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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odle talk

[푸드칼럼] 사차면과 진바오인에 담긴 상인 문화 - 세계문화유산 전통가옥 복건 남정토루 문화여행

사차면과 진바오인에 담긴 상인 문화

세계문화유산 전통가옥 복건 남정토루 문화여행




인천에서 비행기로 3시간, 중국 동남부 복건(福建)의 항구도시 하문(厦门).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손꼽히는 동네답게 먹거리도 화려하다. 세계문화유산이자 전통가옥인 토루로 가기 위해 도착한 도시이다. 하문의 먹자골목 쩡춰안(曾厝垵) 거리로 먼저 달려간다. 된장으로 삶은 족발요리인 장루주티(酱卤猪蹄)는 좌판에서 아주 반질반질하다. 바다에서 막 올라온 생굴인 셩하오(生蚝, 하나에 1위안(약170원)이니 10개를 무더기로 집어먹어도 부담이 없고 먹음직스럽다. 해산물 세트는 눈요기만으로도 배가 부르다. 


<족발요리와 열대과일 화삼과(왼쪽 위/아래), 망고와 생굴(오른쪽 위/아래)>




풍부한 열대과일에 놀라지만, 무엇보다 키와노멜론인 화삼과(火参果)는 달고 시큼한 맛이 환상적이다. 비닐 컵에 담아 파는 망고는 그 어느 곳보다 물컹하면서도 달콤하다. 중국 여행의 남다른 재미는 그 지방 특색의 국수 맛에 도전하는 것이다. 하문의 일품 국수는 뭐니뭐니해도 사차면(沙茶面)이다. 복건 남부와 광동 동부 일대에서 이 국수를 ‘모르면 간첩’이다. 엷은 갈색을 띠는 육수에 마늘과 양파, 땅콩을 갈아서 오묘한 맛을 담았다. 평범한 면발이지만 조금 짜고 달고 맵긴 해도, 부담 없는 국물맛에 새우, 유부, 오징어 등을 곁들이니 마치 ‘짬뽕’처럼 푸짐하다.


<해산물 세트(왼쪽), 사차면 가게와 복건 국수 사차면(오른쪽 위/아래)>




하문에서 다시 버스로 3시간 서북쪽으로 달리면 남정(南靖)이다. 복건 성 서남부 일대에는 모두 15,000여개의 공동체 건물인 토루(土楼)가 있다. 중원지방에서 여러가지 이유로 남하해 살아온 객가인(客家人)의 독특한 건축양식이다. 쓰허위안(四合院), 야오둥(窑洞), 이커인(一颗印)과 더불어 중국을 대표하는 4대 전통가옥으로 알려져 있다. 서진(西晋) 말기 이후 북방민족의 강력한 남하와 맞물려 5차례에 걸쳐 대규모로 남진한 객가인들은 복건, 광동, 강서 성 등에 자리를 잡았다. 복건 토루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원탁에 요리가 나오듯 ‘4채1탕(四菜一汤)’이라고 불리는 토루가 있다. 전라갱(田螺坑)이 바로 군침이 돌게 하는 풍광의 주인공이다. 산 중턱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면 전통가옥 5채가 옹기종기 모여 마치 ‘한 상 차려진 듯’한 이름이다. 가운데 방형, 주위에 원형과 타원형의 토루가 붙어있어서 마치 요리의 한 장면을 보여주는 듯하다. ‘전라’는 우렁이를 말한다. 다랑논과 어울린 농촌 풍경 안에 자리잡은 토루는 역사의 무게를 다 벗고 온 몸을 다 드러낸 듯 사람들에게 문을 활짝 열어두고 있다.

<전라갱토루군(왼쪽 위), 토루 안에서 본 하늘(왼쪽 아래), 

위에서 본 토루(오른쪽 위), 아래에서 본 전라갱(오른쪽 아래)>




황(黄)씨 집성촌인 5개의 토루에는 지금도 주민이 거주한다. 관광객이 몰려들자 대부분은 가게로 변하긴 했지만, 사람의 온정은 여전하다. 200여 년 전인 청나라 시대에 건축된 토목(土木) 구조가 꽤 안정적으로 보인다. 입구를 차단하면 완벽한 성채로 변해 외부 침입을 철저하게 방어한다. 고성이자 보루이며 내부에서 고립돼도 자급자족이 가능하도록 완비돼 있으며 우물도 솟아나고 있다. 약간 기울어진 형태로 인해 배수도 자연스럽다. 지붕 없는 토루는 파란 하늘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어 더욱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유창루'와 '유창루' 내 관음청(왼쪽 위/아래), 5층 높이의 '유창루'와 동왜서사의 나무기둥(오른쪽 위/아래)>




