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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odle talk

[푸드칼럼] 신선이 먹는 음식 다르긴 다르다. 장제스의 고향 설두산과 비경 신선거

신선이 먹는 음식 다르긴 다르다,

장제스의 고향 설두산과 비경 신선거

 

 

 

20세기 중국은 쑨원(孙文)이 열었으며 장제스(蒋介石)와 마오쩌둥(毛泽东)의 한판 승부가 대륙을 휘몰아친 무대였다. 절강 닝보(宁波)에서 서남쪽으로 1시간 정도 달리면 장제스의 고향 시커우(溪口)가 있다. 내전에서 패배한 후 대만으로 도주한 장제스의 고향 마을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보존상태가 좋다.

마을로 들어서면 지방특산인 토란이 거리마다 즐비하다. 너무 커서 밋밋할 것 같지만 담백한 고구마 맛이 난다. 한자도 토란(土卵), 똑같아도 발음은 투란(tǔluǎn)이라 친근하다. 영양가 높고 변비에 탁월한 효과가 있으며 약재로도 쓰는 토란, 시커우의 별미이니 반드시 요리가 있을 듯 하다. 시커우에서 가장 흔한 과자인 천층병(千层饼)도 눈길을 끄는데 토란가루를 원료로 만든 반죽을 화덕에 넣고 구워낸 과자다. 겹겹이 쌓여 있는 과자라는 뜻인데 먹을수록 바삭바삭하면서 벗겨지는 느낌으로 토란 향기가 입안 가득 맴돈다. 
 

▲<토란(왼쪽), 천층병 가게(오른쪽 위), 천층병 굽는 화덕(오른쪽 아래)>

 

 

 

중화민국 총통 장제스 고향 곳곳은 1920년대 분위기를 잘 연출하고 있다. 치파오를 입고 붓글씨를 쓰는 여학생의 얼굴 생김새가 다른 지방 아가씨 모습과 사뭇 다르다. 쌍꺼풀 없는 눈매에 갸름한 볼과 곱게 딴 머리까지 단아하다. 신랑 신부의 차림새도 있고 종이 우산을 사뿐히 돌리며 웃는 미소도 쉽게 보기 어려운 관광상품이다. 게다가 장제스와 닮은 사람이 많은 것도 재미난 구경이다.

▲<장제스 고향 마을, 중화민국 시대를 재현한 다양한 사람들 모습>

 

 

 

장제스가 살던 집 이름, 풍호방(丰镐房)을 들어서면 벽마다 용장 관우의 목각 모습이 반갑게 맞아준다. 집 이름은 주나라 수도였던 풍읍(丰邑)의 호경(镐京)에서 땄으니 포부만큼은 청년시절부터 꽤 드높았던 듯싶다. 조상 신위가 모셔져 있는 보본당(报本堂) 품격도 제법 훌륭하지만 지붕에 만들어놓은 쌍용창주(双龙抢珠)와 삼성고조(三星高照)는 보는 순간 정말 감동이었다.

 

장제스가 살던 집 이름, 풍호방(丰镐房)을 들어서면 벽마다 용장 관우의 목각 모습이 반갑게 맞아준다. 집 이름은 주나라 수도였던 풍읍(丰邑)의 호경(镐京)에서 땄으니 포부만큼은 청년시절부터 꽤 드높았던 듯싶다. 조상 신위가 모셔져 있는 보본당(报本堂) 품격도 제법 훌륭하지만 지붕에 만들어놓은 쌍용창주(双龙抢珠)와 삼성고조(三星高照)는 보는 순간 정말 감동이었다.

 

<풍호방 관우(왼쪽 위), 송씨3자매(왼쪽 아래), 용과 삼성신(오른쪽 위), 풍호방 벽(오른쪽 아래)>

 

 

 

장제스의 부인 쑹메이링(宋美龄)과 두 언니 쑹칭링(宋庆龄), 쑹아이링(宋蔼龄) 조각상이 마을 하천을 등지고 서 있다. 영화로도 제작될 정도로 유명했던 세 자매의 조각상이다. 삼민주의자 쑨원의 부인이 둘째 언니, 공자의 75대손으로 상인이자 중화민국 정부의 재정을 도맡았던 쿵샹시(孔祥熙)의 부인이 된 첫째 언니까지, 영화는 각각 돈, 국가, 명예를 사랑했던 여인의 대명사로 20세기 최고의 화제를 낳았다.

