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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odle talk

[푸드칼럼] 아름다운 국도 닝장공로와 산맥 사이의 하서주랑

유채와 모래를 따라 실크로드 문화를 휘날리다,

아름다운 국도 닝장공로와 산맥 사이의 하서주랑

 


 

 

중원을 벗어나 서역으로 떠난 사람은 비단을 두르고 길을 열었다. 사람의 왕래가 늘어나자 그 길은 문명을 이어주는 징검다리로 승화됐다. 바로 실크로드다. 머나먼 길의 모래바람을 타고 사람의 서로 다른 생각에서 피어난 문화는 아름다운 길 위에서 피어났다. 그래서 실크로드는 아름답다.

 

하지만 막상 그 길은 험하고 모래를 닮은 회색 빛깔이라 자연이 주는 미적 공감은 미흡하다. 그러나 실크로드가 전쟁으로 막히면 우회하던 도로가 있으니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국도로 알려진 227번 닝장공로(宁张公路)가 그 주인공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유채로 뒤덮인 환상적인 유화다. 청해성 시닝(西宁)에서 감숙성 장예(张掖)를 남북으로 잇는 347킬로미터의 국도로 서서히 진입한다.

 

해발 3천 미터에 이르는 가파른 라오예산(老爺山)을 넘어서자 노란 유채가 비단처럼 펼쳐지고 7월이지만 다소 삭막하게 줄줄이 이어진 산맥 위로 설산과 하늘이 차례로 시야를 점령한다. 물론 때때로 구름도 시선을 두루 잡는다. 그야말로 생애 처음 보는 광경이라 아니할 수 없다. 전망대에서 서서 보는 유채의 향연은 도무지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 줄 모르게 한다. 천천히 그러나 시선은 창 밖을 향해 산을 내려가면 점점 유채는 샛노란 탈바꿈으로 또다시 태어난다.



 

<시닝에서 장예로 가는 227번 국도의 유채꽃밭과 설산>

 

국도 어디에라도 차를 세우면 그 자리가 곧 포토라인이다. 노란색과 하얀색, 파란색이 앵글 안에 하나로 들어오는 갈무리가 과연 어느 곳에 있을까 싶다. 가끔 새떼의 질주만 아니라면 고요한 꿈 속을 헤집고 나오기 힘들 것이다. 꽃밭 속에 들어가 보기도 하고 도로 한 켠에 서서 멀리 마을을 바라보노라면 그저 내내 여기서 살고 싶다는 생각만으로도 행복해진다.

 

 


드디어 치롄(祁连)산맥을 넘어가기 시작한다. 치롄산맥은 청해성과 감숙성을 가르는 산맥으로 하서주랑(河西走廊) 실크로드 주요 도로로 좁고 긴 평야 길의 남단에 위치한다. 최고봉은 퇀제펑(團結峰)으로 해발 5,808미터이고 보통 4,000미터 이상의 설산으로 이뤄져 있다. 해발 3,767미터 지점에 있는 징양링(景阳岭) 고개에 서니 양떼가 설산을 배경으로 천천히 이동하고 있다. 티베트 사람들이 존경의 표시로 건네는 천이 흩날리는 능선에 등장하는 양들의 걸음을 따라 어디론가 사라지고 싶어지는 것은 여행자의 특별한 마음이기도 하다.

 

<구양천맥(왼쪽 아래), 징양링 – 양떼(왼쪽 위), 

티베트 풍경(오른쪽 위), 국도를 건너는 양떼(오른쪽 아래)

 

마냥 파란 하늘 아래 움직이며 살아가고 있음이 너무도 고맙다. 가파르게 넘어가는 버스는 지그재그로 돌고 돌아 겨우 산맥을 통과했다. 그저 말이나 낙타에 의지하던 때에는 과연 어떻게 이 험준한 산을 넘어갔던 것인지. 그래서인가 하늘과 산맥을 이어주는 멋진 술이 장예에 있으니 구양천맥(九粮天脉) 브랜드가 애주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천성의 명주 오양액(五粮液)을 모방해 구양액을 만들고 서운했던지 ‘천맥’을 만든 뜻은 이 멋진 산맥을 넘지 않았다면 도무지 알 길이 없을 듯하다.

