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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의 싸움으로 만들어지는 메밀국수,

소바의 재해석

 

 

 

소바(소바키리. 일본식 메밀국수)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한순간 방심하면 반죽이 눈 깜짝할 사이 갈라져 낭패를 본다. 바로 반죽하고 봉으로 밀고 제면하고 삶아야 향긋한 메밀 향을 고스란히 삼킬 수 있다. 공기 중 미세한 수분도 강적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일본의 소바 장인들은 무더운 여름날에도 에어컨을 켜지 않고 반죽한다. 땀 따위는 안중에 없다. 자신의 이름을 건 메밀 맛이 중요하다.


메밀 수확에서부터 소바 맛은 시작한다. 일본 장인들은 10월 중순부터 수확하는 햇메밀을 으뜸으로 친다. 과거 부족한 끈기 때문에 참마, 해조류, 달걀 등을 섞기도 했지만 지금은 100% 메밀로만 만드는 주와리소바나 밀가루를 20% 섞는 니하치소바가 대세다.


일본요리학교 쓰시초(츠지조)의 혼다 마사미 교수의 메밀반죽 현장을 목격할 기회가 있었다. 빨랐다. 능숙했다. 완성한 반죽덩어리의 모양은 지구본 같아 보였다. 표면은 매끈한 아기피부였다. “이렇게 동그란 모양으로 계속 굴려서 공기를 뺀다.” 그는 현미경으로 보면 미세한 공기방울이 있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맛을 향한 집념이다. 섬세하다. 제면하는 손은 마치 악기를 연주하는 모차르트 같았다. 감탄이 절로 나온다.

 

<(위 왼쪽) 메밀반죽 과정 (위 오른쪽) 완성된 메밀반죽 (아래) 반죽반죽 밀기>

 

 

 

100년이 넘는 일본의 노포들은 메밀 향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직접 맷돌로 빻아 가루를 만든다. 이것도 맛을 최대한 끌어올리기 위한 노력이다. 빻을 때는 아주 천천히 돌린다. 최대한 열이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한 방법이다. 생두나 생고기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된다. 로스팅하거나 불판에 구우면 짜릿한 향이 코끝을 점령한다.


요즘 꽤 그럴싸한 소바 집들이 서울에 늘고 있다. 의외로 제대로 된 맛을 내기가 쉽지 않은 게 소바다. 소바는 일본 음식으로 알려져 있으나 백제시대 때 우리가 메밀을 전파했다는 둥, 에도시대 초기에 조선의 원진스님이 소바제조법을 전파했다는 둥, 한반도 전파설도 회자되고 있다. 여러 설들이 있지만 정설은 없다고 한다. 물론 한반도 전파설이 대세는 아니다.


최근에 인기를 끄는 서울의 소바집들은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소바 마니아들 사이에서 늘 회자되는 방배동의 ‘스바루’와 다른 역사를 쓴다. 스바루의 주인 강영철씨는 본래 요리사가 아니다.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그가 일본주재원으로 도쿄에 갔다가 제조법을 배웠다. 강씨처럼 본래 음식과 관련 없던 이가 문 열거나 ‘오무라안’처럼 아예 일본인이 운영하는 곳들이 주였다.

 

<'스바루'의 소바>

 

 

 

<'오무라안'의 소바>

 

 

 

최근 추세는 쓰지초, 핫토리영양전문학교 같은 일본 요리학교를 졸업하고 귀국한 30대 젊은 친구들이 나섰다는 것. 서초동의 ‘미나미’의 오너 셰프 남창수씨는 쓰치초 출신이다. 그는 34살이다. 니하치소바를 추구한다. 직접 반죽하고 삶는다. 흥건한 소바 국물에 청어 한마리가 들어간 니신소바가 인기메뉴다. 서울의 소바집에서는 좀처럼 맛보기 힘들다.

 

 

 

 

강남구 신사동의 ‘미미면가’의 장승우씨는 핫토리영양전문학교에서 공부했다. 33살의 젊은이다. 그의 소바는 마니아들 입장에서는 ‘에이 그게 무슨 소바야’ 할 정도도 좀 색다르다. 밀가루와 메밀가루가 7대3으로 섞었다. 쓰유에 찍어먹는 자루소바는 없다. 그의 선택은 철저하게 서울의 20~30대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국물요리, 쫄깃한 식감, 화려한 토핑을 좋아할 거라고 판단했다. 그 결정은 그야말로 ‘먹혔다’.

 

<'미미면가'의 소바>

 

 

 

사람의 혀를 사로잡은 맛은 본래 모습과 달라고 생존한다. 거기다 시간의 무게까지 올라가면 전통이 된다. 일본도 변화하고 있다. 뜨거운 가케소바(국물소바) 대신 차가운 가케소바가 5년 전부터 도쿄에서 젊은 층을 중심으로 인기라고 한다. 쓰유에 자루소바를 찍어 먹을 때 간사이지방 사람들은 다 적셔서 먹는 편이고 간토 쪽 사람들은 끝만 찍어먹는 다는 얘기가 있다. 이것도 점점 경계가 흐릿해지고 있다.

 

<'호무랑'의 사라시니 소바>

 

 

 

예부터 소바는 행운을 부르는 음식이라 했다. 금은세공업자들이 메밀가루를 이용해 금가루를 모았다는 옛 얘기 때문이다. ‘해넘이소바’라 불리는 도시코시소바도 이런 배경에서 탄생했다. 가을이 문턱에 왔다. 뜨거운 여름날 맛보는 소바 여행과는 다른 출발이 기다리고 있다. 황홀한 메밀천국의 치명적인 매력에 빠질 요량이라면 ‘천천히 느리게’ 맛을 음미하기를 권한다. 메밀은 목 넘김하고 서서히 향이 피어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