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색찬란한 색깔의 자매반(姊妹饭) 축제
중국 여행에서 음력은 꽤 중요하다. 우리도 그렇지만 토속적인 맛을 보려면 전통 축제만큼 안성맞춤도 없다. 더구나 오지의 소수민족 문화를 보는 여행은 축제가 그 시작이다. 음력 3월 15일이면 묘족의 자매반(姊妹饭) 축제가 타이장(台江) 일대에서 성대하게 펼쳐진다. 1년에 단 한 번인 축제를 보기 위해 외국인이나 사진작가까지 모두 몰려든다.
2016년에도 어김없이 4월 21일(음력 3월 15일) 현 광장에서 축제가 시작된다. 화려한 옷차림과 은빛 장식으로 치장한 아가씨나 아주머니, 심지어 어린이까지 다 나온다. 자매라는 말이 바로 형제자매 중 여자 언니나 여동생을 함께 아우르는 말이니 산뜻하고 푸릇푸릇한 냄새가 요동치는 분위기다. 현 일대의 마을마다 모든 사람이 다 나서는 축제 한마당이다. 남자들은 대나무로 만든 루셩(芦笙) 악기를 불며 장단을 맞춰준다.
묘족 아가씨의 은 장식은 정말 예술이다. 은 목걸이를 주렁주렁 달고 머리에는 꽃과 물고기, 말 장식이 섞인 은 모자를 쓰고 그 위에는 봉황 몇 마리가 층층이 어우러진 모습이다. 빗과 팔찌도 머리나 팔에 두른다. 용, 호랑이, 양이나 물고기, 나비나 곤충을 수놓은 옷을 입는다. 갖가지 동식물 자수가 붉고 파란 문양의 주름치마는 걸을 때마다 살랑거린다.
<타이장 광장(좌측 상), 루셩 부는 사람(좌측 중), 묘족 주름치마(좌측 하), 성장차림 묘족 아가씨(우측)>
묘족마다 약간씩 모양이 다르기도 하다. 어떤 마을은 전쟁 신, 치우(蚩尤)를 연상하는 뿔 모양을 머리에 꽂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옷 칼라도 홍색, 청색, 흑색, 갈색 등으로 다양하다. 묘족 인구가 천만 명이 넘는데 기원전부터 북방 중원에서 남하한 민족이라 깊은 오지를 터전으로 살아오면서 약간씩 차이가 난다.
자수(刺绣)와 납염(蜡染)으로 스스로 옷을 만들어 입는 묘족은 재료를 산에서 모두 구한다. 그래서인지 색감이 선명하고 아름답다. 축제에 입고 나온 옷을 성장(盛装)이라 부른다. 설날에도 입지만 화려한 옷차림에 어울리게 결혼할 때 차림새다. 자신에게 딱 어울리게 준비하고, 치장도 옷과 맞춤이라 남에게 절대 빌려주지 않는다.
서로 제각각 색다른 묘족의 모습을 다 보자니 꽤 시간이 걸린다. 간단하게 요기하자면 역시 쌀국수 미센(米线)이 좋다. 계란에 파를 넣은 지단총화빙(鸡蛋葱花饼)도 함께 먹으면 충분히 배부르다.
<묘족 성장(좌측 상), 춤 추는 묘족 아가씨(우측 상), 지당총화빙(좌측 하), 쌀국수(우측 하)>
수만 명이 광장을 꽉 채우고 있다. 북소리에 맞춰 진군하는 모습처럼 보인다. 광장 앞에 거대한 조각상이 서 있는데 바로 태강 출신의 묘족 영웅 장수미(张秀眉)다. 청나라 말기 태평천국 운동이 발발하자 그 틈을 활용해 민란이 일어났다. 이때 분연히 떨쳐 일어난 민족영웅이자 반청영웅이다. 지그시 광장을 바라보는 장수미의 모습을 보니 그때의 함성이 들리는 듯하다.
여운을 뒤로하고 자매반의 발원지인 라오툰(老屯)으로 향했다. 거리는 30km이지만 산을 3번 넘고, 길도 험해 2시간이나 걸린다. 마을로 들어서니 재미난 대회가 시작된다. 잉어와 오리를 논에 넣고 팀을 나누어 잡는 행사다. 심판의 신호에 맞춰 여기저기서 서로 방해하려고 흙을 던지고 넘어뜨리느라 난장판이다. 주변 구경꾼에게도 흙이 날아 다니는데도 모두 즐기고 있다.
색깔이 아롱다롱 가지각색인 자매반을 드디어 찾았다. 축제를 즐기느라 미처 생각하지 못했는데 마을 한 켠에서 예쁜 밥을 파는 아주머니를 만났다. 방금 만들었다는데 색깔이 정말 예쁘다. 한 그릇에 3위안(약550원)이다. 자매반은 찹쌀로 만드는데 오색찬란한 색은 어떻게 내는 것일까?
