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심전심 n Talk

융기와 침식으로 형성된 협곡

태항산의 여름

 

 

 

우리에게 낯설지만 이름만큼 아름다운 산이 수천 개에 이른다. 중국은 보통 ‘산’이라고 하면 자그맣지 않고 산맥이라고 이해해야 한다. 태항산(太行山)도 동북에서 서남 방향으로 무려 400km나 길게 이어져 있다. 베이징 외곽부터 허베이(河北), 산시(山西), 허난(河南)에 이르는 4개 성을 관통하고 있다. 산시와 산둥(山?)을 나누고 있는 태항산은 유명한 관광지만도 최소 23곳이 넘는다.

 


최근 몇 년 사이 대형 여행사마다 앞다투어 상품을 내놓고 돈벌이에 혈안이 된 태항대협곡을 향해 떠난다. 허난 최북단 린저우(林州) 시에서 버스로 1시간을 달려 스반옌(石板岩) 향(?)에 도착한다. 호텔에 짐을 풀고 산행을 시작한다. 먼저 평호(平湖) 호반 길을 달려 태항옥척(太行屋脊)으로 향한다. 이번 여행은 패키지로 잘 다니지 않는 곳을 목표로 삼았다. 그래서인지 관광객이 거의 없다.

 

 

<스반옌 향(왼쪽 위), 태항평호(왼쪽 가운데), 태항옥척(왼쪽 아래), 노반전(오른쪽)>

 


여름이면 비가 많은 편이라 등산로를 따라 오르는데 계곡에 물이 많다. 호수가 푸른 이유도 산에서 내려온 청량수가 수북하게 흡수된 때문이다. 산을 오르자마자 도교암자 성상암(?相岩)이다. 재신묘(?神?), 약왕전(?王殿)과 함께 노반전(?班殿)이 나란하다. 기원전 춘추시대 노나라 사람으로 건축과 목공의 비조를 봉공하는 것은 드물게 본다. 서민이 숭상하는 위인이라면 모두 도교의 울타리로 들이는 중국인답다.

 


구름을 넘어가는 듯한 가파른 잔도(?道)가 지그재그로 이어진다. 협곡은 깊이를 가늠하기 어렵고 햇살은 맞은 편 산자락을 환하게 비춘다. 낙수도 점점 소리를 낸다. 황토색으로 물든 바위를 따라 폭포가 쏟아지더니 어느새 잔잔한 연못이 드러난다. 원시의 자연으로 들어가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한발씩 가까이 다가가 보니 요지(?池)라는 팻말이다. 고대신화에 등장하는 성모인 서왕모(西王母)가 사는 곤륜산의 연못 이름을 따온 것이다.

 

 

<옥척 잔도(왼쪽 위), 요지(오른쪽 위), 절벽 반영(왼쪽 아래), 태항옥척 협곡(오른쪽 아래)>

 


그런데 가까이 갈수록 심상치 않은 자태에 눈을 씻는다. 미동조차 흐르지 않는 연못에는 맞은 편 암석의 반영이 예사롭지 않다. 황토색과 회백색이 서로 폭포를 중심으로 쪼개진 듯, 연못을 이리 보면 회색이요, 저리 보면 황색이다. 신비감에 탄성을 지르고도 남는다. 조약돌 하나를 집어 던지니 원을 그리며 퍼지는 물결이 마치 수채화처럼 펼쳐진다. 코발트 빛을 다 지우려는 듯 물감처럼 번지는 모습은 머리에 새길지, 가슴에 담을지 판가름이 나지 않는다.

 


굽이굽이 오르니 거대한 암석 지붕이 드러난다. 정상 가까운 산골마을이다. 요기도 할 겸 잠시 쉬어간다. 아궁이와 부뚜막이다. 그리운 우리네 산촌 모습 그대로다. 용마루라는 이름의 ‘옥척’에 이렇게 다정한 군불이 타고 있을 줄 몰랐다.

