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칼럼] 태국 푸켓의 올드타운에서 페라나칸 문화를 맛보다
태국 푸켓의 올드타운에서
페라나칸 문화를 맛보다
<푸켓 올드타운의 중심, 탈랑로드>
"안다만의 진주"라 불리는 태국 최대의 섬 푸켓은 한국인에게도 잘 알려진 곳이다. 에메랄드빛 바다가 떠오르는 푸켓은 세계인에게 사랑받는 휴양지이지만, 동시에 독특한 문화와 전통을 계승하고 있는 역사적인 도시이다. 푸켓의 원래 이름은 찰랑 혹은 탈랑으로, 서양에서는 정실론이라 불렀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대량의 광산이 있던 이곳은 16세기부터 서양과의 무역을 통해 아유타야왕국의 국고를 채워주는 효자상품, 주석의 최대생산지였다. 19세기 이후부터는 말라카와 페낭의 화교, 중국 푸젠성의 중국인들이 대거 이주해 정착하면서 푸켓 페라나칸 문화가 탄생하게 되었다. 페라나칸은 말레이 여성과 아랍, 인도, 중국 등의 외국인 남성의 결혼으로 생겨난 혼합문화 및 민족을 의미하는데, 특히 중국 남성과 말레이 여성의 후손을 바바(남자), 논야/야야(여자)라 부른다.
푸켓은 수도 방콕과 680km정도 떨어져 있기 때문에 옛날에는 왕래가 쉽지 않았다. 20세기 초에 기찻길이 생겨나면서 방콕에서 푸켓까지 최소 3-4일만에 도착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지리적으로 한계가 있었다. 반면 푸켓에서 페낭까지는 기선(steamboat)으로 하루면 도착하는 거리였기 때문에 푸켓 부유층은 영국의 식민지였던 페낭의 신식 문물을 쉽게 접하고 수용했다. 이로 인해 푸켓의 문화는 유럽과 중국, 말레이와 현지문화가 혼합된 독특한 문화를 탄생시켰다. 이는 말레이시아나 싱가폴의 그것과도 구분되어, 푸켓 페라나칸으로 불린다.
<구 딸랏야이 경찰서(좌), 구 차터드은행(우)>
<시노-포르투기즈 양식의 건물과 거리>
푸켓 페라나칸 문화는 건물의 건축양식과 전통의상 그리고 먹거리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올드타운의 중심에 탈랑로드가 있는데, 이곳을 걷다보면 싱가폴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는 싱가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시노-유러피안(Sino-European)양식의 건축물 때문일 것이다. 푸켓에서는 유럽 중 가장 먼저 교역을 했던 포르투갈의 이름을 따서 시노-포르투기즈(Sino-Portuguese) 양식이라 부르는데, 이는 중국과 포르투갈의 혼합양식을 말한다.
시노-포르투기즈 양식의 건물 중 랜드마크로 꼽히는 곳으로 차터드은행(the Chartered Bank)이 있다. 페낭에 있던 차터드은행이 1909년 이곳에 지점을 설립해 푸켓 최초의 은행이 되었다. 또한 은행을 보호하기 위해 맞은편에 경찰서를 세웠는데, 현재는 두 건물 모두 페라나칸니탓 뮤지엄(Peranakannitat Museum)으로 새단장하여 개방되었다. 시노-포르투기즈 양식 건물은 전면이 좁고 내부가 길쭉한 구조가 특징으로 이는 용을 숭상하는 중국인의 믿음이 반영된 것이다. 건물의 전면은 용의 얼굴모양을 하고 있다. 출입문은 용의 입이고, 문 양쪽의 창문은 용의 눈, 그 상단부의 환풍구는 용의 눈썹모양을 형상화했다. 건물의 전면이 용의 얼굴이라면, 건물의 후면은 용의 꼬리이기 때문에 전통 페라나칸 가옥에서 화장실이 건물의 후면에 위치하는 것도 재미있는 사실이다.
