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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를 자극하는 마지막 보루 <경동시장>




우리에게 옛 향수를 떠올리게 하는 전통의 맛, 어머니의 손맛… 이런 단어들의 유효기간은 얼마나 될까? 햄버거를 즐겨 먹던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에도 그 단어들은 여전히 유효할까… 많이 늦은 감은 있지만 그래도 아직 옛스런 맛과 정취를 연상시키는 단서를 제공하는 것들에 대한 탐구를 시작할까 한다.



<경동시장의 모시떡>

(찌기 전에는 아름다운 연녹색을 띄지만 찌고 나면 검은 색으로 변한다. 

도시 속 가정에서 애써 모시떡을 하는 집이 얼마나 있을까…)


그래서 올해부터는 추억이나 옛 맛을 떠올리게 하는 재래시장과 그 속에 서민들과 함께하는 먹거리를 찾아 연재를 시작하기로 했다. 이 주제를 두고 가장 큰 고민 거리는 서울 혹은 전국의 재래시장이 전부 똑같은 모양으로 개성 없이 변모했다는 점이고 특히 서울 시내에서 과연 재래시장 안에서 추억의 맛거리가 얼마나 존재하는 것이냐 하는 문제였다.  그래도 책상 앞에서 고민하기 보다는 직접 나가 부닥치면서 찾아 보기로 했다. 




<경동시장 입구>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제기동 1018번지. 

그러나 제기동은 물론 용두동, 전농, 청량리까지를 다 아우르는 10만 제곱미터의 거대시장이다.)


뭐니뭐니해도 서울 지역 내에서 재래시장의 형태가 남아 있는 곳은 “경동시장”이다. 역사적으로는 남대문 시장이 더 오래된 시장이지만 남대문은 공산품 위주의 시장으로 바뀐지 오래됐고 먹거리에 관해서는 역시 경동시장이 서울 제일의 재래시장이라고 할 수 있다. 6.25한국 전쟁이 끝나고 서울이 안정적으로 바뀌면서 경기 북부, 강원도의 농수산물이 판로를 위해 기차로 운송되면서 청량리에서 하역을 하게 되었고, 따라서 자연스럽게 가까운 논들이 시장터로 변모하면서 오늘날의 경동 시장이 되었다. 이래저래 벌써 약 65년 가량의 역사를 지닌 시장이 되었다.




<경동시장 모습>

(서울 시내에 남아있는 거의 유일한 재래시장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곳이 경동시장이다. 

전국이 똑같은 지붕으로 변모했지만 경동시장은 아직도 많은 부분이 옛 시골장터 같은 모습으로 남아있다. 그러나 일부는 그 전국의 똑같은 구조물의 모습이 들어서 있기도 하지만, 그곳은 “청량리시장”이라는 이름이 걸려있다.)


기본적으로 식재료를 중심으로 거래하는 시장의 성격상 시장 중심에는 음식을 파는 곳이 그다지 없는 편이다. 중심 상가 건물 지하에 비빔밥과 국수, 국밥을 파는 가게 몇 군데가 전부인데 음식 진열형태가 남대문 칼국수 골목과 유사하지만 그 규모는 좁고 불편한 남대문과는 차원이 다르게 넓고 쾌적하다. 




<경동시장 중앙 상가의 음식점>

(남대문시장과 비교가 안되게 넓은 음식점. 경동 시장 중앙에 식당이 있는 거의 유일한 상가. 

작년에 취재한 배추를 많이 넣고 콩가루로 반죽하는 안동칼국수집이 바로 옆집이다.)




<비빔밥 재료>

(비빔밥 재료를 늘여놓고 손님의 식감을 자극시키며 유혹한다.)


손님 앞에 음식을 무방비로 두는 것이 그다지 위생적이지는 않을 것 같으나 현대인의 지나친 위생 강박증도 문제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력이 알게 모르게 우리를 약화시키고 있다라는 우스갯소리도 몇 년 전에 몽골을 한 달간 말을 타고 다니면서 실제 경험을 한 바 있다. 양을 한 마리 도축하면 한국인들은 냉장고가 없는 몽골 평원에서 겨우 하루 이틀 정도 이상은 그 고기를 먹기 힘들지만 몽골인들은 그냥 비닐에 둘둘 말아서 일주일 동안 차에 싣고 다니며 먹어도 배탈이 나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것을 신기하게 목격한 경험이 있다 (한국인 몇 명은 이틀 만에 속탈이 나서 큰 고충을 겪어야 했다.).




<돌솥비빔밥과 시래기 된장국>

(그냥 보리 비빔밥을 시켰는데 주문 전달이 잘못 된 듯 돌솥비빔밥이 나왔다. 

국은 시래기 된장국에 반찬은 경동시장 특유의 배추와 쌈장이 곁들여 진다.)




