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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가 국가대표"


<한국홍보전문가 서경덕>


서경덕 교수의 연구실 한쪽 벽면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대한민국이라는 커다란 네 글자였습니다. 소박한 연구실 내부에서 오직 그 네 글자만이 형형색색의 빛깔을 자랑하며 ‘한국홍보전문가’라는 그의 직업을 실감케 했습니다. 한국홍보전문가라니. 서경덕 교수 이전에 과연 그런 직업이 있기나 했었는지 새삼 놀라웠습니다. 

책임취재. 임종익 농심 홍보기획팀   

취재. 글. 황현진 소설가   

사진. 이상학



■ 신라면은 어디에나 있다


서경덕 교수는 기다렸다는 듯 우리를 크게 반겼습니다. “어서 오세요.”라는 그의 인사에 한낮의 무더위가 싹 가셨습니다. 푸근해 보이는 외모에 활달한 목소리를 가진 그는 연신 웃는 얼굴이었습니다. 그의 웃는 모습은 보는 사람마저 저절로 미소를 짓게 할 만큼 전염성이 아주 강한 미소였습니다. 그를 인터뷰하는 내내 유쾌했던 이는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으리라.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농심에 대해 그동안 자신이 느꼈던 이미지를 거침없이 말했습니다. 해외 출입이 잦은 그는 세계 각국에서 농심의 신라면을 발견할 때마다 놀란다고 했습니다. 이국의 땅에서 코카콜라와 맥도널드만큼이나 가장 자주 마주치는 브랜드가 신라면이었다고, 그는 농심의 위상을 모두에게 재확인시켜주었습니다.


핀란드의 마켓에서, 인도의 오지에서, 몽골의 작은 가게에서도 신라면과 너구리를 쉽게 구입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면서도 기쁘다고 고백했습니다. 외국인이 신라면을 먹는 모습을 보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뿌듯하다고도 했습니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서경덕 교수와 같은 기분이었을 것입니다. 그 말인즉슨, 우리 모두에겐 대한민국 홍보전문가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뜻이겠죠. 


특히 서경덕 교수는 한식의 세계화에 앞장서는 데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고 있는 농심에 대해 날카로운 조언도 아끼지 않았습니다. 농심의 ‘면발’이 가진 장점을 극대화하는 데 보다 적극적인 홍보 마케팅이 필요하지 않겠느냐고, 그는 진지하게 물어왔습니다.



■ 잃을 게 없습니다!


아직 한식이 세계화되었다고 말하기엔 이르다고 그는 평했습니다. 세계 각국의 여러 요리들, 이를테면 태국의 쌀국수, 일본의 초밥, 이탈리아의 스파게티 등의 보급화에 비하면 한국의 대표 요리들은 아직 미진한 부분이 많다는 게 그의 요지였습니다. 최근 뉴욕 타임스스퀘어 전광판에 올린 영화배우 이영애와 함께 진행한 비빔밥 광고나 무한도전 팀과 제작한 비빔밥 영상광고 등에 그가 전력을 다하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그의 그러한 노력 덕분에 한식에 대한 인지도는 분명 바뀌었습니다. 이전에 세계 곳곳의 한식 식당을 찾는 손님들은 대부분 한국인들이었는데, 요즘은 손님들의 절반이 외국인으로 바뀌었습니다. 그 자체만으로도 굉장한 변화임에 틀림없겠죠.


얼마 전 미셸 오바마가 트위터에 김치에 대한 글을 올렸습니다. 서경덕 교수는 미셸 오바마의 트윗 전문을 이용하여 김치 광고를 실었습니다. 미국 퍼스트레이디의 발언을 광고에 활용할 수 있는 주체를 정부와 기업이 떠맡기엔 불가능하다고, 오로지 개인만이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한국을 소개하고 홍보하는 데 매진하고 있습니다. 국제변호사가 소송을 걸어오지 않을까, 일본 우익단체의 협박이 더 거세지진 않을까 하는 걱정과 우려에도 그는 웃으며 외쳤습니다. 저는 잃을 게 없습니다, 하하하!




■ 대한민국을 아십니까?


22살 때였습니다. 그는 유럽 배낭여행을 떠났습니다. 당시 국내 언론은 한국을 ‘세계경제대국 11위’라고 강조하는 등 자부심이 굉장히 강하던 시기였는데요. 세계 각국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지만, 그들은 ‘아임 프롬 코리아’라는 말에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그들은 젊은 서경덕에게 오로지 중국과 일본에 대해서만 물어왔습니다. 그는 적지 않은 충격을 느꼈습니다. 그 순간, 서경덕은 한국을 널리 알리는 데 앞장서야겠다는 결심을 최초로 가지게 되었답니다. 누군가에게 부탁하거나 떠맡기지 않고 나부터 스스로 한국의 문화를 소개해야겠다고 말이죠.

