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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odle talk

[푸드칼럼] 맛과 추억이 버무러진 황학동 '할아버지 칼국수'

맛과 추억이 버무러진

황학동 "할아버지 칼국수"

 

 

 

이 집을 선정할 때에 많은 고민을 했다. 장안에 맛으로 얘기하자면 손꼽히는 집들이 무수히 많으므로 단순히 맛으로만 꼽히기에는 쉽지 않을 수 있는 집이기 때문이다. 음식을 얘기할 때에 재료나 양념, 조리법에 관한 얘기만 하는 협의의 방법이 있지만 여기서는 조금 더 광의의 의미로 직접적인 음식 외에 그 가게와 그 음식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에 관련된 얘기를 같이 하기를 더 즐겨 한다. 음식은 그 맛과 더불어 주변의 환경들과 어우러져 비로소 완성된다고 생각하므로.

 

<칼국수 면발처리>
(국수집에 가면 늘 느끼는 것 이지만 면을 만들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아름답고 숭고하기까지 하다.)

 

 

 

할아버지 칼국수집은 시간이 멈춘 듯한 청계8가, 동묘 인근 분위기를 고스란히 전해주는 추억의 맛이 여전히 남아 현재도 바쁘게 역사를 쌓아가고 있는 진행형이라는 것에 의의가 더 있는 집이다. 부족함을 운명으로 알고 살아왔던 시대를 지나온 사람에게는 추억의 맛이요,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분위기의 집일 것이요, 느글느글한 치즈 맛을 즐기는 젊은 세대에게는 매우 낯설고 동조하기 힘든 분위기의 집일 테지만 다양함이 없는 우리 사회에서는 사라지지 말고 영원히 살아 남아야 할 집이라 생각한다.

 

 

 

<업소 내부 전경>

 

 

 

3대째(손자) 이 집을 운영하는 젊은 주인이 들려주는 일화 중, 생이 얼마 남지 않은 어느 불치병 환자가 복수가 가득 찬 불편한 몸을 이끌고 마지막 만찬을 나누기 위해 가족들의 부축을 받으며 찾아온 그 선택을 우리는 존중할 필요가 있다. 혀가 기억하는 이 집 칼국수 맛에 그의 청춘과 나름 자기 생에서 화려했던 시절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을 것 이다.


돈 받고 음식을 파는 가게는 오로지 배만 불리는 것이 목적이었던 과거 시절을 넘어서 맛도 있어야 하고 이젠 더 나아가 유행이란 것도 첨가되면서 외형과 심지어 요리하는 사람의 스타성까지 더해지는 세상이다. 따라서 앞으로의 문제는 45년이나 된 이 집이 지금까지 지나온 형태로 봐서는 미래에도 잘 발전 하기란 싶지 않을 것 이다. 지나온 세월만 켭켭이 쌓인다고 저절로 음식이 더 좋아지고 저절로 분위기가 더 좋아지는 것은 아닐 것이고 추억만을 쫓아 오는 손님은 점차 줄어들 것 이다. 새로운 맛과 새로운 스타일로 조금씩 아주 조금씩 시류에 동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홍두깨로 국수반죽 미는 작업>

(폭이 좁고 길게 계속 반죽을 말아가면서 밀면 협소한 곳에서도 큰 어려움 없이 다량의 면을 만들 수 있다)

 

 


이 집의 음식은 여느 집들과 비교해서 별로 특별할 것은 없지만 저렴하고 많은 양의 국수를 만드는 것에 초점이 맞춰진 듯한 시스템을 유지하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일단 아침 10시에 문을 열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미리 만들어둔 반죽으로 하루 동안 사용할 면을 할아버지 때부터 사용하던 40년이 넘은 작은 홍두깨로 밀고 칼질하는 일이다.

 


 

<국수 썰기 작업>
(끊임 없이 옥수수 전분을 뿌려가며 작업을 진행한다.)

 

 


작은 작업대에서 반죽을 폭이 좁고 길게 밀어서 길게 말아놓은 후 칼로 썰어 일 인분씩 큰 비닐에 뭉쳐놓는 것 이다. 이 작업의 핵심이 바로 저렴한 옥수수 전분가루다. 면을 직접 만들어 본 사람은 알겠지만 반죽을 미는 동안 끊임없이 밀가루를 뿌려 면이 서로 붙는 것을 막아줘야 한다. 그 용도로 이 집은 옥수수 전분가루를 사용하는 것 이다. 3,000원짜리 칼국수를 제작하기 위한 원가 절감의 방안에 대한 이의는 있을 수 없다.


작은 작업대에서 반죽을 폭이 좁고 길게 밀어서 길게 말아놓은 후 칼로 썰어 일 인분씩 큰 비닐에 뭉쳐놓는 것 이다. 이 작업의 핵심이 바로 저렴한 옥수수 전분가루다. 면을 직접 만들어 본 사람은 알겠지만 반죽을 미는 동안 끊임없이 밀가루를 뿌려 면이 서로 붙는 것을 막아줘야 한다. 그 용도로 이 집은 옥수수 전분가루를 사용하는 것 이다. 3,000원짜리 칼국수를 제작하기 위한 원가 절감의 방안에 대한 이의는 있을 수 없다.

