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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odle talk

[푸드칼럼] 정신우 셰프의 식생활의 발견② 커피

정신우 셰프의 

식생활의 발견②, '커피'






<커피원두와 커피>




1. 커피, 지구의 역사를 바꾸다


프랑스의 외교관이자 성직자였던 “샤를-모리스드 탈레랑–페르고르”(Charles-Maurice de Talleyrand-Périgord)는 능수능란한 외교술로 널리 이름을 알렸을 뿐만 아니라 천재 파티셰로 오늘날까지 전설적인 입지를 지닌 셰프 “앙토넹 카렘”(Antoine Carême)과 함께 전무후무한 음식외교를 펼친 인물이다. 그는 또한 커피 애호가이자 커피를 예찬하는 글귀를 남겼는데 그 아름다운 문장은 커피의 모습을 표현하기에 충분하다.


"Noir comme le diable, chaud comme l'enfer, pur comme un ange, doux comme l'amour."

(악마처럼 까맣고, 지옥처럼 뜨거우며, 천사처럼 순수하고, 사랑처럼 달콤하다.)


커피의 역사는 오늘날 지구의 역사를 바꾸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9세기 무렵 에디오피아에서 발견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 커피는 아라비아 반도로 넘어와 약으로 사용되었고, 이슬람 오스만 제국의 커피 하우스는 문학, 정치, 예술의 사교장이 되었다. 유럽으로 전파된 커피는 처음 “이교도의 물”로 치부되었지만 커피의 맛에 반한 교황 클레멘스 8세가 커피에 세례를 내려 커피의 교역이 은혜로운 일이 되면서 커피의 맹렬하고 강력한 풍미는 금새 유럽인들을 중독 시켰다. 


독일의 바흐(J.S Bach)는 커피 하우스에서 공연할 만한 “커피 칸타타”(Coffee Cantata, Schweigt stille, plaudert nicht, BWV 211)”라는 미니 오페라를 만들 정도로 애정이 많았고, 100편 가까운 작품으로 이루어진 연작 소설 모음 『인간희극』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소설가 오노레 드 발자크(Honore de Balzac)는 오랜 시간 펜팔을 통해 사랑에 빠졌던 유부녀 한스카 폴란드 백작부인이, 남편이 죽고 나면 후에 그와 결혼하겠다는 말에 결혼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하루에 15시간씩 쉬지 않고 글을 썼다고 한다. 물론 그의 집필의 후원자는 다름 아닌 “커피”(coffee) 였다. 


하지만 커피는 단순히 낭만적인 음료가 아니었다. 사람들을 모이게 하는 마법을 지닌 커피는 커피 하우스를 만들고 그 안에 모인 사람들로 하여금 새로운 혁명과 문화가 주도 되었다. 대표적인 것이 프랑스의 [르 프로코프] (1686년)이다. 랭보, 볼테르, 루소 등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커피를 마시며 평등과 자유를 위한 대화와 토론을 통해 새로운 개혁을 꿈꾸었고, 이 같은 부르주아 계급의 성장은 후일 “프랑스 혁명”에 까지 이르게 되었다. 미국은 뉴욕, 필라델피아, 보스턴 등지에 커피 하우스가 생겼다. 


1773년 영국 동인도 회사의 차(茶) 독점권 시행이 식민지 자치에 대한 지나친 간섭이라 여긴 보스턴의 반(反)영국 급진파들이 영국 상선의 차를 모두 바다에 버리면서 양국간 무력충돌의 도화선이 되었는데 후일 이 “보스턴 차” 사건을 미국 독립 혁명의 시발점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어찌 되었든 이 사건으로 인해 미국은 차를 멀리하고 커피를 국민음료로 마시는 나라로 성장하게 된 것이 사실이다. 한잔의 커피, 커피를 마시는 커피 하우스, 그리고 그 안에서 커피 향처럼 번져 나가는 새로운 문화들이 지구의 역사를 끊임없이 진화 시키고 있다는 사실은 커피의 역사를 통해서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2. 대한민국 커피를 발견하다


대한민국의 근대사 역시 커피의 역사와 함께한다. 우리나라의 커피 기록이 문서로 확인되는 것은 1884년이다. 당시 우리나라 지배층들은 커피를 가비차, 가배차(珂琲茶), 양탕(洋湯) 등 이라 불렀는데 조미통상수호조약 사절단 역할로 한국에 방문하게 된 천문학자 퍼시벌 로월(Percival Lowell)은 조선 고위 관리의 초대로 한강 주변의 별장에 가게 되었다가 “우리는 다시 누대위로 올라 당시 조선의 유행품이였던 커피를 마셨다”는 기록을 전했다. 아직 발견 되지는 않았지만 인천을 기점으로 이미 그 이전부터 커피의 교역이 있었을 것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1888년에 일본인 호리 리키타로가 완성한 인천의 [대불호텔]은 최조의 양식 음식을 판매한 레스토랑으로 유명하다. 그러하니 커피가 없었을리 없다는 것이 학계의 주장이다. 공식적으로는 외국 귀빈들에게 커피를 판매하기 시작한 곳이 바로 [손탁호텔]이였을 것이라 한다. 


