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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odle talk

[푸드칼럼] 색과 소비자의 음식 소비 심리학

색과 소비자의 음식 소비 심리학

 

 

 

▲ 빨간색 요거트

 

네덜란드에 위치한 세계 최고의 식품 연구소 중 하나인 NIZO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었다. 운 좋게도 음식의 맛을 테스트하는 관능 실험실에 들어가서 15인의 패널들과 함께 훈련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물론 동양인은 나 하나였다. 하얀색 가운을 입은 NIZO의 연구원은 패널들에게 두 가지 음료를 나누어 주었다. 하나는 빨간색이었고, 다른 하나는 파란색이었다. 먼저 빨간색을 맛보라고 하여서 15명의 패널들은 빨간색 음료를 먼저 입에 넣었다. 그리고 그 연구원은 우리들에게 질문하였다. 이 음료는 무슨 맛인가?

 

 

<빨간색, 파란색 음료 테스트>

 

 

 

입안에 들어간 음료는 약간 시큼했고 미끈거렸다. 그리고 유제품 특유의 단백질의 맛이 느껴졌다. ‘아, 요거트다!’ 그리고 여기에 입혀져 있는 그 맛, 정확히는 향(flavor)이 무엇인지를 맞춰야 한다. 이 빨간색 요거트의 향은 분명히 아는 익숙한 향인데, 이게 머릿속에서 돌기만 할 뿐 말로 나오지가 않는다. 고개를 돌려 다른 패널들을 보니 다들 나와 비슷한 심정인 듯 했다. 다들 난감한 표정이다. 약간의 정적이 흐른 후 한 여자 패널이 손을 들고 답을 이야기한다. ‘스트로베리!’ 연구원은 미소를 지으며 마치 기다렸던 오답이 나왔다는 듯 이야기 했다. ‘아니에요.’ 다른 패널이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또 답을 말한다. ‘라즈베리?’ 연구원은 또 같은 톤으로 역시 아니라고 대답한다. 다들 더 깊은 고심에 빠졌다. 분명히 아는 향인데 그게 머릿속에서 돌기만 할 뿐 답이 나오지 않는다.


‘아, 이거 트릭이 있군!’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탁 치고 지나갔고, 나는 눈을 감고 다시 맛을 보았다. 그렇다. 핵심은 눈을 감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향이 무슨 향인지를 맞추려고 하기 보다는 이 향을 언제 느꼈었는지, 그 상황으로 돌아가는 기억 회상을 시도하였다. 드디어 그 순간이 떠 올랐다. 예전에 페리에라는 탄산 음료수를 마실 때 느꼈던 바로 그 향이었다. 나는 눈을 뜬 후, 손을 들고 답을 말하였다. ‘라임!’ 내 답을 들은 NIZO의 연구원은 살짝 놀랐다는 표정을 지으며 답을 한다. ‘틀렸어요. 하지만 비슷했네요. 답은 레몬향입니다.’ 또 다른 음료, 파란색 음료는 바나나 맛이었다.


이 실험은 우리의 색과 향에 대한 고정관념에 관한 것이다. 우리 뇌는 경험에 의해서 빨간색이라고 하면 딸기향을 본능적으로 떠올리고, 보라색은 포도향, 노란색은 바나나향이라는 강한 연결을 가지고 있다. 빨간색의 음료를 보았으니 이미 머릿속은 ‘딸기!’를 외치고 있는데, 실제로는 다른 향이 나니 혼란스러워 지는 것이다. 그래서 맛을 제대로 느끼려면 눈을 감아야 한다. 시각 정보, 즉 선입견을 차단하면 음식 본연의 맛을 더 잘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눈을 감는다고 만족감이 더 커지는 것은 아니다. 음식의 맛과 어울리는 시각 정보가 함께 들어 올 때 만족이 극대화 되고, 음식의 맛과 어울리지 않는 시각 정보가 들어오면 만족도가 떨어지게 된다. 파란색 국물의 라면, 어떤가?

 

 

 

색과 섭취 행동

 

음식의 색은 식욕과도 관련이 있고, 음식을 소비하는 행동과도 관련이 있다. 사람들은 대체로 파란색에서 식욕을 잃게 된다. 테이블보나 접시의 색을 파란색으로 하는 것 만으로도 전반적인 식욕이 줄어 든다. 또한 색의 대비 효과도 중요하다. 행동과학 기반의 다이어트 연구로 유명한 코넬 대학교의 Wansink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음식의 색과 비슷한 색상의 접시에 음식을 올릴 때 사람들이 더 많은 음식을 덜어 먹는다고 한다. 즉, 빨간 토마토 소스의 파스타를 덜어 먹을 때 붉은 계열 색깔의 접시를 사용하면 더 많이 떠 먹게 되고, 흰색 접시 위에 올려 먹으면 덜 뜨게 된다고 한다. 아마도 토마토 소스 파스타를 파란 접시에 덜어 먹는다면 가장 적게 먹게 될 것이다. 크림 소스의 경우는 토마토 소스와는 반대로 흰 접시를 쓰면 과식하게 될 수 있으니 피하는 것이 좋겠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음료를 마실 때에도 색에 따라서도 갈증 해소를 다르게 느낀다. Guéguen이라는 학자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차가운 색상의 음료, 즉 파란색이나 초록색의 음료를 마실 때 따뜻한 색상, 즉 빨간색이나 노란색의 음료보다 갈증이 더 잘 해소된다고 느낀다. 이전 칼럼에서도 한번 이야기 했지만, 사람들은 하얀색 용기에 담긴 푸딩이 노란색이나 검은색 용기보다 더 풍부한 우유의 향이 느껴진다고 반응한다. 반대로 검은색 용기에 담긴 푸딩은 쓴맛이 느껴진다고 한다. 이처럼 사람의 맛에 대한 인지는 색으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는다.

