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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odle talk

[푸드칼럼] 노봉수 교수의 '맛의 비밀' 시리즈 - 느끼한 맛

노봉수 교수의 '맛의 비밀' 시리즈 ④

<느끼한 맛>

 

 

 

<기름을 사용한 튀김과 전 요리>

 

 


"느끼하다"란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비위에 맞지 아니할 만큼 음식에 기름기가 많다.' 또 '기름기가 너무 많아 비위에 거슬리다.'라고 말하고 있으며 '먹은 것이 내려가지 않고 자꾸 가슴에 쌓이는 듯한 느낌이 있다.'는 뜻을 표현한다. 이 단어는 사람의 외형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하기 보다는 음식과 관련지어서 사용하고 있다.


맛을 구분할 때 단맛, 신맛, 짠맛, 쓴맛, 감칠맛으로 크게 나누는 다섯 가지 표현 외에 매운맛, 떫은맛 등을 학술적으로 사용하고는 있는데 여기에 덧붙여 느끼한 맛이라는 표현도 하나 더 추가해야할 듯하다. 지방의 맛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느끼한 맛은 중요한 맛 성분을 표현한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패스트푸드 레스토랑에 가서 치즈가 가득한 피자나 프렌치프라이를 먹고 있으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기름진 맛에 빠져들면서 톡 쏘는 콜라를 찾게 된다. 강한 산성에 해당하는 차가운 콜라로 혀를 씻어 주어야 비로소 입안이 개운해짐을 느낀다. 사람들이 패스트푸드 같은 기름진 음식 맛에 빠져드는 것은 사람의 혀가 느끼한 맛에 대하여 우호적이라는 의미이다.


기름 중에서도 동물성 기름보다는 식물성 기름이 건강에 좋다는 연구보고들이 많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였을 때의 일이다. 세계적인 패스트푸드 레스토랑에서 감자튀김에 사용하던 동물성 기름을 한 번에 식물성 기름으로 바꾸어 버린 적이 있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매출액이 뚝 떨어졌다는 사실이다.


왜 건강에 좋다는 기름으로 바꾸었는데 소비자들은 싫어할까?

그 이유는 식물성 기름이 동물성 기름에 비하여 맛이 없기 때문이다. 이만큼 우리 인간의 혀는 기름에서 흔히 느낄 수 있는 맛에 예민하며 동물성 기름과 같은 기름진 맛에 더욱 매력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우유와 참치캔의 지방/무지방 제품 구분>

 

 


느끼한 맛에 대한 호감은 또 다른 부분에서도 쉽게 발견된다. 우유에는 일반 우유가 있는가 하면 우유 속의 지방을 제거한 탈지우유가 있다. 일반 우유도 산지에 따라서는 보통 우유에 비하여 지방함량이 더 높은 우유들도 있다. 소비자들에게 어떠한 정보도 주지 않고 다양한 우유를 맛보게 하면 많은 사람들이 지방을 많이 함유한 우유가 더 고소하고 맛이 좋다는 평가를 한다. 그 만큼 사람들은 지방의 맛을 즐기고 있다는 뜻이다.


참치 통조림을 만드는 과정에서도 신속하게 열처리를 하기 위해 물 대신 기름을 넣는 경우가 있다. 기름은 물보다 열을 빠르게 전달할 뿐 아니라 100℃ 이상의 온도까지도 올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름은 칼로리가 높기 때문에 저칼로리 참치제품의 경우에는 기름 대신 물을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기름이 들어간 참치 통조림이 물을 사용한 참치 통조림에 비해 맛이 좋다는 평가를 한다. 이 또한 느끼한 맛에 대한 호감도가 높다는 징표이다.


그렇다면 왜 고소한 맛을 좋아하는 소비자들을 위해 참기름을 넣지 않았을까?

그것은 고온·고압으로 살균하는 과정에서 참기름이 타면서 색과 맛이 변해버릴 수 있으며 해바라기씨유의 경우에는 맛은 유지되지만 가격 면에서 너무 비싸다는 문제가 남아 있다. 한편, 면실유는 맛이 깔끔하고 향이 없어 참치 고유의 담백함을 잘 살릴 수 있다.


최근 미국의 세인트루이스 워싱턴 의과대학 연구팀은 어떤 특정 단백질이 많을수록 지방의 맛을 훨씬 더 민감하게 감지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는 사람이 지방의 맛을 느끼고 있는 특정 수용체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이다. 이런 특정의 단백질을 많이 만들어 내는 사람들은 쉽게 지방을 감지할 수 있기 때문에 소위 지방 감지레이더를 부착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지방에 대하여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은 더 이상 지방 섭취를 하지 않으려 할 것이고 지방에 대하여 둔감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은 지방에 대한 맛을 느낄 때까지 더 많은 지방을 섭취하려고 할수도 있을 것이다.


스님이나 채식을 위주로 식사를 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느끼한 맛을 가장 선호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평소 기름진 음식을 잘 먹지 않기 때문에 기름성분으로부터 느껴지는 느끼한 맛을 선호하지 않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아마도 이런 사람들은 기름 성분에 예민한 반면 평소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는 사람들은 느끼한 맛을 선호하고 지방에 대하여 덜 민감한 편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다른 사람과 같은 정도의 만족감을 느끼기 위해서는 기름을 싫어하는 사람보다 더 많은 양의 지방 섭취를 하려고 할 것이다.


지방 감지 레이더가 특정단백질로 하여금 지방을 섭취하는데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 생각된다. 이러한 지방 감지 레이더의 역할을 찾아내는 것은 앞으로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영역이다. 왜냐하면 지방섭취는 비만에 영향을 미친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이 특정 단백질을 보다 많이 만들어 내는 사람들은 쉽게 지방을 감지하여 지방 섭취를 적게 할 수 있기 때문에 비만인 사람들로 하여금 이런 특정의 단백질을 만들어 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관건이라 볼 수 있다. 그것이 식품을 통해서 가능할 것인가, 아니면 간단한 수술과 같은 다른 조치를 통하여 가능할 것인가?


비만의 열쇠를 다이어트를 통해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혀에서 맛을 느끼는 감각 수용체로 하여금 보다 지방을 더 빠르게 감지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방법으로 접근한다는 것이다. 느끼한 맛에 대한 만족도를 빠르게 느낄 수 있도록 한다면 더 이상의 지방음식을 먹으려 하지 않을 것이고 나아가 체중 조절이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나 동물 모두 지방함량이 높은 고칼로리 식품을 더 좋아한다. 고지방 식단을 먹을수록 지방 감지 레이더 역할을 하는 특정 단백질을 적게 만든다는 사실은 비만인 사람일수록 이런 단백질을 만들어 내는 정도가 적다는 말이며 나아가 우리 몸의 이 특정 단백질의 양은 유전을 통해서 또는 우리가 먹는 식단 모두에 의해서 바뀔 수도 있다. 이제까지는 지방의 질감에 따라 고지방 음식을 선호하고 감지하는 것으로 알아 왔으나 마치 단맛, 신맛, 쓴맛, 짠맛이 그런 것처럼 맛을 감지하는 수용체를 어떻게 유도하느냐에 따라서 맛의 선택을 조절할 수 있는 일이다.


비만인 사람의 경우 평소 지방 섭취를 줄이고 식이섬유가 풍부한 과일이나 채소의 섭취를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느끼한 맛을 싫어하게 만들 수 있다면 비만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