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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odle talk

[푸드칼럼] 문정훈 교수의 ‘좋은 음식을 먹자’ 시리즈 ⑤ 로컬푸드, 어떻게 먹고, 어떻게 발전시켜야 하나?

문정훈 교수의 ‘좋은 음식을 먹자’ 시리즈

⑤ 로컬푸드, 어떻게 먹고, 어떻게 발전시켜야 하나?

 

 

 

<로컬푸드>

 

 


로컬푸드란 무엇일까?

 

로컬푸드는 그 지역에서 나는 농산물을 그 지역에서 소비하자는 목적으로 시작된 운동이다. 농산물의 이동을 줄이고 신선한 농산물을 그 지역에서 소비하면, 소비자들의 식생활도 좋아지고 그 지역 농업인의 권익까지 보장할 수 있으며, 또한 환경도 보호하자는 의도가 담겨 있다. 1980년대 미국에서 처음 시작된 로컬푸드 운동은 전 세계로 퍼져 나갔고, 국내에서도 많은 소비자 단체가 로컬푸드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그러면 농산물이 어디까지 이동하면 로컬푸드이고 어느 이상 이동하면 로컬푸드가 아닐까? 어떤 이는 200마일 (약 320km) 이내로 이동하고 소비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또 어떤 이는 400마일 (약 640km)이내 이어야 로컬푸드라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이게 몇 km이내이어야 하는 지가 중요할까? 서울을 중심으로 눈대중으로 대략 400마일을 재어보니 서쪽으론 중국 산동반도, 북으론 중국 만주, 남쪽으로는 제주도는 물론이고 일본 국토의 일부까지 들어온다. 이렇다 보니 땅덩이가 작은 우리나라에서는 50km이내의 농산물만을 로컬푸드라고 하자고 주장하기도 한다. 과연 이 거리 안에서만 움직여야만 좋은 농산물이라 말할 수 있을까?

 

 

 

로컬푸드의 가치는 무엇일까: 신토불이?

 

우리는 로컬푸드의 가치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로컬푸드를 소비하는 것이 왜 가치가 있는 일일까? 어떤 이는 신토불이를 이야기하며 로컬푸드를 먹어야 건강해진다고 이야기한다. 또 어떤 이는 환경을 보호하는 중요한 발걸음이라고 한다. 로컬푸드의 진정한 가치가 신토불이와 환경보호에 있을까?

 


로컬푸드의 가치를 신토불이에서 찾는 이들은, 우리 지역의 땅에서 나는 농산물을 우리 지역에서 먹어야 몸이 건강해 진다는 논리를 강변한다. 이 논리는 나아가서 우리 농산물을 먹어야 몸에 좋고, 수입 농산물을 먹으면 몸에 나쁘다는 민족주의에 기반한 선전도구로 활용되며 자국 농산물 마케팅의 재료로 활용된다. 물론 로컬푸드가 몸에 더 좋다는 과학적 근거는 그 어디에도 없다. 새빨간 거짓말이다.

 


외국인이 한국 농산물을 먹는다고 병에 걸려 죽지 않는 것처럼, 신토불이는 미신과 같다. 식품 안전의 측면에서 생각해보면, 보관 및 운송 기술이 충분히 발달된 현대 사회에서 얼마나 가까운 데에서 생산되었냐 보다는, 얼마나 적절한 온도, 빛, 산소 등의 환경에서 유통되었는지가 식품 안전에 있어서 더 중요하다. 요컨대 음식에 있어서 ‘건강함’의 핵심은 깨끗하고 안전하게 관리한 식재료로 구성한 균형 잡힌 식단과 섭취량에 있는 것이지, 어느 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먹느냐는 핵심적인 요소가 아니다.

 

 

 

로컬푸드의 가치는 무엇일까: 탄소배출 감소?

 

많은 이들이 로컬푸드의 또 다른 가치를 탄소배출 감소에서 찾고 있다. 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지역에서 소비하니 운송거리가 줄어들고, 그 만큼 자동차 배기가스 등이 줄어들어 환경오염을 막는데 도움이 된다는 점이다. 과학적으로 근거가 있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 효과는 미미하고, 비현실적이다. 교통수단의 발달로 이미 수많은 사람들과 수많은 재화들이 도로를 통해, 기차선로를 통해, 배를 통해, 또 하늘을 통해 움직이고 있는 상황에서, 단지 농산물만 뺀다고 한들 얼마나 탄소배출량이 줄어들까? 미미하다. 그것보다는 넘쳐나는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는 것이 환경을 보존하는 데에 훨씬 더 중요한 부분일 것이다.

