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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odle talk

[푸드칼럼] 문정훈 교수의 식품심리학① <식품, 심리학, 그리고 행동과학>

문정훈 교수의 식품심리학 ①

식품, 심리학, 그리고 행동과학

 

 

 

::: 마트에 가다 :::

 

내가 가르치고 연구하는 경영학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 식품은 제품이다. 식품은 자동차, 책, 옷, 스마트폰, mp3 등과 같은 제품들 중의 하나인 것이다. KAIST 경영과학과 교수로 재직하던 시절, 내게 식품이란 그저 내가 연구하는 여러 제품들 중의 하나일 뿐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식품이 다른 여느 제품들과는 매우 다른 측면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어느 장소에서 불현듯 관찰하게 되었다. 그 장소는 바로 마트였다. 그 날 이후 식품은 내 모든 연구의 대상이 되었고, 마트는 나의 가장 신나는 놀이터가 되었다. 지금도 심심한 날엔, 혹은 연구의 영감을 얻고 싶은 날엔 마트로 향한다.

 

그 날 마트에서 내 머리를 '탁'하고 치고 간 것은 무엇일까?  마트 안의 수많은 사람들은 다양한 모습으로 식품과 마주하고 있었다. 파프리카를 이리저리 뒤집어 보는 주부, 화려한 과자 봉지들 사이에서 눈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아이들, 수입 맥주 앞에서 이리저리 비교하는 신혼부부, 시식 코너에서 행복해 하는 젊은이들, 그리고 햄 굽는 냄새에 이끌리는 나 자신. 마트 안의 식품들은 사람들의 오감을 자극하고 있었다. 식품을 제외한 그 어떤 제품이 인간의 오감을 모두 사용하게 할까? 우리 주위의 수만 가지 제품들 중에서 오직 식품만이 인간의 오감을 모두 사용하도록 하는 제품이다.

 

 

 

 

 

 

::: 식품과 오감 :::

 

식품에 있어 '맛과 향'은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요소이다. 커피의 고소하고 쌉싸름한 향과 함께 시큼하고 쓴 액체가 혀를 감싸면 우리는 그 액체를 목구멍으로 넘기지 않을 수가 없다. 뿐만 아니라 식품의 '형태와 색' 또한 우리의 식품 선호에 큰 영향을 미친다. 빨갛게 익은 사과와 샛노란 파프리카는 색 만으로 입안에 침이 고이게 만든다. 하지만 파란 된장국이 있다면 과연 어떨까? 초록색 두부라면? 회색 커피라면? 아마도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기 힘들 것이다. 미소국의 따뜻함, 티라미슈의 촉촉함, 홍시의 말랑말랑함은 우리의 ‘촉감’을 자극하여 식욕을 돋우는데 한 몫 한다. 마지막으로 ‘청각’도 식품의 선택과 소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감자칩의 바삭바삭 소리, 빵 봉지의 바스락거리는 소리, 해물 파전이 자글자글 부쳐지는 소리, 라면 면발의 후루룩 소리는 자연스럽게 한번 더 손이 가도록 만드는 중요한 요인이다

 

 

 

<식품과 오감>

 

 

 

그 어떤 제품이 이렇게 우리의 오감을 자극할까? 우리가 어떤 제품을 소비할 때 우리의 모든 감각을 다 작동시킬까? 없다. 오직 식품만이 우리의 오감을 작동하게 한다. 그래서 식품은 종합 예술이다. 다른 제품들과 달리 식품은 온 몸 구석구석의 감각기관을 동원하게 하며, 갖은 상상 의 나래를 펼친 후 구매 의사결정을 하게 한다.

 

소비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식품이 입 안으로 들어갈 때 우리의 모든 감각은 열리며 단지 입만이 아닌, 온 몸으로 그 식품을 받아들이게 된다. 오직 식품만 이러하다. 이 단순하면서도 당연한 사실이 내 머리 속을 ‘탁’ 치고 지나갔을 때, 나는 식품에 대해 평생 연구를 하기로 결심하였다. 식품 이외에 우리의 오감을 다 작동하게 하는 건 없을까? 앞서 말하였듯 제품들 중에는 없다. 그러나 식품은 아니지만, 우리가 오감을 사용하는 경우가 딱 하나 더 있다. 바로 사랑의 행위이다. 그래서 식품은 사랑이고, 식품을 취하는 행위는 사랑의 행위이다.

