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의 검문관과 제갈량 마을 음식 여행
삼국지에 나오는 검문관은 천혜의 협곡이 만든 군사 요새다. 당나라 시인 이백은 <촉도난(蜀道难)>에서 ‘길이 험해 하늘조차 보기 힘들고 나무가 거꾸로 자라는 절벽’이라 ‘한 사람이 지켜도 만 사람이 통과하기 어렵다.’고 과장한 곳이다. 검문관의 지형만큼 유명한 음식이 있는데 바로 두부다. ‘검문관에 들러 맛보지 않으면 억울하다’는 속설이 전해질 정도다. 두부 요리가 백 가지가 넘어 맛 못지않게 보는 즐거움도 있다.
두부로 볶고 튀기고 끓이고 찌고 지지고 무치고 푹 삶기도 해 별의별 요리가 상상할 수 없이 많다. 한 상에 108위안이며 모두 7가지 요리가 나오는 두부연(豆腐宴)을 꼭 맛보고 가야 하는데. 혼자라 아쉽다. 그러나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국수와도 당연히 잘 어울리니 말이다. 면발도 마음에 들지만 역시 두부 맛이 명불허전이다. 매운 듯 보이는 국물도 두부의 부드러운 맛과 어울려 담백하다.
<검문관 두부 한 상(왼쪽), 두부 국수(오른쪽 위), 검문관 입구거리(오른쪽 아래)>
검문관 두부를 맛본 김에 짐을 식당에 맡기고 천하웅관(天下雄关)의 진면모를 찾아간다. 등산로를 따라 오르자마자 삼국지 촉나라의 대장군 강유(姜维)의 의관총이 나타난다. 위나라가 대군을 이끌고 오자 관문을 굳게 지켰다. 천제협(天梯峡)은 생각보다 가파르고 깊다. 잔도를 따라 내려가고 다리를 건너 다시 오르는데 정말 가파른 각도가 장난이 아니다. 단단하게 잘 동여맨 나무계단을 따라 협곡을 넘는다. 힘들게 1시간 30분 걸었는데 반대쪽에서 1분 만에 휙 도르래로 검문관의 협곡을 날아오는 사람도 있다. 북송의 재상 왕안석(王安石)도 ‘검각천제만리한(剑阁天梯万里寒)’이라며 오싹한 전율을 느꼈건만 50위안으로 쏜살같이 건너오다니 조금 허무하다. 물론 심장이 약한 사람에게는 그림의 떡이기도 하다.
<천제협 잔도(왼쪽 위), 협곡 도르래(왼쪽 가운데), 마마애 유리잔도(왼쪽 아래), 강유 장군(오른쪽)>
선녀교(仙女桥)와 망운관도(望云观涛)를 따라 오르면 마마애(妈妈崖)에 이른다. 검문관 절벽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다. 약 1억년 전 백악기에 형성된 거대한 암석 벼랑인데 그 이름이 재미있다. 사람들이 험준한 모습에 놀라 모두 ‘엄마야’라고 소리친다니 과장과 엄살이 익살스러워 살짝 웃음이 나온다. 벼랑 끝에 유리잔도를 만들어 비명을 지르도록 했으나 넓은 전망에 가슴이 뻥 뚫리긴 해도 주위는 그저 조용하기만 하다.
비명은 뜻밖에도 다른 곳에서 지르게 된다. 하산하는 길에 새만 지나다닐 수 있다는 조도(鸟道)이다. 이백이 ‘황학도 날아서 넘어가기 힘들고 원숭이도 감히 통과를 고민한다’는 엄살이 바로 이곳이 아닐까 싶다. 여기저기 기겁할 듯한 비명이나 빨리 돌아가자는 외침이 좁은 길을 엉금엉금 기어가는 사람에게 더 두렵게 느껴지게 한다. 앞장 선 사람들이 너무 조심스럽고 허둥대는 바람에 더 조마조마하다.