 

 

<부뚜막(왼쪽 위), 태항옥척 수공면(왼쪽 가운데),

옥척 정상에서 본 평호(왼쪽 아래), 산골 할아버지(오른쪽)>

 


즉석에서 삶으니 면발은 쫄깃하고 텃밭에서 딴 채소와 토종 달걀로 고명을 했다. 거칠게 양념을 한 육수조차 시원해 한 그릇 먹고 눈치 볼 겨를도 없이 또 한 그릇을 후루룩 먹는다. 2시간 오르며 흘린 땀을 다 갚고도 남지 싶다. 수공면(手工面)을 끓여준 ‘산 할아버지’의 얼굴 고랑에 담긴 연륜만 봐도 맛은 보나 마나, 선하고 환한 웃음마냥 정성스런 국수다. 땀처럼 눈물처럼 흐르는 것이 꿀맛 같은 국수인지 사람의 향기인지 뒤섞인 감동의 포만으로 행복해진다.

 


정상에서 본 호수는 코발트로 물들었다. 해발 1,735m 위치, 360도 어디를 둘러봐도 절경이다. 늦은 오후의 해는 점점 산 한쪽을 덮는다. 서둘러 숙소로 돌아와 밤거리를 거닌다. 한산한 밤거리, 튀김 닭과 함께 오리 목 부위를 양념한 야보(鸭脖) 파는 포장마차가 낯설다. 중국인의 야식 안주로 인기 최고다. 잡화와 음료를 파는 가게의 붉은 조명조차 은은해 보인다.

 

 

<태항산 마트(왼쪽 위), 밤 포장마차(오른쪽 위), 아침 여우탸오(왼쪽 아래), 아침 햇살(오른쪽 아래)>

 


아침 거리도 인적이 드물기는 마찬가지다. 밀가루 반죽으로 튀긴 여우탸오(油?)를 만드는 아주머니, 죽과 함께 먹는 손님. 큰길 양쪽 건물에 바짝 붙은 뒷동산도 모습을 드러낸다. 나무가 겹겹이 자라 거대한 암석이 층층이 쌓인 듯한 자태다. 태양이 출몰하자 바위는 세안을 마친 듯 환한 얼굴로 변하고 있다.

 


10분 거리에 있는 ‘중국 그랜드캐니언’으로 통하는 태항대협곡(太行大?谷)으로 간다. 남북으로 30km나 되는 협곡을 다 섭렵하는 것은 도무지 무리다. 천천히 청량한 냇물처럼 해맑은 도화곡(桃花谷)으로 들어선다. ‘용용 죽겠지?’ 흉내 내듯 비룡협(???) 아래 황룡담(???)이다. 쏟아내는 물줄기가 용인가? 마냥 하얀 거품을 뿜는 걸 보니 백사 정도는 되나 보다. 계곡을 오르며 보니 생각보다 깊은 연못이다. 용 한 가족은 살만한 넓이다.

 

 

<비룡협(왼쪽 위), 황룡담(왼쪽 가운데), 이룡희주 연못(왼쪽 아래),

잔도에서 본 황룡담(오른쪽 위), 이룡희주 폭포(오른쪽 아래)>

 


용이 지나간 자리를 따라 서서히 오르면 두 마리 용이 구슬을 가지고 논다는 이룡희주(二??珠)가 나타난다. 자그마한 폭포 두 개가 나란히 흘러 작은 연못을 만들었다. 이룡희주는 황제의 위상을 상징한다. 황제가 거주하거나 방문한 장소에 두 마리 용이 등장한다. 봉건시대에는 이런 이름을 붙이거나 건물에 용 두 마리를 새기면 대역 죄인이다. 21세기이니 그럴싸한 웃음을 지으며 감상하면 된다.

 


용쓰며 도화곡을 올라와 협곡의 뒷산을 향한다. 일반 여행객이 가지 않는 숨겨진 코스다. 여행 지도를 잘 살피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는 폭포, 도화담(桃花潭) 이다. 가는 길도 환상적이지만 협곡을 잇는 다리까지 한 화면에 들어오니 장관이다. 높이가 도대체 몇 백 미터에 이를까? 폭포 소개 자료도 찾기 힘들지만 수심이 ‘천자(千尺)’가 넘는다는 과장이 있다. 폭포를 부감으로 잡고 입을 벌리면 마치 목으로 쏟아지는 느낌을 연출할 수 있다. 흥에 겨워 폭포 앞에서 감히 장난을 치노라면 만사 시름도 잊게 된다.

