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칼럼] 태국 이싼지방의 중심, 컨깬에서 맛 본 두가지 음식 - 쏨땀과 째우헌
태국 이싼지방의 중심, 컨깬에서 맛 본 두가지 음식
쏨땀과 째우헌
태국의 동북부를 일컫는 “이싼”이라는 말에는 그들의 이미지가 같이 함축되어 있다. “척박한 땅과 가난한 삶”. 때문에 돈을 벌고자 전국으로 퍼진 이싼출신 노동자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전국적으로 퍼져나간 이싼 음식. 덕분에 이싼음식은 단지 지방명물이 아닌, 태국의 대표음식으로서 널리 사랑받는 “타이 푸드”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이제는 이싼지방 곳곳이 개발되어 “이싼”의 이미지가 무색할 정도로 발전한 도시들이 많아졌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지라는 것은 그리 쉽게 변하지 않는 것 같다.
<왓넝왱 사원의 프라마하탓깬나컨 불탑>
이싼으로의 여행은 그래서 반전이 있다. 척박하다는 이미지와는 달리 여유롭고 안정된 느낌은 여느 지방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특히 이번에 가게 된 동북부지방 중심에 위치한 도시, 컨깬은 명문 컨깬대학교가 있어 이 지방의 우수 인재들이 모여들고, 젊은 사람의 거주비율이 주변에 비해 높아 도시 전반적으로 활기가 있었다. 태국사람들은 새로운 곳을 가면 그 땅의 주인이라 믿는 토지신에게 먼저 기도를 올린다. 많은 태국인들이 먼저 기도를 드리는 이곳 왓넝왱사원에서 나의 여행도 시작되었다.
<프라마하탓깬나컨 불탑의 외부전경>
<프라마하탓깬나컨 불탑의 내부모습>
왓넝왱사원은 1789년 경 지어진 오래된 절이다. 이곳에는 유명한 불탑이 있는데 절 앞에 위치한 호수 이름을 따서 프라마하탓 깬나컨이라 부른다. 1996년 라마9세인 푸미폰 전 국왕의 골든 주빌리(즉위 50주년)를 경축하고, 컨깬 도시 2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이 불탑은 규모가 웅장하고 보통 불탑과는 달리 독특한 구조가 인상적이다. 거대한 9층 불탑의 내부로 들어갈 수 있는데, 천장이 높은 1층 중앙부에는 불(佛)사리가 봉안된 제단이 있고 우측에는 얼마전 서거한 라마9세의 향소도 마련되어 있다. 계단을 올라가면 층마다 사방으로 뚫린 테라스로 연결되어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도시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불탑의 9층 테라스에서 바라본 경관(왼쪽), 불탑의 외부 테라스(오른쪽)>
불탑의 내부는 작은 박물관을 연상케한다. 다수의 불상과 경전 이외에도 조각상과 장식품, 지역 토산품 등이 진열되어 있다. 창문이나 벽에는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층마다 벽화의 내용이 다르다. 본생경(부처의 전생에 관한 설화집)의 주요 장면이나 문학작품의 내용, 초대 주지승의 삶, 이싼지방 사람들의 생활방식 등이 그려져있다. 수많은 벽화 중에서 이싼사람들의 식사를 그린 장면이 내 눈길을 끌었다. 바닥에 돗자리를 펴고 둘러앉아 끄라띱카우(대나무줄기로 엮어 만든 찰밥을 담는 용기)에 담긴 찰밥과 쏨땀을 손으로 먹고 있는 모습이다. 이 장면이 재밌는 것은 실제로 이 지역 출신 태국학생 집에 초대받아 식사를 함께 했는데, 그 집에서도 돗자리를 깔고 바닥에 둘러앉아 쏨땀과 찰밥을 먹었기 때문이다. 물론 손으로 먹지는 않았고 음식의 종류도 훨씬 다양했지만, 그림 속 분위기를 직접 느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이싼사람들의 식사를 그린 벽화>
<이싼 주민의 집에서 대접받은 식사(왼쪽), 음식점의 이싼 음식(오른쪽)>
이처럼 쏨땀과 끄라띱(대마무 줄기로 엮은 통) 찰밥은 동북부 지방의 대표음식이다. 한국인에게도 가장 사랑받는 태국음식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이 새콤달콤한 파파야샐러드, 쏨땀이다. 쏨땀은 주로 까이양(닭구이)이나 무양(돼지구이)과 함께 먹으며, 면을 좋아하는 태국사람들은 밥 대용으로 먹는 카놈찐 면을 쏨땀에 무쳐 “땀쑤아”로도 즐겨 먹는다. 특히 이싼 사람들은 “쁠라라”라고 불리는 담수어식혜를 넣어 쏨땀을 만든다. 태국의 타지방 사람들이나 외국인들은 냄새가 고약한 “쏨땀쁠라라”를 먹기가 쉽지 않은데, 이싼사람들은 오히려 쁠라라를 넣지 않은 쏨땀은 맛이 심심하고 제 맛이 안난다고 말한다.
