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훈 교수의 식품심리학⑤
<다이어트를 위한 행동과학적 접근>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다이어트다
다이어트는 매우 어려운 인류의 숙제 중 하나다. 건강과 관련해서도 그렇고 심미적으로도 다이어트에 대한 관심은 갈수록 증폭되고 있다. 그래서 여러 가지 방법들이 나오지만 아직 정답은 없다. 100년이 넘는 동안 식품영양학과 생리학 분야에서 나온 건강한 다이어트 관련 수만 가지 연구 결과를 종합해 보면 공통분모로 나오는 모범답안은 딱 하나다. 바로 ‘좀 적게 먹고, 채소류로부터 섬유소를 적절히 섭취하고, 좀 천천히 먹어라’라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인류가 이룬 다이어트 관련 과학적 성과는 결국 예전부터 엄마가 맨날 우리에게 하던 바로 그 말이던 것이다!
누군가가 부작용이 없는 확실한 다이어트 방법을 고안해 내거나 발견한다면 아마 그 사람은 확실히 노벨 의학상을 타게 될 것이다. 그만큼 다이어트는 어려운 문제이다. 다이어트는 칼로리 섭취와 직결되어 있기 때문에 식품과 매우 연관이 크다. 그런데 대개의 다이어트 방법들을 보면 ‘무엇을 먹어라, 무엇은 먹지 말아라’라는 식의 제안이 대부분이다. 하나 분명한 건 특정 음식이 좋고, 특정 음식은 건강에 좋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대부분 건강에 좋지 않은 방법이다. 과학적인 근거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게다가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식단을 내 마음대로 짜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무엇은 먹고 무엇은 먹지 말고의 방법이 아닌 다른 방법은 없을까? 먹고 싶은 대로 먹으면서 다이어트하는 방법은 없을까?
<야채라면 샐러드, 메밀소바 샐러드>
행동과학 관점에서 접근해 보자
일단 먹고 싶은 대로 먹으면서 다이어트 하는 방법은? 물론 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이런 방법은 있다. 나도 모르게 더 먹어서 살이 찌는 것을 방지하는 방법은 있다. 내가 먹고 싶어서 먹는 것은 그대로 먹자. 그리고 내가 먹고 싶지도 않은데 나도 모르게 더 먹게 되는 그런 행동을 줄여보자. 그런 행동과 상황만 제대로 통제해도 체중은 조금씩 줄어들 것이다. 이런 접근은 심리학과 식품 마케팅 분야에서 상당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식품 마케팅 분야 학계에서는 소비자들이 건강하게 식품을 소비하는 방법에 대한 연구가 많이 진행되고 있다. 필자 역시 비만과 고지혈증에 시달리고 있지만 이 문제를 행동과학적인 방법으로 접근해서 힘들지 않게 체중을 조금씩 줄여 나가는 방안에 대해 계속 고민하고 연구하고 있다. 이와 관련한 수많은 연구가 있지만, 그 중 크게 네 가지 중요한 가이드라인에 대해 이야기 해보겠다.
식품 포장지 라벨에 속지 말자
유기농 식품은 매력적이고 유기농 식품을 구매하는 것은 매우 가치가 있는 일이다. 우리 환경을 보호하고, 지속가능한 농업 생산에 크게 기여한다. 그러다 보니 왠지 유기농 식품을 먹으면 건강해 질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이를 ‘후광 효과(Halo Effect)’라고 한다. 어떤 것의 부분이 우수하면, 다른 부분도 우수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효과를 말한다. 실제 유기농 식품은 일반 식품과 비하여 성분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 건강에 미치는 효과도 전혀 없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유기농은 건강에 좋을 거라고 생각한다. 코넬 대학교 식품 마케팅 분야의 Wansink 교수는 사람들이 ‘유기농’이라고 하면 더 칼로리가 낮고, 지방함량이 낮다고 추정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즉, 유기농이라고 하면 더 먹는 경향이 나타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오히려 칼로리 섭취가 더 많이 늘어날 수 있으니 유의해야 한다.
