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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슈바벤(Schwaben)

전통국수 슈페츨레(Spätzle)

 

 

 

겨울 분위기가 물러가고 봄이 시작될 무렵인 지난 3월 말엔 슈투트가르트(Stuttgart)를 방문할 일이 있었다. 슈투트가르트는 독일 남서부에 자리한 바덴-뷔르템베르크(Baden-Württemberg)주의 중심도시인데, 우리에게는 친숙한 이름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자동차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단박에 메르세데스 벤츠의 본사가 있는 도시임을 알 테지만, 특별한 관심을 따로 두지 않는다면 그저 독일의 한 도시에 지나지 않을 지 모른다. 독일에 오기 전에는 슈투트가르트란 이름은 내게도 친숙한 이름은 아니었다. 그저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기는 하지만, 정확히 독일의 어디에 있는 곳인지도 알지 못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우연히 독일에 와서 소개받은 사람들이 슈투트가르트와 그 주변에 사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인연들과 연을 맺다 보니 예상보다 슈투트가르트에 방문할 일이 종종 생겼다. 지난 번 방문은 벌써 다섯 번째였다.

 

전혀 관심이 없었지만 자꾸 보다 보면 정이 가는 것은 인지상정인 것일까? 가랑비에 옷 젖듯 그렇게 알아가게 된 슈투트가르트의 이번 방문에서는 새로운 경험을 했다. 독일을 대표하는 자동차 기업 및 기술 관련 기업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 내게는 최첨단 도시라는 이미지가 먼저 각인된 그 곳에서 가장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어찌 보면 고집스러운 느낌의 독일 국수 요리를 맛보게 된 일은 기대하지 않았던 일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통일의 한 모델로 독일을 주목하고 있지만, 지금처럼 한 나라의 이름 아래 통일 국가를 이룬 것은 독일의 전체 역사로 볼 때는 정말 짧은 기간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독일의 이런 저런 지역을 여행하다 보면, 겉으로 보기엔 다들 비슷비슷해 보여도 지역색이 존재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슈투트가르트는 옛 독일 남부 지역과 프랑스 알자스 지역, 스위스 북부, 오스트리아 서부까지 포함하고 있었던 슈바벤(Schwaben) 지역에 속해 있는 곳이다. 슈바벤 지역은 고대 게르만 민족 중 하나인 수에비족이 점령했던 지역이었는데, 이후 프랑크왕국 시대를 거쳐 슈바벤 공작령으로 발전한 이후 19세기 초까지 내부적으로 분열 및 동맹을 거듭해 왔다고 한다. 그래서 슈바벤은 독일의 경우 흑림지역 주변의 전통적인 남부 문화 혹은 그 지역 사람, 또는 그 지역의 언어를 지칭하는 단어로 사용되고 있다.

 

슈바벤 문화에서 독특한 부분은 바로 음식문화인데, 재미있는 건 다른 지역에는 없는 국수 제조 문화가 있었고 오늘날에도 그것이 쭉 이어져 오고 있는 점이다. 독일의 다른 지역 전통 요리들도 나름 개성이 있지만, 슈바벤 지역처럼 다양한 모양의 국수 요리가 존재하는 곳은 없다. 그 다양함이 이탈리아의 파스타만 한 것은 아니지만, 슈바벤 지역의 국수 슈페츨레는 손으로 직접 만들어내는 전통 국수라는 점에서 모양의 다양성이 무궁무진하다.

 

<슈투트가르트 슈퍼에서 판매되는 다양한 모양과 재료의 슈페츨레 제품들>

 

 

 

슈페츨레를 만들기 위해선 밀가루를 반죽한 다음 바로 뜨거운 물 위에 국수틀을 얹은 후, 그 틀로 면을 뽑아 삶거나, 나무판 위에 국수 반죽을 넓게 얹은 후 긁개 같은 것으로 국수를 가늘게 떠내어 바로 끓는 물에 넣어 익혀낸다. 국수 반죽에는 밀가루 외에 계란, 소금과 미지근한 물 정도만 사용된다. 요즘에는 건강을 생각해서 통밀이나 딩켈밀(Dinkel; 영어로는 스펠트밀이라고 한다)로도 제조된 건조국수나 생국수 형태를 슈퍼마켓에서 쉽게 볼 수 있다. 혹은 동물의 간을 섞어 반죽한 제품도 있다. 이러한 국수를 총체적으로 슈페츨레라고 부르지만, 모양이 동그랗고 짧아 마치 파스타의 뇨끼처럼 생긴 것은 크뇌플레(Knöpfle)라고 따로 부른다.

 

<슈투트가르트 내 한 수퍼의 조리도구 판매대에서 팔리고 있는 다양한 국수 틀>

 

 

 

슈페츨레 이름의 유래는 "참새(독일어로는 Spatz)"를 슈바벤 지역 방언으로 짧게 줄인 말이라고 한다. 언제부터 슈페츨레를 만들어 먹었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진 않았지만, 문헌에 그 이름이 등장한 것이 18세기이니 오랫동안 지역 전통 음식으로 소비되었던 것은 분명하다. 슈페츨레를 먹는 방법은 다양한 편인데, 가장 흔한 것은 그레이비 소스나 치즈를 얹어 그 자체만 먹는 것이다. 이것은 주로 슈바벤 지역의 가정요리로 먹는 경우이고, 일반적으로는 독일 슈바벤 지역의 전통음식 전문 레스토랑에 방문하면 쉽게 접할 수 있다. 다만, 메뉴판에는 슈페츨레를 단독으로 주문할 수 있는 경우는 흔치 않다. 애피타이저로 주문하는 스프 안에 넣어 제공되는 경우도 많고, 주 요리인 고기요리를 주문하면 감자요리 대신 곁들여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메인 요리에 곁들여 나오는 슈페츨레>

 

 

 

지인과의 반가운 만남 이후 함께 슈투트가르트 시립 도서관에 갔었던 우리는, 식사시간이 되어 자연스레 근처에 새로 생긴 쇼핑몰로 발걸음을 옮겼다. 지난 번 방문 때만 해도 중앙 기차역 재개발 여파로 도서관 주변이 모두 공사중이어서 없었던 쇼핑몰이었는데, 그 사이에 세 개 동에 이르는 큰 쇼핑 센터가 들어섰다는 것이 지인의 설명이었다.

