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혜현 교수의 재미있는 요리 과학
육류의 이해와 고기 맛있게 먹는 노하우
우리의 식탁에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국경을 초월하여(종교적 이유를 제외하고) 누구에게나 환영받는 식재료가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육류일 것이다. 이는 육류를 활용한 조리법이 매우 다양하고, 채소와도 잘 어울리며, 맛도 좋기 때문인데, 다른 식재료에 비해 가격이 높기 때문에 구매할 때 신중하게 선택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육류는 어떻게 골라야 할까? 육류도 곡류나 과채류처럼 갓 도축된 것이 더 맛이 좋을까? 또한 어떤 양념을 더해야 고기를 더욱 부드럽게 먹을 수 있으며, 남은 고기는 어떻게 보관해야 맛있게 먹을 수 있는지 지금부터 살펴보도록 하자.
▶ 도축한 직후의 신선한 고기보다 오래된 고기가 맛있는 이유
<구이용 소고기>
먼저 사후경직과 숙성의 개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동물이 도살된 직후 유연한 근육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경직상태에 이르는데, 이것을 사후경직(rigor mortis)이라고 한다. 사후경직 시에는 근육이나 관절이 뻣뻣하게 굳기 때문에 고기가 매우 질긴 상태이다. 하지만 이 시간을 거치고 나면 근육은 다시 유연해지고 우리가 가장 연하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상태가 된다.
동물이 도살된 이후 사후경직이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근육 내 ATP의 고갈과 젖산 축적 등의 생화학적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동물이 죽으면 호흡과 혈액순환이 정지되기 때문에 각 조직에 전해지던 산소 공급이 중단되고, 근육 세포도 산소가 없는 혐기상태에서 당이 분해되므로 세포의 연료가 되는 ATP가 더 이상 생산되지 못하게 된다. 이는 근육이 수축된 상태로 정지해 단단하고 질긴 고기로 만든다. 또한 당의 불완전한 연소에 의해서 젖산이 생성되고 축적되어 주변의 산도를 높이게 되는데, 이 때문에 근육 단백질이 응고되어 더 단단한 고기로 변한다. 이는 사람이 급격하게 심한 운동을 하고 난 뒤에 목이나 다리 등이 경직되는 것도 젖산과 관계된 것을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사후 경직이 시작된 육류는 매우 질기고 딱딱하기 때문에 식용으로는 적합하지 않다. 따라서 숙성기간을 거치게 되는데, 숙성되는 동안 동물 근육내의 단백질 분해 효소와 미생물의 효소들에 이해 경직되었던 근육 단백질들이 분해되기 때문에 시간이 흐를수록 근육이 짧아지고 이로 인해 연해진다. 숙성 속도는 사후 경직의 진행 속도처럼 도살된 동물의 크기나 지방 함량 및 저장환경에 따라 다르다. 지방이 많고 크기가 작은 돼지고기는 하루정도 숙성하지만, 지방이 적고, 몸체가 큰 쇠고기는 10~14일까지도 숙성한다.
또한 냉장온도보다 실온에 두었을 때 숙성이 빨리 진행되지만, 미생물의 번식을 방지하기 위해 0~4℃ 온도와 70%의 습도가 유지되는 공간에서 숙성시키는 것이 일반적이다. 숙성이 이루어지는 동안에는 도살 직후 떨어졌던 pH가 상승하고 단백질의 수화력과 삼투압이 증가하면서 보수성도 상승한다. 또한 질긴 결합조직과 근섬유단백질이 분해되면서 고기가 연화되어 부드러워지고 맛도 증진되는 것이다.
▶ 고기를 연하게 만들어주는 식재료
숙성이 잘 이루어진 고기라고 해도 육질 자체가 질긴 부위거나, 조리를 잘 못하여 부드럽지 못한 식감을 가지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3가지 조리원리만 기억하면 된다.
첫 번째로 단백질을 분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식재료를 활용하는 방법이 있다. 대표적으로 파인애플, 키위, 배, 양파나 맥주 등을 고기의 양념재료로 사용하는 것이다. 맥주나 열대과일 안에는 단백질 분해 효소가 들어있어서 양념 재료로 사용할 때 고기의 질긴 단백질을 분해하여 연화시켜주기 때문에 효과적이다. 특히 열대과일이나 양파 등을 갈아서 사용하면 효소의 작용이 더욱 활발해지고 깊숙이 침투되기 때문에 그 효과를 빠르게 기대할 수 있다.
다만 통조림의 파인애플은 통조림의 제조과정에서 필수로 열처리를 거치기 때문에 단백질 분해효소의 작용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또한 맥주는 단백질 분해효소 뿐 아니라 맥주에 함유된 여러 감칠맛 성분이 고기의 맛도 좋아지게 하므로 남은 맥주를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효소 식재료로 단백질을 분해하기>
고기를 부드럽게 먹는 두 번째 방법으로는 고기의 수분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하는 것인데, 이를 위해서는 설탕이나 식초 또는 와인을 활용할 수 있다. 양념을 한 뒤 익혀먹는 고기의 경우 설탕을 넣어 버무려두면 설탕의 수분 보유성질로 인해 고기가 수분을 머금게 된다. 양념을 하지 않고 익히는 고기의 경우에도 식초나 먹다 남은 와인과 같이 pH가 낮은 식재료에 고기를 닿게 하면 고기의 pH도 함께 낮아져 수분을 유지하려는 힘이 강해지게 된다.
세 번째 방법으로 고기의 질긴 부분을 칼이나 고기용 망치 등 물리적인 힘으로 끊어냄으로써 부드럽게 하는 방법이 있는데, 예를 들면 돈가스에 튀김옷을 입히기 전 칼로 고기의 섬유질을 잘라내는 것이다.
▶ 남은 고기를 잘 보관하려면?
만약 고기가 남았다면 1회 분량으로 소분한 뒤 용기나 비닐에 넣어 공기를 최대한 빼고 넓게 펴서 얼리면 좋다. 이는 빠르게 냉동할 수 있는데다 해동할 때에도 세포막이 보호되는 방법이다. 빠르게 냉동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수분은 얼면서 그 부피가 원래의 크기보다 커지게 되는데, 식품 속의 물 분자가 천천히 얼면 얼수록 얼음의 크기는 더욱 더 커지게 되기 때문에 세포가 손상되거나 배열이 파괴된다. 보통 생선이나 육류의 경우 -5~0℃ 사이의 온도구간이 얼음의 크기가 최대로 크게 결정되는 구간이므로, 식품을 냉동시킬 때 이 온도 구간을 빠르게 통과하도록 급속하게 냉동시키는 것이 식품의 세포 내 얼음결정을 작게 형성시킨다. 이는 세포사이의 균형이 무너지거나 세포막이 손상되는 것을 최소화한다. 따라서 고기를 냉동할 때에는 1회 분량으로 소분하여 공기를 빼고 넓게 펴서 얼리는 것을 잊지 말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