밥’은 처음이다. 수양하는 사람들이 먹는 그대로 밥과 채소 넷, 밋밋한 탕이 전부인데도 정말 꿀맛이다. 새로운 경험은 늘 엔도르핀이 돈다. 신선한 공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나라 촌부 할머니처럼 다정한 인심을 더하니 15위안(약 2,500원) 점심 인정을 오래 마음에 남겨도 좋겠다.

 

청나라 강희제가 하사한 전운공극(滇云拱极) 편액이 걸려 있다. 전(滇)과 운(云)은 고대 왕조와 지역을 뜻하고 공극(拱极)이란 ‘최상의 예를 다해 절을 한다’는 말이니 청나라가 복속한 후 지역민  정서에 맞춰 통치하겠다는 의지를 담았나 보다. 밥을 먹는데 지붕 아래 용 얼굴의 단청 칼라가 눈에 쏙 들어온다. 낯설게 느껴질지 모르나 여행을 하면서 태어나 처음 도킹하는 것에 흥분하는 것은 당연하다.

 

해발 2,600m 지점의 능선은 동서로 16km에 이르는 운유로(云游路), 구름처럼 두루 다니는 길이라는 멋진 이름이다. 온갖 산새와 풀 내음, 물소리, 계곡을 따라 굽이굽이 돌고 또 돌아도 멀기만 하다. 중간 지점 칠용녀지(七龙女池)에 이르면 민가가 자리를 잡고 있다. 여행가를 위한 쉼터이다.

 

 

 

<창산 칠용녀지 쉼터(왼쪽 위), 컵라면 먹는 아이(왼쪽 아래), 창산의 쌀국수(오른쪽)>

 

여러 가지 요리를 파는데 마침 쌀 국수가 있다. 쌀로 빼낸 줄이라며 미센(米线)이라 부르는데 간단히 끼니 때우는데 더할 나위 없다. 밀가루 면발보다 좀 뚝뚝 떨어지긴 해도 부드럽고 살살 녹듯 입으로 쏙 들어가는 국수 한 그릇은 여행을 더 풍성하게 해준다. 야채도 섞지만 고기와 기름도 둥둥 떠다녀도 꽤 담백하다. 컵라면에 코 박고 먹는 꼬마는 나를 보고, 나는 꼬마를 보며 서로 ‘왜 그런 걸 먹지?’하는 눈빛도 심심하지 않다.

 

걷다가 지루하여 고개를 돌리면 마치 바다처럼 펼쳐진 얼하이(洱海)의 시야가 뚜렷하다. 서쪽 끝자락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오면 동쪽에 도교사원의 대칭처럼 불교사원 감통사(感通寺)가 있다. 살짝 비가 내린 데다 향 피운 연기가 사원을 뿌옇게 수놓고, 오랜 나무 한 그루 모여 있으니 신비로운 느낌이다. 아주머니들이 불공드릴 밥과 반찬을 준비하느라 바쁘다.

 

 

 

<운유로(왼쪽 위), 치즈구이 루산(왼쪽 아래), 얼하이 풍광(오른쪽 위), 천룡팔부성(오른쪽 아래)>

 

백족에게는 나비에 관한 아름다운 전설이 있다. 왕에게 강탈당한 정인을 구출한 청년은 더는 도망갈 곳 없자 샘에 뛰어들어 동반 자살했다. 얼마 후 샘에서 한 쌍의 나비로 부활했다는 사연이다. 시내에는 ‘나비의 꿈’이라는 공연이 있는데 화려하고 은은한 무용과 음악이 환상적이다. 다리 고성 밖에는 무협소설가 김용의 ‘천룡팔부’ 이름을 사용한 성곽이 있는데 무협영화보다 동화 속에 나오는 신령한 마을 같다. 영화와 드라마의 단골 소재이기도 하고 중국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린 ‘천룡팔부’는 이곳 다리가 배경이다. 고성 안은 민족 음식이 많은데 온 동네 쌀 국수는 기본이고 치즈를 불에 구워 마치 우산처럼 넓게 생긴 루산(乳扇)이라는 별미가 길거리 음식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갈 때마다 다리의 명물이라 사서 먹어보는데 원래 포도주 먹을 때도 잘 먹지 않는 치즈라 한번 사 먹는 것으로 만족한다.