 

<슈투트가르트 중앙역 근처에 생긴 쇼핑몰 Milaneo>

 

 

 

번쩍거리는 밝은 조명 아래의 건물로 들어서서 제일 높은 층에 자리잡고 있다는 푸드코트로 올라갔다. 독일에서는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큰 도시가 아니고서는 접하기 힘든 푸드코트인지라, 오랫만에 그런 장소에 가니 생소했다. 하지만 전반적인 시설은 한국의 그것과 큰 차이가 없었으므로 혼란스럽지는 않았다.

 

<쇼핑몰 내 푸드코트의 모습>

 

 

 

무엇을 먹는 것이 좋을까 생각하며 입점되어 있는 식당들을 쭉 둘러보는데, 독일 국수인 슈페츨레를 패스트푸드 시스템으로 판매하고 있는 코너가 눈에 들어왔다. 궁금한 마음에 지인에게 물어보니, 슈바벤 전통 음식 전문 패스트푸드점이 생긴 것 같다며 맛을 보자고 권해준다. 주문 메뉴판에는 슈페츨레 외에도 지역 요리들이 몇 가지 더 있었지만, 우리는 두 가지의 다른 슈페츨레 요리를 주문해 보았다.

 

<슈페츨레 요리를 판매하고 있는 패스트푸드점 Tobi’s iss lecker>

 

 

 

패스트푸드 컨셉이라 그런지 모든 음식은 간단히 포장해 갈 수 있는 종이 상자에 담겨져 나왔다. 늘 독일 전통음식 하면, 천장이 높은 오래된 건물 안에 자리한 레스토랑에서 무거운 접시 위에 수북히 쌓여 나오는 요리라는 이미지가 있었는데 너무도 간편하게 제공되는 음식을 보니 독일 도시도 점점 빠르고 획일화되는 시스템 안에 맞추어져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잠시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우리가 주문한 음식 중 하나는 케제슈페츨레(Käsespätzle)이고, 다른 하나는 린젠슈페츨레(Linsen & Spätzle)라는 음식이었다. 케제슈페츨레는 따끈하게 익혀낸 슈페츨레 위에 치즈를 녹여 얹고, 그 위에 햄을 볶은 것과 파 다진 것을 올린 것이고, 린젠슈페츨레는 콩을 뭉근하게 끓여 만든 소스에 부어스트(Wurst; 소시지)와 슈페츨레를 함께 내어주는 음식이었다.

 

<케제슈페츨레 (Käsespätzle)>

 

<린젠슈페츨레(Linsen & Spätzle)>

 

 

 

조심스레 플라스틱 포크를 들어 각각의 음식을 맛보았다. 케제슈페츨레는 전반적으로 부드러운 맛이었는데, 그것은 슈페츨레 자체의 식감 때문에 더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슈페츨레는 우리가 알고 있는 국수라고 생각하기엔 큰 탄력이 없었다. 굳이 비교를 하자면 우리나라의 수제비 같은 느낌이었달까. 하지만 고소하면서 부드러운 면발은 치즈와 잘 어울렸다. 린젠슈페츨레는 우리에게는 “후랑크소세지”로 알려진 프랑크푸르터 뷔어스첸(Frankfruter Würstchen)이 같이 곁들여진 데다가 양이 꽤 많아서 가볍게 먹는다는 느낌은 오지 않았다. 콩을 뭉근히 끓여낸 린젠소스는 그레이비 소스 같은 진한 맛이었는데, 의외로 구수한 향이 감돌아 된장소스같다는 생각이 들어 맛을 보는 동안 괜시리 웃음이 나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조용한 기차 안에 앉아 있으니 옛 슈바벤 농부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식사 전에 들렀던 도서관에서 슈바벤 지역 관련 책을 뒤적이다 우연히 옛 사진모음집을 발견했는데, 1930년대 이후 슈바벤 지역 사람들의 모습이 찍혀 있었다. 오래 전, 힘들었던 우리네 농촌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 호기심이 들어 잠시 펼쳤던 사진집이었지만 쉬이 책을 덮기 어려웠다. 먹을 것 구하기 힘들어 열심히 땅을 일구어야만 했던 농부들의 표정과 많은 아이들을 데리고 살림을 이끌던 억척스러운 느낌의 슈바벤 여자들의 모습이 머리 속에 겹쳐졌다. 그 사진집 속에는 슈페츨레를 만들어 먹던 모습은 없었다. 하지만 나는 상상할 수 있었다. 아마도 힘든 하루 뒤 없는 재료라도 모아 가족들을 먹이기 위해 오래 전부터 슈바벤 할머니, 또는 어머니들이 간단히 만들던 국수가 슈페츨레가 아닐까. 뜨거운 물 위에서 크게 치대는 것도 없이 흐물거리는 반죽을 틀 위에 내리거나 긁어내 삶아 올렸던 국수는 검소하게 하루 하루를 살아갔던 이 지역의 사람들 모습이 담겨 있는 음식이 아닐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