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칼럼] 귀주 진원고진과 호남 봉황고진 (밤이 되면 눈도 귀도 더 풍성해지는 마을의 야경)
밤이 되면 눈도 귀도 더 풍성해지는 마을의 야경
귀주 진원고진과 호남 봉황고진
밤이 되면 아름다운 치장하는 마을이 있다. 강변 사이로 조명이 흐르면 물인지 구분이 어렵고 반영만이 그저 시선을 사로잡는다. 오랜 세월을 이어왔다면 볼거리와 먹거리까지 풍성하다. 옛날 고(古)를 자랑스럽게 붙이는 고진(古镇), 중국에는 셀 수 없이 많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강이 있어 더 감동적인 진원(镇远)과 봉황(凤凰)으로 간다.
귀주(贵州) 동북부에 위치한 진원고진에는 무양하(舞阳河)가 흐른다. 수백 년 전부터 강을 따라 오가는 배가 많았다. 지금도 부두의 흔적이 남아 있다. 세관 역할을 하던 하관(河关)과 운송과 경비를 담당하던 표국(镖局)도 있었다. 강을 따라 상업이 발달했던 마을이다. 사람들 왕래를 위해 세운 봉긋한 다리인 135m 길이의 축성교(祝圣桥)는 배가 지나는 공교(孔桥)다. 다섯 개의 반달 같은 구멍을 지탱하는 교각에는 전설도 잠겨 있다.
<진원표국/축성교(왼쪽 위/아래), 하관 조각상/무양하 오가는 배(오른쪽 위/아래)>
600여 년 전 명나라 초기에 교각을 세울 당시 강바닥 진흙이 너무 두터워 석공이 애를 먹고 있었다. 마침 무당파 창시자인 도사 장삼풍(张三丰)이 제자들과 함께 진원을 유람 중이었다. 장삼풍은 대나무 바구니에 담아온 두부를 교각 지점에 버리고 주문을 외웠다. 다음날 단단한 청석(青石)으로 변해 무사히 다리가 완성됐다는 ‘도사’같은 전설이 있다. 장삼풍이 다녀간 진원에는 아름다운 건축물이자 도교사원인 청룡동(青龙洞)이 자리잡고 있다. 산자락에 만들어진 사원은 밤이 되면 휘황찬란한 조명으로 되살아난다.
‘두부로 만든 다리’라는 도교의 우화가 전해 내려오기 때문인지 진원고진에는 두부 파는 가게가 많다. 순두부와 비슷한 맛과 부드러운 식감을 자랑한다. 미두부(米豆腐) 한 그릇은 아침 한 끼로 딱 어울린다. 파와 간장을 살짝 뿌려 먹으면 졸린 뇌에 고소하고 구수한 느낌을 보낼 수 있다. 두부만으로 부족하면 진원을 대표하는 국수 장왕면(肠旺面)를 추가하면 된다. 창자와 피를 재료로 맵고 후련한 맛을 지닌 장왕면을 먹으려면 선입견을 버려야 한다. 보자마자 젓가락을 놓는다면 색(色), 향(香), 미(味) 모두 돋보이는 삼절(三绝)의 기품을 놓치고 만다.
<청룡동 야경/미두부(왼쪽 위/아래), 진원 두부공장/장양면(오른쪽 위/아래)>
장사로 부를 축적한 상인들은 야트막한 석병산(石屏山) 능선을 따라 저택을 지었다. 골목은 살짝 기울었고 대문도 조금 비스듬해 왜문사도(歪门邪道)라고 부른다. 기울어진 민가와 꾸불꾸불한 골목을 따라 거닐면 고풍스럽고 한적한 고진의 풍모를 느낄 수 있다. 술도가, 찻집, 두부 공장, 우물, 객잔이 이어진 길을 따라 오르면 정상으로 가는 등산로다. 이름만 병풍일 뿐 그다지 가파른 산이 아니다. 무양하가 유유히 흐르고 청룡동도 의젓하게 자리 잡고 있다.
<진원고진 민가(왼쪽), 석병산에서 본 마을/마을 야경/무양하 야경 유람(오른쪽 위/가운데/아래)>
진원에 어둠이 내리면 고진은 환상적으로 화장을 한다. 어둠을 뚫고 진하디 붉은 홍등이 골목을 수놓는다. 낮보다 더 아름다운 건 마을만이 아니다. 무양하 유람선은 밤이 되면 서시히 시동을 건다. 낭만의 절정이자 별미인 변화무쌍하고 화려한 진원의 야경은 배를 타고 즐겨야 제맛이다. 고풍스러운 건물에 비친 모습이 달빛인지 불빛인지 헤아리기 어려운 진원의 밤이 점점 깊어간다.