 

<국수 썰어 1인분씩 나누기 작업>

(현재 할아버지의 손자로 3대째 가게를 운영하는 젊은 가게주인.

2대 주인이었던 부친은 작년에 작고 하셨다.)

 

 


국수는 단순하게 보면 면과 국물로 이뤄져 있다. 여러 가지 고명이 올라가는 것은 멋을 내기 위한 이차적인 작업일 뿐이다. 특히 면과 국물로만 나뉘었을 때에 굳이 일본인들과 비교한다면 일본 사람들의 면 그 자체에 대한 집착에 비해 한국 사람은 국물에 대한 비중이 큰 편이다. 그런 한국인들의 입맛에 이 가게의 칼국수 국물은 의외의 맛이다. 보통 가게들이 편하게 그리고 다량의 국수를 위해 면과 국물을 분리해서 삶아내는데 이 집도 역시 면과 국물을 따로 삶는 방법을 쓰고 있다. 개인적으로 어릴 적 경험으로 집에서는 늘 면과 국물을 한꺼번에 끓이고 이때 반죽에 묻어있던 밀가루가 같이 희석되면서 국물이 걸쭉해 지는 것이 칼국수의 기본이라는 선입견이 있다. 하지만 그것이 또 다른 종류의 국수와의 차별점 중 하나가 아닌가 생각하는 편이다. 우동국물은 맑아야 하고 칼국수는 걸쭉해야 한다. 이런 기준이 내 속에 자리잡고 있는 것 이다.

<육수가 끓고 있는 대형 솥>

(가게 입구의 대형 솥 여러 개에서 끊임 없이 뭔가가 끓고 있는 장면이 제법 장관이다.)

 

 


이 집의 육수제조법에 대해서 여쭤봤지만 역시 대부분의 집들처럼 비밀이라고 가르쳐 주지 않는데 약간 섭섭하기는 했지만 매우 저렴하면서 또 지독히 서민층 음식이라고 노하우가 없으란 법은 없으니 더 이상 캐묻지는 않기로 했다. 그래도 가장 기본이 되는 한가지만 알려 달라고 했더니 "간장"과 "마늘" 이라고 한다. 그래서 국물 색이 갈색을 띄고 있다. 맛에 깔끔함은 있지만 멸치를 많이 넣고 우린 육수의 깊은 맛과는 좀 차이가 나는 편이다. 이 제조법은 지금 가게를 운영하는 3대째 주인이자 할아버지의 손자가 직접 고심해서 개발했다고 하는데 그 전 맛은 어떠했는지 궁금하다. 추억의 맛을 찾아 방문한 사람에게 새로 개발한 이 맛은 인정을 받고 있는 맛일까…?

<홍두깨로 밀은 얇은 칼국수 면발>

(면은 폭이 넓고 얇은 편이다.)

 


칼국수 치고 면의 폭은 조금 넓은 편이나 두께는 매우 얇은 편이다. 사람들 마다 취향은 제 각각이겠지만 대체로 씹히는 맛을 음미하는 사람들은 면의 두께에 따라 식감을 논하기 때문에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어차피 같은 양이라면 면의 폭을 넓히기 보다는 면의 두께를 늘이는 것이 먹는 사람에게 행복감을 더 느끼게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빠른 시간에 면을 익히기 위한 가게 주인으로서의 섬세한 선택(?)이었을까… 하는 생각도 가끔 해보곤 했었다.

 

처음 이 집을 방문했을 때가 대략 5~6년 전이다. 비교적 늦은 편에 속한다. 칼국수 가격도 불과 1년 전 까지는 2,500원에 불과 했었다. 지금은 3,000원, 곱빼기는 3,500원이다. 칼국수 위에 올려지는 것은 오로지 김가루 뿐이며 테이블에는 고춧가루 양념장이 놓여 있지만 경험상 양념장 없이 먹는 것이 더 낫다. 재미있는 것은 이 양념장을 손님들이 자주 집어 가는 바람에 곳곳에 경고 문구가 붙어있다. 어려운 서민들이 많이 오는 집이라 그런가 하고 물어 봤더니 실소를 자아내는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몇 차례 잡고 보니 어려운 사람들이 훔쳐가는 것이 아니라 주로 낚시꾼들이 낚시를 가서 매운탕 끓일 때 쓸 요량으로 훔쳐 간다는 것이었다. 이런 작은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쌓여 이 집 칼국수의 맛을 완성해 나가는 밑거름이 아닌가 생각한다.


 

<푸짐한 칼국수 한 그릇>

 

 


지나온 45년의 형식만 따를 것이 아니라 미래의 또 45년을 위해서라도 추억은 추억대로 잘 간직하면서 개선 시킬 것은 개선 시켜서 많은 사람들에게 칼국수 한 그릇 만으로도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영원히 남기를 기원한다.

<40년 넘게 사용하고 있는 보물, 홍두깨와 돈궤>

(손님들이 가장 탐을 낸다는, 심지어 팔라고 조르는 사람도 있다는 40년이 넘은 돈궤.

그리고 할아버지 때부터 사용하던 홍두깨. 이 두 가지가 이 집의 보물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