 

 

 

<다리의 ‘나비의 꿈’ 공연(왼쪽 위/오른쪽 위), 리장의 ‘인상리장’ 공연(왼쪽 아래/오른쪽 아래)>

 

다리에서 서너 시간 거리에 유럽인들이 가장 가고 싶어하는 리장(丽江)이 있다. 천연의 옥룡설산(玉龙雪山)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한 편의 드라마 ‘인상리장’ 공연을 빼놓는다면 후회 때문에 다시 비행기를 타야 한다. 무대 위에 말이 뛰어다니고 열창과 춤을 추는 수백 명의 현지인 배우가 등장한다. 몇 년이 지나도 리장의 인상(印象)을 지우기 힘들게 한다.

 

리장은 나시족(纳西族)의 고향이다. 도교 전신 무교(巫教)스러운 동파교(东巴教)와 상형문자 동파문(东巴文)을 지금도 사용하다 보니 진정 이국적인 세상이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직접 종이를 제조하며 동파문 캐릭터로 만든 풍령(风铃)도 하나 사서 배낭에 담거나 고성을 흐르는 하천에 소원을 담아 종이배를 띄워도 좋다. 일본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잉태한 리장고성 야경에는 1년 내내 발 디딜 틈 없는 여행가들이 주인공이다.

 

 

 

<동바 종이공장(왼쪽), 리장고성 야경(오른쪽 위), 고성의 종이배(오른쪽 아래)>

 

하루 종일 자전거를 타고 고성 밖을 유람해도 좋다. 뱀을 토템으로 하는 동파교 성지이자 수원인 옥수채(玉水寨)에서 설산으로부터 흘러나온 물을 만져 봐도 좋다. 동파만신원(东巴万神园)을 찾아 낯설어도 금방 친근해지는 신들과 사진도 찍고 설산을 배경으로 신들이 걷던 길도 걸어본다. 돌아오는 길에 식당에라도 들어가 쌀 국수를 주문하고 후다닥 먹어도 좋다. 동네마다, 주인마다 맛이나 때깔이 다른데 외곽 농촌의 미센은 고추장 기름을 많이 넣어 좀 매콤하다. 저수지에 들어가 헤엄치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조용히 매운 느낌을 음미해 본다.

 

 

 

<고성 모습(왼쪽 위), 동파문 상품(왼쪽 아래), 동파 풍령(오른쪽 위), 리장고성 야경(오른쪽 아래)>

 

쌀로 만든 면을 줄(线)이라 하는 것은 실처럼 가늘어서 붙은 이름일 것이다. 5~6세기 중국 남북조 시대 요리책인 <음차(食次)>에 등장하는 것을 보면 꽤 옛날부터 먹었던 듯하다. ‘쌀을 갈아 가루로 만든 후 꿀과 물을 적당히 넣고 걸쭉하게 만든 것을 구멍 뚫은 대나무 숟가락에 부어 가늘게 실처럼 흘러내리게 한 다음 가마솥에 넣고 기름을 둘러 익혀 먹었다’는 ‘기나긴’ 요리법이 기록돼 있다. 재미있는 것은 대나무로 만든 숟가락 구멍이다. 밥 먹는 숟가락보다는 훨씬 컸을 듯하다. 이 책에는 정미(精米)를 갈아서 만들었다고 해 ‘선명하다’ 또는 ‘맑다’는 뜻으로 ‘찬(粲)’이라 불렀는데 중국 고대에는 쌀가루나 밀가루로 만든 음식의 대명사로 불렀다. 라면의 조상이 ‘찬’이라고 해도 시비 걸진 않겠다.

 

 

 

<리장 쌀국수(왼쪽 위), 리장외곽 저수지(왼쪽 아래), 동파만신원(오른쪽 위), 옥수채(오른쪽 아래)>

 

운남은 쌀 국수의 고장이다. 물론 요즘에야 전국 어디에나 쌀이 있어서 누구라도 쉽게 쌀로 만든 국수를 맛 볼 수 있다. 요리 방법도 다양한 만큼 음식점도 많다. 운남을 가면 쌀 국수와 함께 소수민족 문화와 축복받은 자연을 눈요기하면 좋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