좁은 협곡 사이에 우뚝 서 있는 관루(关楼) 앞에 이르렀다. ‘일당만’ 군사 요새답게 협곡이 좁게 보인다. 지금 형태는 2008년 대지진 때 상당 부분 유실돼 중건했지만 20m에 이르는 웅장한 모습은 삼국지 소설 속 이미지로 굳건히 자리 잡고 있다. 누각을 배경으로 기념 사진 찍기에 모두가 바쁘다. 봉긋한 관문 밖으로 펼쳐진 암반에는 푸른 빛깔로 영생하는 나무숲이 인상적이다.
<조도(왼쪽 위), 검문관(왼쪽 가운데), 관문의 협곡(왼쪽 아래),
북벌행군도(오른쪽 위), 검각패방(오른쪽 아래)>
강유 장군의 수관(守关) 조각상과 제갈량의 북벌행군도(北伐行军图)는 검문관의 위용을 더욱 드러내고 있다. 삼국지 영웅의 행적이 군데군데 새겨진 길을 지나 검각패방(剑阁牌坊) 앞에 이른다. 5시간에 걸친 검문관 일주가 모두 끝난다. 삼국지 영웅 중 단연 우리에게 인상적인 인물은 제갈량이다. 화려한 외모와 지략, 도술까지 끌어들이는 캐릭터는 소설 주인공으로 손색없다.
북벌을 추구한 제갈량이 묻힌 곳, 동북쪽으로 180㎞ 떨어진 면현(勉县)으로 향한다. 제갈량은 훨씬 북쪽인 섬서 성 오장원(五丈原)에서 사망했지만, 자신의 바람대로 정군산(定军山) 자락에 묻혔다. 촉나라 오호장군 황충(黄忠)이 하후연(夏侯淵)을 참수했던 정군산은 중국 최초의 영화 제목이기도 하다.
사진관을 운영하던 임경태(任庆泰)가 일본에서 서양 필름을 배워 귀국한 후 <정군산>을 영화로 제작, 1905년 베이징 대관원에서 상영했다. 당시 큰 인기를 끌던 정군산 배경의 '경극'을 영화로 만든 것이고, 황충을 연기한 경극배우 담흠배(谭鑫培)는 인기스타가 되었다. 그만큼 정군산은 뜻 깊은 유적지다.
정작 정군산에 도착하니 전쟁터의 흔적도 없으며 유명세만큼 볼만한 게 없어서 아쉽다. 작은 호수 옆에 흑마 몇 마리 세워놓았고 산장 마당에는 제갈량 동상 하나만 허접스럽다. 잘 생긴 토종 닭이 한가로이 돌아다닌다. 산 벌레 먹고 자유롭게 자란 닭이나 백숙으로 먹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침이 넘어갈 뿐 인기척도 없다. 군사 훈련장이 있고 황충 장군상이 보이지 않았다면 산길을 넘어 정군산 찾아온 보람이 없을 뻔 했다.
<정군산 산장의 제갈량(왼쪽 위), 흑마(왼쪽 가운데), 토종닭(왼쪽 아래), 황충 장군(오른쪽)>
제갈량 무덤은 45,000㎡ 규모로 아홉 개의 얕은 산자락으로 둘러싸인 천연의 공원에 있다. 천 년 묵은 측백나무 수십 그루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고, 그 사이로 붉게 색칠된 벽이 이어져 있어 조화로운 대비가 사뭇 포근한 느낌을 준다. 전각 안으로 들어서면 관우와 장비의 아들인 관흥과 장포가 양쪽에서 갑옷 차림으로 지키고 있고 제갈량 바로 옆에는 시동 둘이 나란히 서 있다. 위풍당당한 모습과 경건한 분위기가 함께 드러난다. 봉긋한 무덤은 잘 다듬어져 있고 주위도 정갈하다. 무덤 주위를 지키듯 서 있는 돌 사자들이 주인을 지키는 역할을 단단히 하는 모습이다.
자동차로 20여 분 거리에는 제갈량 사당도 있다. 생전에 무향후(武乡侯)의 작위를 받은 제갈량의 사당인 무후사(武侯祠)는 유명한 유적지만도 거의 10곳에 이를 정도로 많다. 아무래도 사후 29년 만에 황제의 칙서로 세워진 정군산 무후사, 무덤과 함께 하는 사당의 면모가 아니겠는가?
