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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인종과 다채로운 음식문화가 꽃피었던 

태국 옛 도시, 아유타야




태국의 옛 이름 싸얌. 그리고 싸얌의 옛 수도 아유타야. 현대 이전 태국의 역사 중 가장 찬란했던 시기로 꼽히는 태국 최초의 통일왕국, 아유타야는 북쪽의 란나왕국과 함께 14세기에서 18세기까지 인도차이나반도 중앙부의 패권을 쥔 무역 대국이었다. 1511년 포르투갈의 접촉을 시작으로 서양과의 무역이 왕성했던 아유타야는 외국인에게도 관직을 하사해 각국과의 교역이 용이하도록 했는데, 이러한 묘책으로 왕실은 막대한 세금수입을 벌어들일 수 있었다. 지리적 이점과 개방된 문화 속에 꽃피었던 아유타야의 다문화사회는 왜 태국사람들이 외국인에게 그토록 친숙한지 납득하게 해준다. 이미 아유타야 시대부터 “다양한 인종의 싸얌인”들은 함께 어우러져 다채로운 문화를 형성해 온 것이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암스테르담호 모형>

 


그러나 이렇게 다문화를 토대로 꽃피웠던 아유타야를 둘러보는 많은 관광객들이 이를 느껴보지 못한 채 돌아가는 것 같다. 아유타야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보리수나무 뿌리의 불상 머리’ 등 유명사원에 집중되서 그런 것일까. 그것도 좋지만 불교사원 만으로 아유타야인들의 삶을 엿볼 수는 없다. 태국 최초의 카톨릭 성당,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일본인마을 등을 함께 방문하면 아유타야가 정말 어땠을 지 비로소 느낄 수 있다. 나아가 이러한 다양성이 음식문화에는 어떻게 나타났는지 알고 먹는 재미가 더해진다. 


  

<반 홀란다 뮤지엄 전경(좌) 및 내부 전시(우)>



방콕에서 북쪽으로 약 80km 떨어진 곳에 아유타야가 위치해 있다. 방콕으로 흐르는 짜오프라야강은 아유타야와 연결되는데, 과거 방콕은 수도 아유타야로 진입하는 수로이기에 군사 요새와 세관이 있던 외곽도시였다. 현재 관광객들이 짜오프라야강 유람선을 타고 여행하는 그 물길을 따라 16세기 서양과 중동, 동북아에서 온 배들이 국제무역항 아유타야로 들어갔다. 아유타야는 짜오프라야강과 빠싹강에 에워싸여 섬의 모양을 띤다. 그 섬 안에 왕궁과 주요 시설이 있었고, 섬의 남부에 짜오프라야 강둑을 따라 각국의 외국인들이 거주하는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다. 아유타야 섬으로 들어가기 전에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이하 VOC)였던 반 홀란다(Baan Hollanda) 뮤지엄에 들렀다. 인도네시아에 세워진 VOC는 유명하지만 아유타야에도 지점이 있었다는 것은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도로 입구의 표지판도 허술해서 잘 찾아왔는지 몇 번을 확인하고서야 들어간 2층 건물은 아기자기하게 당시 모습을 재현해 놓았다. 규모는 작지만 알찬 설명과 전시는 시대적 배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일본인 마을 '무반 이뿐'(좌), 야마다, 타우텅낍마(기요마 부인) 전시관(우)>



네덜란드인의 집이라는 뜻의 “반 홀란다”와 가까운 곳에 일본인 마을, "무반 이뿐”이 있다. 아유타야에는 일본정부가 예산을 지원해 지은 박물관 및 문화센터가 운영되고 있는데 이곳도 그 중 하나이다. 이곳에는 16세기부터 무역이 시작되고, 특히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기독교 박해를 피해 일본 기독교인들이 아유타야로 대거 이민 온 그들의 역사를 상세히 기술해 놓았다. 그 중 아유타야의 다문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흥미로운 인물이 있는데, 그녀의 이름은 마리아 기요마(Maria Guyomar de Pinha)이다. 


마리아의 어머니는 이 시기 기독교 박해를 피해 이주한 일본여성으로 아유타야에서 포르투갈 남자와 결혼해 마리아를 낳는다. 포르투칼-일본 혈통인 마리아는 성장하여 그리스 남자인 콘스탄틴과 결혼한다. 콘스탄틴은 17세기 아유타야의 나라이 왕(王)의 총애를 받았던 인물로, 재무부 수상 및 왕의 고문으로 관직 중 최고의 자리인 “짜오프라야” 관등까지 지낸 인물이다. 


그러나 마리아와 결혼한지 몇 년 후, 나라이 왕의 병세가 악화되자 왕의 문호개방정책을 못마땅하게 여겼던 그의 이복형제 페트라차 왕자는 1688년 쿠테타를 일으켜 콘스탄틴을 포함한 왕의 심복을 모두 제거한다. 그 후 나라이 왕의 딸과 혼인해 스스로 왕위에 오른 페트라차 왕은 남편을 잃은 마리아를 왕실의 주방에서 노역하는 노예로 삼는다. 