앙투아넷 손탁(Antoinett Sontag(1854-1925) 여사는 타고난 장사꾼이었다. 왕실의 총애를 배후에 업고 거액의 내탕금(內帑金: 임금의 개인적인 돈)으로 유럽풍의 호텔을 지어 우리나라 최초의 영빈관 같은 역할을 하였다. 외국인들의 사교 장이었던 만큼 커피 판매는 틀림없이 있었을 것이라는 견해들이 지배적이다. 그 외에도 서울 시내에는 팔레 호텔(Hotel du Palais) 과 스테이션 호텔(Station Hotel) 이 영업 중이었다. 


명성왕후가 시해된 을미사변(乙未事變) 이후 일본군의 무자비한 공격에 신변의 위협을 느낀 고종과 왕세자가 1년간 러시아 공사관에 살게 된 것을 [아관파천](俄館播遷 1896년)이라 한다. 고종이 커피를 즐겨 마셨다는 사실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급변하는 조선의 쇠퇴와 몰락 속에서 커피는 과거와 단절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상징적인 음료로서의 이미지가 남아 있다. 


1876년 조일수호조규(강화도조약)를 체결한 후 일본인들과 함께 커피는 물밀듯이 들어 왔다. 일제 강점기 이후로 한국 최초의 다방은 1909년의 남대문역 다방이다. 1920년대는 일본인들이 만든 [다리야 기사텐], [금강산], [소구자오키나] 등등 일본 다방의 전성기였다. 기사텐은 다방의 일본식 표기로 1927년에야 비로서 한국인이 운영하는 최초의 다방 [카카듀]가 관훈동에 등장했다. 안타까운 것은 카카듀에 대한 어떤 자료나 사진도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다. 다만 안석영, 명동백작 이봉구와 같은 작가들의 문장을 통해 한국 근대사의 중요한 시작점이었던 카카듀와 커피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이 집은 이씨의 데카당 취미를 반영하여 촛불을 키고 인도풍잠의 마포 테블크로쓰에다 봉산탈춤의 가면을 걸어 놓고 간판대신에 붉은 칠한 박아지 세쪽을 달아놓아 한 때 서울거리에 이채를 띠었다. ‘숙영낭자전’, ‘춘희’를 감독한 미형의 이경손과 하와이에서 살다 왔다는 에그조틱한 여인과의 공동경영인 이 다방 ‘카카듀’는 그 무렵 젊은 사람들의 가슴을 타게 하는 곳이었다.”

– 이봉구, ‘한국 최초의 다방 카카듀에서 에리자까지’, 「세대」, 1964.


이후 [멕시코 다방], [낙양 파라] 등과 같은 곳은 문화, 영화, 음악인들의 아지트 노릇을 하였다. 60년대 이후 산업화의 바람이 불면서 커피장사가 돈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여주인이 얼굴 마담과 레지(다방종업원), 계산원, 주방장을 들이면서 다방은 대형화 되고 인스턴트 커피의 맛이 대중들에게 자리잡게 되었다. 1976년 동서식품에서 믹스커피를 개발하고, 1978년에 최초로 커피 자판기가 등장했다. 1979년 동숭동 [난다랑] 커피 전문점에서 최초로 원두를 직접 로스팅하여 내린 커피를 판매 하였다. 1987년 커피 수입 자유화 이후로 커피 시장은 본격적으로 원두 커피의 시대로 전환 되었다. 1988년 서울 올림픽과 함께 원두 커피 전문점은 체인화 되어 대 도시에서 판매 되었는데 외국의 대 기업 브랜드가 국내에 문을 연 대표적인 매장이 1999년 이대 앞에 생긴 [스타벅스] 1호점이다. 이로 인해 에스프레소 커피와 TAKE-OUT 커피가 유행을 하게 되었고 불과 10년만에 커피시장은 거대 식품산업의 주인공으로 자리매김 하게 되었다.



3. 커피의 종말은 없다.