 


또한 로컬푸드 운동에서 주장하는 운송의 거리를 줄일 것을 강조하면 강조할수록, 오히려 우리의 식탁은 덜 풍성해지고 재미없어진다. 제주도에서 수확한 감귤을 강원도로 가져와서 강원도 사람들이 먹는 것은 환경을 파괴하는 일이니 강원도에서 감귤을 먹지 않는 것이 로컬푸드의 가치라고 이야기한다면 강원도 사람들은 얼마나 불행해 질까? 아삭함이 최고인 강원도의 고랭지 배추를 부산사람들이 먹는 것은 환경을 파괴하는 일이니, 부산사람들은 고랭지 배추를 먹지 않는 편이 더 낫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현대 사회에서 로컬푸드 운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아닐 것이다.

 


저 멀리 스페인에서부터 대륙과 대양을 건너 온 이베리코 돼지로 만든 감칠맛이 가득한 하몽은 멀리 이동해 왔으므로 한국에서 먹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로컬푸드의 진정한 가치를 오히려 파괴하는 일일 것이다. 하몽이야 말로 가장 로컬푸드 정신에 부합하는 좋은 먹거리인데 말이다. 또한 역으로 로컬푸드를 이야기하며 우리 농산물을 먹자고 주장하면서, 동시에 우리 농산물을 수출할 방안을 모색하는 것은 이율배반적이지 않은가? 미래의 로컬푸드 운동은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새로운 관점에서 로컬푸드를 바라보고, 로컬푸드 운동의 가치를 만들어 가야 한다.

 

 

 

새로운 관점에서의 로컬푸드: 다양성의 기반

 

미래 로컬푸드 운동의 방향은 획일화에 대한 저항의 운동으로 가야하며, 지역성을 바탕으로 한 다양함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지역의 지리적 특성에 기인하여 생산된 농산물이 지역의 역사적 전통과 문화와 만나 독특한 식문화를 형성하는 방향이어야 하고, 이를 통해 문화적 다양성과 즐거움이라는 가치를 창출해 내야 한다. 지역의 음식을 지역의 사람들만 소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서는 안된다.

 


좁은 의미에서 우리는 로컬푸드를 농산물에 국한시켜 왔으나, 이제는 그것을 음식의 범위까지 확장시켜 나가는 것이 더 발전적인 접근이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나라의 ‘향토음식’이라는 개념을 로컬푸드가 끌어안고 나아가야 한다. 미래의 로컬푸드 운동은 농산물 유통과 소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이를 활용한 식문화적 행동으로 발전해 나아갈 때 더 큰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그 문화를 여러 사람들이 향유할 수 있을 때 그 가치가 올라간다. 이런 관점에서의 로컬푸드는 우리의 식탁을 더욱 풍성하고 다양하게 만들고, 더욱 즐겁게 만들 것이다. 다양한 것은 즐거운 것이다.

 


고비, 두릅, 잔대, 단풍취, 모싯대, 기장, 수수. 이런 다양한 작물들은 오랜 기간 우리나라 각 지역에서 재배해온 작물이지만 이제는 사라지고 있는 작물들이다. 우리의 식탁이 글로벌한 음식들, 표준화된 음식들로 채워질수록 이런 다양한 식재료들은 우리 식탁에서 밀려나고 각 지역에서도 재배하지 않으려 한다. 미래의 로컬푸드 운동은 이런 식재료들이 지역의 역사, 전통, 문화와 만나 좋은 음식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하는 방향이면 좋겠다. 그래서 3월이면 서울에 사는 소비자들의 식탁에 순창의 두릅이 계속 올라오고, 뿐만 아니라 순창 지역의 방식으로 조리한 두릅 장아찌를 서울에 있는 좋은 식당에서 계속 사먹을 수 있는, 그런 방향으로 발전해 가면 좋겠다.

 

 

 

우리는 무엇을 먹어야 하나?

 

이런 새로운 로컬푸드 관점에서 좋은 음식을 소비하는 것은 어떤 것일까? 예컨대 아무런 문화적 바탕이 없는 술, 말그대로의 알콜을 마시는 것보다는 한국의 독특한 쌀문화가 녹아 있는 막걸리를 마시는 것이 아무래도 조금 더 나을 것이다. 이 다음이 더 중요하다. 지역적 특성, 즉 지역성이 녹아 있지 않은 – 영혼이 없는 – 막걸리를 마시는 것 보다는 지역 양조장에서 생산되는 지역의 식재료와 문화가 듬뿍 녹아 있는 막걸리를 마시는 것이 더 좋은 음식을 먹는 것이다. 이런 지역성의 강조가 없으면 다양성은 훼손된다. 지역성이 훼손된 막걸리는 그냥 공장 막걸리일 뿐이다. 하지만 막걸리에 지역성을 입히면 부산 금정산성 막걸리와 울산 복순도가 막걸리는 다른 가치를 지닌 다른 막걸리가 된다. 가격이 덜 중요해지고, 문화가 더 중요해지며, 내 취향에 맞는 막걸리를 찾아 마시게 되며, 다양한 막걸리를 먹어 보는 것이 즐거움이 된다. 이런 소비는 다양성을 추구하는 소비이고, 지역 특유의 문화를 유지하는 데 기여하는 소비이기 때문에 좋은 소비이다. 마찬가지로 획일화된 방식으로 생산된 고추장을 먹는 것보다 지역의 농가, 공장들이 지역의 문화를 바탕으로 만든 고추장을 먹는 것이 문화적 다양성의 측면에서 중요하며 그 농가들이 앞으로도 꾸준히 그런 고추장을 생산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좋은 소비이다.