 

 

<도화담 폭포와 협곡다리(왼쪽 위), 협곡다리(왼쪽 아래), 도화담 폭포(오른쪽)>

 


산에서 내려오니 마침 점심 때라 사람들이 북적거린다. 한국 관광객까지 참 많기도 해서 좀 한적한 곳을 찾아본다. 인적이 드문 곳에 현지인 집이 한 채 있는데 즉석에서 삶아주는 국수를 먹을 수 있다. 기다리는 줄도 길고, 패스트푸드처럼 후다닥 먹고 나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는 상업화된 식당과는 다르다. 조금만 움직여 주위를 살피면 한적하고 서민적인 공간을 찾을 수 있다.

 


보드라운 면발, 아궁이에 나무를 태워 물을 끓이고 엉키지 않게 드문드문 넣는다. 김이 모락모락 솟아오르고 다 익은 면발을 그릇에 나눈다. 달걀과 토마토, 부추를 얹으면 한없이 맛깔스러운 국수 한 그릇이 완성이다. 아저씨, 아주머니와 딸이 모두 나와 공동작업이다. 아저씨는 불을 때고 딸이 심부름하면 아주머니는 깔끔하게 즉석 국수를 만드는 분업이다.

 

 

<국수 만드는 가족(왼쪽), 면발(오른쪽 위), 국수 삶기(오른쪽 가운데), 완성된 국수(오른쪽 아래)>

 


국수로 배를 불리고 관광 차량에 탑승한다. 산을 에워싸고 서서히 오른다. 낭떠러지를 따라 만들어진 환산선(?山?)은 도화곡과 왕상암(王相岩)을 잇는다. 태항대협곡이 담은 웅장한 자태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길이다. 건너편 절벽에는 돌 판자를 올려놓은 석판옥(石板屋)이 자리 잡고 있다. 차를 탄 채 시선은 그저 편하게 두면 된다. 가는 곳마다 방향마다 다 절경이다. 마주치는 차량과도 가끔 흥겨운 함성으로 인사한다.

 


천경(天境) 앞에서 내린다. 하늘을 바라볼만한 관망대로 손색이 없다. 바로 옆 평보청운(平步?云)에는 유리잔도가 설치돼 있다. ‘한 번에 푸른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오른다.’는 뜻은 벼락출세인데 최고의 풍광을 자랑하고 싶었나 보다. 유리로 보는 발 아래는 생각보다 무섭지 않고 게다가 승천은 꿈도 꾸지 못할 듯하다. 양쪽으로 펼쳐진 절벽의 향연은 볼만하다.

 

 

<관광차(왼쪽 위), 석판옥(왼쪽 가운데), 몽환지곡(왼쪽 아래), 지혜문(오른쪽)>

 


중국여행을 처음 시작할 때는 지명이 엄청난 과장을 담고 있어서 낯선 웃음을 지었다. 이제는 그냥 그럴싸한 미소로 즐긴다. 몽환지곡(?幻之谷)도 거창하지만, 협곡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니 마치 꿈속을 거니는 듯 환상적인 느낌이 든다. 너무 꿈속에서만 살지 말라는 것인지 돌로 쌓은 지혜문(智慧?)이 덩그러니 서 있다. 문을 통해 봐도 구름과 하늘은 멋진 조화다.

 


왕상암 정상에는 부운산장(浮云山庄)이 있다. 밤새 먹고 마시며 시끄럽게 떠든다 해도 누구 하나 신경 쓰지 않을 식당이면서 하룻밤 묵어가도 좋은 객잔이다. 땀 흘리고 난 후 먹는 량피(凉皮)는 시원하다. 쌀로 만든 찬 국수를 량피라 하는데 중국 어디를 가도 지방특성에 맞게 만들어 먹는다. 이 산장의 량피는 넓게 편 면발인 콴펀(?粉)을 재료로 한다. 다른 지방에 비해 양념을 최소로 넣고 오이와 피망만 넣어 담백하다. 싱거워서 아무 맛조차 없을 정도인데 먹을수록 감칠맛이 난다.

 


명산은 사계절 언제라도 찾아가고픈 곳이다. 즉석 국수 그리고 시원한 량피와 함께 즐긴 태항산의 여름이다. 여름에는 물이 많은 산이다. 꽃 피는 봄, 단풍 든 가을, 눈 내린 겨울에는 어떤 모습일까? 아주 궁금해진다.

 

 

<왕상암 원경(왼쪽 위), 산장에서 본 태항산(오른쪽 위), 산장에서 먹은 량피(아래)>

 

 

 

 

※ 본 블로그에 게시한 글은 개인적인 것으로 농심의 입장, 전략 또는 의견을 나타내지 않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