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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odle talk

[푸드칼럼] 문정훈 교수의 ‘좋은 음식을 먹자’ 시리즈 ④ 행복한 거위와 좋은 푸아그라

문정훈 교수의 ‘좋은 음식을 먹자’ 시리즈

④ 행복한 거위와 좋은 푸아그라

 

 

 

<푸아그라 요리>

 


푸아그라는 송로버섯, 철갑상어알과 더불어 세계 3대 진미로 알려져 있다. 푸아그라는 거위 간이다. 푸아그라는 거위의 간을 가공한 것이 아니라, 생간 그대로를 푸아그라라고 하고, 우리는 이를 그대로 먹는다. 그냥 먹어도 좋고, 살짝 팬에 구워 먹어도 좋다. 입에 넣자마자 사르르 녹아버린다.

 


그런데 푸아그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 먹는 사람에게 죄책감을 느끼게 한다. 첫 번째는 '이렇게 비싼 것을 막 먹어도 되나?'라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이렇게 맛있는 걸 막 먹어도 되나?'라는 것, 마지막은 '이렇게 잔인하게 생산된 걸 먹어도 되나?'라는 죄책감이다. 푸아그라는 비싸고, 맛있으며, 그리고 잔인한 음식이다.

 


푸아그라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거위의 위에 강제로 철제 호스를 끼워 넣고, 거기에다가 끊임없이 사료를 밀어 넣어야 한다. 게다가 암컷 거위가 생산하는 푸아그라는 맛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암컷은 병아리 시절에 살처분된다. 좁은 케이지에서 강제로 사료를 먹으면 간에 지방이 쌓이며 붓기 시작한다. 일정 이상의 지방이 쌓이면 간에 화학적 변이가 오며 풍미가 극대화 되는데 그것이 바로 푸아그라이다. 그래서 거위의 간이 정상보다 10배가량 커지면 그 때 도축하게 된다.

 


이런 잔인한 사육 방법을 가바쥬(Gavage)라고 하는데, 이 기술은 무려 기원전 2500년에 개발된 것으로 고대 이집트인들이 고안해 냈다. 가금류에 강제로 먹이를 먹이면 간이 급속도로 부풀면서 화학적 변이로 독특한 풍미가 생긴다는 것을 발견했고, 이 가바쥬 방법은 이집트 고대 벽화에도 그림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이 푸아그라 생산 기술은 이집트에서 그리스와 로마를 거쳐 유럽 본토로 전달된다. 미식의 나라 프랑스는 이를 가장 적극적으로 받아 들였고, 현재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푸아그라의 75%는 프랑스산이다.

 


각국의 많은 미식가들은 푸아그라를 사랑하며 비싼 돈을 주고서 푸아그라를 식재료로 한 요리를 사먹지만, 영국, 독일, 이태리를 비롯한 다수 유럽 국가들은 이 가바쥬 기술을 적용한 푸아그라 사육을 그 잔인성 때문에 금지하고 있다. 이 잔인한 가바쥬 기법은 2500년 간 푸아그라를 생산해 내기 위해 별다른 변화 없이 꾸준히 사용되어 왔고, 푸아그라가 많은 환경론자들, 동물복지론자들로부터 비난을 받게 된 주된 원인이 바로 이 가바쥬 방법이다.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전 세계의 모든 푸아그라 생산 업체, 농장에서는 이런 잔인한 방식으로 푸아그라를 생산해낸다. 하지만 딱 한 곳만은 예외이다. 바로 내가 방문하고자 하였던 스페인의 평범한 농부, 에두아르도 소사씨의 농장이다.

 


푸아그라란 거위를 가바쥬 방식으로 사육하여 얻는 음식이라는 인식이 2500년 동안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 들여졌을 때, '그렇게 하지 않고도 생산할 수 있다.'라는 것을 보여준 농부가 바로 소사씨다. 실은, 이 사실을 스페인의 깡시골의 한 촌부가 언론에 나와서 선언한 것이 아니라, 뉴욕의 스타 셰프인 댄 바버(Dan Barber)가 2008년 TED에서 자신이 소사씨의 농장에 방문했던 경험을 이야기 하면서 세상에 비로소 알려지게 된 사실이다. 소사씨와 그 가족들은 오래전부터 선조들로부터 배운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푸아그라를 생산해 왔던 것일 뿐이다. 댄 바버 셰프의 식당, ‘블루 힐’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소사씨의 푸아그라를 먹으면서 대중들에게 소사씨의 푸아그라는 더욱 유명해졌다.

 


내가 소사씨의 농장과 푸아그라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때, 나는 이 농장을 직접 방문해서 어떻게 거위들을 사육하는 지 내 눈으로 꼭 확인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이 맛있는 푸아그라를 먹을 때마다 왠지 마음 한켠이 불편했기 때문이다. 죄책감이다. 가바쥬를 하지 않는 농장이라면 훨씬 가볍고 행복한 마음으로 푸아그라를 먹을 수 있겠다. 그 후 그리 오래지 않아 나는 스페인행 비행기에 올랐다.

