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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odle talk

[푸드칼럼] 차마고도의 흔적 호도협과 샹그릴라, 소금 밭 염정

돌도 씹을 사내들의 피땀 어린 길에서 만난 국수

차마고도의 흔적 호도협과 샹그릴라, 소금 밭 염정




차마고도! 꿈에서라도 가고픈 마음이 든다. 방송 다큐멘터리가 우리에게 남겨준 고마운 설렘이다. 험준한 산과 협곡을 넘어가는 말(马), 말과 하나의 운명으로 묶인 마방(马帮)의 고단한 행로. 말과 차의 교환을 위해 생겨난 머나먼 길, 차마고도는 생명의 근원이 살아 숨을 쉬고 있다. 해발 4천m가 넘는 고원에 사는 티베트 사람은 야크의 젖으로 만든 버터만이 영양분이다. 여기에 풍부한 비타민을 공급하는 푸얼차(普洱茶)와 소금이 합류한다. 차마고도가 기나긴 세월을 견뎌온 이유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거센 문명의 풍파는 고난의 땅 차마고도를 그냥 두지 않았다. 쥐와 새만 다니고 양의 창자와도 같다는 차마고도는 사라졌다. 그래도 약간의 흔적을 찾으려면 호도협(虎跳峡)을 가야 한다. 호랑이도 뛰어넘을 정도로 좁은 협곡이라는 과장의 땅이다. 산 아래에서 현지 차량을 타고 가파른 산 도로를 따라 30여 분 달리면 자그마한 객잔(客栈)이 나타난다. 여기서부터 말을 타고 오르는 길이 있다. 보통 28번 굽이굽이 돌고 돌아 오른다고 28밴드라 불린다. 말에게 미안하지만 운동 부족의 몸으로 마방처럼 가파른 길을 오르기는 쉽지 않다. 




<호도협 입구(왼 위), 28밴드 승마 출발(왼 아래), 28밴드 오르기(오른 위), 28밴드 고개(오른 아래)>



터덜터덜 오르는 말에게 운명을 맡기고 주변 풍경을 바라보며 여유를 부려도 좋다. 말고삐만 꽉 쥔다면 안전하다. 산 아래로 흐르는 금사강(金沙江) 물줄기는 멀리서 봐도 무시무시하게 쏜살같이 흐른다. 1시간 정도 말과 좀 친해졌나 싶으면 정상 부근 고개에 이른다. 몇 발자국 더 오르면 세상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멋진 설산이 코 앞에 나타난다. 5,596m 옥룡설산은 웅장하면서도 고운 선을 지닌 아름다운 산이다. 만년설이 정상에서 의연하게 자리잡고 있다면 절경이 따로 없다. 그 옛날 마방에게는 고단한 광경이었겠지만 말이다. 




<차마객잔 가는 길(왼 위), 차마객잔 오골계 백숙(오른 위), 차마객잔과 옥룡설산(아래)>



바람보다 먼저 흘러가려는지 설산을 수놓는 구름을 따라 1시간 반을 걸어가면 이름조차 포근한 차마객잔에 이른다. 전망대에 서니 내내 따라오던 구름도 다 지나갔건만 처음 본 모습처럼 하얗고 파란 산수화가 또 다시 펼쳐진다. 어느 한 곳만 시선을 두기 어렵다. 무엇이 그리 정화할 마음이 많은지, 보고 또 볼수록 씻어도 씻어내도 또 쌓이는 갈등은 문명이 박아놓은 응어리란 말인가? 햇살은 눈도 녹일 듯 따뜻하다. 숙소 앞 베란다에 나와 배낭에 넣어온 책이라도 꺼내 들면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자꾸만 향내를 풍기며 유혹하는 바람을 따라 먼 산으로 시선을 옮기지만 않는다면 몇 시간이라도 독서삼매경에 빠질 수 있다. 



한 예능 프로그램도 차마객잔을 찾았는데 강호동과 그 일당은 온갖 너스레를 떨었다. 고즈넉한 객잔의 저녁은 오골계 백숙과 더불어 오순도순 정겨운 시간이 흘러간다. 몇 년 전 이곳을 찾았을 때 담근 술을 함께 마신 주인에게 ‘차마주?’ 하자 ‘그게 좋겠다’고 웃으며 주거니 받거니 했던 추억도 되살아난다. 여느 반짝임보다 훨씬 강렬한 별빛도 차마고도의 심심한 밤을 잘 풀어주고 있다. 



