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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odle talk

[푸드칼럼] 태국 쌀국수 '옌따포' 이야기

한국인에게 생소한 태국 쌀국수

'옌따포' 이야기




여행자의 거리 카오산로드, 방콕의 명물인 왕궁과 왕립사원(왓프라깨우), 태국의 과거와 현재를 재현하는 방콕국립박물관 등 수많은 볼거리가 있는 방콕 구시가지는 관광객들을 설레게 한다. 지난 2011년 10월 대홍수를 겪으며 왕궁주변이 모두 침수되고 선착장들도 문을 닫았지만, 이를 계기로 리뉴얼하여 재탄생한 선착장들이 개장하면서 더욱더 많은 관광객들이 몰리고 있다. 그 중에서 가장 큰 변화가 생긴 곳은 마하랏 선착장이다. 방콕에서 내로라하는 레스토랑들과 카페들이 마하랏 선착장 강가에 모여 운치 있는 휴식공간을 제공하는데, 길가의 분주함 속에서 잠시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다.


<새단장한 마하랏 선착장(좌), 전망대에서 본 짜오프라야 강가(우)>




<마하랏 선착장 주변도로의 노점상(좌), 노점상의 골동품이나 불상 펜던트(우)>
(마하랏 선착장 주변 도로에는 각종 노점상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는데 골동품이나 불상 펜던트를
파는 노점상에는 재미있는 볼거리가 가득하다. 서울의 인사동을 연상케 한다.)




새롭게 오픈한 마하랏 선착장에 ‘롯싸니욤’이라는 국수집이 생겼다. 방콕에 여러 지점을 두고 있는 쌀국수가 맛있는 집이다. 가게 앞 ‘Ros’niyom Thai street food and noodles’ 라고 적힌 간판을 보니 쌀국수와 팟타이같은 음식을 팔 것이라 미루어 짐작이 된다. 가게 안은 길거리 포장마차와 현재 유통되지 않는 모조품 소품 전시를 통해 태국의 1960, 70년대 모습을 상기시킨다.


<롯싸니욤의 전경과 내부>




태국에서 쌀국수를 주문하는 것은 초보자에게 은근히 까다롭다. 면의 굵기에서부터 건더기로 무엇을 넣을지, 육수양념은 어떤 것으로 할지, 물면인지 비빔면인지를 모두 선택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률적인 메뉴주문에 익숙한 사람에겐 번거로울 수도 있으나, 내 입맛대로 골라먹는 재미가 있다. 또한 어느 국수집에 가든지간에 테이블 위에는 각종 소스가 비치되는데, 개개인의 기호에 맞게 맵고 짜고 시고 단맛을 고춧가루, 액젓, 식초, 설탕 등으로 첨가할 수 있다. 이런 것을 보면 태국인의 개인적인 성향이 식생활에서도 잘 드러나는 것 같다.


<테이블에 비치된 각종 소스(좌), 선택주문이 가능한 다양한 종류의 면과 건더기(우)>




오랫만에 ‘옌따포’를 주문해보았다. 일반 쌀국수집에서 옌따포는 다른 메뉴와는 달리 건더기가 정해져 있으므로 면의 종류만 선택하면 된다. 쎈야이 옌따포 행 (굵은 면 옌따포 비빔국수)과 쎈렉 옌따포 남(가는 면 옌따포 물국수)을 시켰는데 혼자서 두 그릇을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양이 많지는 않았다. 새콤달콤하면서 매콤한 국물은 중독성이 있다. 특히 방콕처럼 더운 날씨에는 살짝 자극적인 맛이 입맛을 돋운다. 단맛 짠맛 신맛 매운맛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면 그게 바로 태국적인 맛이 아닐까.


<굵은 면 옌따포 비빔국수(좌), 가는 면 옌따포 물국수(우)>
(옌따포에는 튀긴 만두피를 고명으로 얹어준다.)




