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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odle talk

[푸드칼럼] 관우와 사마천의 고향 국수

관우와 사마천의 

고향 국수 




역사 인물을 만나러 가는 여행은 언제나 설렌다. 책이 아닌 현장, 역사의 공간에서 만나는 건 두근거림이다. 첫사랑을 기억하면 비슷할 지도 모른다. 어쩌다 보니 지리적으로 외딴 지방에 위치해 오랫동안 가지 못했던, 그래서 흠모의 대상이던 인물을 한꺼번에 찾았다. 관우와 사마천! 문무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초등학생도 알만한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 관우(关羽)다. 정사와 소설의 주인공이며 도교와 민간신앙의 신이자 상인의 우상이다. 중국인들은 오랜 역사를 거치며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당을 세웠다. 제왕으로 대우받는 관제묘(关帝庙) 중에서 가장 정통은 역시 고향인 해주(解州)에 있다. 산서(山西) 성 서남쪽에 위치하며 서안(西安)에서 동쪽으로 250km 떨어졌다. 종교에서는 재물신으로, 정치에서는 황제로 대우하는 관우, 그를 봉공하는 무묘지조(武庙之祖)이자 관제조묘(关帝祖庙)에 도착했다.




<관제조묘 숭녕전/건륭 하사 편액 ‘신용’(왼쪽 위/아래), 관우 좌상(오른쪽)>


비가 내린다. 점점 심하게 내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소풍 가는 날 꼭 비 온다’는 말이 틀리면 좋으련만 추억하며 사당으로 들어선다. 문관은 하교(下轿), 무관은 하마(下马) 후 동쪽 문경문(文经门), 서쪽 무위문(武纬门)으로 알아서 들어가야 한다. 경위(经纬)야 어떻든지, 문무를 따지지 말고 아무렇게나 들어선다. 네 마리 용이 새겨진 조벽(照壁)을 지나 오문(午门)을 통과한다. 황궁인 자금성 입구도 오문이 아니던가?




<용 문양/용 조벽(왼쪽 위/아래), 철학 한 쌍/청룡언월도(오른쪽 위/아래)>


도교에 심취한 송나라 휘종(徽宗)은 관우를 진군(真君)에 봉하면서 ‘숭녕(崇宁)’이란 칭호를 하사했다. 숭녕전에 서니 청나라 건륭제가 흠정(钦定)한 편액 ‘신용(神勇)’이 돋보인다. 금빛찬란하고 화려한 용 문양은 폭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의연하다. 150kg에 이르는 청룡언월도(青龙偃月刀)와 철학(铁鹤) 한 쌍, 철로 만든 깃발인 철기간(铁旗杆)이 아니라면 황궁이라고 느낄만하다. 나무로 만든 신감(神龛)에 쏙 들어앉은 관우, 코 앞에서 마주 보니 감회가 새롭다.


관우 고향에서  30분 시내버스를 타고 운성(运城) 기차 역으로 갔다. 산서성을 대표하는 국수 다오샤오멘(刀削面) 한 그릇은 필수다. 밀가루 반죽을 칼로 도려내고 삶아낸다. 산서 상인의 우상 관우의 고향에서 먹는 국수, 중국 5대 면 요리에 들어갈 정도로 유명하다. 거칠게 칼질을 했지만 면발은 쫄깃하고 맛깔스럽다. 관우 동상을 바라보며 관공대주점(关公大酒店) 호텔에서 하루 묵었다. 온통 관우를 빼면 시체인 동네다. 




<산서 대표 국수 다오샤오멘(위), 운성 역 관우(아래 왼쪽), 관공대주점(아래 오른쪽)>


운성에서 사마천의 고향 한성(韩城)으로 가려면 황하를 건너야 한다. 산서에서 섬서로 성을 넘어야 한다. 직선거리로는 70km가 채 되지 않는 거리인데 직통 버스나 기차가 없다. 결국 하진(河津)까지 1시간 가량 버스로 이동한 후 기차를 타기로 했다. 아담한 기차 역이다. 아마 중국에서 본 가장 시골스런 풍경인 듯하다.


역 부근에 흔하디 흔한 국수 집 하나 없다. 큰 길로 나가니 러우자모(肉夹馍)를 판다. 마침 점심 시간 즈음이라 줄을 서서 기다려 하나 샀다. 빵 사이에 고기나 채소 등을 넣어 먹는 ‘햄버거’로 간식으로는 최고다. 러우자모의 맛은 보들보들한 빵의 촉감에 달려있다. 촌 동네에서 먹는 러우자모가 상상 이상으로 보드랍다. 굳이 비유하자면 남자아기의 엉덩이처럼 착 달라붙는 맛이다. 맛도 성공적이지만 결제도 첨단이다. 이제 중국은 길거리 음식조차 스마트폰으로 결제한다. 중국 최대 SNS인 웨이신(微信)으로 결제한다. 