 

 

 

혀를 한번 속여 보자

 

내가 이끌고 있는 서울대 푸드 비즈니스 랩에서도 이런 음료의 색에 대한 연구를 한 적이 있다. 우리는 실험을 위해 딸기 맛 음료를 개발했는데, 붉은 색 색소를 넣지 않은 무색의 형태로 제공했더니 사람들은 이 음료가 맛이 없다고 했다. 대체로 맛이 맹맹하고 단조롭다고 느꼈다. 이번에는 똑같은 이 딸기 맛 음료에 빨간 색소를 살짝 넣어서 제공해보았다. 역시 사람들의 만족도가 크게 올라갔다. 새콤한 딸기 향이 좋고 청량감이 있다고 했다. 이렇게 사람들은 색에 대해 강렬하게 반응한다. 많은 사람들이 색소가 몸에 나쁠 것이라 말하며 거부하지만, 이렇게 색소가 첨가되었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 맛에 대한 인식과 만족도는 크게 변한다. 색이 있을 때 훨씬 맛있게 느낀다. 그래서 식품 기업과 외식 기업은 음식의 좋은 색을 내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일 수 밖에 없다.


자, 지금부터가 진짜 실험이다. 이번에도 똑같은 딸기 맛 음료를 무색으로 제조한 후, 이번에는 빨간색 병에다가 담아서 제공했다. 즉 색소가 전혀 들어가지 않은 음료인데, 빨간색 병에 들어가 있으니 얼핏 보면 빨갛게 보인다. 하지만 병 속을 잘 들여다 보면 역시 투명한 음료이다. 사람들의 만족도는 어땠을까? 사람들은 우리의 빨간색 병에 담긴 음료에 잘 속아 넘어 갔다. 만족도가 역시 매우 높아서 음료에 색소를 넣었을 때만큼 올라갔다. 우리의 혀는 이렇게 잘 속아 넘어간다. 그래서 우리 푸드 비즈니스 랩은 음료에 굳이 색소를 넣지 않아도 병 색깔만 잘 조절하면 충분히 만족도를 올릴 수 있다고 음료 회사에 이야기하고 있다. 물론 그 음료를 컵에 따라서 먹지 않고, 바로 병 채로 마신다는 전제 하에서 이야기다.

 

 

 

식품심리학 연재를 마치며

 

우리는 좋은 일이 생기면 함께 모여 무언가를 먹고 마시며 그 즐거움을 나눈다. 이것은 음식 섭취 행동이 단지 생명 유지를 위한 목적뿐만 아니라 매우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음식을 먹을 때 건강하게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즐겁게 먹는 것도 중요하다. 음식을 먹을 때 지나치게 건강과 결부시면 삶이 피폐해 진다. 생일 때는 생크림이 잔뜩 올라간 케익을 나눠 먹어야 즐겁지, 건강 생각한다며 케익 통밀빵을 나눠 먹는다면 어떨까? 피자를 먹을 때는 콜라와 함께 먹어야지 건강을 생각한다며 뜨거운 녹차와 함께 먹을 순 없는 일이다.


우리가 먹는 음식들 중에 본질적으로 좋은 음식, 본질 적으로 나쁜 음식은 없다. 그걸 어떻게 조합해서 적당히 먹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즉, 좋은 식단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핵심은 골고루 좀 적게 먹는 것이다. 고기는 나쁜 음식이 아니다. 야채와 약간의 탄수화물과 함께 조합하여 좋은 식단으로 만들어 먹으면 된다.


마찬가지로 라면도 나쁜 음식이 아니다. 라면과 함께 무엇을 먹느냐가, 즉 어떤 식단으로 만들어 먹느냐가 중요한 포인트이고, 핵심은 역시 무엇이든 골고루 좀 적게 먹는 것이다. 밤늦게 한 젓가락 뜨는 신라면의 얼큰함, 일요일 늦은 점심에 가족이 둘러 앉아 냄비 째 나눠 먹는 짜파게티의 즐거움은 우리 삶을 좀 더 재밌게 해주는 원동력이 된다. 즐겁게 먹자!

 

 

 

<문정훈 교수>

 

 

 

연재의 첫 글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식품은 인간의 오감을 사용하여 소비하는 유일한 제품이다. 그래서 다른 제품들보다도 더욱 심리적, 행동과학적 측면의 접근이 중요하다. 그래서 우리 서울대 푸드 비즈니스 랩에서는 심리적, 행동과학적 측면에서 더 잘 먹고, 잘 마시고, 잘 노는 방법에 대에서 끊임없이 연구하고 있다. 비록 누들푸들에서의 연재는 여기서 마치지만 앞으로도 우리 서울대 푸드 비즈니스 랩의 다양한 고민과 연구들을 우리 누들푸들 독자들과 나누었으면 한다. 그 내용들을 앞으로도 계속 보고 싶으시다면 문정훈 교수의 페이스북(http://www.facebook.com/junghoon.moon.3) 으로 들어 오시라!

다음에 더 재밌고, 맛있는 내용으로 누들푸들로 다시 돌아오고 싶은 마음과 함께. 안녕히.

 

 

 

 

 

※ 본 블로그에 게시한 글은 개인적인 것으로 농심의 입장, 전략 또는 의견을 나타내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