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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odle talk

[푸드칼럼] 사천 티베트 문화와 6월의 설산

눈부시게 푸른 설산따라 달라이라마 탄생지를 가다 

사천 티베트 문화와 6월의 설산 




6월 초 사천(四川)에 있는 티베트 문화를 답사했다. 티베트 중심지인 라싸(拉萨)와 달리 동티베트라고 부른다. 티베트의 영토가 굉장히 넓었기에 지금의 티베트(西藏)자치구를 벗어나도 티베트 역사의 흔적은 꽤 많다. 한때 당나라 수도 장안(长安)을 점령하기도 한 민족이다. 그만큼 문화적 영토는 산재한다. 간쯔주(甘孜州) 단바(丹巴)로 들어서면 해발 2천미터 산 능선에 하얀색이 유난히 선연한 집을 짓고 사는 중로장채(中路藏寨)와 만난다. 


<단바 입구/중로장채 민가/정상에서 본 조루(왼쪽 위/가운데/아래), 조루(오른쪽)>


꼬불꼬불한 산길을 따라 30분가량 오른다. 마을을 둘러보다가 전체를 조망하기 위해 다시 좁은 길을 따라 정상 부근까지 다다른다. 방어를 위해 망을 보던 조루(碉楼)가 더 많이 나타난다. 산 아래에서 보면 아무도 살 수 없는 허공처럼 보이는 고원지대에 3천 명이 넘는 사람이 산다. 망루를 세우고 농사지으며 평화롭게 산 중로인(中路人)의 ‘시간’을 느낄 수 있다. 이 일대에서 하루 일조량이 가장 긴 마을이라고 한다. ‘중로’는 티베트 말로 ‘신으로 향하는 지방’이니 땅 이름으로 제격이다. 


사천 지방에는 티베트 민족의 일파인 가융장족(嘉绒藏族)이 많이 거주한다. 가융대교를 지나 갑거장채(甲居藏寨)로 들어섰다. 티베트 민가가 산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가융상주강(嘉绒桑珠康) 객잔에 짐을 풀었다. 티베트 말을 중국어로 바꿔 쓰니 말이 어렵다. ‘상주’는 심상사성(心想事成)이란 뜻이다. 절실하게 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말이다. ‘강’은 거소(居所)이니 머무는 집, 객잔이다. 인터넷에서 찾은 객잔인데 다른 이름이 만다라(曼陀罗)인 것도 이해가 된다. 




<가융대교/가융상주강 객잔(왼쪽 위/아래), 객잔 내부/닭요리와 칭커주/빵(오른쪽 위/가운데/아래)>


고풍스러운 객잔에 어울리는 토종닭 백숙을 주문했다. 곁들여 마신 술은 칭커주(青稞酒)다. 티베트 고원에서 주로 생산되는 청보리로 담근 술이다. 막걸리처럼 도수가 낮은 술도 있지만 마실 때는 가볍지만 일어날 즈음 취기가 올라 몸이 무거워지는 술도 있다. 주식이 청보리니 함께 나온 빵도 독특하다. 노릇노릇하게 구운 냄새가 고소하다. 객잔 벽마다 마을 풍광을 그려놓았다. 아마추어 솜씨지만 친근한 감성이 살아있다. 




<객잔 내 그림/갑거장채(왼쪽 위/아래), 갑거장채(오른쪽 위/가운데), 객잔 전망대(오른쪽 아래)>


갑거장채는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을 꼽을 때 늘 등장한다. 2005년 <중국국가지리(中国国家地理)> 잡지가 뽑은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6곳 중 하나로 선정됐으니 중국인도 가장 가고 싶은 여행지 중 하나로 자주 언급된다. 여러 곳의 전망대가 있어서 보는 위치에 따라 풍광도 색다르다. 티베트 민가와 조루가 어울리고 마을 아래로 흐르는 강과 절벽처럼 서 있는 앞산은 묘한 조화를 풍긴다. 6월은 초록의 빛으로 물들었다. 사시사철 서로 다른 빛깔로 마을을 수놓을 터이니 계절마다 오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갑거장채를 벗어나 멀리 시선을 돌리면 구름과 경쟁하듯 하얀 설산이 등장한다. 마치 구름이 앉은 자리처럼 순백의 서광을 자랑하는 아라설산(雅拉雪山)이다. 전설로 구전된 신화적인 왕에 대한 서사시 <거싸얼왕전(格萨尔王传)>에 따르면 티베트 4대 신산(神山) 중 하나다. 주봉의 해발이 5820m라 사천 일대 동서남북에서 다 보인다. 타이잔거우(台站沟) 입구를 넘어 설산을 좀 더 가까이에서 보고 싶었다. 




