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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odle talk

[푸드칼럼] 재래시장 국수 탐방, 남대문시장 손칼국수

재래시장 국수 탐방,

남대문시장 손칼국수

 

 

 

국수 연재를 시작하면서 애초 다루고 싶었던 것이 재래시장 칼국수였다. 그러나 재래시장 칼국수란 것이 주인이 스스로 원하던 원하지 않던 저렴함과 신속함이 한결 같은 영업방침인 이유로 순수한 국수 그 자체로서는 한계가 있음을 느끼며 스스로 재래시장 칼국수에 대한 글쓰기를 자제해 왔다. 가급적 가장 기본에 충실한 국수 위주로 다루겠노라 나름 원칙을 정하고 보니 재래시장의 칼국수를 다루지 않는 것은 원고 쓰는 내내 개운치 못함을 느껴왔었다. 하여 당분간 서울 시내의 재래시장 내의 칼국수집에 대한 탐방을 하기로 결심했다.

 

이번 편은 재래시장의 대명사, 남대문시장 칼국수 골목 내에 있는 집을 소개하고자 한다.
처음 이 골목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초입에 들어 서자 마자 분명 칼국수 골목으로 알고 찾아 왔는데 한결 같이 “냉면도 서비스로 줘요, 보리 비빔밥을 시키면 칼국수도 서비스로 줘요…” 라며 이곳 저곳에서 정신 없이 터지는 호객에 적잖이 당혹스러울 것이다. 그런데 그 중에 독특하게도 귀에 들어오는 소리, “우리는 칼국수만 해요… “ 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 이다. “어? 이 집은 무슨 배짱이지? 뭔가 있는 건가…” 라고 느낄 것 이다.

 

 

 

<남대문시장 칼국수 골목의 오후 풍경>

오후 6시경 칼국수골목의 모습. 이 시간이면 남대문시장 가게들이 대부분 문을 닫는

시간으로 이곳 역시 한가해 진다. 좀 편안히 먹고 싶다면 이 시간대를 권한다.

 

 

 

이십여 년 이전부터 이 골목을 출입하긴 했지만 자주 올 수 없는 여건 때문에 딱히 단골이 있는 것은 아니었고 항상 가장 손님이 적은 집을 선택기준으로 다녀가곤 했다. 내 기억에 칼국수만 판다는 이 집도 다녀간 기억은 분명히 있지만 그 시기는 짐작조차 가지 않을 정도로 오래된 얘기다. 그 때의 선택기준은 분명 내 성격상 단지 “번거러움”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선택의 기준은 그 주인의 “배짱”이었다.

 

 

 

<단촐한 메뉴판과 국수 삶는 작업>
다른 집과 달리 이 집은 메뉴판이 매우 단촐하다.
손칼국수, 수제비, 냉면 여기에 쫄면이 하나 더 추가되어 있다.

 

 

 

칼국수가 나오기를 기다리면서 참지 못 하고 가장 궁금한 “왜 다른 집들과 달리 칼국수만 하시나요?” 라고 여쭤봤다. “좁아서요…!” 아~! 이 억장이 무너지는 듯한 허탈한 답변. 그러고 보니 그나마 좁은 공간을 두 사람이 낮은 칸막이 하나로 나눠 장사를 하고 있었다. 두 분이 힘을 합쳐서 공간을 같이 사용하고 다른 메뉴를 추가하면 되지 않느냐라고 여쭤봤더니 처음에는 공간문제 때문에 복잡한 메뉴를 추가하지 못 했지만 이제는 오히려 한가지 메뉴를 전문화한 것이 더 잘한 것 같다라는 답변이었다. 세상을 살면서 본인의 의지대로 인생을 다 꾸려 나가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본인이 원했던 원하지 않았던 주워진 상황을 최선을 다 해서 꾸려나가서 성공적인 삶으로 이끄는 의지가 중요하지… 작은 칼국수 하나 먹으러 왔다가 인생도 배워간다.

 

 

 

<도톰하게 막 썰어놓은 칼국수>
아주 좁은 공간이지만 그 공간에서도 신기할 정도로 공간활용을 잘 하면서
반죽도 하고 면도 밀고 모든 과정이 다 이뤄진다.

 

 

 

면은 생각보다 도톰해서 최소한 다 먹을 때까지 잘 불지도 않고 씹히는 맛이 좋다. 하지만 면의 굵기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호불호가 심해서 굵은 면발이 항상 선이라고는 말할 수는 없다. 이날 하루 동안 겪은 개인적인 경험을 얘기하자면 오전 11시경에 이 집에 들러 인터뷰 요청을 하면서 칼국수 한 그릇을 먹고 다시 자리를 이동해 종로 광장시장에 2시경에 들러 가끔 가는 칼국수 집에 들러 소개할 만한 집인지 정밀 탐색(?) 하느라 또 칼국수를 먹었는데 그 집이 이 남대문 칼국수와 매우 대조적으로 매우 얇게 면을 삶아 내는데 여기에서 한번 더 내 취향에 대한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같은 멸치육수를 우려 내더라도 눅눅한 느낌의 잡 냄새가 없어야 하고(분명 멸치의 구수한 느낌과는 차별화 되는 맛) 특히 면의 씹히는 느낌이 별로 없는 것은 내 취향이 아니라는 것을 머리 속에 각인하게 되면서 광장시장의 그 가게는 이제 내 리스트에서 지우기로 했다. 그리고 저녁 6시경에 남대문칼국수 골목을 다시 가서 3번째 칼국수를 먹게 되었고 하루 내내 칼국수만 먹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맛있게 먹었다.

