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림산수갑천하' 풍광과 함께 음식여행
쌀국수 천국 계림 양삭의 1박 2일
아침 비행기를 타고 계림으로 향했다. 약 2천km, 자동차로 21시간 거리이고 비행기로도 3시간 20분이나 걸리니 김포에서 제주도를 몇 번이나 왕복해야 하나? 참 멀다. ‘계림산수갑천하(桂林山水甲天下)’, 800년 전 남송시대 한 시인이 읊었다고 전해지는 계림 풍광이 천하제일이라지만 물이 맑고 습하며 담백한 음식으로도 최고의 여행코스라 할만하다.
계림 여행의 중심 양삭(阳朔)까지는 차를 타고 1시간 30분 걸린다. 거리마다 한 집 지나 계림 명물 쌀국수가 즐비하다. 짐을 풀자마자 거리로 나섰다. 계림 쌀국수는 미펀(米粉)이라 부르고 종류도 다양하다. 국수만 먹는 것이 아니라 소고기, 돼지고기 심지어 말고기도 넣는다. 우리가 라면을 다양한 방식으로 끓이듯이 채소를 3가지 넣는 싼센(三鲜)이나 시고 매운 쏸라(酸辣)도 있고 우렁이가 들어가는 뤄쓰(螺蛳) 쌀국수도 있다. 말고기 쌀국수를 먹었는데 쫄깃하고 굵은 면발도 좋지만 고기 맛이 뜻밖에 아주 담백하다. 이렇게 처음 먹어보는 음식이 기대 이상일 때 여행은 행복하다.
<양삭의 말고기 쌀국수(왼쪽), 북경-계림 항공(오른쪽 위), 쌀국수 집 메뉴(오른쪽 아래)>
물이 스며드는 듯 잔잔하다는 말이 붙은 계림 리강(漓江)은 유람선을 타고 산수를 둘러보는 것이 가장 좋다. 모터 달린 유람선은 빠르게 달리며 많은 곳을 볼 수 있다. 인민폐 20위안의 배경 그림은 리강을 둘러싼 카르스트 지형의 원보산(元宝山)에서 줄줄이 연이어 생긴 봉우리가 강물에 비친 풍광인 황포도영(黄布倒影)을 촬영한 것이다. 우리는 반대편에서 배를 타고 가면서 지폐에 넣을 만큼 자연이 아름다운 중국을 떠올려본다.
배는 구마화산(九马画山)이 바라다보이는 곳에 정박한다. 너비가 200m나 되고 강가에 높이 솟았으며 마치 벽화 안에 달리는 준마를 새긴 듯한 형상이라고 해서 수많은 시인이 노래했던 산이다. 바닥에 푸드덕거리는 새는 루츠(鸬鹚)라 불리는 가마우지다. 가마우지를 묶고 어깨에 걸고 기념사진을 찍어도 좋다. 사람에 의해 물고기 잡느라 목이 묶이는 것도 애처로운데 두 발이 대나무에 대롱 매달려 버둥대는 것이 안타깝다. 마치 빙어튀김처럼 보이는 자위쯔(炸鱼仔)을 하나 사서 먹었다. 리강에서 잡은 피라미처럼 작은 물고기를 밀가루에 묻혀 튀긴 것인데 부드럽긴 해도 맛은 보통이다. 양념 없이 그냥 물고기만으로 잘 요리하면 별미로서 손색이 없어 보인다. 낮에 봤던 우렁이를 어떻게 요리하는지 궁금해 텐뤄냥(田螺酿)을 주문했는데 냥이란 말이 구멍 속에 갖가지 재료를 넣는 요리 방법이라는 말이 붙었다. 그냥 고추를 넣고 우렁이를 볶은 것인데 좀 짜긴 해도 제 맛이 배어 있다.