Wansink 교수는 또한, 식품 포장지에 ‘저지방(low fat)’이라는 표시가 있으면 소비자들이 안심하고 더 많이 먹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하프 사이즈(half size) 제품’이라고 포장지에 표시한 경우에 ‘더블 사이즈 (big size) 제품’이라고 표시한 경우보다 소비자들은 훨씬 더 많이 먹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가이드라인 1) 유기농, 저칼로리, 저지방, 하프 사이즈 라는 식품 포장지의 문구는 내 맘을 놓게 만들어 나도 모르게 더 많이 먹게 된다. 현혹되지 말고 정신 바짝 차리자!
그릇 사이즈에 신경 쓰자
간단하다. 그릇 사이즈를 크게 하면 많이 먹게 된다. 그릇 사이즈를 작게 하면 덜 먹는다. 내 몸은 ‘한 그릇 먹었어!’라는 사실에 대한 인지를 중요하게 여긴다. 한 그릇 먹었으면 누구나 ‘충분히 먹었다’라고 느끼며 그만 먹으려고 한다. 어린이들의 경우 이 효과가 더 강하게 나타난다. 특히 외향적인 아이일수록 ‘한 그릇 뚝딱 다 먹었어’라는 사실을 다른 어른들에게 보여 주고 싶어 한다. 그릇 사이즈를 적게 해도 포만감은 거의 차이 나지 않는다.
집에서 음료수를 마시는 컵도 투명 컵으로 그리고 목이 좁은 것으로 바꾼다. 우유나 주스를 마시는 행위 자체는 문제가 없다. 탄산음료도 가끔씩은 마시면 기분 좋다. 적당히만 먹고 마시면 전혀 문제가 안 된다. 문제는 내가 의도하지 않게 많이 마시는 것이다. 투명 컵이면 내가 따르고 있는 음료수가 얼마나 차 오르는 지 눈으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게다가 목이 길고 좁은 것이면 목이 굵은 것보다 음료수가 더 빨리 차오른다. 그래서 덜 따르게 되고 결과적으로 마시는 양이 줄어 든다. 한 잔 마시면 대부분 만족한다. 컵 모양만 바꾸어도 적게 마시게 된다.
가이드라인 2) 밥그릇, 국그릇, 찌개용 그릇은 작은 것으로 바꾸자. 음료용 컵은 투명하면서 목이 좁고 긴 컵으로 바꾼다.
기분을 조절하자
우리 서울대 푸드 비즈니스 랩에서 예전에 수행했던 연구에 의하면 순간적으로 외롭다고 느낄 때 자신도 모르게 높은 칼로리의 음식을 선택하게 된다. 외로움에 빠지면 장기적인 목표에 관련된 자기 통제 능력이 떨어지고 순간적인 쾌락을 선택하게 된다. 즉 외로워 질수록 의도하지 않은 칼로리 섭취나 과식의 확률이 올라간다. Grag, Wansink, & Inman의 연구 (2007)에서도 슬픈 감정에 빠져 있을 때 소비자들이 칼로리가 높은 음식을 훨씬 많이 먹게 되는 경향을 발견한다. 슬픈 영화를 보고 나면 사람들이 더 많이 먹는다는 사실에도 유의하자.
또한 자신의 외모에 대한 자존감이 낮은 사람의 경우 소포장 제품을 만나면 오히려 자기 통제력을 잃으며 과식하는 경향이 나타나는 연구 결과가 있다. 적게 먹기 위해서 대포장 제품을 사지 않고 소포장 제품을 사는데 오히려 역효과가 나는 것이다. 반면에 자신의 외모에 대한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대포장 제품을 먹든 소포장 제품을 먹든 섭취량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외모에 대한 자존감의 차이가 섭취량의 차이를 낳을 수 있다는 이 충격적인 결과는 평상시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감정을 가지는 것이 다이어트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가이드라인 3) 기분이 우울하거나 슬플 때에는 특히 음식 섭취에 유의해야 한다. 긍정적인 감정을 가지도록 노력하자.
식당에 가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동료들과 어울려서 식당이나 바에 갈 일이 간간히 생긴다. 게다가 푸짐한 뷔페에 갈수도 있다.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좋을까? Wansink & Payne (2008)은 뷔페에서 슬림한 고객의 행동과 과체중 고객의 행동이 다르게 나타나는 것에 주목했다. 아래의 리스트를 보고 자신을 한번 진단해 보자. 그리고 과체중 고객이 하는 행동을 내가 하고 있다면, 그 행동을 한번 바꾸어 보도록 하자.
