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포의 성지
충무로 칼국수 맛집 순례
충무로와 을지로는 수십 년을 이어온 노포(老鋪)들이 수두룩하다. 오래도록 사랑받는 노포들은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한두 가지 메뉴만 내면서 맛은 대중적이고 가격은 합리적이며 주인장의 정직과 정성이 음식에 배어 있다. 50년 동안 명성을 이어온 사랑방칼국수와 30년 역사의 고향집도 그런 집이다. 무덥던 여름이 지나고 아침저녁으로 상쾌한 바람이 코끝에 스치는 이 계절. 노포의 손맛 가득한 따뜻한 칼국수 한 그릇으로 가을맞이 해보자.
충무로 직장인들의 단골집, 50년 역사 '사랑방 칼국수'
<50년 동안 수많은 매체에 소개되었던 사랑방 칼국수 외관>
밀가루 반죽을 방망이로 얇게 민 다음 칼로 얇게 썰어 만들어 먹는다 하여 이름이 지어진 칼국수는 육수와 내용물에 따라 멸치 칼국수, 닭 칼국수, 사골 칼국수, 바지락 칼국수, 팥 칼국수, 들깨 칼국수 등 종류가 수없이 많다.
서울 충무로에 있는 사랑방칼국수는 1968년에 문을 열어 반세기를 이어온 맛집이다. 유행에 따라 뜨고 지기를 반복하는 서울시내 여느 핫플레이스와는 달리 변하지 않는 손맛과 푸짐한 인심으로 직장인들의 허기진 배를 채워주는 이곳의 대표메뉴는 삶은 닭 반 마리에 밥과 반찬을 주는 ‘백숙백반’과 양은 냄비 한 가득 나오는 시원한 ‘멸치 칼국수’다.
<진한 멸치 육수에 끓인 칼국수를 양은 냄비에 덜어 김가루와 튀김 부스러기,
고춧가루, 파를 올리고 깨소금 솔솔 뿌려 내는 사랑방 칼국수>
칼국수는 멸치육수에 삶아 내는데 진하게 우려낸 육수에 면을 풀어 넣고 끓인 후 양은 냄비에 1인분씩 담아 육수를 붓고 김가루, 파, 고춧가루, 튀김 부스러기, 깨소금과 계란을 넣어 주는데 마치 냄비우동과 비슷한 비주얼이다. 일단 국물을 한 모금 들이키면 비린내가 전혀 없는 시원한 국물이 속을 풀어주고, 면은 보드랍다. 이 때문에 일대 직장인들은 해장으로 칼국수를 먹으러 오는 사람들도 많다. 면을 건져 먹고 남은 국물에는 밥을 말아 먹으면 그 맛이 또한 기가 막히다. 맛이 좋은 칼국수는 6000원인데 계란 넣은 칼국수와 곱빼기 칼국수는 200원을 더 받는다.
이 집의 또 다른 시그니처 메뉴이자 ‘내용있는 음식, 실속있는 식사’를 주장하는 백숙백반은 1인분에 닭 반마리, 닭육수 한 냄비, 밥이 제공된다. 쟁반에 나오는 닭백숙은 누린내가 전혀 나지 않고 얼마나 잘 삶았는지 살이 야들야들 부드러워 입안에 넣으면 저절로 뼈와 살이 분리된다. 가슴살도 전혀 퍽퍽하지 않고 입에서 살살 녹는다.
<잘 삶아 부드러운 백숙 백반과 시원하고 깔끔한 닭육수. 초고추장에 닭고기를 찍어 먹고,
국물에 밥 말아 먹으면 한 끼 영양식으로도 충분하다.>
<창업주인 이희주 대표와 50년 역사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실내 모습>
기본찬은 김치와 양파, 파, 소금, 쌈장이 나오는데 닭고기는 소금에 먹어도 깔끔하지만, 테이블에 비치되어 있는 묽은 초장과 대파를 섞어 찍어 먹으면 새콤 매콤한 맛이 어우러져 산뜻하다. 고기를 먹고 난 후 깔끔한 맛의 닭육수에 밥을 말아 김치와 함께 먹으면 포만감 있는 식사로 손색없다.
