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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odle talk

[푸드칼럼] 문정훈 교수의 ‘좋은 음식을 먹자’ 시리즈 ③ 행복한 돼지를 행복하게 소비하자

문정훈 교수의 ‘좋은 음식을 먹자’ 시리즈

③ 행복한 돼지를 행복하게 소비하자

 

 

 

스트라스브루의 방목 돼지들

얼마 전 프랑스의 동북부에 위치한 알자스 지역의 스트라스브루에 방문하였다. 스트라스브루는 예능 프로그램인 꽃보다 할배에 나와서 더 유명해진 곳이다. 여느 관광객이라면 시내 관광을 다녔겠지만, 나는 먼저 산 속으로 들어갔다. 돼지 농장을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산 아래 마을에서 돼지 농장 주인 아들과 함께 만나 산 속으로 꽤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그가 휘파람을 휘익~ 하고 불자 숲속 사방에서 돼지들이 뛰어 나온다! 마치 매복해 있던 레지스탕스 단원들이 대장의 신호로 잠복해 있다가 나타나는 것만 같다.

 

 

<스트라스브루 전경>

 


<스트라스브루의 방목 돼지들>

 


이 농장에선 60여 마리의 돼지들을 산속에 방목하여 기르고 있다. 1핵타(ha)에 몇 마리 정도 사는지 물어 봤더니, 잘 생긴 알자스의 청년은 1~1.5핵타에 15마리 정도 키운다고 한다. 1ha는 10,000㎡이니 대락 100m 곱하기 100m 의 엄청나게 큰 공간에 돼지 열 마리가 산다는 이야기다. 맘껏 뛰어 놀 수 있어서 좋겠다. 하지만 알자스의 겨울은 만만찮게 춥다. 겨울에는 어떡하냐고 물었더니, 추우면 집(축사)에 데려가서 재운다고 한다. 아, 좋다. 무작정 바깥에 내놓는 것 보다는 추우면 데리고 들어가서 재우는 걸 아마 돼지들도 더 좋아할 것이다.

 


방목하는 돼지들은 땅에서 자라는 버섯, 나무 열매 등을 주워 먹는다. 하지만 그걸로는 충분히 성장하기 어렵기 때문에 농장 측에서 먹이를 공급하는데, 아침식사로는 곡물과 우유를, 점심 때는 밤 등의 견과류 주고, 저녁에는 제철 식단(?)을 짜서 먹이를 준다고 한다. 팔자 좋은 돼지다. 바깥에서 신나게 뛰어 놀다가. 때 되면 밥가져다 줘, 밖에서 뛰어 놀다가 안 추우면 노숙, 추우면 집에 들어가서 잔다.

 

 

<스트라스브루의 방목 돼지들>

 

 

방목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잘생긴 프랑스 청년에게 물었다. 왜 이렇게 돼지를 키우냐? 뭣 땜에? 뭘 위해? 청년은 기다렸다는 듯이 두 가지를 이야기 해주었다. 돼지들도 행복하게 살아야 할 권리가 있고, 그리고 이렇게 키운 돼지는 많이 뛰어다녀서 육질이 단단하고 맛이 뛰어나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 이렇게 키우면 돈 얼마나 더 많이 받느냐고 물었더니, 프랑스에서 일반 돼지가 ㎏ 당 3.6유로인데 반해, 자기네 돼지는 ㎏ 당 9.5유로를 받는다고 한다. 즉, 2.5배의 가격을 받는다.

 


이번엔 그에게 고객이 누구냐고 물었더니 유명 레스토랑의 셰프들과 동물 복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고객들이 주로 사간다고 대답한다. 그리고, 도축은 주로 10월에 일괄적으로 하는데 이미 선주문이 들어와서 대부분이 도축 시점 이전에 다 팔린다고 한다. 가장 인기 있는 부위는 우리와는 달리 안심, 등심, 후지(뒷다리살)다. 반면에 프랑스에서 비인기 부위인 삼겹살 부위는 나중에 소시지 작업할 때 그 안에 들어간다.