1) 슬림한 고객은 뷔페 식대 전체를 둘러 본 후 접시를 집는 반면, 과체중 고객은 접시부터 집어 들고 식대로 바로 가는 성향이 있음
2) 슬림한 고객은 작은 접시를 집어 들고 과체중 고객은 큰 접시를 집어 듦
3) 슬림한 고객은 뷔페 식대를 등지고 앉는 반면 과체중 고객은 식대를 바라보고 앉는 성향이 강함
4) 슬림한 고객은 뷔페 식대와 멀리 떨어져 앉는 반면 과체중 고객은 식대와 비교적 가까이 앉음
5) 슬림한 고객은 부스에 앉는 경향이 강하고, 과체중 고객은 테이블에 앉는 경향이 강함
6) 슬림한 고객은 냅킨을 무릎 위에 올려 놓는 경향이 강함
또한 식당에 가면 안쪽에 앉는 것 보다 입구나 창가 쪽에 앉는 편이 덜 먹는데 도움이 되고, 하이체어가 있다면 그 곳에 앉는 편이 낫다. 식당의 TV 앞에 앉게 되면 나도 모르게 빠르게 많이 먹게 되므로 TV 앞에 앉지 않는 편이 낫다. 그리고 스마트폰이나 신문을 읽으면서 식사를 하는 것도 다이어트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이러한 내용들은 결국 하나로 귀결된다. ‘내가 더 많이 먹는 것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다.
즉, 내가 음식을 더 먹는 것을 불편하도록 만들고, 내가 먹는 모습이 다른 사람들에게 더 노출되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굳이 더 먹을 필요가 없는 데에도 더 먹는 행동을 못하도록 하자
가이드라인 4) 식당에 가서는 과식하기 불편한 자리에 앉고, 과식하기 불편한 상황으로 만들자.
행동과학적 관점에서의 다이어트
요는 이렇다. 행동과학적 관점에서의 다이어트 가이드라인은 나도 모르게 더 먹는 행동을 줄이자는 쪽으로 제언하고 있다. 특정 음식을 더 먹고, 특정 음식을 먹지 말자는 접근과는 차이가 있다. 살다 보면 고열량 음식을 먹을 수도 있고, 뷔페에 갈 수도 있다. 적당히 먹는 것은 별로 문제가 안된다. 별로 원하지도 않는 음식을 나도 모르게 더 먹는 행동을 줄이기만 해도 체중을 서서히 줄일 수 있다. 어떤 측면에서는 가장 쉬운 다이어트이기도 하다.
안타깝게도 사람은 생각보다 그리 이성적이지 않다. 햄버거 하나를 놓고 열량을 추정하라고 했을 때 보다, 햄버거와 신선한 샐러드를 함께 놓고 열량을 추정하라고 하면 사람들은 후자의 열량이 더 낮다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더 먹게 된다. 이 역시 후광 효과 (Halo Effect)다. 그래서 햄버거 가게보다 샌드위치 가게에 가서 오히려 더 과식해 버리는 실수를 저지른다. 어떻게 하면 이런 비이성적인 행동을 통제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지각하지 않으려고 매일 보는 거실 시계를 일부러 5분 더 빠르게 맞춰 놓기도 한다. 자신이 자기를 언제나 통제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내 자신을 교묘하게 속이는 것이다. 때론 알면서도 속고, 때론 나도 모르게 속는다. 행동과학적 관점에서의 다이어트도 이와 같다. 기본적으로 생활에서 내 자신을 잘 통제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동시에 우리는 언제나 이성적이지 않기 때문에 나 자신을 교묘하게 속이는 환경 설정이 필요하다. 투명하고 목이 좁고 긴 잔을 구비하고, 밥그릇을 좀 작은 걸로 바꾸자. 그리고 식당에 가서는 좀 더 불편한 자리에 앉도록 하자.
내 자신을 잘 통제하려면 기본적으로 스마트한 소비자가 되어야 한다. 스마트한 소비자가 되는 가장 쉽고 현명한 방법은? 누들푸들의 훌륭한 필진들이 제공하는 푸드칼럼들을 꼼꼼히 읽어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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