<재래시장의 작은 수레>

(재래시장에서나 볼 수 있는 각종 벌레약, 바느질 도구들 파는 작은 수레)



<장아찌 판매 가게>

(각종 간장 장아찌를 전문으로 파는 가게.  몇 번이나 직접 사고 싶었지만 촬영 때문에 참아야 했다.)




<두부 전문 가게>

(두부도 종류가 많아서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




<전통음식 판매 가게>

(한국의 기본적인 전통음식은 여기 다 있다고 보면 맞다. 된장도, 간장도 종류별로 다 있다.)


재래시장의 가장 큰 약점은 위생과 원산지 증명, 접근성일 것이다. 시각적으로 맛있어 보이는 식재료들이 넘쳐나지만 조금씩 주저하는 것이 이런 점들인데 고객 대부분도 그렇지만 장사하시는 분들도 역시 연로하신 분들이라 그런 부분들에 상대적으로 덜 엄격함도 없잖아 있을 것이다. 촬영 중에 물에 불린 고사리를 추가로 올리는데 보니 작은 비닐 패키지에 들은 기성품 고사리를 뜯어 쌓는 모습을 우연히 목격하고 적잖이 놀랐다.  그 정도 식재료는 대체로 직접 장만할 줄 알았는데 공장에서 나오는 재료를 그냥 직접 한 것처럼 쌓아놓고 판매만 할 뿐인가? 라는 의구심이 드는 순간이었다.




<젓갈, 게장>

(각종 해산물 발효음식들도 종류별로 거의 다 구비되어있다.)




<시래기, 가물치, 메주>

(놀랍게도 살아있는 어른 팔뚝보다 길고 두꺼운 “가물치”는 중국산이다.)




<생강, 동태>


재래시장을 많이 이용해본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상인들이 대체로 친절하고 인간적인 면이 많다. 상인 대부분 개개인들이 주인이기 때문에 융통성도 많다. 그러나 고객이 좀 비상식적이라던가 같은 경쟁관계에 있는 상인으로부터 어떤 자기 영역을 침범 당했다라고 판단 했을 때는 불같이 싸우는 장면들을 간간히 볼 수 있다. 이젠 이런 장면도 재래시장에서만 볼 수 있는 정겨운(?) 장면으로 느껴진다. 애석하게도 이날은 볼 수 없었지만 말이다…




<어묵 가게>

(매운 어묵과 안 매운 어묵 두 가지만 판매한다. )


식재료 위주 시장이라 현장 먹거리가 거의 없는 경동시장에서 거의 유일한 현장 어묵가게는 흔한 휴지도 의자도 변변히 없이 그냥 서서 먹는 집이지만 늘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서울의 어묵집들은 모두 “부산어묵”을 표방하듯이 이 집도 역시 부산어묵을 내세우는데 확실히 맛은 있다. 어릴적에 우리 어머니는 시장을 갈 때에 나를 잘 데리고 가셨는데 내가 잘 따라 나섰던 이유는 딱 2가지였는데 바로 시장 안에 있던 즉석에서 튀기는 “어묵과 녹두죽” 때문이었다. 요즈음 젊은 어머니들은 아이들을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학교에 보내고 혼자 다니거나 그냥 물건을 골라 계산만 하는 대형 마트를 가는데 이런 재래시장도 가끔 손 잡고 가서 이런 맛을 보여 준다면 좋은 추억거리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몇 시간 다니는 동안 단 한 명의 어린아이도 본 적이 없어 유감이다. 




<찐 옥수수>

(복잡한 식재료를 따라가다 보면 문득 주전부리용 찐 옥수수가 불쑥 등장 하기도 한다.)


식재료가 차고 넘치지만 현장에서 직접 먹을 거리는 상대적으로 적은 경동시장에서 옥수수는 반가운 존재다. 내가 본 바로는 땅콩같은 견과류 약간과 어묵, 옥수수가 거의 전부다. 식당은 시장 외곽으로는 좀 있는 편이지만 중심에는 위에 소개한 집 외에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경동시장 사거리>

(언제나 차가 많은 경동시장 사거리. 찻길을 건너기 전에는 서울 약령시장, 건너면 경동시장이다.)




경동시장을 다녀와서 –


제기동 지하철역에 내리면 분위기가 사뭇 여느 역과는 다른 공기감을 단번에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단지 역이 시장에 인접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역을 이용하는 승객들의 연령층 때문이다. 순전히 착각이기는 하지만, 나는 여기서는 무척 청년 같은 느낌(?)을 받는다.  객차에서 내려 한 층을 올라가고 다시 에스컬레이터까지 걸어가는 동안 젊은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상가에서 파는 물건들도 다른 곳에서는 보기 드문 노인 맞춤 물건들이 주류를 이룬다. 재래시장은 왜 노인들만 오는 곳이 되었는가? 옛 추억이 있는 노인들, 그들에게 익숙한 재래시장에는 그들 밖에 올 수 없는 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시작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노인들도 다 떠나면 경동시장은 누가 지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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