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바다, 푸른 초원에서 한여름을 날려버리자
8월에 떠난 바다와 초원, 홍해탄과 공중초원
8월은 더위와의 전투다. 30도는 기본이고 요즘에는 40도, 쉽게 올라간다. 8월은 방학이기도 하다. 여유를 가지고 여행을 다닐 수 있다. 한여름에 더위로 첩첩이 쌓인 가슴을 녹이려면 바다, 그리고 초원이야말로 최고다. 남다른 바다, 색다른 초원으로 2018년 여름을 보냈다. 여름을 시원하게 날려버릴 중국의 바다와 초원으로 달려간다.
북경(北京) 동쪽에는 발해(渤海)가 있다. 발해 동북쪽 요동만(辽东湾)과 요하(辽河)가 만나는 지점에 아름다운 붉은 해변, 홍해탄(红海滩)이 있다. 요동성 반금(盘锦) 시, 북위 39도(度)에 위치한다. 5월부터 10월까지 여행객이 찾지만 가장 좋은 시기는 온통 바다가 붉은 기운으로 물들 때이다. 함봉초(碱蓬草)의 화장술 때문이다. 바다 습지에 숨었다가 늦봄부터 염분을 머금기 시작하면 연분홍에서 자홍색에 이르기까지 화사하게 변장한다. 붉은 계열의 립스틱 세트처럼 피어난다.
<홍해탄 입구(위), 홍해탄 지도(왼쪽 아래), 홍해탄 함봉초(오른쪽 아래)>
한눈에 다 보이는 풀밭이라면 말도 하지 말아야 한다. 홍해탄이 아름다운 까닭은 무려 130km²에 이르는 바다 갯벌에 펼쳐진 색깔 때문이다. 관광차를 타고 이동해야 할 정도로 넓다. 해변 도로를 처음부터 끝까지 이동하려면 거의 1시간 걸린다. 멋진 풍광 감상을 위해 나무 계단을 설치한 덕분에 바다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해안선보다 100여 미터를 더 들어서도록 가꾸는 나라가 중국이다. 붉은 바다가 끝나는 지점까지 편안하게 걸어갈 수 있다.
먼저 ‘노을을 따라 한가로이 걷는다’는 답하만보(踏霞漫步)를 찾는다. 맑은 하늘과 어울린 깨알처럼 스며든 분홍빛이 눈망울을 자극한다. 도무지 한가지 색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간혹 연한 녹색도 희끗희끗 드러난다.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갈대밭도 제자리를 잡고 있다. 노을이 지면 어떤 연출을 할지 궁금해진다. 아마 훨씬 진한 감동을 선사하리라. 별 다섯 개가 마치 자기 위치인 양 붉은 바다 위에 세워져 있다. 오성홍기 대신에 태극기의 태극문양이라고 생각해보라.
<홍해탄 답하만보(왼쪽 위/아래), 홍해탄 의수운주(오른쪽 위/아래)>
관광차를 타고 15분가량 이동해 의수운주(依水云舟)로 향한다. ‘물길 따라 구름처럼 떠가는 배’로 읊어본다. 붉은 느낌은 많지 않지만 초록에서 벗어나지 못한 풀 사이로 도랑이 보인다. 쾌청한 하늘을 보니 두둥실 구름 사이로 배를 타고 날아가고 싶다. 아무리 아름다워도 자주 보면 시들해지는 붉은 꽃, 진한 립스틱 자국도 오래 보면 지겹듯 하늘과 구름이야말로 홍해탄을 위한 서커스 같은 앙상블이 아닐런지.
이번에는 향해동심(向海同心)으로 간다. ‘바다와 한마음이 된다’는 뜻이니 더 깊이 들어서나 보다. 작명도 사람이 한지라 기대감도 높아진다. 과장도 그럴 듯해야 제 멋일 테니. 예상한 대로 훨씬 멋지다. ‘정말 이런게 붉은 빛을 뿜어내는 풀이구나’ 느끼게 된다. 가냘픈 여인네 허리처럼 보드라운 물길도 사이사이로 흐른다. 역시 바다는 바다였다. 육지로 물이 서서히 밀려드는 모양새가 매우 빠르다. 듬성듬성 자란 풀 사이로 슬며시 밀물이 된다. 야금야금 붉은 기운을 잠재우려나 보다. 이렇게 한번 훑어간 후 물이 빠지면 더욱 붉은 색감을 연출하겠지. 새떼들도 춤을 춘다. 가을이 오면 이 붉은 바다 위에 철새의 향연이 펼쳐진다니 ‘기대감 급상승’이다.
<홍해탄 향해동심 도랑과 함봉초(왼쪽 위/아래), 철새와 밀물(오른쪽 위/아래)>
홍해탄은 해산물로 유명하다. 싱싱한 조개류를 삶아서 먹으려고 식당을 찾았다. 바로 앞이 바다라 꽤 저렴하기도 하다. 채소와 완자로 만든 국물도 시원하다. 콩 줄기나 감자를 볶아도 담백하다. 새우와 달걀, 버섯을 살짝 익힌 요리는 맛만큼 색 조화가 화사하다. 꼴뚜기도 한몫한다. 무엇보다 고단백질을 자랑하는 번데기는 홍해탄 너비만큼 커서 영양가가 쑥쑥 오르는 느낌이다.