<리강유람(왼쪽 위), 20위안(왼쪽 아래), 가마우지(오른쪽 위),
자위쯔(오른쪽 가운데), 텐뤄냥(오른쪽 아래)>
저녁을 먹고 중국 무대극의 진수라 할만한 <인상> 공연을 보러 갔다. 연출 감독은 장이머우(张艺谋) 사단이라고 알려진 왕차오거(王潮歌)와 판위에(樊跃)다. 30대이던 여성감독 판위에의 아이디어는 10년이나 지났어도 호수 위에 펼치는 임프레션(impression)은 여전히 놀랍다. <인상유삼저(印象刘三姐)>는 소수민족인 장족(壮族)의 전설 속의 신녀(神女)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킨다. 총명한 그녀는 경전에도 능통하고 노래도 잘했던 인물로 알려져 영화와 드라마로도 제작되기도 했다. 양삭을 찾는 사람들에게 잊지 못할 흥분과 기억을 남겨준다.
실제로 소수민족 주민 400여명이 배우로 출연한다. 어둠 속에서 아름다운 계림 산수를 배경으로 노래하는 여신이 배를 타고 나타난다. 횃불 들고 소수민족 아가씨들이 등장해 관객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호반 위에 붉은 조명이 서서히 등장한다. 붉은색의 긴 천을 드리운 뱃사공들의 향연이다. 가마우지 새를 어깨에 얹은 사공이 등장하고 그물 낚시도 하고 노 젓듯 물을 튕기고 있다. 환상적인 초승달 장면이 펼쳐지고 사랑의 노래를 부르며 달 위에서 무희가 아슬아슬하게 춤을 춘다.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는 전통 옷을 입고 사랑을 갈구하며 기다리던 총각과 함께 배를 타고 멀리멀리 떠난다. 호수 멀리서 전구를 온몸에 걸치고 아가씨들이 등장하고 빛을 냈다 사라졌다 한다. 수백 명의 아가씨의 모습이 마치 살아있는 인형처럼 등장한다. 대형 서사 무대극의 꽃이라 할 만하다.
<’인상유삼저’ 공연장(왼쪽 위)과 공연>
다음 날 아침을 먹으러 나왔다가 르터우훠(日头火)라는 프랜차이즈 쌀국수 식당에서 타오찬(套餐), 즉 세트메뉴를 주문했다. 금메달, 진파이(金牌)라는 별칭으로 불리는데 소, 돼지, 말고기 편육과 땅콩과 달걀, 국물과 반찬까지 아침으로 먹기에 딱 좋다. 게다가 후식으로 아이예바(艾叶粑)라는 떡도 먹었는데 기대 이상이다. 청명 한식에 즐겨 먹는 전통요리로 쑥, 찹쌀, 땅콩 등으로 만든 쑥떡이다. 쫄깃하고 쑥 향과 고소한 맛도 살아있어서 간식으로 가지고 다니면서 먹어도 좋아 보여 몇 개 포장했다. 거리에 계림 특산인 나한과(罗汉果)도 판다. 다년생 덩굴식물로 약재로도 쓰이는 나한과는 물에 넣어 보리차처럼 끓여 먹어도 좋다. 당분이 풍부해 천연 감미료이자 다이어트에도 좋고 당뇨병 환자도 마실 수 있는 건강식품이기도 하다.
<쑥떡 아이예바(왼쪽), 쌀국수 세트메뉴(오른쪽 위), 나한과(오른쪽 아래)>
양삭 현에서 한 시간 거리 백사(白沙) 마을에는 도연명의 <도화원기(桃花源记)>에서 묘사한 아름다운 마을인 세외도원(世外桃源)이 있다. 입장료가 100위안이나 되는 민속마을인데 배 타고 마을 한 바퀴 돌고 소수민족의 풍광이나 문화를 느낄 수 있는 공원이긴 하지만 계림답지 않게 인공적이라 금방 싫증이 난다. 멋진 산수를 돈벌이 목적으로 가꿔 놓긴 했지만, 대나무 악기인 루셩(芦笙)이나 베틀, 여러 공예품을 보고 배우는 재미도 쏠쏠하다. 곡식을 만드는 농기구나 종이 만드는 과정도 흥미롭다. 연명산장(渊明山庄)에 들어가면 계림의 가옥구조와 건축양식을 이해하는 재미도 있다.