 

 

 

<남대문시장 손칼국수집을 함께 운영하는 두분>
앞에 계신 분이 다른 곳에서 옮겨온 지 5년 째(모두 합쳐서 28년째),
뒤에 계신 분이 18년째 이곳에서 장사를 하고 계신다.

 

 

 

육수색깔은 비교적 짙은 편이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멸치육수를 진하게 우려내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더 이상은 묻지 않기로 했다. 항상 인터뷰 때마다 견지하는 것이 음식을 만든 사람의 입장을 존중한다는 차원에서 제조법에 대한 노하우를 지나치게 묻지 않는 편이다. 음식이 아주 독특하다거나 생경한 맛이라면 개인적인 해소 차원에서라도 좀 더 깊이 물어 보겠지만.

 

 

 

<기본 국수에 부재료를 취향에 따라 넣어주는 방식>
주문 옵션이 다양하다. 유부, 매운 고추, 양념장, 마늘, 익은 김치, 덜 익은 김치…
일일이 물어보고 첨가한다.

 

 

 

<선택한 유부를 잔뜩 올려준 손칼국수>
개인적으로 유부를 좋아해서 칼국수 비쥬얼에 어울리지 않게 유부가 좀 과하게 올라 있다.

 

 

 

호박과 감자가 기본으로 같이 끓여져 나온다. 전체적으로 칼국수는 잡 냄새가 없는 깔끔한 맛이다. 음식점에서 육수 낼 때에 많이들 사용하는 파뿌리라도 넣는지 물어 봤지만 파뿌리를 넣으면 흙 냄새가 난다고 두 분이 똑 같이 얘기하니 안 믿을 수도 없고, 요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같은 재료에 대한 호불호는 굉장하다.

 

재래시장에서 먹는 칼국수의 특징이자 가장 큰 장점은 음식을 만든 사람과 먹는 사람의 빈번한 커뮤니케이션에 있다고 생각한다. 먹는 동안 모자라지 않나? 면을 더 줄까? 이 집의 유일한 번외 메뉴 냉면까지 줄까라고 끊임 없이 물어본다. 이날도 족히 열 번 정도는 사양했던 것 같다. 옆에 앉았던 젊은 여자는 계속 말을 시키는 아주머니의 질문에 답변이 좀 어눌해서 그냥 그런가 보다 했는데 중국인 유학생이었다. 역시 그녀에게도 더 필요한 것이 없는지 끊임 없이 물어보고 한국말 잘 한다고 칭찬도 하고… 이런 것이 이 골목 사람들의 사는 모습이자 유일한 영업방식이다.

 

 

 

<멋스런 나무 젓가락과 균일한 육수 맛을 유지할 수 있는 아담한 크기의 솥>

 

 

 

재래시장이라고 다 스텐레스 젓가락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작은 멋도 부린다. 이 칼국수 전문점의 장점은 솥이 작다는 것 이다. 장소가 협소한 이유도 있었지만 그것이 육수의 맛을 균일하게 유지하는데 더 유리하게 작용을 하고 있다.

 

그 동안의 여러 경험으로 주변 서비스가 많은 집에 가면 사실 손님이 많을 경우 그릇을 펼쳐 놓기도 힘들어 번잡스럽기 이를 때 없다. 그렇다고 이 칼국수 전문집 띄우느라 서비스가 많은 집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아니다. 손님 입장에서는 행복감을 느낄 수도 있다. 오히려 이렇게 팔아서 과연 얼마나 남을까 걱정하며 먹을 정도다. 한 때는 이 골목 상인들이 모여서 과도한 서비스를 자제하자는 결의를 했다고 하지만 금방 그 결의는 무너져 버렸다고 하니 이 작은 골목 안의 치열한 경쟁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서비스를 사양하면 가계 주인들이 불안해 할 정도다. 작은 골목 안에서 이뤄지는 굉장히 독특한 풍경들이다.

 

 

 

<수 십년 동안 손칼국수를 만들어온 국수 장인의 아름다운 손>

 

 


두어 평 남짓한 공간에서 하루 종일 손으로 반죽을 하고 칼로 썰고 수십 년을 이어가고 있는 손이다. 얼마 전, 손님이 자신을 잘 대우해 주지 않는 다며 수년간 해 오던 한국에서의 조리사 일을 정리하고 “영재 이민”이라는 특별한 비자를 받아 미국으로 가는 어느 일식 조리사 소식이 있었다.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일인 분이 수십 만원씩 하면서도 손님이 자신을 따라와 주지 않는다며 떠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불과 몇 천원의 칼국수를 내 놓으면서도 끊임없이 손님에게 맞추려고 하는 이런 국수 장인들도 있다. 이런 사람들의 손은 늘 아름답다. 그런데 더 아름다운 것은 손이라도 찍고자 하면 그 수줍어하는 마음이다. 이제 당당하셔도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