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심도 일본에 법인사무소가 있어요. 그래서 모든 농심 임직원들이 일본에서 근무하시는 분들 걱정을 많이 했는데요, 다행히 모두 무사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오늘, 일본에서 근무 중인 심규철 과장님의 부인께서 사고 후 한국으로 돌아와 쓴 글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사고 당시의 상황을 자신의 블로그 '도쿄이야기'에 생생하게 써내려간 이야기,,, 일본과 일본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하루 빨리 제자리를 찾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포스팅해봅니다.
심규철 과장 가족
다시는……
만 3년간 누렸던 평화로움, 평온을 느낄 수 없을 것 같은 심정.. 지금 현재로선……
2011년 3월 11일 금요일 오후 2시 46분, 너무도 편안한 금요일 오후.
신랑은 사무실에서 열심히 업무 중, 아들 우용이는 30분전 지하철 기다리고 있다고 전화 왔으니 하교 중.
나는 내일 일본어선생님 댁에 초대를 받은 터라 음식 좀 해가려고 마트에 들러 장을 막 다본 상태로 장바구니에 찬거리를 담는 중..
갑자기 어디에선가 ‘地震だ(지진이다)’ 라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땅이 요동을 쳤다.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의 흔들림이다.
서둘러 밖으로 뛰쳐나왔고 도로 한복판에 서서 지진이 멎기를 기다렸다. 3년간 살면서 이런 저런 지진을 겪긴 했지만 이렇게 엄청난 규모는 처음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일본에서 평생 사신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처음 겪는 지진이라 하셨다)
그때 드는 생각, 우용이! 지금 지하철에 있을 시각이다. 눈앞이 깜깜해졌다.
미친 듯 자전거를 타고 역으로 향했다. 가는 도중 만난 또 한번의 엄청난 흔들림. 마침 공원을 지나가고 있던 터라 나는 걱정이 없었지만내겐 그보다 우용이의 안부가 더 간절했다.
공원 건너편 사무실 건물은 심한 흔들림에 건물이 붙었다 떨어졌다를 반복하고 있었고 전봇대는 엿가락 휘듯 휘청거렸다. 두 번째 지진이 잦아들고 다시 미친 듯 자전거 패달을 밟았다.
역 앞에 도착했다. 역은 이미 폐쇄. 역 안에 있던 사람들이 속속 바깥으로 나온다.
무리 속에 우용이가 있기를 바라며 눈이 빠져라 역 출구를 주시했다. 하지만 30여 분이 지나고 한 시간이 지나도 우용이는 모습을 드러내주지 않았다. 엎친대 덮친 격, 휴대전화는 완전 불통에 갑자기 내리기 시작하는 소나기. 밖으로 쏟아져 나오는 인파. 정신을 못 차리겠더라...
역 앞 공중전화의 긴 줄을 보아하니 이건 되는 모양이다. 일단 신랑을 찾아야 한다. 신랑의 안부도 걱정이었고 무엇보다 지금의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 30여 분을 기다려 신랑 사무실과 겨우 연락이 닿았다. 신랑에게 이 상황을 설명했더니 걱정 말고 있으란다. 그러면서 아마 지하철이 끊긴 상태일 테니 걸어서 가야 할 듯싶다며 역 앞에서 만나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때가 오후 4시가 조금 넘은 시각…
그제서야 1시간 반 전에 우용이가 보낸 메일이 도착했다.
‘엄마, 지진 때문에 지하철 안에 갇혔어, 엄청난 지진이었어’
어린것이 그 캄캄한데 갇혀서 혼자서 얼마나 무서웠을꼬.
이 녀석이 지금 도대체 어디 있냔 말이냐.
일단 역무원으로부터 지하철이나 지하엔 단 한 사람도 남아있지 않고 모두 지상으로 올려 보냈단 이야기를 들은 터라 지상에 있다는 것까진 알겠는데 도대체 어디쯤 있는 지 감도 못 잡을 지경. 여전히 휴대폰은 통화불능. 되지도 않는 문자메시지도 수십 통을 보냈다.