귀주에 진원이 있다면 성(省)을 넘어 호남(湖南)에는 봉황이 있다. 진원에서 동북 방향으로 약 200km 떨어진 봉황고진은 타강(沱江)을 따라 형성된 마을이다. 뉴질랜드의 한 작가로부터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이라고 극찬을 받은 봉황이다. 고대 전설에 등장하며 오색찬란한 깃털을 자랑하는 새를 지명으로 쓰는 이유가 있다. 촉촉하게 젖은 듯 반짝거리는 강변 돌길을 따라 걷다가 ‘선택의 고민’ 없이 아무 식당에 들어서면 그냥 마음에 든다. 황제도 부럽지 않을 반찬이자 안주가 된다. 봉황에 도착하면 여유로운 풍광을 바라보며 만찬을 즐겨본다.
<봉황고진/개구리 볶음(왼쪽 위/아래), 철판가지/고사리절임고기/마파두부(오른쪽 위/가운데/아래)>
철판가지(铁板茄子), 마파두부(麻婆豆腐)에 미역갈비탕(海带排骨汤)을 주문한다. 소금에 절여 말린 고기와 고사리의 조화가 군침 도는 고사리절임고기(蕨菜腊肉), 호남요리 양념이 물씬 풍기니 침이 자연스레 고인다. 고향의 맛을 자랑하는 돼지고기 향리대완육(乡里大碗肉)과 ‘세상에나’ 소리 저절로 나오고 눈이 휘둥그레지는 야생개구리철판볶음(野生石蛙干锅)! 호남을 약칭으로 샹(湘)이라 하고 호남요리를 샹차이(湘菜)라 부른다. 중국의 수많은 요리 중 우리나라 양념에 가장 잘 어울린다고 강력하게 주장한 지 10년도 넘었다. 중국 방방곡곡 다 다녀본 사람만이 무릎을 ‘탁’ 치며 동의한다. 고수라 부르는 샹차이(香菜)와 발음이 같으니 외우기도 쉽다. 잘못 주문하면 낭패다.
너무 잔잔해 강인지 거울인지 모를 봉황고진. 봉긋한 다리를 건너 강 저편으로 갔다가 이편으로 돌아오며 시선이 닿을 때마다 작품이 된다. 한 글자 다리 이름도 그냥 자연 그대로다. 구름(云), 안개(雾), 바람(风), 무지개(虹), 눈(雪)이 봉황의 타강을 연결하고 있다. 사람의 왕래가 잦은 다리 부근에는 삶거나 튀긴 민물고기, 게, 우렁이를 판다. 이 지역 매실인 까맣고 달콤한 우메이(乌梅) 파는 아주머니도 많다. 입안에 넣고 가벼운 발걸음에 맞춰 쏙 빼먹는 맛이 재밌다.
<우메이 파는 아주머니(왼쪽), 봉황고진/민물고기와 게/우렁이(오른쪽 위/가운데/아래)>
배가 떠다니고 새가 날아다닌다. 여느 다리와 모양새가 다른 도암교(跳岩桥)만의 운치는 색다른 체험이다. 징검다리 간격이 비교적 넓어 아슬아슬하다. 강이 깊지 않아 공포는 아니어도 약간 불편하다. 연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잘 건넌다. 불안한 다리를 쉬며 잠시 멈춰 고개를 들어보니 나무다리, 돌다리, 큰 대교까지 한 화면에 다 들어온다. 강을 따라 유유자적하며 이쪽저쪽 다리를 건너 걷다보면 수면 위에 비친 건물과 다리, 사람도 모두 하나가 된다.
<도암교/봉황고진 다리들/봉황고성 거리(왼쪽 위/가운데/아래), 고성 문/봉황광장(오른쪽 위/아래)>
강을 벗어나 서민들이 사는 골목으로 들어선다. 강 남쪽에는 고성이 형성돼 있어 봉황고성이라 부른다. 성문 4곳이 동서남북에 하나씩 배치돼 있다. 청나라 강희제 시대 조성됐으니 약 300년의 역사를 지녔다. 고거와 사당, 유불선 건축물도 모두 등장한다. 전형적인 서민주거공간이자 생활 터전이다. 골목마다 객잔과 식당, 카페, 가게가 들어선 관광지가 됐다. 서문(西门) 앞 문화광장에는 봉황 한 마리가 우뚝 위용을 드러내고 있다.
밤이 되면 전설의 봉황은 사라지고 고진의 야경만이 불을 밝힌다.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데칼코마니로 드러난 캔버스처럼 봉황은 새로운 출발을 시작한다. 낮보다 더 많은 소리가 들린다. 물을 끌어올리는 무자위가 돌아간다. 물 떨어지는 소리도 들린다. 해맑게 웃는 사람들, 부닥치는 술잔들도 저마다 소리를 지른다. 그러나 불빛에도 소리가 나는지 몰랐다. 그 모든 소리를 잠재우는 봉황의 야경은 눈과 귀를 따라 깊은 호흡과 함께 온몸으로 녹아내리고 있다.
<타강을 따라 형성된 봉황고진의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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