<카놈찐을 넣는 땀쑤아(왼쪽), 쏨땀 까이양 상차림(오른쪽)>
<쏨땀쁠라라(왼쪽), 쁠라라를 넣지 않는 쏨땀타이(오른쪽)>
한국사람들에게 유명한 태국 음식점 중에 “MK수끼”라는 곳이 있다. 이름그대로 수끼 전문점인데, 사실 수끼는 일본의 나베요리인 스끼야끼에서 온 말로, 각종 야채와 면, 고기, 해산물 등을 넣어 먹는 전골의 일종이다. 태국의 전통식 전골요리로는 “찜쭘”이라는 요리가 있는데, 이와 유사하게 이싼지방에는 “째우헌”이 있다. 째우헌의 육수는 일반 수끼와 확연히 다르다. 일반적으로 수끼의 국물은 닭고기 육수인데 반해 째우헌은 소갈비나 돼지갈비를 샬롯, 레몬그라스, 고수 뿌리, 생강, 타마린드 잎과 함께 끓여낸 후 액젓과 소금으로 간을 한 국물을 사용한다. 따라서 맛과 향이 어우러진 독특한 풍미가 있다. 여기에 구운 쌀가루나 돼지피 또는 소피를 첨가해 국물을 만들기도 하는데 이럴 경우는 국물이 맑지 않고 탁한 갈색을 띤다. 수끼를 찍어먹는 소스도 중부와 다른데, 이싼지방에서는 액젓과 고춧가루를 섞어 만든 기본소스에 구운 쌀가루를 넣는 것이 특징이다. 기호에 따라 다진 샬롯이나 허브, 다진 파, 고춧가루, 구운 쌀가루, 다진 고추, 다진 마늘, 라임즙 등을 첨가한다.
<이싼식 수끼인 째우헌과 남찜(소스)>
컨깬에는 이 지방의 덕망있는 스님으로 존경받았던 루앙퍼끌루아이 스님이 지은 “왓빠 탐마웃타얀”이라는 절이 있다. 태국에서 일반적으로 사원을 “왓”이라 부르는데, 이곳은 숲을 의미하는 단어인 “빠”가 붙은 “왓빠”이다. 동북부지역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사원형식인 왓빠는 탐마웃타얀(부처공원)이라는 이름에서 느껴지듯이 자연친화적이고 개방감이 돋보이는 불교사원이다. 중부의 화려하고 섬세한 절과 대비되는 투박하고 자연스러운 이곳은 의례보다는 수행이 중시된다는 것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고요하지만 적막하지 않고, 편안하지만 나태하지 않은 왓빠의 분위기는 명상공원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매우 색다른 경험이었다.
<개방감이 돋보이는 자연친화적 불교사원, 왓빠탐마웃타얀>
컨깬은 관광지가 많은 곳은 아니기에 오히려 이싼 사람들의 생활양식을 있는 그대로 엿볼 수 있어서 좋았다. 쁠라라를 넣은 쏨땀은 여전히 힘든 과제임을 확인했지만, 째우헌은 익숙한 태국음식의 맛과 다르지 않아 맛있게 즐길 수 있었다. 이번에 컨깬에서 맛 본 이싼음식은 또다른 동북부 로컬 푸드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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