지난해 스타벅스 커피 코리아가 매출 1조원을 넘겼다고 한다. 인원대비 매장수 역시 캐나다, 미국에 이어 우리나라가 가장 많다. 여타의 수입 브랜드들이 많은 가운데 유독 스타벅스(STAR BUCKS)가 선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소비자의 브랜드 충성도를 효과적으로 이끌어 낸 요인은 여러 가지 있지만 특히 다양한 MD 상품의 출시, e- 쿠폰 서비스, 사이렌 오더(모바일 앱을 통해 매장에 도착하기 전에 미리 음료를 주문ㆍ결제할 수 있도록 한 스마트 주문 시스템) 등 창의적인 서비스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프리미엄 메뉴들을 꾸준히 개발한 것이 성공의 요인이라고 말하고 있다. 커피는 허영과 사치의 도구란 말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커피 시장의 프리미엄 매장도 인기가 높다. 



<스페셜티 커피류>


인스타그램에 연일 올라오고 있는 스타벅스 청담점은 “스페셜티 커피”로 유명한데 폴 바셋, 탐앤탐스 블랙, 스타벅스 리저브, 할리스 커피 클럽 등이 프리미엄 커피를 판매한다. 반면에 눈 여겨 볼만한 것은 국산 브랜드의 약진이다. 백다방, 편의점 커피와 같이 저가 브랜드와 대기업의 고가 브랜드 커피로 양극화된 양상을 보이고 있는 커피 시장에 경쟁력 있는 개별 브랜드가 소비자들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빈 로스터, 커피 프릳츠, 테일러커피, 헬 카페 등 이러한 커피 전문점들은 홍대, 성수동, 연희동, 보광동 등등 소위 트렌드 세터들의 민감한 유행을 충족 시키는 공간의 차별화와 완성도 높은 바리스타 서비스, 자가 브랜드 만이 지닌 특별한 맛을 제공한다. 커피시장의 오늘이 개인의 “공간”을 완벽하게 제공하는 것이라면 커피 전문점의 미래는 점점 더 “개인”을 표현하는 수단이 되어 가고 있다.




<자기만의 개성으로 무장한 개별 커피 브랜드들의 약진>


단순히 커피를 마시는 공간이 아니라 패션(fashion), 비즈니스, 일(work), 대화가 공존하고 개인의 취향(趣向)은 무리의 공감대를 만들어 내는 중요한 자산이 된다. 실재로 커피는 커피를 사먹는 공간이라기 보다는 하루의 삶을 디자인해 나가는 공간으로 진화한다. 때문에 비즈니스 시장에선 이에 대한 불편함을 전면에 내세워 “카공족”(카페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을 가리킨다. 카페는 도서관, 독서실 등 보다 접근성이 뛰어나고 여럿이서 함께 공부하고 토론할 수 있어 학생과 취업 준비생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 “냉방족” 처럼 종일 커피 전문점에서 하루 일과를 보내는 진상 손님들을 차별하기 위한 방법으로 안티 카페(anti-café)가 등장하고 있다. 안티 카페는 시간제로 요금을 매기며 대화 금지, 통화 금지 등 각 카페마다 규칙을 설정해 분위기를 유지한다. 카페 주인은 차 한 잔을 시켜놓고 오랜 시간 앉아 있는 손님들에 대한 고민을 해결할 수 있고, 고객들에게는 비싼 음료 값을 내고도 조용한 분위기를 누릴 수 없었던 기존 카페에 대한 대안 장소로 기능한다. 그와 함께 북 카페 역시 다시 인기를 얻고 있다. 커피 전문점이 단순히 음료시장이 아니라 개개인의 시그니처 공간이라는 점으로 볼 때 카페 산업과 커피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무엇을 마실 것인가? 가 아닌 어디서 마실 것인가? 가 커피의 오늘이기 때문이다.




<트렌드를 반영하는 커피 공간>


커피(coffee)는 우리가 일상에서 먹고 마시는 식품 중에서 가장 복잡한 향미를 지닌 식품이다. 무려 1000가지의 향기 성분이 포함 되어 있을뿐더러 로스팅(roasting)의 기법에 따라, 원두의 종류에 따라, 어느 장소에서, 추출법에 따라, 어떤 잔에 마셨는가에 따라 모두 맛이 다르다. 커피의 성분과 영양에 대한 분석에서도 각각의 이견들이 있다. 혹자들은 건강을 이롭게 한다고 믿고, 혹자들은 여전히 커피는 몸에 나쁘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에스프레소를 마신 뒤에 입안 가득히 남는 밀도 가득한 크레마의 향기를 거부 할 수가 없다. 한가롭게 책을 보며 씁쓸하지만 우유의 단 맛이 매끄럽게 커피를 넘겨주는 아이스커피도 거절할 수가 없다. 커피는 향의 선물이다.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수 많은 향 중에서 와인만큼 다양한 향을 지닌 식품은 단연 “커피”이다. 인간의 역사가 지속되는 한 커피가 사라질 일은 없을 것이다. 




<커피 테이스팅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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