<친쁘라차 하우스>
시노-포르투기즈 양식의 가장 화려한 버전은 앙머라오(Angmor Lounge)라 불리는 대저택에서 나타난다. 20세기 초 광산사업으로 성공한 부호들의 맨션인 앙머라오는 푸켓에 몇 채가 남아있지만, 대중에 개방된 곳은 친쁘라차 하우스가 유일하다. 1903년 프라피탁친쁘라차(화교 2세)가 지은 자택으로 현재는 6대손이 관리하고 있다.
<친쁘라차 하우스 내부의 응접실과 연못>
<집안의 사당(좌), 부엌(우)>
앙머라오 양식의 대저택은 다양한 문화요소들이 어우러진 독특한 형태의 주거공간이다. 앙머는 빨간 머리카락 즉 외국인을 뜻하고, 라오는 콘크리트 건물을 의미하므로, 앙머라오는 서양 스타일의 주택을 말한다. 때문에 이태리산 타일이나 유럽식 인테리어와 같은 겉모습만 보면 유럽식 저택인 것 같지만, 사실은 거주하는 사람-푸젠성 출신 화교와 현지 여성-의 생활양식문화가 곳곳에 가미되어 그 다양성을 한마디로 규정하기가 쉽지 않다.
페라나칸 가옥 내부에는 “침째”라 불리는 작은 연못이 있는데, 이 부분은 천장이 없어 통풍과 채광을 용이하게 한다. 연못에는 금붕어가 있고 음양론에 따라 검은색 물고기도 함께 기른다고 한다. 이 연못을 둘러싼 웅장한 유럽식 기둥이 인상적이다. 이곳을 지나 방으로 들어가면 조상을 모셔둔 사당과 신당, 두 개의 제단이 따로 있다. 부엌 역시 페라나칸적인 요소가 가장 많이 드러나는 공간이다. 중국식과 태국식 조리기구들은 이들이 어떤 음식을 만들어 먹었을지 궁금증을 유발한다.
<푸켓 타이후아 뮤지엄>
페라나칸 음식문화를 좀 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푸켓 타이후아뮤지엄으로 향했다. 1934년 푸젠성 출신 화교들이 세운 푸켓 최초의 화교학교였던 이곳은 2010년에 푸켓의 화교문화를 소개하는 타이후아 뮤지엄으로 개관했다. 현지 음식을 소개한 전시실에는 페라나칸의 주방을 재현하고 있다. 가장 특징적인 것은 매콤한 태국 남부식과 페낭에서 영향을 받은 말레이식, 인도에서 건너온 각종 향신료 및 달콤하고 기름진 음식이 중국식 맛 취향과 조리법을 통해 푸켓 페라나칸 퀴진으로 탄생했다는 점이다.
<푸켓 타이후아뮤지엄의 페라나칸 음식문화 전시실>
<씨아나(좌), 앙꾸 틀과 전통과자(우)>
페라나칸 음식문화에서 빠질 수 없는 아이템으로 “씨아나”라는 찬합이 있다. 대나무로 만든 중국식 찬합인데, 빨간색과 검정색으로 칠하고 금장을 입히는 것이 특징이다. 씨아나는 상서롭다는 의미가 있어 경사에 빠지지 않는 물건이다. 특히 결혼식에서 우리의 함과 비슷한 역할을 한다. 신랑측은 씨아나에 각종 예물과 전통 과자 등을 넣어 신부측에 전달한다. 상서로움을 의미하는 전통과자로는 “앙꾸”라 불리는 빨간색 디저트가 있다. 찹쌀반죽 속에 녹두앙금을 채운 일종의 찹쌀떡이다.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빨간색을 입혀 거북이, 꽃잎 모양 등의 틀에 눌러 무늬를 넣고 쪄내면 완성된다. 앙꾸는 경사에 빠지지 않는 음식으로 특히 신생아가 태어난 지 1달이 된 것을 기념하는 의식에서 쓰인다.