<러우자모 요리/하진 역(왼쪽 위/아래), 러우자모/황하 건너는 중(오른쪽 위/아래)>


고향 역처럼 풋풋한 하진 역 안으로 들어섰다. 열차를 타려는 사람들도 몇 명 되지 않는다. 한성까지는 황하를 건너는데 기차로 1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다. 황하를 경계로 산서와 섬서로 나뉜다. 황하를 너머 섬서로 들어서자마자 곧바로 한성 역에 도착했다. 다시 남쪽으로 15km를 가면 한태사사마천사묘(汉太史司马迁祠墓) 앞에 이른다. “사기(史记)”의 저자 사마천 고향이다. 여기에 그의 사당이자 무덤이 있다. 


큰 길에서 입장권을 파는 데까지 멀다. 사마천 조각상을 중심으로 광장에는 “사기”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사건을 조각으로 배열해 두었다. 삼황오제부터 시작된 역사가 거대한 조각으로 펼쳐져 있다. 하은주 왕조를 거쳐 진시황, 항우와 유방도 있고 여태후도 한 코너를 차지한다. 한무제 조각군도 흥미롭다. 실크로드 개척자 장건이나 흉노전쟁의 장군들도 나란하게 섰다. 역사의 책갈피를 넘기듯, 터덜터덜 걸어가며 음미해본다. 광장 끝에 위치한 웅장한 사마천 조각상, 역광이어서 아쉽지만 사마천의 윤곽만으로도 역사의 무게가 느껴진다. 




< ‘사기' 주제 조각상/사마천 사당 입구(왼쪽 위/아래), 사마천 조각상(오른쪽)>


사당 입구를 지나 가볍게 언덕을 오르다가 오른쪽으로 살짝 방향을 틀어 들어선다. ‘사필소세(史笔昭世)’ 편액을 바라보고 오른다. ‘역사를 거울 삼으면 흥망성쇠를 알 수 있다.’는 메시지를 음미하며 계단을 따라 점점 사마천 가까이 간다. 태사사(太史祠) 앞에서 위대한 역사학자의 인생에 대해 생각한다. 사마천을 봉공하는 헌전(献殿)에서 잠시 묵념한 후 뒤로 가니 봉긋하게 솟은 무덤이 있다. 사마천 사후 약 400년 후에 처음 무덤이 갖춰졌다. 이후 여러 번 수건을 거쳤다. 


무덤에서 자라난 측백나무 가지가 다섯 갈래로 뻗어 있다. 이를 오자등과(五子登科)와 연결한다. 다섯 아들이 모두 과거에 급제한 걸 뜻하는데 한마디로 길상(吉祥)이자 홍복(洪福)이다. 부와 명예를 좋아하는 중국인다운 설정이다. 너비 18m, 높이 3m의 아담한 무덤 위에 자라는 나무에게 시선을 담아본다. 사마천을 만나니 오랜 체증이 내려가는 듯하다. 중국역사와 문화를 살피면서 이제서야 여길 왔다는 반성과 함께. 




<‘사필소세’ 문/헌전의 사마천(왼쪽 위/아래), 사당 99계단/사마천 무덤(오른쪽 위/아래)>

시내버스 타고 라오청(老城)으로 이동해 사마천 고향에서 하루를 묵는다. “사기”의 표지가 곳곳에 걸렸다. 마침 메밀로 만든 틀국수인 허러멘(饸饹面)을 만났다. 베이징부터 서역까지 북방지역에서 생산되는 메밀로 만든 국수다. 서민들이 살아가는 고성에서 천년 이상 중국인이 먹던 국수를 먹으며 사마천의 향기를 맡는다. 


역사인물을 찾아다니며 먹는 음식, 특히 그 지방의 국수는 만찬에 비하면 아주 가벼운 디저트같다. 이번에 만난 다오샤오멘과 허러멘은 관우와 사마천을 위한 디저트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오래 기억에 깊이 남을 듯하다. 역사가 담아낸 인물, 그들을 만나고 담아낸 국수가 한끼 이상인 것처럼 말이다. 




<한성 라오청 거리(왼쪽 위), 라오청 거리의 ‘사기’ 표지(오른쪽 위), 허러멘(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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