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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심 New Story/Inside N

[종갓집 손맛] 전주 이씨 평장사공(平章事公) 종가

평양에서 이어온 양조고집, 오직 마음으로 빚어야...
 

<김옥수 종부>

역사 속에서 우리 조상과 희로애락을 함께하며 숙성해온 전통주. 전통주라고 하면 대게 막걸리와 동동주를 떠올리지만, 조선 시대엔 죽력고, 이강주 그리고 감홍로가 3대 명주로 불리며 큰 사랑을 받았다. 이렇게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우리의 기억 속에서 잊혀 가는 전통주. 이 가운데 추운 평양에서 유래해 더 진하고 깊은 맛을 내기로 유명했던 감홍로의 맛을 이어가고 있는 종가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뿐 아니라 지금 우리나라 대표 술로 꼽히는 문배주까지 이 집안에서 만들고 있다고 하니 참 대단한 집안이다. 대한민국 대표 주가(逎家)는 멀리 있지 않았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으로 향했다.





▶ 북한 김일성도 탐낸 조선의 명주(名酒)


① 종부의 신혼시절 사진들 ② 집 안에 조상을 모시는 사당을 만들었다

이번에 찾아간 종갓집은 밀양 박씨 종가처럼 화려한 고택이 아니었다. 평범해 보이는 집 안으로 들어서니 올해 나이 91세의 김옥수 종부가 맞이한다.
"어서 들어오라우."
이북 사투리가 정겹다. 곱게 한복을 차려입은 종부의 인자한 웃음을 마주하니 이제야 비로소 정말 종갓집에 온 듯하다. 일단 자리에 앉았다. 평범해 보이는 집을 가만히 둘러보니 한쪽에 창호지 문으로 구역을 나눠놓은 작은방이 눈에 들어온다.
"조상님 모시는 사당이에요."
딸 이기숙 씨가 설명해줬다.
"조상님의 유품을 보관하고 제사를 지내는 곳입니다."
집 안에 사당이 있다니, 신비한 기운이 감돈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여러 모양의 술병과 수많은 사진이 걸려 있다. 김옥수 종부의 결혼식 사진도 눈에 띈다.
'1940년에 결혼사진이라니.'
이 집, 보통은 아닌 것 같다.
일단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 종부와 마주하고 앉았다. 먼저 평양을 떠나 서울로 오게 된 사연이 가장 궁금했다.
"내레 1·4후퇴 때 세단 타고 월남했어. 우리 가족 다 같이."
1·4후퇴 때 자가용을 타고 서울로 올 정도 라면 그 당시 이 가문은 얼마나 부유했던 걸까? 
전주 이씨 평장사공(平章事公) 가문은 김옥수 종부의 4대손 조상 때부터 평양에서 양조업을 시작했다. 4대에 걸쳐 쌓아온 노하우가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은 김옥수 종부의 남편 故 이경찬 선생의 철학이 더해졌을 때였다.
"해방 직후 평양시 전체에서 걷는 세금보다 우리 평촌양조장에서 내는 세금이 더 많았다고 해요. 평양에서 가장 부유한 집안이었죠. 김일성도 평촌양조장 술을 좋아했고, 세금 수입도 많아서 부모님의 월남을 금지했다고 해요."
월남 금지령에도 故 이경찬 선생은 평양에서 더는 양조업을 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1·4후퇴 혼란을 틈타 가족과 함께 남으로 내려와 새로운 터를 잡았다. 그 덕에 우리가 지금 서울에서 평양의 맛을 볼 수 있으니까 다행이다.