<미호끼안>
페라나칸의 면요리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은 미호끼안(Mee Hokkien)이다. 미는 국수를, 호끼안은 푸젠성 이주 화교(Fujian)를 뜻하므로, 곧 푸젠성 국수를 의미한다. 태국에는 “바미”라 불리는 얇은 밀면이 있는데 미호끼안은 이보다 통통한 밀면이다. 청경채와 각종 해산물을 간장으로 볶은 요리이다. 계란을 반숙해서 넣어주는데 풀어서 먹으면 부드럽다. 달짝지근한 맛이 몇 젓가락 먹다보면 느끼할 수 있으므로 곁들임 생야채로 서빙되는 부추와 샬롯(적양파)을 섞어 먹으면 맛이 더 깔끔하다. 묽은 자장면에 견줄만한 달콤짭조름한 맛이지만 푸켓의 미호끼안은 볶은 장의 맛보다 재료 본연의 맛이 더 살아있다.
<미호끼안>
푸켓에 오면 반드시 맛봐야 할 음식 중 최고의 음식으로 꼽히는 “무헝”이라는 돼지고기찜이 있다. 겉보기에 우리의 갈비찜과 흡사한데 그 맛도 갈비찜과 매우 비슷하다. 오향이 거의 없고, 고기가 부드러워 흰쌀밥과 함께 먹으면 한식으로 착각할 정도로 우리의 입맛에 잘 맞는다. 단지 통후추가 그대로 씹히기 때문에 후추향에 민감한 사람이라면 후추 알갱이를 골라내고 먹으면 좋겠다. 태국 요리에 기본으로 나오는 고추를 조금 곁들어 먹으면 적당히 매콤한 맛이 상쾌하게 입맛을 자극한다.
<무헝>
푸켓 다운타운에서 가장 핫한 디저트 가게는 토리즈 아이스크림(Torry’s icecream)이다. 수제 아이스크림과 차(tea)를 맛볼 수 있는 이곳은 가게에 들어서면 이탈리아의 한 젤라또 가게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달콤한 유혹에 매료되어 긴 줄을 늘어선 사람들과 서빙하는 점원들 모두 각종 아이스크림을 사이에 두고 분주하게 움직인다. 내부 인테리어는 서양과 동양적인 요소들이 감각적으로 배치되어 세련미가 돋보인다. 중국 세라믹 접시에 서빙된 아이스크림 크루아상과 마카롱도 어색한 느낌이 없다.
<토리즈의 아이스크림과 차>
토리즈의 아이스크림 맛은 조금 평범한 것 같다. 그러나 마카롱 아이스크림은 기억에 남는다. 쫀득한 마카롱과 부드러운 아이스크림이 매우 잘 어울린다. 아이스크림 맛이 전체적으로 많이 달지 않고 시원하다.
<토리즈 아이스크림의 내부>
<로즈 마카롱&바닐라 아이스크림(좌), 크루아상 트리오(우)>
푸켓 올드타운과 차로 5분정도 거리에 카오랑이라는 산이 있다. 이곳에서는 탁트인 푸켓의 시내전경을 볼 수 있다. 저멀리 보이는 바다와 작은 섬들은 운치를 더해준다. 한쪽에는 푸켓의 인프라를 계획적으로 구축했던 전 주지사 프라야랏싸다누쁘라딧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화교출신인 그는 태국어를 할 줄 몰랐지만 라마5세는 그의 비전과 능력을 높게 평가해 주지사로 임명했고, 푸켓은 20세기 초 경제성장과 더불에 사회적으로도 눈부신 도약을 할 수 있었다.
<카오랑 전망대>
<푸켓 시티 뷰 포인트(좌), 프라야랏싸다누쁘라딧 전 주지사 동상(우)>
푸켓을 여행하는 대부분의 한국 관광객들은 빠떵비치와 인근섬 투어를 하고 돌아간다. 태국에서 한국사람을 마주치는 일은 매우 흔한데, 푸켓 올드타운에서는 단 한명의 한국인도 보지 못한 것이 내심 아쉬웠다. 푸켓이 주석광산이었고, 태국 중부와는 다른 독자적인 문화를 계승하고 있으며, 주민의 반정도가 푸젠성 출신 화교라는 사실은 푸켓을 좀 더 깊이있게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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