저녁 무렵이 되자 허기도 달래야 하며 시커우의 요리는 어떤지 궁금해진다. 여러 요리가 상차림으로 나올 때마다 이름을 물어보기 시작했다. 두부나 어묵처럼 생겼으나 맛은 도무지 분간이 안될 정도로 담백한 쟁반이 등장했다. ‘위터우’라고 해서 우선 떠오르는 게 ‘어두(鱼头)’였다. 그럼 이곳 특유의 어묵인가? 생각했는데 묻고 또 물어서 얻은 결론은 바로 ‘우두(芋头)’였다.

▲<토란 요리(왼쪽 위), 시커우에서 먹은 해산물(나머지)>

 

 

 

발음이 같고 성조가 다른 말이었으니 아무리 중국어 배우러 온 동네를 돌아다닌다 해도 외국인이면 착각하기 쉽다. 토란을 이 지방 사람들은 우두, 즉 위터우라고 했던 것이다. 이 세상 어떤 요리보다 담백하다고 생각하면 딱 맞다. 쌍미우두(双味芋头), 중국답게 점잖은 ‘과장’이 재미있지 않는가?

남방 사람들은 강에서 잡은 물고기를 말려서 먹는 습성이 있다. 내장을 깨끗하게 비운 후 소금을 넣고 오래 말린 생선을 이곳 사람들은 오랑상(乌狼鲞)이라 부른다. 말린 죽순을 넣고 함께 끓인 탕은 순간오랑상(笋干乌狼鲞)이다. 생선과 죽순이 함께 삶아져 꼬들꼬들 씹는 맛과 구수한 국물이 어우러진다. 바다와 가까운 지방이라 해산물도 골고루이고 먹을만하다. 소금물에 살짝 절여서 짭짤하면서도 한 입에 쏙 들어가는 염수대하(盐水对虾), 마늘 양념이 안성맞춤인 가리비 산용선패(蒜蓉扇贝)를 비롯 가리비와 꼬막, 꽃게까지.

▲<설두산 입구(왼쪽 위), 중국5대 불교성지 안내(왼쪽 아래), 미륵보살(오른쪽)>

 

 

 

시커우 뒷산은 중국 5대 불교성지 설두사(雪窦寺)가 자리잡고 있다. 우리나라 사원 천왕전에 가면 보게 되는 배불뚝이 미륵보살의 성지다. 높이 33미터의 미륵보살이 웅장한 자태, 배 불룩하게 앉은 모습이 멀리서도 보인다. 설두사의 창건은 위진남북조(魏晋南北朝) 시대까지 역사가 거슬러올라가나 당나라 시대에 본격적으로 건축됐으며, 1932년 민국 시대에 이르러 중국 5대 명산의 불교사찰로 꼽히게 된다. 오등회원(五灯会元) 편액이 걸린 작은 사당에는 문수보살의 성지 오대산, 관음보살의 성지 보타산, 보현보살의 성지 아미산, 지장보살의 성지 구화산과 함께 나란히 자리잡고 있다.

설두사가 불교성지라면 신선거(神仙居)는 도교적인 냄새가 물씬 풍긴다. 시커우에서 2시간 더 남쪽으로 내려가면 화산의 영향으로 생긴 유문암(流纹岩)이 빚은 아름다운 풍광을 만날 수 있다. 게다가 산장에서 먹는 요리는 중국 어느 곳보다 훨씬 맛 있다.

▲<신선거 케이블카와 운무 가득한 비경 모습>

 

 

물에 잠깐 데치고 된장과 버무린 요리 방법이 ‘장폭(酱爆)’이고 뒤에 가지(茄子)를 붙이면 요리 이름이 된다. 재료도 좋아야 하지만 요리에 따라 맛과 향이 다를 수 밖에 없는데 참 고급스럽다. 간단한 점심으로 먹기에 가지에 밥 하나도 만족할 정도다. 이 지방 6월 한철 과일인 산딸기 양메이(杨梅)로 담근 술로 입가심하면 더할 나위도 없다. 자주색 열매를 맺는데 그냥 먹어도 수분도 많고 달콤하다.