 

 


아침까지 남은 숙취는 칠채단하(七彩丹霞)를 보면 묵은 체증까지 확 사라진다. 실크로드 도시 장예 서남부에 일곱 색깔의 땅이 보는 곳마다 장관인 독특한 지질공원이 있다. 북경에 가면 청색, 홍색, 백색, 흑색, 황색의 오색토로 꾸민 사직단이 있다. 통치자의 염원으로 전국의 토양을 모아 풍요를 기원하기 위해서인데 칠채단하에는 그 빛깔이 도대체 얼마나 많은지 셀 수도 없다.

 

<장예, 칠채단하>

 

공원차량을 타고 이곳 저곳 바라보며 능선을 오르내리다 보면 온 세상의 흙빛이 다 숨어 있는 듯하다. 절경을 보면 이름을 붙이고 싶었겠지. 노을협곡, 밥 짓는 연기, 불 바다, 무지개 산호, 가리비, 유리 봉우리 등 이름도 참 기발하다. 해발 2천 미터가 넘는 지역에 층층이 흙이 섞이고 절벽이 생겨 단면이 창조한 지형과 색깔은 도대체 어느 시대에 만들어졌단 말인가? 수만 년, 수억 년, 수십억 년. 도저히 가늠하기 힘든 세월의 무상함을 그저 느껴도 좋다. 언제 다시 올지 몰라도 마음 속 깊이 새겨두면 쉽게 잊혀지지 않을 듯하다.


장예 칠채단하는 배우이자 감독인 강문(姜文)이 메가폰을 잡은 중국영화 <태양은 언제나 떠오른다(太阳照常升起)>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내가 본 이 세상 모든 영화 중에서 가장 조명이 아름다운 영화다. 어둠과 함께 노을을 배경으로 실루엣으로 칙칙폭폭 떠나는 열차의 이미지는 이곳이 아니라면 도저히 흉내내기 힘들어 보인다.

 

 


실크로드에는 명나라 만리장성의 서쪽 끝 자위관(嘉峪关)이 자리잡고 있다. 명나라 시대 1372년에 세워졌으며 외성과 내성, 옹성으로 구성돼 있는데 성벽 높이가 11미터에 이른다. 그 모습이 웅장해 ‘천하제일웅관(天下第一雄關)’이라 하며 변방의 요새다. 성곽 위에는 길이 있어 걸어 다니면서 이곳 저곳 성 안의 구조를 지켜볼 수 있다. 주변이 온통 벌판인지라 눈 덮인 설산이 보이고 우루무치를 향해 가는 기차도 달린다. 설산과 기찻길 그리고 성곽이 나란히 보이니 참으로 독특한 장면이다.

 

<자위관 - 관청(왼쪽 위), 달리는 열차(왼쪽 중간), 장수 모형(왼쪽 아래), 자위관 그림자(오른쪽 위), 관우 사당(오른쪽 아래)>

 

장수들이 작전회의를 하는 모형이 있다. 벽에 새겨진 호랑이와 장수의 모습이 동쪽 끝 산하이관과 거의 비슷해서 놀랐다. 호랑이야말로 용맹의 상징이니 변경의 장수에게 잘 어울린다. 관우의 사당도 있다. 서민들의 우상인 관우야말로 전쟁의 와중에 목숨이 위태로운 병사들에게 문무를 겸비한 관우에 대한 존경심만으로도 위안일 것이다.

 

 


관청 부근에는 쉬엔비(悬壁) 장성이 우뚝 솟아 있다. 가파른 계단을 타고 올라 꼭대기까지 오르는데 숨이 가쁘다. 섭씨 30도가 넘는 한낮 오후, 숨이 차고 땀도 솟는다. 올라갈수록 전망이 넓어지니 시야는 훨씬 시원하다.