아침이 밝으면 백숙으로 만든 죽을 푸짐하게 먹고 다시 마방처럼 걸어간다. 양떼도 길을 막고 말도 능선을 타고 오르는 길이다. 차마고도를 ‘달린’ 말은 얼마만큼의 무게를 짊어진 것일까? 발효차인 푸얼차로 만든 둥근 원판처럼 생긴 병차(饼茶)를 실었다. 3개월 이상 티베트 라싸(拉萨)까지 짊어지고 가야 하는 말, 마방과 합의한 약속이 60kg이다. 한 쪽에 30kg, 병차 7개를 한 묶음으로 포장하는데 12묶음 84개가 ‘노동’의 시간이자 공간이다. 30kg을 84개로 나누면 정답이다. 차마고도가 만든 푸얼차 병차 하나의 무게는 357g이다. 푸얼차 포장지에 적힌 용량은 피와 땀이자 지혜와 소통이 만든 역사의 표준이다. 




<차마고도 호도협 양떼(왼 위), 금사강 호도협(오른 위), 차마고도에서 만난 말(아래)>



완만하게 오르내리긴 해도 대체로 평탄한 길이다. 능선을 타고 이어진 길이니 언젠가는 다시 내려가야 할 것이다. 가도가도 끝없을 듯 하지만 곳곳에 하산 길이 도사리고 있다. 오르기만 한다면 어찌 말과 사람 모두 길을 만들 수 있었겠는가? 호도협의 광풍처럼 쏟아지는 물살을 바라보고 북쪽으로 떠난다. 



2시간 차를 타고 가면 ‘이상향’ 샹그릴라(香格里拉)에 도착한다. 티베트의 말과 윈난의 차, 둘의 교환 가치가 만든 길이 차마고도다. 티베트와 윈난의 문화가 잘 어우러진 지방이다. 샹그릴라는 티베트 말로 ‘마음에 품은 해와 달’이라는 뜻이다. 1933년 영국의 소설가가 쓴 <잃어버린 지평선>에 등장하는 이상향을 중국 정부는 바로 이곳에 냅다 명명했다. 발음하기도 좋은 샹그릴라는 누구든 가고 싶어하는 동경의 대상이다. 소설 속 이상향이 되기에 좋은 역사도 지니고 있다. 티베트와 윈난의 각 왕국이 각각 지배력을 행사했다. 그래서 해와 달을 의미하는 두 개의 성곽이 있었다. 샹그릴라 고성은 티베트가 세운 월광성(月光城)이다. 




<야크 샤브샤브(왼 위), 샹그릴라 채소 요리(오른 위), 야크 고기(왼 아래), 샹그릴라 고성(오른 아래)>



야크는 신성한 동물로 여기지만 최근에는 요리로 자주 등장한다. 한우만큼 부드럽고 쫄깃하다. 야크도 소이고 마오뉴(牦牛)라 불린다. 신선한 채소가 많지 않은 동네지만 도로가 좋아서 최근에는 몇 시간이면 풍부한 채소를 공급할 수 있다. 고기는 채소와 함께 먹어야 더 맛있으니 말이다. 



샹그릴라에는 소포탈라궁이라 불리는 송찬림(松赞林)이 있다. 하늘에 있는 신이 거처하는 지방을 말하는 ‘송찬’과 사원을 뜻하는 ‘림’이다. 대부분 ‘송찬림사’라고 읽지만 ‘역전 앞’이 되지 않으려면 ‘송찬림’이라 불러야 한다. 그렇게 주장한지 벌써 몇 년이 흘렀다. 어쩌면 티베트 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려는 마음이 ‘사’를 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사원 앞에 서면 웅장한 건물의 위세에 감탄한다. 수많은 문양과 조각 앞에서 다시 감동한다. 색감과 건축구조를 보면 이국적인 인상에 몸 둘 바를 모른다. 사원에 숨겨진 역사를 새기면 이 아름다운 사원에 푹 빠질 수밖에 없다. 달라이라마 5세 말기인 1681년 준공된 사원이다. 5층 높이의 본전은 1,600명을 수용한 만큼 거대하다. 수많은 건물이 서로 층층이 붙어있지만 지붕 대부분에는 하늘을 배경으로 사슴 한 쌍과 법륜이 자리잡고 있다. 부처가 득도하고 설법할 때 함께 자리를 지킨 사슴이다. 티베트 사람에게는 신앙 그 자체이자 고결한 동물로 숭상 받아 마땅하다. 




