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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odle talk

[푸드칼럼] 맛의 비밀을 간직한 최고의 국수, 경당종택의 안동국시

 

 

'들들들', '드르륵'. 눈을 감고 '국수'를 떠올리면 뽀얀 밀가루 풋내가 코끝을 스쳐가는 게 아니라 요란한 기계음이 저 멀리서 들린다. 가정용 국수기계가 돌아가는 소리다. 어릴 때 거의 매일 국수를 만들어 먹다시피 했다. 아버지는 국수를 무척이나 좋아하셨다.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의 입맛 때문에 집에 국수 기계를 들여 놓으셨다. 국수 기계라고 해서 대단한 게 절대 아니다. 요즘 유행하는 캡슐커피 기계보다 조금 컸고, 조작은 매우 간단해서 낫 놓고 기억자도 모르는 이조차 작동할 수 있었다.

 

대청마루 한쪽을 차지한 기계는 주인의 사랑을 듬뿍 받는 애완견과 같았다. 반짝반짝 윤이 난다. 두툼한 면 반죽을 여러 번 기계에 넣으면 파피루스의 편지처럼 얇게 만드는 게 내 일이었다. 쭉쭉 늘어진 밀반죽은 시 한편이라도 긁적이고 싶어질 정도로 얇았다. 그걸 틀에 넣고 손잡이를 천천히 돌린다. 반죽은 금세 가늘고 긴 국수다발로 변신한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수 한 그릇 받아든 우리 자매들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조용해졌다. 하얀 볼때기에 닿는 김의 질감도 좋았다.

 

우리 집 국수는 절대로 주식의 영토를 침범하지 못했다. 밥은 밥이었다. 국수는 배를 두둑하게 채워주는 최고의 간식이었다. 그 시절 맛본 국수를 잊을 수 없다. 심지어 미식의 나라 스페인에서 맛본 미슐랭가이드 투스타식당보다 맛있다고 기억한다. 맛의 비밀은 '집'이다. 가족의 울타리인 집에는 마술 같은 맛 효소가 있다. 가족애다.

 

 

<경당종택의 안동국시>

 

 

몇 년 전 찾은 경당종택(경상북도 안동시)의 국수에서도 그 맛 효소를 만났다. 당시 경당종택은 칠순이 넘은 장성진, 권순씨 부부가 살았다. 종손인 장성진씨는 어린 시절부터 국수를 먹고 자랐다. 안동의 건진국수(안동국수)는 지역민들이 사랑한 대표적인 향토음식이다. 권씨는 밥맛이 없는 남편을 위해 자주 국수를 직접 반죽하고 자르고 삶아 냈다. 긴 세월, 부부의 사랑은 국수로 익어갔다.

 

이 댁은 경당 장흥효(1564~1634. 조선 중기 학자)선생의 종가다. 장흥효선생은 최초의 한글조리서 <음식디미방>을 저술한 장계향선생의 부친이기도 하다. 종부 권순씨는 마치 장계향선생의 뒤를 이은 듯했다. 국수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우리 음식에 탁월한 재주를 가진 이었다. 특히 그의 국수는 안동에서도 유명했다.

 

 

<경당종택 풍경>

 

 

종택은 소박한 한옥이다. 장작나무가 마루 아래 쌓여있고, 가마솥이 있었다. 권씨는 통나무를 통으로 깎은 큰 도마에 반죽을 펼쳐놓고, 양팔을 합친 정도 길이의 홍두깨방망이로 밀었다. 도마는 탐이 날 정도로 고풍스럽다. 얇게 변한 반죽을 접고는 차분하게 칼을 들이댔다. 그의 정성 앞에 숨조차 쉴 수 없었다. 국수의 신이 강림한 모습이었다. 그의 손끝에서 얇게 잘린 국수다발이 태어난다. 우리가 흔히 분식점에서 먹는 칼국수보다는 얇고 소면보다는 굵었다. 햇볕을 받은 국수다발은 예술품이다. 우리네 인생사처럼 음영이 교차하고, 에곤 실레의 그림처럼 엉켜있었다. 손가락 세포가 놀라 발딱 날을 세울 만큼 보드라웠다. 국수가 아이스크림처럼 쑥쑥 넘어갈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씹을 틈이 없다. 희고 미끈한 면발은 마치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제 알아서 식도를 타고 내려갔다. 유명 맛집에서 꽁꽁 숨기는 비결 같은 건 없었다. 맛의 비밀은 역시 가족애였다. 

 

 

<종부가 썰은 국수와 국수 삶기>

 

 

건진국수는 안동을 대표하는 음식이다. 가장 큰 특징은 콩가루를 넣는 것. 밀가루의 텁텁한 맛을 고소한 콩이 없애준다. 끓일수록 구수한 맛이 우러난다. 면발을 보면 만든 이의 내공을 알 수 있다. 얇을수록 고수다. 밀가루와 콩가루의 섞는 비율은 3:1로 알려져 있으나 가정마다 조금씩 달랐다. 밀가루는 본래 한반도에서는 귀했으나 해방이후 미국산 밀가루가 마구 들어오면서 밀국수가 대세로 자리잡아갔다. 이전에는 메밀과 녹두가루가 주로 재료였다. 콩가루도 그 범주에 들어간다. 콩은 뿌려만 둬도 알아서 잘 큰다 할 정도로 작황이 좋은 작물이다. 넉넉하지 못한 살림살이에 영양소를 보충해주는 기특한 음식이 콩가루였다.

 

건진국수는 국수 면을 삶고는 찬물에 담갔다가 건졌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안동은 지역의 특성상 먹을거리가 그다지 넉넉한 곳은 아니었다. 서원이 발달하고 양반문화가 지배적이었던 그곳은 손님대접이 중요한 행사였다. 양반가에서는 밀려드는 손님들에게 주로 국수를 대접했다고 한다.

 

 

<경당종택의 안동국시와 한과>

 

 

종부 권순씨는 25살에 당시 26살이었던 종손과 결혼했다. 가장 예쁜 옷을 입는 결혼식 날 그는 흰옷을 입고 절을 올렸다. 종손의 어머니가 돌아가신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3년간 흰옷을 입고 살았다. 군대를 가버린 남편을 대신해 시어머니 3년 상을 꼬박 치러냈다. 최고의 국수 맛을 내게 묻는 이들이 더러 있다. 그럴 때마다 권씨의 건진국수가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