<제갈량 무덤의 대전(왼쪽 위), 무후사 편액(왼쪽 아래),
제갈량 무덤(오른쪽 위), 제갈고진(오른쪽 아래)>
깃털 달린 부채를 들고 청색 실을 넣은 관모를 쓰고 있는 모습을 우선관건(羽扇纶巾)이라 한다. 참모답게 말쑥하고 기품이 높다는 말인데 제갈량 모습이 딱 그렇다. 수 많은 편액 중에 단연 충관운소(忠贯云霄)가 눈에 띤다. 충성심이 하늘 끝에 닿았다는 뜻이니 제갈량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황제 친필로는 최고의 찬사가 아니겠는가? 1803년 청나라 가경제의 바람이 담긴 글귀다.
사당 밖은 2016년 3월 새롭게 단장해 문을 연 문화거리, 제갈고진(诸葛古镇)이다. 삼국지 문화의 풍성한 내용으로 가득하고 먹거리와 풍물로 소란스럽다. 제갈량이 지휘하던 마차가 마을 입구에서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다. 승상 저택과 함께 제갈초려, 융중패방, 적벽대전, 팔괘광장 등 삼국지를 그대로 펼쳐놓은 듯하다. 도랑이 흐르는 거리는 크고 작은 가게마다 온갖 지방특산품이 즐비하다.
<제갈고진 입구(왼쪽 위), 후문(왼쪽 아래), 승상부(오른쪽 위),
융중패방(오른쪽 가운데), 적벽대전(오른쪽 아래)>
토란과 비슷한 구약나무 줄기로 만든 국수인 제갈 구약면(蒟蒻面)을 파는 가게도 있다. 이 나무를 재료로 만든 쫄깃한 점성을 내는 곤약이 다이어트 효과가 있다고 하는데 정말 국수 재료도 가지가지다. 생강 엿을 길게 늘리는 시범을 보이기도 한다. 발효 차의 일종인 복차(茯茶)를 즉석에서 시음할 수도 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보이차(普洱茶)와 비슷한 제조방법이니 맛과 효능도 비슷하다. 잔치에 즐겨 먹는 장수면(长寿面)이라 불리는 긴 면발, 사람들은 오로지 한 가닥만으로 먹는다고 일근면(一根面)이라 부른다. 한 타래 실을 빼듯 줄줄이 이어지는 면발을 솥에 넣는 모습이 예술이다. 면은 공기 속에서 휘감기듯 날다가 뜨거운 육수 속으로 가라앉는다.
<제갈고진 거리(왼쪽 위), 구약면(왼쪽 가운데), 생강엿(왼쪽 아래),
일근면(오른쪽 위), 복차(오른쪽 아래)>
제갈량의 호를 빌린 와룡(卧龙) 브랜드의 술도 있다. 직접 수수를 찌고 발효해 증류하는 공정을 보여주며 판매하고 있다. 시음도 가능해 사람들의 입맛을 만족시키느라 바쁘고 술집에 향기가 진동한다. 가격이 서로 다른 술 항아리마다 저마다의 맛과 향이 있겠지만 구분하긴 어려워 보인다.
날이 저물면 고풍스러운 제갈량 마을은 포장마차 꼬치구이가 제 격이다. 이것저것 고르기에는 재료도 많다. 양고기와 삼겹살, 감자까지 삼박자 구성으로 먹으며 삼국지 문화를 떠올린다. 목이 마르면 맥주를 따르고 꼬치를 빼내며 제갈량의 인생도 펼쳐본다. 인생에도 맛이란 게 있다면 역사소설은 꽤 좋은 조리법이 아닐까? 뭐든지 꽂아 굽는 솜씨는 여행객만이 인정해 주는 낭만인지 모른다.
<와룡 술 누룩(왼쪽 위), 꼬치구이 가게(왼쪽 아래), 술 가게(오른쪽 위), 꼬치구이(오른쪽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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