가장 역사가 오래된 토루는 전라갱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유창루(裕昌楼)다. 명나라 초기인 1368년에 세워졌다니 무려 650년이나 꿋꿋하게 흔들리지 않고 서있다. 2009년 배우 소지섭이 출연한 드라마 <카인과 아벨>의 배경이 되기도 한 토루로 ‘랜드마크’라 불린 만하다. 5층 높이, 18.2m이고 각 층은 54칸에 이를 정도로 거대한 규모다. 비틀어지고 기울어진 상태로 목조건물을 지탱하고 있는 나무기둥은 과학적인 버팀목이다. ‘왜곡’과 ‘경사’로 점철된 동왜서사루(东歪西斜楼)라는 야릇한 별명을 가졌다. 6천4백평 규모의 건축면적을 안전하게 유지하며 오랜 세월 여러 차례의 지진과 비바람에도 견딜 수 있었던 까닭이다. 


대부분 마당 한가운데 ‘샵인샵’처럼 사당이나 사원이 자리잡고 있다. 초기에 류(刘), 라(罗), 장(张), 당(唐), 범(范) 다섯 성(姓)이 함께 공동체 생활을 했다. 그러다보니 종가 사당보다는 관음청(观音厅)을 세워 공동의 이익과 안전을 희구하지 않았나 싶다. 집집마다 홍등이 하나씩 걸려 있는 것도 흥미롭다. 저녁에 집에 귀가하면 홍등을 켜놓게 된다. 마지막으로 귀가한 사람은 모든 집의 불빛이 켜져 있으면 그때서야 대문을 닫아걸게 된다. 


<'유창루' 입구(왼쪽), '유창루'에서 본 하늘과 우물, 가게(오른쪽 위/중앙/아래)>




30분 거리에 떨어진 운수요고진(云水谣古镇)은 토루로 둘러싸인 마을이다. 보통 2층부터는 개방하지 않지만 약간의 돈(5위안)을 주면 눈치껏 올라갈 수 있다. 아담한 화귀루(和贵楼)에 올라 적나라하게 드러난 빨래, 나무판자 삐그덕거리는 소리, 눈과 귀 모두 정겹다. 정말 이국적인 여행이 무엇인지 체험할 수 있다. 


저녁이 되자 마을은 은은한 조명을 드러내고 있다. 토루 안에는 식당도 있고 잠을 잘 수도 있다. 감자튀김은 다른 지방과 달리 담백해 맥주 안주라면 좋을 듯하다. 멸치도 기름에 뒤덤벅된 상태가 아니라 고추장을 생각나게 한다. 토루식 홍샤오러우(红烧肉)는 마오쩌둥 고향에서보다 더욱 반짝이는 맛이다. 무엇보다 이 지방의 대표 간식이라고 나온 진바오인(金包银)이 눈길을 끈다. 쫄깃한 반죽이 살짝 금색을 띠지만 속에는 백색의 소(馅)가 담겼다. 맛은 귀주 지방에서 많이 먹는 찹쌀떡인 츠바(糍粑)와 비슷하지만 달콤하고 향긋한 속 맛이 훨씬 입맛을 현란하게 만든다.


<'운수요고진'과 '화귀루'(왼쪽 위/아래), '토루' 표지판과 '운수요고진'의 식당(오른쪽 위/아래)>




청나라 말기 함풍(咸丰) 시대인 1854년 홍건군(红巾军) 민란에 농민들이 가담했다. 토루에 살던 지주 아들이 홍건군에 의해 살해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토루민들은 모병을 해 청나라 군대와 합세, 민란 진압에 공을 세웠다. 이때 기회를 틈타 사리사욕을 취하려고 토루민이 토지를 약탈하기 시작했다. 원주민들은 ‘외지 손님이 관을 등에 업고 토지를 약탈한다(客民挟官铲土)’며 맞불을 들고 항거했다. 이후 12년에 걸친 이전투구인 ‘토객계투(土客械斗)’가 시작됐는데 이때부터 토루에 살던 사람들은 객가인이라 불리게 됐다. 


홍콩 최고 재벌인 리자청(李嘉诚)을 비롯해 유명한 상인은 객가인이 많다. 지혜와 재능을 타고난 그들은 토루라는 공동체문화를 통해 체득한 상업 정신으로 세계무대에서 활약이 대단하다. 토루는 곧 객가문화를 맛보는 여행이다. 어쩌면 겉과 속이 다른 진바오인이나 연갈색 육수 안에 해산물을 찾는 일이 중국 상인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과 비슷해 살짝 미소를 머금게 된다. 


<'홍샤오러우'와  '진바오인'(왼쪽 위/아래), 멸치 요리와 감자 요리(오른쪽 위/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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