▶ 독한 술과 투박한 음식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조화

술상에 안주가 빠질 수 없는 법. 예로부터 술 내리는 날은 으레 동네잔치가 벌어졌고, 술에 걸맞게 맛있는 음식을 준비했다. 평양 음식이라고 하면 동치미 육수에 메밀가루로 만든 평양냉면밖에 떠오르지 않는데, 어떤 음식이 있을지 내심 기대가 됐다. 궁금함을 못 이기고 음식을 준비하고 있는 주방에 슬쩍 들어가 봤다. 종부에게 음식을 내림 받은 딸 이기숙 씨의 손이 바쁘다. 하나 둘 완성된 음식이 상 위에 오른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큼지막한 ‘행적’이었다.
"평양식 김치전이라고 보시면 돼요. 묵은지를 크게 잘라서 밀가루를 묻혀 지진 거죠."
우리가 생각하는 김치전과는 많이 다르다. 손으로 쭉쭉 찢어먹어야 제맛이라는 설명을 듣고 길게 찢어 먹어보았다. 진한 묵은지 향이 감돈다. 묵은지의 맛이 진하게 나고 밀가루의 담백함이 깔끔하게 마무리해준다. 독특한 맛이다. 시선을 돌리니 큼지막한 녹두전도 눈에 들어온다. 옆에 차려진 돼지등뼈비지와 수수죽까지 음식은 아름답다기 보다는 투박함이 강하게 느껴진다. 어떤 맛일까 더 호기심이 생겨 하나 둘 집어먹어 봤다.
"너네 이거 다 먹고 가라우~."
김옥수 종부의 평양 사투리에 잠시 취재하던 펜을 내려놓았다. 펜이 있던 자리에 문배주가 담긴 술잔이 놓였다. 독한 술은 냄새만으로 코끝이 찡해졌다. 강렬한 뒷맛이 사라지기 전 음식을 한 조각씩 먹어봤다. 도수가 높은 문배주와 투박한 음식은 입안에서 묘한 조화를 만들어냈다. 투박함 속에 느껴지는 진한 맛. 그 강렬함은 수저를 더욱 강하게 끌어당겼다. 평양 평촌양조장 식구들은 이 조화 속에서 인생의 맛을 느끼고 위로를 받았으리라. 아, 이것이 평양의 맛이구나! 

③ 감홍로를 이어가고 있는 종부의 딸 이기숙 ④ 다양한 문배주


▶ 세상에 타협하지 않는 음식철학

술에 대한 꿈과 열정을 지키기 위해 월남한 김옥수 종부와 남편 故 이경찬 선생의 서울 생활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1955년 국가에서 양곡관리법을 제정해 곡식으로 술을 만들지 못하게 된 것. 곡주를 고집해오던 故 이경찬 선생은 큰 벽에 부딪혔다.
"그 당시 주변에서 곡주를 버리고 희석주로 전향하라는 제의가 많았다고 해요. 그 당시 곡주를 버리고 희석주를 만드셨다면 크게 사업에 성공하실 수 있었겠죠.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곡주에 대한 고집을 꺾지 않으셨어요."
딸 이기숙 씨는 집에서 계속 곡주를 만들고 연구하던 아버지의 모습을 기억한다. 아버지의 음식철학은 단 한 가지였다.
'전통문화를 이어가기 위해 세상의 흐름과 타협하지 않는다.'
30년간 한 길을 걸어오던 그의 곡주에 대한 열정을 세상은 저버리지 않았다. 기회는 86년 아시안게임과 함께 찾아왔다. 정부는 세계적인 행사를 앞두고 우리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국주(國逎)’를 공모했고, 전통을 이어온 문배주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술로 선정된 것이다. 이때 문배주는 중요무형문화재(제86-1호)로 지정되며 세상의 주목을 다시 받기 시작했다. 이후 국민의 사랑을 받아온 문배주는 지금도 많은 사람이 기억하는 우리나라 대표 술이 되었다.
문배주, 그 안에는 우리의 전통과 함께 전통을 이어가고자 하는 한 가문의 고집과 노력이 함께 베여 있었다.