<묘족영웅 장수미(좌측 상), 오리 잉어 잡이(좌측 하, 우측 상), 라오툰의 자매반(우측 하)>
밥의 붉은색을 내는 식물은 센차이(苋菜)라고 한다. 바로 산이나 들에 흔한 비름이다. 노란색을 연출하는 식물은 미멍화(密蒙花)인데 눈을 맑게 해주고 단 맛이 많다. 하늘색 같은 녹색은 보차이(菠菜), 바로 시금치가 주인공이다. 검은색은 어떻게 만들까 궁금증이 더한다. 우판예(乌饭叶)란다. ‘까마귀밥 만드는 잎’? 우리나라에도 있는 모새나무를 말한다. 이렇게 하면 그야말로 오색의 찹쌀밥을 무대에 올릴 수 있다. 생각해보니 재료가 모두 우리나라에도 있으니 만들어 먹어도 좋을 듯하다. 찹쌀밥을 찔 때 5등분 해서 각 색깔 별로 만들어놓은 물을 나누어 붓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찹쌀로만 하지 않고 흰쌀을 1/10 정도 함께 섞어야 한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으니 이 오색의 밥으로 김밥을 만들어 팔면 잘 팔리지 않을까?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는데 곳곳에 투계가 보인다. 묘족은 닭이나 개, 소와 더불어 살면서 서로 싸움도 시킨다. 병아리가 대문 문지방에 올라서서 눈싸움을 벌인다. 집집마다 축제에 참가하기 위해 성장으로 갈아입고 치장을 하느라 바쁘다. 마을 큰 길로 나서니 왁자지껄하다. 아주머니들이 아이들에게 무언가 먹이고 있는데 군침이 돈다. 비로 미더우푸(米豆腐)라는 쌀로 만든 두부다.
한 그릇 5위안(약900원)이다. 좌판에 앉아서 미끄러운 두부를 건져 먹었다. 쌀과 함께 만들어선지 마치 묵처럼 담백하다. 문제는 귀주 계림 일대에서 즐겨 먹는 야릇한 냄새의 어성초(鱼腥草)다. 중국인은 저얼건(折耳根)이라고도 부르는데 꽤 비릿하고 진한 향 때문에 먹기가 쉽지 않다. 이뇨작용이 탁월하고 해독과 해열에 자주 쓰는 약재이기도 하다. 중국 남방에 흔한 재료로 요리에도 많이 쓰인다. 나는 이미 친해져서 그런지 국수 같은 독특한 ‘쌀 두부’를 국물까지 비웠다.
<거리판매 자매반(좌측 상), 투계(좌측 하), 병아리들(우측 상), 묘족 일가족(우측 중), 쌀 두부(우측 하)>
라오툰에서 북쪽으로 10km 떨어진 스둥(施洞) 마을도 자매반 축제의 발원지이다. 500줄이 넘는 노래, <자매제가(姊妹节歌)>를 만들어 전하고 있는데 그 전설이 재미있다. 언니와 여동생 사이에서 태어난 남자아이 금단(金丹)과 여자아이 아교(阿姣)는 죽마고우로 자랐다. 둘은 서로 사랑하게 됐다. 묘족은 딸을 외척 집안에 시집 보내는 환낭두(还娘头)의 전통이 있다. 아교는 외삼촌 집안으로 시집가기 싫어했고 금단도 다른 아가씨랑 결혼할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둘은 몰래 산속에서 만났고 그때마다 아교는 아무도 모르게 대바구니에 밥을 지어 와서 나누어 먹었다. 두 사람이 몰래 한 사랑은 사람들의 감동을 이끌어 냈고 결국 둘은 부부가 됐다. 묘족 말로 ‘애인을 위해 몰래 지은 밥’을 ‘창판(藏饭)’이라 부르고, 이 말뜻이 바뀌어 ‘자매반’의 유래가 됐다고 한다. ‘동방의 발렌타인 데이(东方情人节)’라고 알려진 자매반 축제는 이런 예쁜 전설이 한몫을 하고 있다.
<스둥 마을의 자매반 축제 환영행사(좌측 상, 중), 사람들에게 대접하는 자매반(좌측 하, 우측)>
또 다른 전설도 있다. 수십 명의 아름다운 아가씨가 이 마을에 가장 먼저 들어와 밭을 일구고 파종을 해 풍년을 이루었다. 이듬해 봄 만물이 샘솟는 계절이 되자 아가씨들도 사랑을 갈구하게 됐다. 그래서 온 사방 촌락에 사는 젊은이들을 초청했다. 소식을 들은 청년들이 앞다투어 찾아왔고 서로 눈이 맞아 함께 살게 됐다고 한다. 이때 아가씨들이 오색의 밥과 술을 대접했다.
매년 음력 3월 15일이 되면 자매반 축제가 열리는 전통이 생긴 것이다. 지금도 그때처럼 마을 입구에 술과 밥을 차리고 환영행사를 진행한다. 술을 따라 주고 밥을 싸준다. 이 마을은 노란색과 검은색으로만 찹쌀밥을 지었다. 은빛 화사한 옷과 치장의 묘족 아가씨가 건네주니 더 맛있다.
<자매반 축제의 마을입구(좌측 상), 취재 열기(좌측 하), 행사참여한 묘족 아가씨(우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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