일단 한 사람이 역 앞에 기다리고 있어야 다른 한 사람이 찾으러 다닐 듯싶어 무작정 신랑을 역 앞에서 기다렸다. 이미 해는 뉘엿뉘엿 기온이 많이 내려가기 시작한다. 우리 아들 얼마나 추울까. 오늘은 코트도 안 입고 갔는데. 배는 또 얼마나 고플까... 집에 오면 간식부터 찾는 녀석인데.
입술이 바짝바짝 타 들어간다.
오후 6시,
우용이랑 마지막으로 연락하고 4시간이 지났다. 세상에서 가장 반가운 메시지 한 통이 겨우 도착했다.
‘아직 몬젠나카쵸’(門前仲町, 집에 오기 두 정거장 전 역)
그 문자를 보는 순간 눈물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우용이가 무사히 잘 있다는 증거다.
그때부터 다시 미친 듯 전화를 해댔고 30여 분 만에 우용이랑 통화가 되었다. 어찌나 감사하던지……
거기 꼼짝 말고 있으라고, 엄마가 지금 간다고, 춥진 않냐고, 배는 안고프냐고……
이것저것 울음 섞인 목소리를 전했다. 신랑 기다리는 건 일단 보류, 우선 빛의 속도로 자전거 패달을 밟으려고 했지만 도로의 상황은 그야말로 최악.
차도에는 꼼짝도 못하는 차들, 인도에는 앞으로 나아가기도 힘들만큼 쏟아져 나온 인파들.
겨우겨우 차도와 인도 사이의 틈으로 두 정거장을 밟아 달렸다. 이젠 우리아들 얼굴을 볼 수 있겠단 단 하나의 생각으로 역에 도착을 해 뒤지기 시작하는데 한 시간을 뒤져도 우용이의 모습은 찾을 수가 없고..
또 다시 초조해 진다. 반 정신 나간 사람처럼 한 시간을 그렇게 역 주변 교차로를 헤맸다.
전화는 여전히 통화불능. 메일로 계속 우용이게 연락을 하다 보니 오후 8시 반.
전화가 터지면서 우용이가 연락이 닿았고 겨우 우용이를 만날 수 있었다.
우용이를 보는 순간 또다시 터진 울음. 엉엉 울었다.
평소 사과라곤 모르는 녀석이 대뜸
"엄마 죄송해요…엄마 정말 죄송해요…."
"니가 뭐가 죄송해, 너 잘못한 거 하나 없어…너무 고마워서 우는 거야…" 하며 우용이를 꼭 끌어안아줬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했는데 우용이를 뒤따라 온 신랑까지 만났지.. 완전 원플러스원이다.
사실은 이러했다. 나와의 전화 통화 후 그 길로 퇴근을 한 신랑이 우용이가 탄 역부터 걸어오면서 한 역 한 역 찾아 다닌 거였다. 그러다 다섯 정거장만에 역 앞에 쭈그리고 앉아 휴대폰 오락을 하고 있던 우용이를 극적으로 찾아낸거지…
너무도 반갑고 고마운 맘에 신랑은 우용이를 불렀고
우용인 단 한마디를 했다더군.. 너무도 태연하게……
"어~~아버지네~~~? 엄마는요?"라고…
이어지는 한마디가 더더욱 기가 막혔다는……
"아버지 나 배고파요. 편의점에서 뭐 좀 사다 주세요..
편의점은 이쪽으로 가야 더 가까워요(이미 몇 시간 기다리며 지리파악 완료!)"
신랑이 우용이를 만났을 때 어떤 아가씨랑 같이 있었다는데 그 아가씨가 우용이랑 말 친구가 되어주고 음료수도 하나 사줬다는 거다. 어찌나 고맙던지...
