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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odle talk

[푸드칼럼] 강남 수향, 아름다운 마을마다 꽃처럼 향긋한 먹거리, 쑤정, 상하이, 시탕

강남 수향, 아름다운 마을마다

꽃처럼 향긋한 먹거리, 쑤정, 상하이, 시탕

 

 

 

나일 강, 아마존 강에 이어 세계에서 3번째로 긴 강, 6,400km에 이르는 장강(长江) 하류는 수향(水乡)이라 불렸다. ‘하늘에는 천당(天堂), 땅에는 소항(苏杭)’이라 했던 것은 미인이 많다는 자랑이며 ‘물의 고향’이 아름답다는 자부심이기도 하다. 춘추전국시대 ‘오월동주(吳越同舟)’와 ‘와신상담(卧薪嘗膽)’이 있고 강북에서 쫓겨난 진(晋)나라 사람들은 풍부한 수량의 땅에 화사한 문화를 꽃피우기 시작했다. 강남 ‘수향’의 의식주는 촉촉한 풍광과 함께 지금껏 낭만으로 남았다. 도시를 흐르는 하천은 풍물이 넘치는 거리가 됐고 물에 푹 잠긴 마을은 아예 전체가 관광지다.

 

소주(苏州) 시내 핑장제(平江街)는 사방으로 흐르는 하천을 따라 만들어진 문화거리다. 건널목인 돌다리를 따라가는 뱃길이 수향의 한가로운 모습을 연출한다. 하천 길에는 공예품을 팔거나 찻집, 특산품 파는 가게들이 즐비하다. 화보 사진을 촬영하고 있는 사람들 모습이 오히려 낯설 만큼 거리는 한산하다. 흰색 도화지에 뿌린 빨강 노랑 물감과 나무와 꽃을 덧그린 산수화처럼 화사한 거리를 걷노라면 복잡한 머릿속은 저절로 비워진다. 

 

 

 

<핑장제 모습(왼쪽 위/아래), 낱개로 먹은 간식(오른쪽 위), 강남 수향의 별미들(오른쪽 아래)>


걸으며 비운 시장기도 거리에 어울리는 먹거리로 채우면 된다. 게 맛살로 만든 배 모양 세황촨(蟹黄船), 연꽃과 잉어의 앙상블은 길조라는 말을 담은 팥떡 넨넨여우위(年年有鱼), 수정처럼 투명한 새우만두 수이징샤쟈오(水晶虾饺)는 수향에 어울린다. 고기 넣은 비취 빛깔의 딤섬 페이추이루러우바오(翡翠卤肉包), 코코넛과 카사바 가루로 만든 떡에 꿀을 바른 황진가오(黄金糕)까지 담아 하천을 바라보며 앉아 하나씩 맛을 본다. 다 맛 볼 수 있게 낱개로 파니 좋았는데 대체로 달콤한 맛만 남고 뒷맛은 그저 복잡한데 물고기로 빚은 팥떡이 있어 포만감까지 선사한다.

 

소주에는 핑장제에 비해 관광객으로 홍수인 산탕제(山塘街)도 있다. 널리 알려진 문화유적지라 입장료까지 받는다. 하천과 홍등, 돌다리와 유람선을 카메라로 담으면 곧바로 예술이다. <시경(詩經)>에 이르길 시(詩)를 곧 ‘풍아(風雅)’라 했는데 산탕제를 소개하는 말로도 자주 쓴다. 천년 역사를 지닌 거리답게 풍물로 우아하다. 소주의 관리였던 시인 백거이(白居易)가 홍수 범람을 막고자 만든 제방으로 인해 조성된 마을이기도 하다. 정자에 앉아 오가는 배를 바라보며 시를 읊조리던 백거이는 병이 들자 산탕제를 떠나며 ‘별소주别苏州’를 지어 ‘무정无情’한 이별을 서글퍼 했다. 

 

 

 

<매화와 해당화 닮은 간식(왼쪽 위), 백거이(왼쪽 아래), 산탕제 모습(오른쪽 위/아래)>


공예품 가게와 식당을 알리는 깃발이 휘날리는 거리를 걷다가 사람들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는 메이화가오(海花糕)를 만난다. 생긴 모양이 매화처럼 생긴 강남 지역의 유명한 간식이다. 호두, 쌀 떡, 깨, 잣과 해바라기 씨를 비롯해 붉은색, 녹색, 검은 빛깔의 씨를 콩가루와 밀가루를 섞은 반죽에 넣고 기름을 두르고 5분 정도 익힌다.