<아라설산과 도랑(왼쪽), 아라설산/타이잔거우 입구/아라설산과 타르초(오른쪽 위/가운데/아래)>


1시간가량 비포장도로를 따라 들어서니 설산에서 녹은 물이 흐르는 도랑에 멈췄다. 오채(五彩) 타르초(Tharchog)가 설산의 기운을 받아서인지 반짝반짝 휘날린다. 멀리도 달려왔을 터인데 물살이 세고 차다. 설산의 맑은 모습을 보기가 어려운데 운이 좋다. 하늘도 그야말로 하늘다운 색이니 구름도 살짝 걸치고 있는 설산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다.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하다. 타르초를 계단 삼아 봉우리로 올라가고 싶다. 6월에도 흰 와이셔츠를 입은 듯 아이스크림처럼 상체를 드러내고 있는 아라설산. ‘아라’는 화이트야크(White Yak)를 상징한다니 정말 그럴싸하다. 


설산을 뒤로 남기고 뾰두라지라는 이름이 붙은 거다(疙瘩) 능선을 넘어간다. 고개를 넘어 산을 따라 하산하면 평화로운 고원이 펼쳐진다. 멀리 금빛 찬란하게 빛나는 사원이 보인다. 햇살을 받아 반사하는 힘이 엄청나다.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인장력이 작용한다. 긴 직선 길을 따라 들어선 마을은 세더향(协德乡)이다. 휘황찬란한 빛을 토하는 혜원사(惠远寺)는 온통 불탑으로 둘러싸였다. 




<혜원사/사원 불탑(왼쪽 위/아래), 세더향/마을 내 지명 표지/마을 가는 길(오른쪽 위/가운데/아래)>


한산한 골목을 따라 걷다가 발견한 표지에는 11세 달라이라마 카이주가쵸(凯珠嘉措)의 탄생지라고 적혀 있다. 깜짝 놀라서 달려갔다. 보물을 발견하면 흥분된다. 답사에서도 마찬가지다. 뜻밖에 만난 보석 같은 마을이다. 어린 나이에 환생한 전세영동(转世灵童)으로 선정돼 포탈라궁에서 살았고 청나라 황제가 달라이라마로 인정한 후 1년도 채 되지 않아 돌연 사망했다. 9세는 11살, 10세는 22살에 요절했는데 11세도 18살을 넘기지 못했다. 


탄생지에 세운 자그마한 사원의 문을 열어주는 승려 덕분에 안으로 들어갔다. 승려는 마치 숨겨둔 자랑거리인 양 한쪽 귀퉁이에 있는 돌을 설명해준다. 한눈에 봐도 진귀해 보인다. ‘옴마니팟메훔(唵嘛呢叭𠺗吽, Om Mani Padme Hum)’ 육자진언(六字真言)이 새겨져 있다. 측백나무 아래 1년 내내 싱그러운 맛을 뿜는 우물이 있었다. 달라이라마 사후 사원을 지을 때 우물에서 육자진언이 새겨진 천연의 돌이 나타났다고 한다. 신비로운 전설로 내려오는 160년 전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애지중지할만하다. 




<탄생지 사원/11세 달라이라마(왼쪽 위/아래), 설산과 불탑/세더향의 까마귀(오른쪽 위/아래)>


여느 티베트 불교사원처럼 사진을 찍지 못한다. 나오면서 문을 열어둔 배려 덕분에 살짝, 아직 성년도 되지 않은 어린 달라이라마 모습을 담았다. 하얀 불탑과 설산이 함께 보이는 것도 무척 인상적이다. 탑 위에 날아온 까마귀가 날아갈 생각이 없다. 한동안 서서 낯선 방문객을 바라본다. 세더향의 새는 그저 새 같지 않다. 하늘도 그냥 파랗지 않고 색감이 더 깊어 보인다. 


마을을 나와 8km나 더 달려서야 겨우 식당을 찾았다. 배낭 메고 다닐 때는 입에 대지 않던 야크(牦牛) 고기를 먹는다. 동행을 위한 배려다. 티베트 사람들과 함께 살아온 야크, 배설물조차 겨우내 연료인 고마운 동물이다. 주방에 들어가 고기의 품질을 살폈다. 싱싱해 보이는 야크는 금방 맛깔난 소고기 볶음으로 탄생했다. 티베트에서 먹으면 한우보다 더 맛있는 소고기다. 향긋한 나물과 계란탕까지 나오자 정신없이 허기를 채운다. 설산과 더불어, 야크와 함께 살아온 티베트 사람들의 문화는 참 진수성찬이다. 




<야크 재료/야크 요리(왼쪽 위/아래), 야채볶음/계란탕(오른쪽 위/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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