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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심 New Story/Inside N

아키타친구와 함께 먹고 싶은 게국지

농심 음식문화탐사대를 진행해 주시는 쿠켄네트 이윤화 대표님의 에세이를 소개합니다. 맛집을 찾아 전국을 누비는 분을 따라다니다 보면 맛집보다 더 맛있고 구수한 이야기가 솔솔 나온답니다. ^^

도쿄로부터 북동쪽에 위치한 아키타(秋田)의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나에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할 말이 많은 아키타 출신의 일본 친구가 있었다. ‘나의 고향 아키타는 닭고기, 쌀, 사케, 생선이 너무 맛있다’고 늘 자랑이었다. 친구는 그 자랑을 꼭 확인시켜야 된다는 의무감을 가진 듯,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저녁을 대접한다며 긴자에 있는 ‘나마하게(なまはげ)’라는 아키타식당으로 데려갔다. 알이 통통하게 베인 도루묵구이의 맛도 일품이었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음식은 쌀을 거칠게 빻아서 지은 밥으로 만든 꼬치, ‘키리탄보(きりたんぽ 切蒲英)’가 들어가 있는 냄비요리였다. 냄비요리의 국물은 간장빛깔로 투박해 보이고 식감을 크게 자극하지 않았기에, 맛에 대한 기대를 하지 않고 일단 한 모금만 살짝 떠 먹어 보았다. 그런데 예상외로 맛이 너무 편안했다. 각박한 도시생활 속에서 어릴 적 엄마의 음식을 맛보는 것 같았다. ‘그랬구나, 친구가 말하는 아키타의 맛이 이런 거구나!’ 라며 말로는 정확한 표현이 어려웠지만 그 느낌을 가지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 뒤, 한국에서 여러 지방을 돌며 향토음식을 찾아 헤매다 아키타 출신의 친구에게 꼭 소개해주고 싶은 곳이 생겼다. 바로, 해산물이 풍부한 충남 태안의 바닷가 동네였다. 이 곳에 가면, 일반의 한국 음식에 이 지역의 해산물이 들어가서 조금씩 변형된 형태로 표현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기본 국물은 조개 베이스가 많고 우럭젓국 같이 뜨물을 이용한 생선탕, 굴밥, 박 국물에 산낙지를 넣어 끓이는 박속낙지, 함초요리 등 여러 가지이다. 그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음식은 ‘게국지’라는 향토요리였다. 일반 한국인도 게국지를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을 정도로, 이 요리는 태안일대만의 지역적 향토음식이다. 아키타식당에서 먹었던 키리탄보냄비요리처럼 거무스름한 국물 안에 배추김치가 들어있다. 일반적인 김치찌개와 모양이 비슷하지만 그보다 좀더 촌스런 형상이다. ‘도대체 무슨 맛이 있을까?’ 의아해하며 한 수저 조심스럽게 먹었다. 그랬더니 곧 바로, 개운하며 깊은 맛이 느껴졌다. 주인은 방금 전에 만들었다고 말하는데 결코 금방 만든 맛이 아닌 것 같았다. 

게국지

알고 보니 게국지 안에 있는 김치는, 게장의 남은 간장국물을 펄펄 끓여 위의 거품을 걷어내고 그 국물로 배추잎을 절여 숙성한 김치였다. 특히 ‘곰섬나루’라는 식당의 게국지의 김치는 3년 전에 만든 것이란다. 게국지는 게를 맛있게 먹기 위해 쓰였던 게장의 남은 간장국물을 넣고, 배추 또한 억세고 거친 잎으로 버려지기 일보 직전 하품(下品)의 것이 주로 쓰인다. 즉 버려도 될만한 재료로 이렇게 훌륭한 음식을 만들어낸 선조들의 지혜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아키타의 키리탄보냄비요리도 남은 밥을 가지고 막대에 꽂아 구웠던 것이 유래라고 하니, 이 또한 남은 음식을 활용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나에게도 상대의 핸섬한 외모만 보며 파트너를 찾아 헤매던 20대가 있었다. 그 당시 게국지  맛을 보았다면 어떠했을까? 투박하고 촌스러운 시골 맛이라고 절대 흥미를 갖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게국지’나 ‘키리탄보냄비요리’의 국물 맛을 가슴으로 음미하며 그 깊은 맛에 감탄하곤 한다. ‘이젠 깊은 국물 맛을 음미할 정도로 나이가 들어버린 것일까?’ 하는 서운한 생각도 들지만 그래도 난 이 국물 맛이 너무 좋다. 태안 일대에는 게국지가 향토음식이라 해서 전문이라 내세우는 집들이 꽤 되는데, 지금까지 시도해본 게국지 중에서 최고를 고르라면 네 집 농가가 공동 운영하고 있는 ‘곰섬나루’의 묵은게국지김치찌개 라고 단언하게 된다. 변치 않고 우리 향토음식이 지켜지길 바랄 뿐이다.

곰섬나루

게국지를 맛볼 수 있는 곳
곰섬나루
주소: 충남 태안군 남면 신온리 505-2 / 전화 : 041-675-5527
영업시간 : 농사와 식당영업을 겸하기에 사전 예약은 필수!
메뉴 : 게국지, 우럭젓국찌개, 함초간장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