<민물게 모형과 번데기 요리(왼쪽 위/아래), 조개 요리(오른쪽 위/아래), 새우 요리(오른쪽 가운데)>
북경 서쪽에는 초원이 있다. 직선거리로 160km, 차량으로 4시간이면 도착한다. 중국에서는 아주 가까운 거리다. 해발이 2,158m 고지대 초원이라 이름도 공중초원(空中草原)이다. 이 초원을 가려면 비호욕(飞狐峪) 협곡을 통과해야 한다. 여우가 출몰해 날아다닐 정도로 가파른 절벽 사이를 30분 지난 후 산길을 따라 다시 30분을 더 올라야 한다. 산을 오를수록 구름이 잔뜩 낀 하늘이다. 협곡 사이의 풍광이 멋있다고 알려졌는데 아쉽다.
갑자기 빠르게 흐르던 구름 사이로 느닷없이 해가 나타난다. 너무 밝아 눈이 부시다고 느끼자마자 야릇한 모습의 해가 이상하다. 누군가 동그란 과자를 입으로 베어먹은 모습이다. 아니 초승달이야 그믐달이야 착각도 한다. 일몰 타이밍을 맞추기 위해 서둘러 가고 있는 시간이다. 부분일식이 코앞으로 눈 깜짝할 사이에 등장했다. 2018년 8월 11일 오후, 나는 태어나서 처음 일식을 봤다. 1/4이 달아나버린 태양을 찾으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가? 궁금증을 안고 초원으로 들어선다.
<비호욕과 공중초원 산길, 부분일식(왼쪽 위/가운데/아래),
공중초원 일몰과 양귀비(오른쪽 위/아래)>
일식이 아주 감동적이었는지 일몰은 생각보다 인상적이지 않다. 노을 사이로 풍력 바람개비만 하염없이 돈다. 확 트인 초원이 한여름 햇살만큼 강렬한 초록을 뿜어내고 있다. 산을 넘어가는 해가 아쉬워 손가락으로 동그랗게 잡아보았다. 초원의 야생화도 이제 잠을 자려고 한다. 양귀비꽃도 카메라 조명을 비추니 반짝 잎을 벌린다. 에델바이스도 화려하지 않지만, 초원을 지키는 꽃이다.
초원의 밤은 양고기 바비큐가 제맛이다. 양 한 마리는 약 1,200위안(20만 원)이면 20명 정도는 거뜬히 먹는다. 북경부터 가지고 간 김치와 깻잎도 상에 올렸다. 중국 요리들과 어울리지는 않지만 푸짐한 잔치처럼 섞어도 좋다. 이곳 초원에서 나지는 않지만 송이도 상큼하다. 배불리 먹고 나면 한여름 밤의 폭죽과 캠프파이어도 초원의 밤을 시끄럽게 한다. 그렇게 ‘농촌 부뚜막’이란 상호의 농가토화대(农家土灶台)에서의 하룻밤이다. 북경에 살 때 여름마다 찾던 집이다. 조명이 다 사라지면 서서히 밤별이 나타난다. 너무 멀어서 눈에만 그저 담아본다. 오랜만에 본 은하수도 활짝 펼쳐진다. (새벽 2시까지 버텨야 본다.)
<양고기와 송이, 농가토화대(왼쪽 위/가운데/아래), 초원 폭죽과 캠프파이어(오른쪽 위/아래)>
이미 초원은 아침부터 손님맞이에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여름 초원은 너무 푸르러서 진정한 초록빛을 선보인다. 초원을 따라 말을 타기 좋은 날이다. 마부가 끄는 말이라 안전하다. 달리다가 낙마해도 다치지 않으니 그냥 두면 좋겠다 싶지만, 마부는 말이 없다. 달리라고 채찍을 하거나 소리 질러도 말은 그저 걷기만 할 뿐이다. 한 줄로 서서 초원을 걷는 말과 사람의 행렬이 인상적이다. 파란 하늘 위로 가끔 먹구름이 몰아치는데 말이 이동하는 속도보다 더 빠르다. 야생화가 핀 초원을 천천히 느긋하게 1시간 정도 한가로이 거닌다.
<야생화 핀 공중초원에서의 승마>
말에서 내려 야생화 핀 초원을 거닐어본다. 에델바이스, 양귀비가 가장 많다. 이름 모를 꽃도 무수히 많아서 알록달록하다. 솔체꽃, 닻꽃, 오이풀이 무더기로 모였다. 델피니움도 회색빛 구름 앞에서 더욱 새파랗게 빛나고 있다. 초원의 빛이 쏟아지고 야생화가 만발한 꽃길에 준마가 서 있다. ‘이 초원에서 내가 가장 멋져’라고 자랑하듯. 영화의 한 장면처럼 후다닥 올라타면 초원을 질주하지 않을까.
<공중초원 야생화 델피니움과 초원 양떼(왼쪽 위/아래),
야생화 솔체꽃과 오이풀, 멋진 준마(오른쪽 위/아래)>
붉은 바다, 푸른 초원. 한여름의 더위를 몰아내는데 이보다 더 좋은 여행은 없다. 홍해탄과 공중초원의 거리는 꽤 멀다. 차량으로 10시간 거리다. 8월 여름방학이 오면 홍해탄을 시작해 공중초원까지 1주일 가량 다녀와도 좋다. 더불어 해산물과 양고기도 곁들이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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