 

 

 

::: 식품, 심리학, 그리고 행동과학 :::

 

통계 자료에 따르면 소비자들은 평균 3년에 한번 꼴로 자동차를 구매한다고 한다.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손톱깎이는 30여년 전 어머니께서 프랑스 여행 때 사오신 제품이다.  나는 30년 째 같은 손톱깎이를 쓰고 있고, 정확히 단 한번도 손톱깎이라는 제품을 구매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일주일에 한 두 번은 마트에 가서 식품을 구매한다. 점심 식사도 매일 구매한다. 내가 좋아하는 초콜릿도 이틀 걸러 한번은 편의점에서 구매해서 소비한다. 한달 동안 차를 타지 않으면 단지 불편할 뿐 죽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한 달 동안 손톱을 깎지 않는다면 위생상태는 매우 나빠지겠지만 생명의 위협을 받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식품 없이는 누구든 일주일을 버티기 어렵다. 매일, 하루에 적어도 세 번은 먹어야 한다. 우리가 소비하는 제품들 중 이렇게 구매 빈도, 소비 빈도가 높은 제품은 없다. 그래서 식품은 하찮게 여겨진다. 하지만 우리 아이의 입에 들어가 아이의 일부가 된다는 생각을 하면 그토록 까다롭게 선택하는 것도 바로 식품이다. 내가 생각 없이 이틀에 한번 사먹는 초콜릿 바는 제대로 포장만 되어 있고 브랜드만 확인이 되면 별 거리낌 없이 사게 되지만, 우리 아이가 먹을 과자는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이 역설적인 상황에서 식품 심리학이 시작된다.

 

왜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은 유독 더 유기농 식품에 집착을 할까? (사실 체중관리와 유기농 식품간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 레몬 맛 음료수에 빨간 색소를 넣으면 꽤 많은 사람들이 이 음료수가 딸기 맛 음료수라 생각하면서 마신다는 사실을 들어 본적이 있는가? 왜 영화관에서 슬픈 영화를 보면 팝콘을 더 많이 먹을까? 똑같은 맥주에 식초 한 방울만 추가했을 뿐인데, 그 맥주를 서울대학교에서 개발했다고 하면 훨씬 더 맛있게 느낀다는 이야길 믿을 수 있을까? 똑같은 케익도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른 후 촛불을 끄고 먹으면 더 맛있게 느낀다는 건 사실일까? 다이어트를 위해 소포장 제품을 사는 것이 오히려 체중 관리에 더 위험하다는 것이 사실일까? 위에도 잠깐 나왔지만 그냥 비닐 봉지에 들어가 있는 빵보다, 바삭거리는 봉지에 들어가 있는 빵이 더 맛있게 느껴진다는 마술 같은 이야기를 믿어야 할까? 이 이야기들은 모두 사실이다. 이 이야기들이 바로 식품과 관련한 심리학이며 행동과학이다.

 

 

 

::: 연재를 시작하며 :::

 

우리는 좋은 일이 생기면 함께 모여 무언가를 먹고 마시며 그 즐거움을 나눈다. 결혼식에서도, 생일파티에서도 우리는 무언가를 나눠 먹는다. 참 희한한 일이다. 좋은 일이 생기면 함께 모여 줄넘기를 한다거나, 함께 물구나무를 서거나 하지 않고 함께 먹고 마신다. 누가 가르쳐 주었는지, 언제부터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오랜 시간 동안 계속 이러한 문화를 가져왔다. 앞으로도 기쁜 일이 있을 때 다 함께 모여 줄넘기를 하는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아마 언제까지나 모여서 먹고 마시며 축하할 것이 분명하다.

 

이렇게 식품은 우리의 사회, 문화와 밀접히 연결되어 있고, 함께 먹고 마시는 행위는 단지 식품 섭취 행위가 아닌 사회적인 행동이다. 식품 소비자들은 오로지 ‘맛있는 음식’만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식품 소비자들은 먹고 마실 때 맛 이상의 더 높은 무언가를, 더 소중한 가치를 원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먹고 마시는 행동을 잘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푸드비즈니스랩>

 

좋은 식품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식품공학적 접근이 필요하다. 영양 균형이 이루어진 건강한 식단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식품영양학적 접근이 필요하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요구하는 더 높은 가치를 제공하고 그들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마케팅적 접근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이를 실현하기 위해 서울대학교에 ‘푸드 비즈니스 랩’을 꾸리고 식품 소비자들에 더 높은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서울대 푸드 비즈니스 랩은 식품 관련 경영학을 연구하는 국내 대학의 유일한 연구소이다. 12명의 대학원생 및 박사 후 과정 연구원들이 더 나은 먹거리와 문화를 위해 연구하고 있다. 앞으로 이어질 누들푸들 연재에 지금까지 우리가 수행했던 흥미로운 노력들을 풀어 놓고자 한다. 심리학과 행동과학을 바탕으로 한 식품 마케팅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