<세외도원(왼쪽 위), 루셩(왼쪽 가운데), 공예품(왼쪽 아래),
베틀(오른쪽 위), 연명산장(오른쪽 아래)>
세외도원 바로 앞에 있는 유삼저 아가씨에게 감사(谢)하다는 뜻과 맥주 자피(啤酒)라는 이름의 물고기라는 이상야릇한 세싼제피주위(谢三姐啤酒鱼)라는 식당이 있다. 계림이나 양삭에 온통 맥주 물고기가 있나 하고 의아했는데 리강에서 잡은 잉어나 초어를 요리할 때 맥주를 사용한다니 참 특이하다. 중국에서 물고기 요리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 대신에 평범한 채소 요리를 몇 개 주문했는데 뜻밖에 가지로 만든 요리가 기가 막히게 맛있다. 체쯔냥러우(茄子酿肉)라고 부르는데 돼지고기를 가지에 싼 것으로 김밥처럼 돼지고기를 밥, 가지를 김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가끔 기발한 아이디어로 만들어 내는 중국요리에 감탄한다. 밥과 함께 먹으니 보기에도 좋고 꿀맛이다.
점심을 먹고 계림의 절경을 보러 상공산(相公山)으로 향했다. 빛과 그림자, 일출과 운해, 노을에 따라 그 천하제일의 풍광을 자랑한다는 카르스트 지형의 봉우리와 강물의 조화가 매번 다르다. 마침 운무가 잔뜩 끼어 선명하진 않지만, 오히려 신비 속에 쌓인 모습이 은근하고 매력적이다. 산 아래 리강을 오고 가는 배와 손톱만큼 작게 보이는 사람 움직임을 빼면 그저 고요하다. 계단을 오르내리는데 30분이면 충분하니 가볍게 오른 눈요기치고는 행복하다.
<맥주 물고기(왼쪽 위), 가지와 돼지고기 요리(왼쪽 아래), 상공산에서 본 리강(오른쪽 위, 아래)>
이번에는 굵은 대나무 10개를 서로 엮은 주파(竹筏)를 타고 낭만적인 유람을 떠난다. 리강의 한 지류인 위룽허(遇龙河)는 하천이 잔잔해 모터 소리 없는 대나무 배를 타기에 아주 좋다. 뱃사공이 젖는 배 위 의자에 앉아 신선처럼 그저 몸을 맡기면 된다. 경사가 급한 하천을 오를 때는 자동으로 대나무를 흡착해 올려주는 장치를 타고 넘는다. 조용한 하천이지만 관광객이 많아 1m 좀 넘는 급류를 타고 내릴 때 즉석 사진을 촬영해 팔기도 한다.
<대나무 배 사진촬영(왼쪽), 위룽허 대나무 배 유람(오른쪽 위, 아래)>
조용하게 낭만을 즐기는 위룽허라면 왁자지껄 시끄러운 낭만을 만끽하려면 시제(西街)로 가야 한다. 중국의 3대 풍물 거리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하는 곳이다. 온갖 식당, 술집, 나이트클럽, 객잔, 공예품 가게로 붐비며 배낭여행객을 위한 놀이문화가 풍부한 유명한 거리다. 튀김만두를 판다고 해서 찾아간 식당에서 계림의 명주인 라오쟈오싼화(老窖三花) 브랜드의 술 한 병을 샀다. 53도 125mL 2병 호리병 세트의 술 맛이 입에 착 달라붙는다. 포장지에 ‘복副과 녹禄이 당신과 함께 세상으로 나아가다’는 메시지도 마음에 든다.
<양삭 시제의 모습(왼쪽), 계림 명주와 한잔(오른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