<송찬림의 전경(왼 위), 계단(오른 위), 문양(왼 아래), 사슴과 법륜(오른 아래)>



300km 북쪽에 천년 소금밭, 염정(盐井)이 있다. 바다의 융기 덕분에 흐르는 강물로 소금을 만드는 마을이다. 붉고 누런 색깔이 은은하게 조화를 이룬 산이 신비롭다. 마을을 둘러싸고 푸른 나무까지 한 화면에 잡히면 더더욱 우아한 그림이다. 비포장 산길은 한산하니 걷기에 딱 좋다. 한참을 걸어 염전에 이른다. 지하수를 끌어올려 물통을 나르는 과정을 다큐멘터리는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기대가 컸던 탓에 아쉽다. 며칠 전 내린 비로 염전은 조용하다. 염분이 없다면 소금 밭은 무용지물이리라. 그래도 천 년의 흔적은 마을 곳곳에 여전하다. 




<염전 가는 길(위), 염전에서 만난 말(아래 왼), 염전 마을(아래 가운데), 소금 밭(아래 오른)>



마을도 한가롭다. 아버지와 아이가 단둘이 있는 집으로 들어간다. 수줍게 얼굴을 피하지만 개구쟁이라는 걸 숨기기 어려워 보이는 아이를 바라보는 아버지의 소박한 미소는 친근하다. 깊은 주름과 다 드러난 이빨도 험준한 협곡과 세찬 강물과 함께 소금으로 살아가는 연륜만큼이나 인정도 듬뿍하다. 순박한 인상으로 눈짓을 하며 차를 마시라고 권유한다. 쑤여유차(酥油茶)다. 차마고도가 만든 ‘피’와 ‘땀’의 결실인 음료다. 



버터는 지방이 풍부하다. 그러나 분해가 느려 몸에 축적되면 건강에 이롭지 않다. 그래서 당나라 이후 비타민이 풍부한 푸얼차를 남쪽에서 공급받게 된 것이다. 게다가 안성맞춤처럼 윈난과 티베트 경계에 천연 소금이 아름다운 태양의 도움을 받아 넉넉하게 생산된다. 이 셋의 조화를 환상적이라고 해야 한다. 티베트 사람이 먹는 음료인 쑤여유차(酥油茶)가 탄생하기 때문이다. 큰 대나무 통에 쑤여우라 부르는 버터와 푸얼차, 소금을 넣고 휘저으면 고소하고 담백한 쑤여우차가 된다. 하루에도 수십 번 쑤여우차를 마시며 평생을 고원에서 살아가는 티베트 사람들에게 차마고도는 생명의 길이다. 




<쑤여우차(위), 염전에서 만난 아버지와 아들, 쑤여우차를 대접하는 모습(아래)>



염정 출구를 나와 두리번거리다가 메뉴가 신기해 보이는 식당을 찾았다. 말과 한 몸으로 동고동락하는 차마고도 조각상 앞 식당 간판에 자자멘(加加面)이란 글씨가 유독 궁금증을 유발했기 때문. 더할 ‘가’를 두 번이나 썼다면 뭔가 사연이 있을 법하다. 약간 노란 빛을 띠는 면발은 새삼스럽게 낯설지는 않다. 국물도 여느 다른 지방에 비해 특별해 보이지도 않는다. 닭 육수에 소고기 고명을 넣고 고작 파 송송 썰어 넣은 국수다. 담백해 보이는 국물을 살짝 마셔보니 예상과 딱 맞는다. 고기도 기름지지 않아서 좋고 파도 그냥 우리가 늘 먹는 파 맛이다. 양이 많지 않아 다소 불만이어도 맛은 참 좋다. 




<차마고도 조각상(왼 위), 자자멘 만드는 아주머니(오른 위), 자자멘(왼 아래), 돌 한 접시(오른 아래)>



그런데 아주머니가 접시에 가득 돌을 담아온다. 한 그릇 먹고 돌 하나를 내려놓으라고 한다. 돌과 국수, 돌을 씹어먹을 수는 없다. 알고 보니 한 그릇 먹을 때마다 돌 하나 내려놓고 먹을 만큼 계속 먹으라는 말이다. 돌을 하나 빼내고 다시 먹어도 되는 ‘자자멘’인 것이다. 게다가 함께 나온 돌 접시만큼 국수를 먹으면 딸을 내어준다는 전설도 있다. 최고기록이 147그릇이라고 한다. 사실이라면 아마도 기네스 기록에 올라야 할 듯하다. 물론 지금은 딸을 ‘경품’으로 내놓지 않으니 애써 여길 찾아올 필요는 없다. 자자멘의 유래를 알고 먹으라는 말이다. 



혹시 차마고도를 지났던 마방 중 누군가가 기록 보유자가 아닐까? 험준한 산과 협곡을 넘어 천리 길을 반복하는 사람의 허기라면 충분히 먹고도 남을 것이다. 그 정도로 먹성이 좋아야 자기 딸 호강시킬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 아닐까? 돌을 씹고도 남을 강인한 마방을 생각하며 한 그릇 더 먹는다. 차마고도의 국수는 그래서 더더욱 감칠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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