방콕의 왕궁주변은 상인들과 관광객들, 주변대학의 학생들로 늘 붐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이곳은 개발이 제한되어 온 탓에 높은 빌딩도 없고 저녁 7시만 지나도 어둡고 한산해진다. 탐마쌋대학교 타프라짠 캠퍼스는 왕궁에서 500미터정도 거리에 있는데, 6년 넘게 이곳에서 공부하다보니 누군가에겐 이국적인 관광지가 나에겐 일상이 되었다. 일상이 되어버린 것을 다시 낯선 눈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러나 아직도 낯설었던 기억이 선명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이 ‘옌따포’ 국수다. 핑크 빛 국물에 물든 핑크색 면은 겉보기엔 예뻤지만 왠지 먹거리로 느껴지지는 않았고, 면 이외의 재료들도 여러모로 생소했던 기억이 난다. 옌따포에는 돼지선지, 불린 오징어, 각종 어묵과 공심채 등이 쓰이는데, 어묵을 제외하면 다 생소한 식재료였다. 특히 옌따포에 넣는 오징어는 한국에서 먹어본 적이 없는 맛이다. 처음에는 이 검불그스레한 오징어를 먹는 게 내키지 않았지만, 그 맛을 알고나니 옌따포에 안 넣으면 섭섭할 정도로 좋아하게 되었다. 조리법은 베이킹소다 한 스푼을 넣은 물(1리터)에 건오징어를 24시간동안 불리면 완성되는데, 식감이 곤약과 비슷하다.

옌따포는 태국의 여느 쌀국수처럼 면의 굵기를 기호에 맞게 주문할 수 있는데, 보통 가장 굵은 면인 ‘쎈야이’로 먹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그래서 주문할 때 줄임말로 “야이 포”라고 하면, 굵은 면을 넣은 옌따포를 가져다 준다. 태국에 거주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일이다. 나도 태국인처럼 해본다는 것이 거꾸로 “포 야이”라고 말해 주인아주머니를 웃긴 적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만약 냉면집에서 멀쩡하게 생긴 외국인이 당당하게 “냉물 하나요”라고 한다면? 그리고 그게 “물냉 하나요”였다는 걸 알게 된다면 얼마나 황당하고 웃길까.


<학교앞 맛집 ‘짜른차이’ 전경(좌), 옌따포를 만드는 모습(우)>




분홍색 국물에 대한 궁금증이 생겨서 찾아보니 소스에 그 답이 있었다. 핫 핑크의 강렬한 옌따포 소스는 인공색소일 것 같이 보이지만 사실 천연재료로 만들어진다. 옌따포 소스는 ‘따오후이’라고 불리는 숙성발효두부(Fermented bean curd)를 갈아서 만드는데, 두부를 숙성시킬 때 적미와 고춧가루를 함께 넣어주면 붉은색을 띈 발효두부가 되는 것이다. 가공식품에는 ‘홍국균 색소’가 들어가기도 한다. 그리고 레시피에 따라 옌따포 소스를 만들 때는 토마토 케찹이나 칠리페이스트가 첨가되기도 한다. 중국인들이 즐겨먹는 숙성발효두부는 말레이시아나 태국 등 동남아에서도 널리 사용된다.


<분홍색 옌따포 소스(좌), 굵은 면을 넣은 옌따포 물국수(우)>




우리나라에선 쌀국수하면 베트남을 먼저 떠올릴 수 있겠지만, 태국의 쌀국수 역시 다양한 종류와 맛을 자랑한다. 새콤달콤 매콤짭짤한 맛의 조화를 이룬 태국의 쌀국수는 한번 그 매력에 빠지면 자꾸 먹고 싶어진다. 한국인 여행책자에는 소개되지 않은, 새로운 맛에 도전하고 싶다면 옌따포를 먹어보길 권한다.


<프라짠선착장 입구와 탐마쌋대학교(좌), 방콕의 명물 뚝뚝 택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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