 

수녀봉(羞女峰)과 수미인(睡美人)처럼 약간 낯 뜨거운 바위도 있고 장군암 별명의 기암을 보며 차분히 30여분을 걸어가면 정상 가까이 가는 케이블카를 탄다. 계곡에는 폭포도 많고 운무와 절경이 겹쳐 <천룡팔부> 무협드라마는 물론이고 많은 영화 드라마 촬영지였다. 서기 1007년 송나라 진종이 산을 둘러본 후 ‘신선지택(神仙之宅)’이라 감탄한 후 신선이 머무는 곳이라는 환상적인 산이 됐다.

 

전망대마다 웅장한 기암괴석에게 이름을 짓고 위치를 그려놓았다. 운무 속으로 밀려들어가고 싶은 마음으로 섬찟하다. 운무를 헤치고 오르는 케이블카도 한 폭의 그림처럼 솟아오르고 휘날리는 나뭇가지 너머에도 잔잔한 자태가 연이어 펼쳐진다. 결의봉(结义峰), 몽필생화(梦笔生花), 몽환곡(梦幻谷), 천하양창(天下粮仓)...이름도 꿈결에서나 봄직하다. 가끔 나타나는 연우정(烟雨亭)이나 청도정(听涛亭)은 비경을 바다처럼 연결한 감성조차 그럴 듯하다.

▲<신선거 남천교와 케이블카>

 

 

 

신선거 최고의 절경은 남천교(南天桥). 협곡 50여 미터를 서로 연결한 다리는 멀리서 봐도, 다리에 서도 아찔하다. 얼마나 가파른지 재보긴 어렵지만 아래쪽으로 케이블카가 오가는 모습만 비춰보면 높은 다리라는 느낌이 살아난다. 고소공포증이 심하다면 쉽게 건너기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절경에 취해 공포를 한방에 날려버릴 수도 있지 않을까?


신선거 소개책자는 기(奇), 험(险), 청(清), 유(幽)를 자랑하고 있다. 그보다 더 휘황찬란한 낱말을 넣어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절경이다. 게다가 산에 오르면 중국 산마다 흔하게 출몰하는 사원도 하나 없다. 오로지 산 하나만 천연 상태로 보존돼 있으니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주 좋아할만한 명산이 아닐까 싶다. 2~3시간이면 온 산을 꿈꾸듯 둘러볼 수 있다.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와 자그마한 폭포가 이어지는 하산 길도 한적하고 운치가 좋다.


멋진 산행 후 먹는 저녁은 또 어떤 맛일까. 역시 재료와 요리 방법이 같더라도 손맛은 따로 있듯이 신선거 산장의 솜씨는 정말 최고다. 손쉬운 재료로 쉽게 만들지만 입맛에 딱 맞으니 신기할 따름이다. 갈비를 탕수육처럼 만든 당초배골(糖醋排骨)은 고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 손을 잘 대지 않는데 후회할 뻔했다. 시큼하고 털털한 배추나 삶은 고추, 볶은 버섯과 양배추도 평범한 듯 비범하다.


수세미 외에 고추를 함께 넣고 끓인 사과탕(丝瓜汤)도 별미고 다진 고기와 녹두 묵의 조화인 육말분피(肉末粉皮)까지 한 상에 올려놓으니 금상첨화가 따로 없다.

▲<신선거 산장의 담백한 요리들>

 

 

 

산장이 점점 어두워지면서 신선도 어디론가 떠나가듯 신선거의 운치도 사라지겠지만 눈과 마음에 담은 경치는 꿈에라도 다시 나타나 흥분을 이어갈 것이다. 몽환적인 공간에 구름이 청아한 하늘을 휘저으며 화사한 그림물감을 칠하겠지. 그렇게 꿈 속에라도 다시 가고픈 곳, 신선이 되고 싶은 마음이 여행이 주는 행복이 아닐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