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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향기, 사람의 향기...

방이동 밀향기 해물칼국수집

 

 

 

최근에 어느 칼국수집 취재를 요청 했다가 거절을 당한 적이 있었다. 거절 이유가 방송국 취재에 응했다가 큰 곤욕을 치렀다는 것인데 아무리 차이점을 설명 해도 워낙 막무가내 거절을 해대니 웬만해서 포기를 잘 하지 않는 나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아직 한 번도 거절을 당해 취재를 못 해본 적이 없는 나로서도 주인이 참 야박 하기도 하고 나도 마음의 상처를 꽤 입었음도 사실이다.

 

몇 일 동안 내내 이 일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있었는데 한편으로 내 입장만 내세워 취재를 했다가 이 집이 예상 못한 피해를 입게 되지나 않을까? 아니면 기사 때문에 갑자기 손님이 많아져서 그 집 만의 고유의 맛이나 서비스가 변질되어 오랜 단골들에게 괜한 실망감만 안기는 것은 아닌가… 최근 어느 인터넷 매체의 요청에 선뜻 나서지 못 하고 있는 것도 이런 고민이 있기 때문이다. 책상에 앉아 인터넷을 통해 맛집을 찾고 정보만 재생산하는 것을 금기시하고 몇 번이고 사전에 찾아가 검증을 거친다는 나름의 원칙이 있어 쉽게 새집을 찾고 선정하기도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런 가운데 이번에 찾아간 집은 상처 입은 내게 많은 위로가 되는 집이었다. 맛은 물론이거니와 따뜻하고 편안한 인품의 주인 아주머니, 무뚝뚝하지만 예의 바른 아들, 특히 자기 직업에 대한 개념이 확실하고 정성을 다 하는 모습 자체가 옆에서 보는 사람에게 위안을 주기에 충분했다.

 

 

 

<밀향기 해물칼국수집 전경>

(방이역, 1번출구 기업은행 뒤 이면도로에 위치해 있다. 외부에서 보기에는 작고 평범해 보이지만

내부는 보기와 다르게 활기차고 꽤 좁고 긴 직사각 형태의 실내로 되어 있다.)

 

이 집을 출입하게 된 것은 단지 작업실이 이 근처로 이사를 오게 된 이후 점심시간에 작업실 직원들과 갈 만한 주변에 괜찮은 맛 집을 찾는 과정에 알게 된 집이다. 처음 들어서자마자 이 집이 이 동네 꽤 유명한 맛 집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조용한 외부 동네 분위기와는 다르게 내부는 사람들로 꽉 차 있었는데 첫 인상이 "아~ 이 집은 이 동네 아주머니들 사이에 이미 맛 집으로 소문이 나 있나 보다" 라고 느낀 것이 동네 아주머니들인 듯한 손님들로 꽉 차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몇 번 더 드나들며 유심히 살펴본 결과 이 집은 전 연령층, 전 업종의 사람들이 다 골고루 드나드는 집이라는 것을 알았다. 어린아이 혹은 노부모를 동반한 가족단위로 또 근처 직장인 단위가 골고루 섞여 있었다. 이런 다양한 계층의 손님들을 가지고 있는 이 집의 비결은 무엇일까…

 

 

 

<국수 뽑는 기계와 타이머>

(늘 기계로만 면을 뽑지 만은 않는다. 간혹 직접 칼로 썰어 면을 만들기도 한다.)

 

보통 국수집에 가면 사람들은 모든 것을 손으로 하면 뭐 특별함을 기대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손이냐 아니면 기계의 힘을 빌리느냐는 단지 수단에 불과하고 결국 중요한 것은 반죽을 준비하는 방법에 얼마나 충실하냐에 따라 면의 질이 많이 좌우된다. 이 집은 그런 면에서 명쾌하다. 나이 들어 힘에 부치니 반죽도 기계로 하고 뽑기도 기계로 하고 면을 익히는 시간도 나름 표준화되어 있어서 물이 끓기 시작하면 바로 이 타이머를 딱 가동 시킨다. 힘을 빌릴 건 빌리고 맛을 내는데 충실하자?

 

 

 

<갓 뽑은 면발>

 

면을 알아 갈수록 수제면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생각이 든다는 것은 숨길 수 없다. 장안에 유명하다는 수타면 혹은 수제면 치고 한국인들이 대체로 선호하는 쫄깃한 식감이 살아 있는 집은 별로 없다. 손으로 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그만한 식감을 주기 위해서는 너무나 많은 공이 들어 가기 때문에 손으로 만든다는 그 자체가 일종의 광고효과를 위한 퍼포먼스에 그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럴 바에 기계로 제대로 된 반죽을 거친 면이 더 낫다라는 생각이다. 

 

재래시장에서 끓여주는 칼국수처럼 육수 따로 면 따로 끓이는 방식이 아니고 육수와 면 온갖 재료를 같이 넣고 끓이는 제물국수 스타일의 칼국수다.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칼국수라면 당연 이 방식의 국수가 국물이 걸쭉해서 칼국수 맛을 더 살려 주는 것이 아닌가 해서 더 선호하는 편이다.