마리아는 이곳에서 다양한 종류의 디저트를 개발하고 후에 왕실 최고주방장에까지 오른다. 그녀가 만든 디저트 중 가장 유명한 것은 “훠이텅”으로, 이는 포르투갈 전통 디저트인 피오스 데 오보스(fios de ovos)를 본 따 만든 것이다. 끓는 시럽에 계란이나 오리알의 노른자를 얇게 풀어 실타래처럼 만든 티저트인 훠이텅은 왕실에서 즐겨먹던 고급 디저트이다. 마리아가 새로운 디저트를 선보이기 이전 아유타야에서는 밀가루와 설탕/슈가팜, 코코넛 밀크로 디저트를 만들어 먹었기 때문에 계란 노른자, 너트류, 대두전분이나 카사바 전분을 이용한 마리아의 디저트는 당시 사람들에게 매우 신선한 시도였을 것이다.

 

<텅입(꽃모양), 텅엿(물방울모양), 훠이텅(실타래 모양)>



일본인 마을을 나와 아유타야 섬에 들어가니 강변을 따라 음식점이 줄지어 있다. 두 종류의 식당을 가장 많이 볼 수 있는데, 하나는 꾸아이띠야우 르아 국수집이다. “꾸아이띠야우 르아”는 배에서 파는 쌀국수를 의미하는데, 사방이 물로 둘러쌓인 아유타야 강변에서의 국수 한그릇은 그 정취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짜오프라야 강변에 위치한 국수집들>


꾸아이띠야우 르아는 통상 신선한 돼지 피나 소의 피를 넣은 국물의 국수를 말한다. 검붉은색을 띄는 이 국수는 왠지 비릿할 것 같지만 생각보다 부드러우면서 달짝한 맛이 난다. 사진의 꾸아이띠야우 바미(밀면)와 꾸아이띠야우 르아 센렉(쌀국수 중면)을 비교해 보면 대충 어떤 느낌인지 알 수 있다.


<꾸아이띠야우 바미(좌), 꾸아이띠야우 르아 센렉(우)>



강변을 따라 줄지어 있는 또 다른 종류의 음식점은 민물새우구이집이다. 아유타야 민물새우는 아유타야의 대표 명물이다. 큰 새우부터 작은 새우까지, 새우의 크기와 품질에 따라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대체로 중간크기는 한마리에 500바트(약 17,000원) 정도이고, 큰 것은 한마리에 1000바트(34,000원) 정도이니 비싼 편이지만, 방콕에서 먹으려면 훨씬 비싸기 때문에 아유타야에 간다면 꼭 먹어봐야 할 음식이다. 


 

<아유타야 민물새우 구이>



중간크기 4마리를 시켰는데, 말이 중간크기이지, 약 15cm 정도되는 큼직한 새우 4마리가 먹기좋게 나온다. 쫄깃하고 달콤한 육질이 랍스터와 비슷하고, 수프처럼 반만 익힌 새우의 간(만꿍)은 고소함을 더해준다. 둘이서 4마리가 부족할 것 같았지만, 의외로 양이 많고 새우만 먹기에는 쉽게 질리므로, 맥주 한잔에 매콤새콤한 태국식 샐러드를 곁들여 먹으면 입안의 즐거움은 배가 된다.


 강변쪽에 국수집과 새우구이집이 자리잡고 있다면, 도로변에는 아유타야 명물 과자인 “로띠싸이마이”를 파는 가게들이 많이 보인다. “로띠”는 “난”으로도 알려진 밀전병으로 밀반죽 안에 바나나, 계란 등을 넣고 지진 다음 연유나 초콜렛 시럽을 뿌려먹는 무슬림의 음식이다. 그런데 아유타야에는 전형적인 로띠와는 다른 “로띠싸이마이”가 있다. 



<로띠싸이마이>


로띠싸이마이는 밀전병을 크레페처럼 얇게 만든 다음 그 속에 색색의 설탕실을 넣어 돌돌말아 먹는 디저트이다.  솜사탕을 밀전병에 싸 먹는 것과 그 맛이 비슷할 것 같다. 아유타야에 간다면 민물새우와 함께 맛볼만한 음식이다.
 

<짜오프라야 강변의 왓풋타이싸완 사원>


아유타야는 방콕에서 차로 1시간 30분 정도 밖에 걸리지 않으므로 대부분 여행자들이 당일로 다녀가는 곳이다. 도시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아유타야는 저녁이 되면 성벽터나 사원에 조명이 들어오면서 운치가 더해진다. 아유타야의 핫 플레이스로 살라호텔 아유타야(Sala Ayutthaya)의 테라스는 아유타야의 운치를 감상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지역의 색깔을 현대적으로 풀어내는 살라의 건축물은 또 다른 감탄을 자아낸다.


<살라호텔 아유타야>


방콕에 돌아오기 전 포르투갈 마을과 성 요셉 성당에 들렀다. 500년 전 처음 이땅에 온 포르투갈 사람이 살던 곳은, 지금은 그 터만 조촐하게 남아있었다. 성 요셉 성당은 17세기 중반에 세워진 태국 최초의 로만 카톨릭 성당으로 지금도 예배당으로 사용된다고 한다. 비록 300여년 전 외국 배들이 오가고 외국인들이 활보하던 거리가 상상될 만큼 그 자취가 많이 남아있지는 않았지만, 소소한 흔적들을 알아보는 재미, 즐거운 먹거리로 행복해지는 아유타야는 매우 만족스러운 여행이었다.
 

<포르투갈 마을 터(상-좌우), 성 요셉 성당 전경과 내부 모습 (하-좌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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