 

젓가락으로 낱개로 나누고 하나씩 종이에 싸서 판다. 달콤하고 쫄깃한 맛이 간식으로 손색없는데 모양뿐 아니라 향긋한 냄새까지 꽃과 닮았다. 매화와 함께 해당화를 빌려 붉은 빛이 감도는 하이탕가오(海棠糕)도 함께 파는데 낭만적인 거리답게 흥미진진하다. 영양가도 풍부해 보이니 눈썰미 좋으면 누가 우리나라 길거리에서 만들어 팔아도 꽤 인기를 끌지 않을까? 진달래, 무궁화, 개나리 등 우리에게 친숙한 꽃 이름 달아도 좋겠다.

 

하이탕가오는 상해에 있는 ‘도시 속 옛 마을’ 신창구전(新场古镇)에서도 만날 수 있다. 이 수향은 탕웨이(汤唯) 주연의 영화 <색, 계(色, 戒)> 촬영지인데 사람들이 잘 모른다. 영화 내용이 19금에 가깝기도 하고 일본 특무에 사랑을 느껴 조직의 임무를 완수하지 못한 결말이 중국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지 않아서다. 마을 입구에 있는 영화 포스터가 구석으로 밀려나 있고 판자에 가려 있기도 했다.

 

상해에서 지하철역 룽양루龙阳路에 내려 버스로 1시간이나 터덜거리고 가야 하지만 관광객이 드문 촌스러운 마을을 좋아하는지라 예상대로 마음에 딱 든다. 한가운데 돌다리를 두고 가로 세로로 이어진 길을 따라 낡은 집들이 더덕더덕 붙어산다. 하천 따라 집집이 속옷까지 내걸고, 숨길 이유도 없이 문도 다 열려 있는 평화로운 마을이다. 

 

 

 

<신창구전 모습(왼쪽 위), <색,계> 촬영지 표시(왼쪽 아래),

 민간공예 공방(오른쪽 위), 삼세이품 패방(오른쪽 아래)>


명나라 시대 고관대작에 올랐던 주국성(朱国盛)과 후손 3대까지 이품 벼슬까지 오른 명망가가 살았던 것을 자랑하는 삼세이품(三世二品) 패방이 입구 가득 막고 있는 유서 깊은 마을이다. 3km 남짓한 길이지만 이리저리 걷다 보면 민간공예를 직접 만드는 공방도 만나고 다정다감해 보이는 찻집도 몇 군데 있다. 개발이 덜 된 수향이라 정겹다. 오래 머무르며 방 한 칸 빌려, 온종일 책이나 보며 살고 싶어진다.

 

반면 상해가 발달하면서 도심 속으로 들어온 수향도 있다. 지하철역에서 걸어가도 되는 치바오구전(七宝古镇)은 그야말로 늘 인산인해다. 명나라 시대부터 여덟 가지 보물을 보유했다가 한 개를 도둑맞았다는 전설 같은 뉘앙스의 분위기는 사라지고 자본주의 개발의 희생양이 된 듯해 아쉽다. 그래도 강남의 신기한 풍물을 한꺼번에 보기에는 나쁘지 않다.

 

붉은 조명에 자태를 드러낸 중국 돼지족발 ‘저수(猪手)’와 ‘제방(蹄膀)’, 빛깔만큼은 장충동 족발과 너무나 닮았다. 북경오리만큼 유명한 문호양념오리(文虎酱鸭), 거지에게 배워 만들어 ‘거지 닭’이라 불리는 규화계(叫化鸡)도 보인다. 좁은 골목은 어깨를 부닥치며 걷고 흥정소리도 시끄럽다. 

 

 

 

<돼지 족발(왼쪽 아래), 콜드크림 설화고(왼쪽 아래),

치바오구전의 거리와 야경(오른쪽 위, 아래)>


20세기에 상해 여인이 즐겨 발랐던 피부화장품, 일명 콜드크림이라 불리는 설화고(雪花膏)는 말로만 듣다가 실제로 보니 반갑다. 100여 년 전 중국 최고의 번화가 상해의 밤을 시끄럽게 했던 여인들이나 발랐을 상표. 지금도 버리지 않고 버젓이 호객하는 중국인의 상술은 인정해야 한다. 야경이 차츰 드러나자 소리에 지친 귀를 대신에 눈에게 보상하려는지 그 옛날 상해 여인이 밤을 휘어잡으려는 듯 수향이 화려하게 등장한다.