 

여행에서 돌아온 직후, 그는 수중에 있던 89,000원을 들고 남대문시장으로 갔습니다. 89,000원은 당시 그의 주급이었습니다. 그는 가지고 있는 돈을 탈탈 털어 태극기 배지 100개를 구입했습니다. 다시 방학이 돌아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그즈음 배낭여행객들 사이에선 국기 배지를 모으는 게 유행이었는데요. 하지만 한국을 찾는 배낭여행객들이 극히 드물던 시기여서 서경덕은 자신이 구입한 태극기 배지를 가방에 넣고 세계 여러 나라로 배낭여행객들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는 여행 중에 만난 모든 외국인들에게 배지를 나누어주었습니다. 더불어 태극기를 설명하고,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들려주었습니다. 


“‘대한민국에 다음에 한 번 놀러와’라고 말했을 때 싫어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어요. 태극기 배지를 준다고 했을 때 다들 좋아했어요. 그들은 사실 대한민국을 몰랐어요. 그들에게 대한민국은 6·25의 나라였어요. 생각해보면 우리가 잘못한 게 없어요. 그동안 우리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홍보할 수 없는 시기를 살아왔어요. 80년대를 지나오면서까지 우리는 먹고살기 힘든 국민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요즘은 국민소득이 2만 달러 시대잖아요. 바로 지금이 적기입니다. 대한민국을 알리고 우리 문화를 세계화하는 데 가장 좋은 시기입니다!”


이제 한국이 세계지도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코리아라는 브랜드를 모르는 사람도 없습니다. 세계 여러 나라의 매장 진열대에 한국 브랜드가 있고 신라면이 해외마켓의 진열대에서 가장 좋은 자리를 선점하고 있는 것만큼 대한민국 홍보에 좋은 일도 없습니다. 한국을 홍보하는 데 가장 주도적으로 나설 주체들은 바로 기업이라고 그는 반복해서 말했습니다.



■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입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한국어 지면광고를 하고, 타임스스퀘어에 비빔밥을 광고하고, 뉴욕메트로폴리스 박물관에 한국어 서비스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뉴욕 타임즈에 독도광고를 싣는 등 여러 방향으로 한국을 홍보하는 데 주력하는 서경덕에게 노골적으로 물었습니다.


"대한민국을 홍보하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그는 짧게 대답했습니다. 싸가지입니다. 웃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의 말을 굳이 다른 말로 바꾸자면 글로벌 에티켓입니다. 다른 하나가 더 필요하다면 창의적인 아이디어일 수 있겠죠. 


최근 서경덕 교수가 주력하는 프로젝트는 한국사 과목을 수능 필수과목으로 만드는 것과 타임스스퀘어에 국가 단위로는 세계 최초로 대한민국 전용 광고판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을 하는데 엄청난 에너지와 사람이 필요한데요. 그는 ‘나 같은 사람’을 도와주고 있는 여러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전했습니다. 


“저는 선배들에게 노하우를 많이 배웠어요. 광고에 대한 노하우, 인생에 대한 노하우. 이제 저는 선배들에게 배운 노하우를 가지고 후배들에게 노후(know who)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을 만날 것인가? 누구를 만나서 어떤 일을 할 것인가. 홍보를 잘하려면 사람을 잘 만나야 합니다. 돈벌이에 급급한 사람들을 만났으면 저는 결코 이 일을 여기까지 이어오지 못했을 겁니다.”


술 한 잔을 나눠 마시는 것만으로도 흔쾌히 오케이를 외쳐주는 사람들이 없었다면 도저히 불가능했을 거라고 그는 말합니다. 결국 가장 중요한 동력은 사람, 사람이다. 인터뷰를 거의 끝낼 즈음 그가 힘주어 말했습니다. 하나의 사람이 곧 하나의 국가입니다. 외국에서 우리 모두는 국가대표입니다.


서경덕 교수는 현재 성신여자대학교 객원 교수이자 한국홍보전문가로 활동 중입니다. 대학 시절 유럽 배낭여행을 하면서 일본인, 중국인으로 오해를 많이 받아 한국의 낮은 인지도에 오기가 발동해 대한민국 홍보를 시작했습니다. 이후 5대양 6대주를 누비며 한국의 문화와 역사를 알리고 있으며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월스트리트저널 등 세계적인 신문에 독도 및 동해, 위안부, 고구려 등의 이슈를 광고로 실어 크게 주목을 받았습니다. 또한 뉴욕 메트로폴리탄박물관, 현대미술관(MOMA), 미국자연사박물관 등 세계적인 박물관과 미술관에 한국어 서비스를 유치, 세계적인 설치미술가 강익중 씨와 함께 ‘한글 세계전파 프로젝트’와 ‘세계 분쟁지역 평화전파 프로젝트’ 등을 진행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