그렇게 우리 세 식구의 너무도 길었던 6시간은 마무리가 되었고,
또 다시 수많은 인파를 뚫고 두 정거장을 걸어서 집에 들어오니 10시… 정신이 나갔다가 이제서야 제자리를 찾은 기분…
인터넷전화를 보아하니 과연 예상대로 100통에 가까운 부재중전화. 긴박했던 서울의 모습이 상상이 갔다.
가장 먼저 친정엄마……
엄마..나야.. 첫마디를 던졌더니
엄마는 첫마디도 못하고는 엉엉.. 펑펑..
아마도 내가 우용이를 처음 만났던 그 순간의 그 느낌을 엄마도 느끼고 계셨을 테다..
불효 아닌 불효를 했지 뭐…
그리고는 오늘 있었던 일을 마치 무용담처럼 다다다다 풀었다.
다른 서울의 식구들에겐 엄마에게 대신 좀 안부 전해달라며 전화를 끊었고 그때부터 무사하다는 전화만 한 시간은 한 듯싶었다.
사실……
무사하다고 괜찮다고 태연한 듯 말은 했지만
집에 와서도 이어지는 여진에 아직도 또렷한 오늘 오후의 엄청난 지진 탓에 불안불안 잠을 못 이뤘지……
그렇게 불안한 첫날밤을 보내고
조금씩 조금씩 안정을 찾아갈 즈음 엉뚱하게 원자력발전소가 속을 썩인다.
슈퍼에 나가보면 쌀, 라면, 생수는 그림자도 못 찾겠고….
또 다른 공포감이 조금씩 몰려온다.
결국… 학교는 휴교를 하고 주변의 한국 사람들은 하나 둘 귀국 길에 올랐다.
그리고 우리 모자마저도……
신랑 혼자두고는 도저히 발길이 떨어지질 않아 우용이만이라도 예정보다 일찍 들여보내자 했건만(원래 우용이는 봄방학이 시작되는 20일에 한국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회사의 방침도 어느 정도 정해져 내려왔고, 신랑의 강력한 태도에 어느 정도 수그러들었지……
그래서 결국 우용이와 나만 한국행 비행기를 손에 넣긴 했는데……
그래도……하지만……
내 맘이 편할 리 만무다. 신랑 혼자 전쟁터에 놔두고 떠나는 딱 그 기분이니……
3년동안 너무도 좋은 추억들만 가득 담아뒀었던 일본이었는데, 이번 일로 한 순간에 무너져버렸다.
너무 속상하고 맘 아프다.
지금 바깥 날씨가 슬프도록 맑고 화창하다..
언제 그런 큰 일이 있었냐는 듯…
그런데…
물론 모두들 고맙고 감사하지만 지나치게 자극적으로 소식을 전하는 한국의 언론 매체들의 기사에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 보다 더 불안해하고 심난해하는 한국의 모두들 때문에
오히려 더 불안하고 심난한 것도 사실…
일본은 너무 축소 방송을 일삼는다며 믿을 거 하나 못되니 얼른 들어오라며
진심 어린 걱정들을 해주었지만 그것조차도 우리 입장에선 스트레스가 되곤 했다.
여진의 공포…… 확산되고 있다는 방사성물질…… 무섭게 퍼지는 믿지 못할 헛소문들..
사재기의 공포……
부디 이 모든 공포에서 완전히 탈출하는 날이 오길 간절히 바란다.
지진여파가 빨리 아물길 바라면서... 심규철 과장 가족 올림
즐거운 인생을 꿈꾸는 농심 홍보팀 임종익입니다. 사내홍보를 담당하며 회사 안에 많은 분들을 만나고 이야기하는 것이 회사생활의 큰 재미입니다. 신바람 나는 소식을 여러분께 발 빠르게 전해드리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음악과 파티를 좋아하며 취미로 DJ를 하기도 한답니다. 제 이름 ‘종익’에서 받침을 빼서 조이(JOY)입니다. twitter : @adroitjo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