 


이 농장에서 키운 돼지를 10월에 도축장에 보내면, 도축된 돼지는 다시 이 농장으로 돌아온다. 그러면 농장에서는 이것을 분할하여 그들의 고객에게 보내고, 비선호 부위는 소시지, 햄 등으로 가공한 후 판매한다. 몰론 이것도 비싸게 팔린다. 맛이 궁금해서 좀 살 수 있겠냐고 물었더니, 이미 다 팔리고 없다고 한다.

 


돼지고기를 구매하는 사람들이 '돼지야 뱃속에 들어가면 다 똑같지. 방목이 뭐가 달라? 복지? 그게 중요해?' 라고 해버리면, 그래서 이 농장의 돼지가 다르다는 것을 알아주지 못하면 이 농장의 방목방식의 사육은 이것으로 끝이 나 버린다. 그 순간 모든 돼지는 다 일상재(commodity)가 되어버린다. 일상재가 되고부터는 가격이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어버리니, 비용을 아껴야 하고, 그러려면 이 농장은 방목을 포기 하고 다시 공장형 사육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다. 즉, 이 농장이 이런 차별화된 돼지를 생산할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프랑스의 소비자들이 까다로운 소비감성, 그리고 다양화된 소비 세분화 시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숨겨진 가치를 알아주자

국내 상황으로 와보자. 우리는 돼지고기나 닭고기를 구매할 때 무엇을 보고 구매하는가? 우리는 돼지고기와 닭고기를 일상재로 보고 적당히 싼 가격의 돼지고기와 닭고기를 구매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소비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기존의 공장형 사육을 나쁘다고 말할 수 없지만, 썩 좋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돼지와 닭들은 어둡고 좁은 공간에서 평생을 갇혀서 산다. 한 마리라도 아프기 시작하면 이런 밀집 사육에서는 금방 다른 개체에게 전염된다. 더 많은 에너지를 써야 하고, 더 많은 환경 오염 물질을 배출한다.

 


물론 이런 공장식 사육도 중요한 장점을 하나 가지고 있다. 대량생산으로 인해 소비자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이라는 점에선 그 나름의 가치가 있다. 우리에게 이런 공장식 사육 방식이 없다면 저소득 계층은 고기 맛보는 것이 만만치 않게 힘들 수도 있다. 이런 일반적인, 공장식 사육 돼지고기, 닭고기를 먹지 말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동물의 권리를 지켜주고, 에너지를 덜 쓰고, 환경 오염 물질을 덜 배출하는 농장이 생산하는 돼지고기에 한번 더 관심을 가져주고, 100g 당 몇 천원 더 지불해 보는 건 어떨까?

 


우리나라에서 이런 차별화된 돼지를 사육하려면, 가장 중요한 것이 농장주가 '우리 농장에서 굳이 이렇게 어려운 방식으로 돼지를 길러야 할까?’라는 질문에 긍정적인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하는 것이다. 그 근거는 바로 소비자들이 그 가치를 알아 주고, 1,000원을 더 내겠다는 의지를 가지는 것이다. 소비자들이 이런 까다로운 소비 감성없이 돼지고기를 일상재로 생각한다면 그 어떤 돼지 농장도 이런 의미있지만, 힘들고 귀찮은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국내 마트에서 이런 지속가능한 방법, 윤리적인 방법으로 생산한 돼지고기와 닭고기를 맛보는 것은 실은 쉽지 않다. 그런 고기를 찾는 것 자체가 어렵다. 그나마 달걀에서는 ‘방사란’이라는 이름으로 출시된 제품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달걀에서 시작하고, 돼지로 넘어가 보자. 드물긴 하지만 몇몇 돼지 농장들이 이런 방식으로 행복한 돼지를 키우고 있다. ‘동물복지’라는 인증 마크를 보면, 몇 천원 비싸도 기꺼이 지불해 보는게 어떨까?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족들은 좋은 음식을 먹게 된다.

 

 

 

 

 

 

<동물복지인증마크 (출처: http://www.animal.go.kr/portal_rnl/farm_ani/certify_marker.jsp)>

 

 

 

 

※ 본 블로그에 게시한 글은 개인적인 것으로 농심의 입장, 전략 또는 의견을 나타내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