 


수입식품을 먹는 건 어떻게 보아야 할까? 예컨대 스페인에서 생산된 베요타 등급의 하몽을 먹었다고 해서 수입식품을 먹는 매국행동(?)을 했다고 자책할 이유는 전혀 없다. 베요타 등급의 하몽은 이베리코 반도 지역의 전통 품종인 이베리코 돼지를 전통의 방식으로 방목하여 2년간 키우고 전통의 방식으로 2년간 염장한 생햄으로, 그 지역의 전통 식문화가 녹아 있는 식재료이다. 우리가 이를 먹는 것은 로컬푸드의 중요함을 인정하는 일이고, 그들로 하여금 그들의 식문화를 유지하도록 지원하는 일이며, 문화적 다양성, 나아가서는 종의 다양성을 유지하는데 도움을 주는 좋은 소비이다. 이런 다양성이 존재하지 않으면 아마 지구상의 다양한 품종의 돼지들은 다 사라지고 공장식으로 생산되는, 사료 효율성이 좋은 백색 교잡돈만 남게 될 것이다. 종의 다양성이 훼손된다.

 


종의 다양성이 훼손되면 뜻하지 않은 곳에서 위기가 찾아온다. 1800년대 중반 유럽을 강타했던 감자 마름병에 유독 아일랜드가 극심한 타격을 입고 전체 인구의 1/4을 잃었던 이유는 종의 다양성의 훼손 때문이었다. 아일랜드인들은 당시 수익성이 좋은 양모 생산을 위해 경작지를 줄이고 양을 주로 키웠으며, 그들의 주식을 다양한 곡류에서 감자로 바꾸었다. 게다가 그들은 큰 고민없이 생산성이 좋은 한 종류의 감자만을 주로 심었는데, 그 감자가 감자 마름병에 유독 취약했던 것이다. 당시 아일랜드의 인구는 800만명이었는데 감자 대기근으로 200만명이 사망하거나 아일랜드를 떠나야만 했고, 현재까지도 당시의 인구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다양성은 중요하다. 미래의 로컬푸드 운동은 문화의 다양성, 종의 다양성을 추구하는 방향이어야 한다.

 

 

 

앞으로 무엇을 할까?

 

미래의 로컬푸드는 지역의 식재료를 활용하여, 지역의 문화와 지식이 녹아 있는 레시피로 음식을 만들고 조리하는 식문화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그래서 다양성의 기반을 만드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그 가치를 소비자들이 인정하고, 각 지역의 로컬푸드를 마트와 식당에서 500원 더 내고 구매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가능해지려면 생산자나 제조자가 그 가치를 소비자에게 제대로 전달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모든 식재료와 음식에 지역의 스토리가 녹아 있고, 소비자들도 내가 먹는 식재료와 음식들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알고 먹는 그런 식문화가 형성되면 좋겠다. 소비자들도 더 좋아지고, 각 지역의 농촌 경제도 좋아지는 일이다.

 


사실 이런 것까지 다 고려하려니 귀찮고 머리가 아프다. 그냥 맛있는 음식만 먹으면 안될까? 안된다. 절제 없는 칼로리의 섭취가 비만을 만든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를 피하기 위해 우리는 식품 포장에 찍혀 있는 식품성분표를 일일이 확인한다. 50년전에 우리가 이런 귀찮은 일을 했을까? 그런데 지금은 누구나 식품성분표를 보며 고민을 한다. 식품성분을 생각하지 않고 무절제하게 먹으면 내 몸의 건강을 파괴하게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지역성과 문화, 다양성을 고려하지 않고 음식을 먹는다면, 이는 결국은 우리의 식탁을 파괴하고, 농업을 파괴하며, 인류의 미래를 서서히 파괴하는 행동이 된다는 것을 이제는 깨달아야 한다. 로컬푸드 관련하여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하지만 식품성분표와 같은 지역성분표(?)가 등장해 주길 기대하며, 오늘 저녁에는 지역성과 문화가 녹아 있는 식재료를 구입하여 식탁을 준비해보자. 더 즐겁고 풍성한 내 밥상을 위하여. 우리의 미래를 위하여.

 

 

 

<지역성과 문화가 녹아 있는 로컬푸드를 먹자>

 

 

 

 

※ 본 블로그에 게시한 글은 개인적인 것으로 농심의 입장, 전략 또는 의견을 나타내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