 

정말 야경이 화려한 수향을 만나려면 시탕(西糖)으로 가야 한다. 마을 전체가 관광지인 시탕은 상해 버스터미널에서 1시간 거리에 있다. 강남 수향을 대표하는 마을이자 영화 <미션임파서블3>의 촬영지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검은 칠 덮개를 한 오봉선(乌篷船)이 출렁이면 청아한 물살도 일렁이고 도화지 같은 벽이 하천으로 숨으면 은은한 단청보다 화사하다.

 

하루를 묵으려고 하천 따라 생긴 긴 복도에 차양을 친 랑펑(廊棚)을 걷는다. 영화에서 톰  크루즈가 부인을 찾으려고 뛰어다닌 길이기도 하다. 바로 옆에 다닥다닥 붙은 가게마다 호객하는 먹거리 때문에 유혹을 지나칠 수 없다. 시탕에서만 만든다는 가시연꽃 열매 가루와 찹쌀로 빚은 떡인 첸스가오(芡实糕)는 연한 파스텔 색조라 한눈에 마음에 들었다. 순두부와 거의 비슷한 더우화(豆花)와 함께 먹으니 궁합도 맞는다. 쫄깃하고 담백한 떡을 우물거리다가 두부를 뜨니 사르르 녹으며 담백하고 부드럽게 목으로 넘어간다. 

 

 

 

<시탕의 랑펑(왼쪽 위), 홍등과 벽화(왼쪽 아래), 가옥과 오봉선(오른쪽 위),

더우화 파는 가게(오른쪽 아래)>


골목마다 객잔 안내판이 즐비하지만, 하천과 딱 붙은 숙소를 찾아 계속 돌아다닌다. 십자로 흐르는 하천 곳곳이 다 숙소니 마음에 드는 곳을 찾기도 쉽지 않다. 어떤 숙소라도 방을 보고 결정해도 되는 중국. 높고 좁은 석벽인 석피롱(石皮弄)을 따라 방 몇 곳을 보고 흥정한다. 혼자 묵을 거라고 해도 소용없고 그저 한국 사람이라고 애교 좀 떨면 할인이 된다. 그것이 진정한 할인이 아닌 줄 알지만 이미 예상금액보다 반이나 쌌기에 마음 편히 방으로 들어선다. 하천이 코 앞에 보이고 좁지만 깨끗한 화장실과 흔들 의자도 있어 창문 밖을 편하게 조망할 수 있는 방이다. 우리 돈으로 3만 원이니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다.

 

마을 중심이자 높은 돌다리 융닝차오(永宁桥)에 서면 멀리 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동그랗게 솟은 돌다리가 원을 그리고 있고 다리 옆 골목에는 할머니 홀로 앉았고 아주머니는 하천에 나와 채소를 씻고 길바닥에 조명이 비추기 시작하면 벽화와 홍등도 어울리기 시작한다. 홍등이 점점 붉어진 거리를 한 바퀴 돌고 오자 융닝차오는 어느새 영롱한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다. 

 

 

 

<천하제일면(왼쪽 위), 저녁 바닥(왼쪽 아래),

하천의 아주머니(오른쪽 위), 시탕의 야경(오른쪽 아래)>


융닝차오에서 왼쪽으로 시탕의 자랑, 천하제일면(天下第一面)을 파는 본점이 있다. 감히 누가 천하제일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중국 전역에서 시안(西安)과 함께 유이(唯二)하게 잘 알려진 시탕 천하제일면은 고기와 생선, 채소가 두루 들어가고 육수가 검고 좀 걸쭉한 편이다. 고기를 빼고 소금도 줄여달라고 해서 먹었지만 ‘천하제일’의 수향다운 감동을 따라가기엔 좀 아쉽다. 

 

 

 

<시탕 돌다리 야경(왼쪽), 시탕의 아침 햇살(오른쪽)>


황주(黄酒) 한잔 창문 밖 시선 한번, 이 운치 있는 마을에 혼자 온 후회를 다음에는 반드시 갚으리라 다짐하며, 불빛이 물소리를 다 덮을 때까지 밤새 바라다보다가 어느새 살포시 꿈나라로 빠져든다. 아침이 되면 햇살을 머금은 수향은 더할 나위 없이 반짝거리리라 믿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