닭고기는 누린내가 전혀 나지 않고 마늘향이 은은하게 감돈다. 얼마나 잘 삶았는지 살이 야들야들 부드러워 슬슬 뜯어 먹기 좋다. 가슴살도 전혀 퍽퍽하지 않고 입에서 살살 녹는다.
백숙백반은 8000원으로 둘이라면 1만 6000원짜리 ‘통닭백숙’에 반주를 곁들이고 입가심으로 칼국수 1인분만 시켜 나누면 더없이 흡족한 식사를 즐길 수 있다.
워낙 역사가 오래되니 테이블부터 찌그러진 양은 냄비, 각종 방송에 소개된 액자까지 한눈에 맛 집의 포스가 느껴지지만 무엇보다 80세가 훌쩍 넘은 지금까지 주방에서 직접 칼국수를 삶고 있는 창업주 이희주 할아버지야 말로 사랑방 칼국수의 역사다.
30년 동안 보쌈·손칼국수로 어머니 손맛 선사하는 ‘고향집’
서울 중구청 근처에도 오래된 맛집이 많다. 중구청 앞 고향집은 보쌈과 손칼국수만 파는 집이다. 아는 사람만 알고 찾아가는 곳이라 대로변에 있어도 눈에 잘 띄지 않아 마음먹고 열심히 간판을 찾아야만 알아챌 수 있다.
<작은 골목을 들어가면 나오는 마당과 마루 위 카운터가 정겨운 고향집 보쌈 손칼국수>
가정집을 개조한 매장은 대문을 들어서면 마당이 나오고 순간 고향집에 온 것처럼 푸근한 느낌을 준다. 신발을 벗고 마루에 올라서면 방마다 좌식 테이블이 놓여져 있는데 고객 연령층이 평균 50~60세는 족히 될 정도다. 메뉴판은 벽에 붙어있는데 테이블마다 보쌈 한 접시와 칼국수를 주문하는 모습이 오래된 단골들이 많다.
<살코기도 지방이 적당히 섞인 삼겹살 부위를 삶아 노란 배추쌈에 싸먹는 보쌈>
<콩가루를 섞어 부드러운 면발과 가볍게 양념장만 툭 올려내는 칼국수는 겉절이, 무채와 함께 먹는다>
이곳의 보쌈은 삼겹살 부위로 직접 삶아 비계가 붙어있지만 부드럽다. 젊은층은 비계보다는 살코기를 선호하지만 보쌈 꽤나 즐긴다는 어르신들은 비계가 적당한 비율로 붙어있어야 부드럽다고 말하는데 전적으로 어르신들의 취향에 맞춰 살코기와 비계의 비율이 조화롭다.
보쌈을 먹는 방법도 여느 곳과 다르다. 속이 노란 배추 속을 쌈 채소로 내주는 데 먼저 배추를 앞 접시에 펴놓고 그 위에 콩고물을 콕 찍은 보쌈을 올리고 새우젓과 무생채, 마늘, 고추 등 취향껏 올려 싸먹으면 된다. 또 한 가지 특이한 것은 쌈장 대신 고추장을 내는데 쌈장보다 칼칼하고 깔끔하다.
손칼국수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함이 느껴진다. 육수는 멸치, 북어, 다시마, 새우, 무, 각종 채소 등을 함께 넣고 우려 내 깔끔하면서도 맛이 얕지 않다. 면은 안동국시 스타일로 밀가루와 콩가루를 섞어 반죽해 숙성시켜 일일이 칼로 직접 썰어 면발이 보드랍고 툭툭 끊어진다. 쫄깃한 면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취향에는 맞지 않을 수 있지만 먹고 나면 훨씬 속이 편하고 소화도 잘된다.
국수에는 오로지 채 썬 애호박을 조금 넣어 끓여 내 양념장 한 숟가락 툭 얹어 낼 만큼 한없이 소박하다. 칼국수는 보쌈 먹을 때 올려 먹었던 무채와 함께 먹거나 매일 버무려 내는 김치 겉절이와 함께 먹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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