 

 

<육수와 해물칼국수 끓이기>

(처음부터 미더덕, 바지락, 새우, 대파, 호박을 먼저 넣고 물이 끓으면

면을 같이 넣고 끓이는 제물국수 방식의 칼국수다.)

 

취재 중에 항상 가장 곤혹스러운 것이 육수에 대한 질문들이다. 어떤 집은 딱 봐도 조미료로 맛을 내는 집이지만 온갖 화려한 재료를 나열하는 집도 있고 어떤 집은 처음부터 알려주지 않는 집도 있다. 그래서 질문할 때에 가장 기본적인 것만 알려 달라고 정중히 부탁한다. "가장 베이스가 뭔지 한 가지만 알려 주세요" 이 집은 해물 칼국수 집이니 당연 멸치육수가 기본이다.

 

 

 

<서빙된 해물칼국수>

 

면은 쫄깃하지는 않지만 처음부터 찰기가 없는 그런 면도 아닌 칼국수로서의 적당한 끈기가 있다.

 

미리 전날 와서 가장 사람이 적은 한가한 시간으로 약속하고 와서 취재를 하는 도중에도 아주 나이 어린 꼬마를 동반한 가족이 식사를 하러 왔다. 늘 이런 분위기다. 촬영을 위해 한 그릇을 부탁 해 놓고는 기다리는 동안 국수가 좀 불었다. 그래도 일 하는 모습이라던가 손님을 응대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늘 하는 얘기지만 음식점의 음식은 음식 맛만 다가 아니라고…

 

이 자리에서 2001년부터 장사를 했으니 햇수로 15년 됐다. 집안에 형님이 국수집을 하는 것을 보고 배워 시작하게 된 것이라는데 그 스승인 형님은 지금도 방배동에서 잘 나가는 국수집을 운영하고 계신다니 다음엔 그 집으로…  장사를 하지만 낯가림이 심해서 지금도 사람들을 잘 못 알아봐서 어릴 때부터 드나들던 사람이 결혼해서 아기를 안고 찾아와 아는 척 해도 가끔 못 알아 볼 때가 있어서 너무 미안하단다. 가족끼리 하는 장사라 편하기도 하지만 안 해도 될 말도 잔소리 하게 되어 불편한 점도 있다는데 꼭 음식 장사에만 국한되는 얘기도 아닐 것 이다.

 

본인들은 잘 모르겠지만 손님으로 와서 보는 입장에서는 아버지께서 주방에서 일 하시거나(늘 일하시는 것은 아니고 게다가 일찍 귀가 하심) 주로 어머니가 주방에서 일을 하시고 아들이 혼자 홀에서 열심히 일하는 모습은 흔하게 보는 모습도 아니고 아주 정겨워 보인다. 아들은 꼭 탤런트 임호를 닮았는데 아들이 아주 친절하고 무리한 부탁을 해도 인상 한번 쓰는 일은 없지만 표정에 변화가 별로 없다고 “친절한 얼음총각”이라고 내가 아들에 대한 평가를 했더니 정말 바로 봤단다. 특히 단골이 되어 취향을 알게 된 손님은 입구에 있는 커피 자판기에서 미리 커피까지 뽑아다 드리고 물도 적당한 온도로 맞춰 갖다 드리니 동네 어른들께 인기가 좋단다.

 

실제로 전날 작업실 직원들과 와서 3사람이 2인분의 전골을 시켰는데 대부분의 식당에서는 거절하거나 인상을 좀 썼을 건데 전혀 변화 없이 주문을 받아줬다. 물론 조금 있다가 우리는 미안해서 3인분으로 정정 주문 했지만… 이런 맛 과는 별개의 친절함과 성심을 다 하는 직업 정신이 이 집을 더 빛나게 하는 것 아닐까…

 

 

 

<흑미보리밥과 차림표>

 

흑미 보리밥은 주문을 해야 같이 나온다. 칼국수 집에 국수만 파는 집은 대한민국 사람들이 흔히 하는 "'밥심으로 산다’라는 말을 너무 가볍게 본 것이 아닐까? 면만 먹으면 쉽게 배가 꺼지거나 뭔가 허전하다라는 느낌을 이 작은 밥 한 공기로 보상을 받을 수 있고 식당은 더불어 후한 점수까지 받을 수 있는 것을… “대한민국 모든 칼국수 집이여 밥을 허하라… “


뭐 장사 하시면서 재밋는 에피소드 있으세요? 했더니 김치를 매일 아침에 담궈 작은 항아리에 담아 손님 테이블에 내는데 어떤 손님은 그 남은 김치를 싸 달라고 하는 사람도 있단다. 그 항아리에 담긴 김치가 전부 자기 몫으로 알고 남은 것은 집으로 싸가겠단다.

 

사정상 사무실을 다시 옮겨왔지만 몇 일 내로 다시 이 집에 칼국수 먹으러 가야겠다.
밀향기, 사람향기 나는 기분 좋아지는 칼국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