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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odle talk

[푸드칼럼] 베트남 현지의 쌀국수 여행

 

 

 

베트남엔 두 개의 대표적인 도시가 있다. 하노이와 호치민이다. 북부에 있는 하노이는 정치의 중심지인 수도. 남부의 호치민은 경제와 상업의 도시다. 남북으로 길게 떨어져 있어 우리나라 서울과 부산으로 비교하면 쉽겠지만 거리상으론 우리나라의 서울과 부산의 4배(1,700km)에 달할 정도로 멀리 떨어져 있다. 그런데 도시의 규모나 인구로 따지면 우리나라와 달리 하노이(921km², 650만명)가 호치민(2,095km², 750만명)에게 한수, 아니 두수 정도 밀린다. 그래도 가끔 찾는 이방인에게 다가오는 두 도시의 느낌은 서울의 강북과 강남 차이로 다가온다. 쌀국수도 마찬가지였다.

 

<'호치민 시내 오토바이 풍경'과 '하노이 시내 오토바이 풍경'>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 해가 뜬지 얼마 되지 않은 오전 7시 오토바이들이 극성스럽게 움직이는 시내 도로 변엔 벌써 여기저기 쌀국수 판이 벌어졌다. 천칭 저울을 닮은 베트남식 지게인 '가인'을 놓고 쌀국수를 파는, 우리 식으로 말하면 길거리 좌판이 펼쳐진 것이다. 남녀노소를 가를 것 없이 출근을 하다말고 쪼그리고 앉아 쌀국수를 먹는다. 양복차림의 신사도, 청바지를 입은 오피스걸도 후루룩 짭짭 후루룩 짭짭 맛있게 들이킨다. 이틀 뒤 거의 같은 시간. 호치민 시내에서도 비슷한 풍경을 볼 수 있었다. 노란 아오자이(베트남 전통의상)를 입은 베트남 중년여인이 이것저것 쌀국수 재료를 비닐봉투에 담아 오던 길로 되돌아가는 모습도 봤는데 집안의 가족을 위해 테이크아웃(?)을 하는 것 같았다.

 

<'출근길 좌판의 쌀국수 먹는 사람들'과 '쌀국수 테이크 아웃'>

 

베트남 사람들에게 쌀국수는 간식이나 별식의 개념이 아니다. 우리네 밥이나 다름없는 주식이다. 아침, 점심, 저녁뿐만 아니라 간식, 야식까지 아우르는 일상식이다. 부동산개발회사에서 근무한다는 30대 여성의 얘기를 들어보자.
"일주일 21끼니 중 절반 정도를 쌀국수로 해결해요. 나머지 절반은 쌀밥을 주로 먹지만 중국식 국수나 일본식 라면을 별미로 즐기기도 하지요. 그렇지만 아침식사는 출근길에 남편이랑 노점상에서 쌀국수를 사먹는 게 일상적입니다. 집에 있는 두 아이는 시어머니가 동네 가게에서 쌀국수를 사다 먹입니다."

 

 

 

베트남의 쌀국수는 우리네 손칼국수와 많이 닮았다. 우리나라 칼국수처럼 납작하고 넓은 것이 많다. 냉면처럼 가는 것도 있는데 먹는 방식에 맞춰 골라서 쓰인다. 면은 집에서 직접 뽑기보다는 사서 먹는다. 일반 가정에선 만들기 번거로워서 그렇다. 쌀국수는 밀가루 국수처럼 밀가루를 물과 섞어서 홍두깨로 밀어서 끝나는 게 아니다. 쌀을 갈아서 전분 물을 낸 뒤 얇게 펴서 찜으로 쪄내고 자르는 방식으로 면을 만든다. 다행히 동네마다 가내수공업 스타일의 국수공장이 있다. 베트남 사람들이 쌀국수를 주식처럼 먹으니 밥공장인 셈이다. 동네 국수공장에선 면을 만들자마자 집집마다 배달을 하기도 하고, 현장에서 바로 판매를 하기도 한다. 그러니 대부분 생면이다. 베트남에선 태국과 달리 생면을 자주 접하는데 그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생면을 말린 건면도 있다. 건면은 현대식 건조시설을 갖춘 대규모공장에서 생산된 제품이다. 일부 음식점이나 가정에서 건면을 구입해 뜨거운 물에 살짝 데쳐서 쓰기도 하는데 ‘손맛’이 떨어지는 듯 했다.

 

쌀국수를 베트남에선 흔히 국물에 말아낸다. 여기에 또 우리네 칼국수와 닮은 점이 있다. 꼭 어떤 재료를 써야 한다는 원칙이 없다. 한국 주부들이 냉장고 문을 열고 닭고기가 있으면 닭칼국수, 김치밖에 없으면 김치칼국수를 뚝딱 말아내는 것처럼, 눈에 띄는 대로 소고기든 해산물이든 기본 육수로 쓴다. 그것도 없으면 '느억맘'이라는 생선소스를 이용한 비빔쌀국수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소고기 쌀국수'와 '해산물 쌀국수'>

 

<'완자 쌀국수'와 '비빔 쌀국수'>

 

그러다보니 베트남 여기저기에서 만나는 쌀국수의 맛이 똑같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숙주가 들어간 쇠고기 쌀국수'가 주종을 이루긴 하지만 돼지고기나 생선을 우려낸 국물에  간이나 창자 등 내장이 고명으로 올라간 쌀국수도 종종 맛볼 수 있다. 남북으로 길게 늘어진 지형이다 보니 지역적으로 뚜렷한 차이를 보이는데 남부는 채소, 북부는 고기 중심의 쌀국수다. 호치민(남부)의 쌀국수 집에선 생숙주 등 향신 채소 두세 가지가 식탁마다 한 바구니씩 올라 있는데 반해 하노이(북부)에선 채소 자리를 어묵이나 고기 덩어리가 대신하고 있었다.

 

베트남 현지에서 만난 쌀국수 맛은 전반적으로 소박하다. 시거나 짜거나 달지 않고 담담하다. 고기가 많이 올라간 것은 기름진 느낌도 없진 않았지만 별난 맛으로 받아들일 만했다. 면발은 무척 부드럽다. 국수에 말지 않고 그대로 맛을 보기도 했는데 밀가루 국수와는 비교를 할 수 없을 정도로 부드러웠다. 생면인 까닭이다. 국내에서 이미 익숙해진 건면의 찰진 맛을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

 

우리는 베트남 쌀국수를 '포(Pho)'라고 알고 있다. 그런데 '포'란 단어엔 젖은 생국수란 의미가 포함돼 있다고 한다. 한국에서 먹는 베트남 쌀국수는 생국수가 아닌 건면이다. 생국수는 유통, 보관의 문제로 수입자체가 불가능한데다 국내에서 쌀국수를 생산하는 곳도 없어서다. 또 재미난 사실이 있다. 국내에서 수입한 쌀국수는 대부분 베트남산이 아닌 태국산. 태국의 건면 제품이 품질이 뛰어나고 가격 경쟁력도 좋기 때문이란다. 결국 우리나라에선 '태국의 마른 쌀국수'를 아이러니하게도 '베트남의 포(Pho)'라고 먹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