 


소사씨의 농장은 스페인의 가장 오지라고 할 수 있는 엑스트라마두라 주의 한 귀퉁이에 있다.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주의 주도인 세비야에서 차를 빌려 두 시간여를 몰아 소사씨의 농장으로 향했다. 소사씨 농장에 도달하기 위해선 나중엔 덜컹이는 비포장도로를 지나야 했고, 얼핏 보면 황무지 같은 소사씨의 농장에 도착하여 그와 인사를 나누었다. 소사씨는 검은 머리에 검은 눈을 가진, 그리고 덩치가 나만큼 큰 중년의 아저씨였다. 그의 두껍고 거친 손을 잡고 악수를 한 후 우리는 바로 소사씨 농장의 주위를 함께 둘러보았다. 나는 가바쥬를 대체한 혁신적 기술이 무엇인지를 물었고, 그는 그의 집 앞에 펼쳐진 드넓은 대지를 손으로 가리키며 ‘거위들의 호텔’이라고 웃으며 이야기했다. 그가 가진 기술은 이것이 전부일 뿐이라고 했다.

 


소사씨의 농장은 말그대로 깡시골에 있는 작은 농장이었다. 소사씨의 농장은 가족농이고 선조때부터 대대로 농사를 지어온 농장이다. 그런데 농장을 둘러보니, 농장이라고 해봤자 집주위에 자신이 직접 사료를 주며 기르는 방목 거위들 몇 마리(식용이 아닌 관상용이라고 했다.)가 노니는 연못, 그리고 거위들을 완전 방목하여 야생의 상태로 기르는, 더 정확히는 거위들이 자생하는, 넓디넓은 목초지로 구성되어 있다. 농장이라기보다는 황무지에 덩그러니 집 한 채가 있는 형상이다. 소사씨의 농장에선 거위 이외의 그 어떤 다른 가축이나 작물을 기르지 않는다. 완전 방목 거위들은 그냥 산에 있는 풀, 도토리, 야생 곡식들을 뜯어 먹고 자라고 있다. 소사씨의 차별화된 사육 기술은 고작 ‘완전 방목’이라는 것이었다.

 

 

 

<거위가 노니는 연못>

 

 

<'거위들의 호텔‘ 이라고 불리우는 자연 목초지>

 

 

<완전 방목 거위들>

 


소사씨는 오히려 거위에게 사료를 주면 푸아그라가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원래 거위란 무릇 겨울이 되면 북쪽으로 날아갔다가 여름쯤 다시 이 지역으로 되돌아오는데, 북으로 날아가는 장기간의 여행 전, 거위들은 여행 준비를 위해 자발적으로 집중적인 음식 섭취를 통해 영양소를 간에다가 저장한다. 그때 자연스럽게 간이 커지며 푸아그라가 만들어 지는데, 이 때 거위를 잡아서 도축하면 바로 가바쥬를 하지 않은 자연의 푸아그라를 얻을 수 있다. 억지로 고통스럽게 사료를 먹일 필요가 없다. 4대째 내려오는 거위 농사에서 그의 가족들이 이 사실을 알아냈고 그것을 지금의 에두아르도 소사씨가 상업화하였다.

 


소사씨의 농장에서 완전 방목으로 살고 있는 거위는 1000마리 정도이고 이중 절반을 겨울에 북으로 날아가기 직전에 그물을 던져 잡아서 도축한다. 나머지 500마리는 북으로 날아갔다가 친구들과 또 새로운 가족들과 함께 다시 1000여 마리가 되어 소사씨의 농장으로 돌아온다. 놀랍게도 수천 킬로미터를 다시 날아 바로 그 자리, ‘거위들의 호텔’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그리고 겨울이 되면 또 떠난다. 이 싸이클이 계속 돌면서 소사씨 농장의 생태계는 지속적으로 유지된다.

 


소사씨의 농사 방식은 넓은 대지를 필요로 하고, 또 많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비용이 많이 든다. 안그래도 비싼 푸아그라의 가격이 더 올라가게 된다. 비슷한 품질의 푸아그라에 비해 거의 두 배의 가격을 지불해야 소사씨의 행복한 거위가 만들어 낸 푸아그라를 구매할 수 있다.

 


게다가 생태계 유지를 위해 소사씨가 생산하는 푸아그라의 수량은 1년에 딱 1000병이다. 한 마리의 간에서 180g짜리 두 개의 제품이 나온다. 500마리를 매년 도축하니 1000병이 나오게 된다. 이렇게 비싸고, 구하기 힘듦에도 불구하고 죄책감을 줄이고자 하는 구매자들은 기꺼이 두 배의 가격을 지불하고 소사씨의 푸아그라를 구매한다. 소사씨의 푸아그라를 구매하려면 심지어는 1년 전에 10%의 선입금을 납부해야 한다.

 


2015년 6월 20일 내가 소사씨의 농장을 방문 한 날은 이 마을에 첫 한국인이 온 날이었고, 소사씨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파티를 열었다. 많은 동네 사람들이 함께 모여 음식과 술을 나누어 마셨다. 나에게는 큰 행운이었다. 왜냐면 이 파티에서 나는 소사씨 농장에서 생산되는 행복한 거위와 좋은 푸아그라를 맘껏 먹을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언제나 마음 한켠에서 나를 누르고 있던 죄책감을 덜며 푸아그라를 즐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소사씨네 농장의 푸아그라는 좋은 음식이다. 다만 하나 안타까운 건 아직 국내에서는 소사씨의 푸아그라를 구할 수가 없다는 점이다.  

 

 

 

<소사씨(체크무늬 옷) 동네 사람들과 함께한 파티>

 

 

<소사씨의 농장에서 먹은 푸아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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