▶ 술상으로 이어지는 문화와 손맛

⑤ 거실 탁자 안에 문배주 병이 가득 담겨 있다 ⑥ 문배주 색깔은 맑고 투명했다


조선 시대 3대 명주 중 하나인 ‘감홍로’는 딸 이기숙 여사가 물려받고 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가 술을 만들고 연구하는 모습과 철학을 보고 자라온 그녀는 음식과 술을 대하는 자세가 남다르다.
"음식과 술은 문화에요. 우리는 책임감을 갖고 이어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발전시켜야 해요.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변질시키지 않는 거에요. 본질을 놓쳐선 안 되죠."
그녀가 이어가는 것은 단순히 한 병의 감홍로가 놓인 술상이 아니다. 오랜 역사에 걸쳐 계승되고 발전돼 온 우리의 문화다.
이기숙 씨는 술을 만드는 아버지가 한 번도 술에 취한 것을 본 적이 없다.
"아버지께서는 우리한테 이렇게 술이 많이 있는데 왜 술 욕심을 내느냐고 말씀하셨어요. 술은 욕심을 내는 순간 취하고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이죠. 먼저 욕심을 버려야 해요."
문화적 가치는 물질적 소유욕을 버리고 본질에 대한 욕심을 가져야 제대로 지킬 수 있다. 그래서일까 감홍로를 대하는 그녀의 손짓이 더욱 조심스럽다.
"술을 만들기 위해서 가장 먼저 누룩을 만들어야 하잖아요. 미생물의 씨를 키울 때 새로운 생명을 만들어낸다는 생각을 하면 몸과 마음이 경건해집니다."
더욱 좋은 술을 만들기 위해 이기숙 씨는 직접 재료의 품종을 개량해 농사를 짓고자 지난 1년간 친환경농업을 배웠다. 물부터 모든 재료 하나하나 섬세한 관심을 기울여 조선시대 최고의 술을 대한민국의 대표주로 재탄생시키겠다는 각오다. 
그녀는 ‘농심(農心)’을 언급했다. 모든 음식은 ‘농민의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농업에 대한 관심이 필요한 때인 것 같아요. 출발점부터 매듭을 잘 매야 완성되었을 때 제 모습을 갖추거든요. 그건 식품이나 술이나 마찬가지죠."
시작점부터 철저한 관리, 그리고 전통과 그 본질에 대한 애착. 이것이 평양의 투박한 맛이 진국이 되어 서울에 뿌리내릴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 이제 그 줄기와 열매가 자라 많은 사람이 그 매력에 젖어들기를 기대한다. 농심의 음식철학을 여기서도 배운다.

⑦ 생강과 계피 등 여러가지 재료를 넣고 끓인 차 ⑧ 인터뷰 장면 ⑨ 종부가 월남온 뒤 구입한 50년이 넘은 상

김옥수 종부와 이기숙 씨는 인터뷰 내내 음식에 담긴 ‘마음’을 강조했다. 생각이 바로 서야 제맛이 나고 열정을 갖고 그 맛을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술보다는 마음’이라고 말한다. 그 철학이 농부의 마음에서 음식을 만들자는 농심의 사명과 겹쳐진다. 전통을 이어가는 긍지, 변질시키지 않고 발전시키려는 섬세한 노력이 음식의 맛과 가치를 더해줄 것이다. 여기에 여름이 되면 시원한 콩국수 먹으러 오라고 웃으며 인사하는 종부의 따뜻한 마음까지 더해지면 더 아름다운 맛을 내는 농심이 될 것이다. 

이심전심 N Talk Editor 조이☆JOY

즐거운 인생을 꿈꾸는 농심 홍보팀 임종익입니다사내홍보를 담당하며 회사 안에 많은 분들을 만나고 이야기하는 것이 회사생활의 큰 재미입니다. 신바람 나는 소식을 여러분께 발 빠르게 전해드리겠습니다개인적으로 음악과 파티를 좋아하며 취미로 DJ를 하기도 한답니다제 이름 종익에서 받침을 빼서 조이(JOY)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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