<쉬엔비 장성의 이모저모(왼쪽 위, 아래, 오른쪽 위), 실크로드를 거쳐간 인물 조각상(오른쪽 아래)>

 

이 장성은 군사적으로 중요한 곳이기도 했으며 실크로드를 장악하고 방어하는데 탁월해 보인다. 평지로 내려오니 실크로드와 역사적으로 인연이 있는 인물들의 석상이 반갑게 맞아준다. 서역의 통로를 개척한 한나라 시대의 여행가인 장건, 흉노족 토벌에 앞장 선 한나라 무장인 곽거병과 불법을 구하러 간 현장, 동방 여행가 마르코폴로는 물론, 청나라 말기 정치가인 임칙서와 서역의 회족 독립운동을 평정한 좌종당도 서 있다. 그들과 함께 수행원과 말과 낙타, 마차까지 조각돼 있다.

 

 


실크로드의 목적지 둔황(敦煌)으로 가는 길에 만난 메론 맛도 잊을 수가 없다. 당도로 따지만 어떤 과일보다 달고도 달다. 샛노란 껍질을 벗겨내고 씨앗 떨어트리고 먹는데 게눈 감추듯이 먹는 모습이 따로 없다. 우리 일행들이 이렇게 조용한 때가 있었나 싶을 정도다. 얼마나 달면 ‘단 참외’ 텐과(甜瓜)라 부르겠는가? 강수량이 적고 햇살이 깊어 참외나 포도는 거의 세계 최고 수준이다.

 


<원추리 핀 식당 내부(왼쪽 위, 아래), 콩나물요리(오른쪽 위), 최고의 당도를 자랑하는 메론(오른쪽 아래)>


톨게이트를 지나면서 정말 ‘멀리까지 왔구나’ 하는 감회가 새록새록 피어난다.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만나 찬란한 교류, 실크로드라는 반짝이는 이름까지 얻게 된 둔황! 시내로 들어서면서부터 심장이 뛰기 시작한다. 공예품을 파는 시장 골목이 죽 이어져 있다. 실크로드와 낙타, 불상을 송곳으로 나무 판에 새기고 있는 모습도 신기하기만 하다. 나무 모양에 따라 둥근 것, 네모난 것 등 다양하다. 돌 위에도 그리고 비단 천, 조롱박에도 그림을 그려서 팔기도 한다.

 

 


둔황에서만 맛볼 수 있다는 싱피수이(杏皮水)는 곳곳에 널려 있다. 무엇보다도 음료수를 차게 마실 수 있으니 참 시원하고 맛있다. 싱피는 살구나무 껍질로 만든 것이라고 하는데 목마른 타이밍에 썩 어울린다. 오아시스 도시의 별미가 아닐 수 없다. 오아시스가 있는 밍사산(鸣沙山)으로 갔다. 둔황에서 남쪽으로 불과 5킬로미터 떨어졌으니 아주 가깝다. 시내버스를 타고 가니 20분만에 도착한다. 사막 한가운데로 들어가려면 입구로 들어가 다시 차량을 타고 한참을 가야 한다.

 

<둔황 시내 – 비천상(왼쪽 위), 건물(위 중간), 시장통 공예품(오른쪽 위), 상인(왼쪽 아래), 대표음료 싱피수이(오른쪽 아래)>

 

 

 

밍사산은 사람들이 사막 모래를 밟으며 지나가면 ‘모래가 소리를 내며 흐른다’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그만큼 사막 산이 꽤 높다. 가까이 가서 보면 등산로가 가파르다. 헐떡거릴 준비가 된 사람만이 멋진 광경을 맛볼 수 있다. 밍사산 위에야취안(月牙泉)이 바로 오아시스다. 사막에 둘러싸인 작은 샘인데 생김새가 초승달처럼 생겼다. 위에야(月牙), 달과 이빨이라고 아는 체 하지 말아야 한다. 초승달을 말한다. 땀과 모래를 그대로 몸에 붙인 채 둔황에서 먹는 야채와 토마토 그리고 상추까지 허기를 채운다. 긴 실크로드 여행에도 지치지 않게 영양소를 지켜준 음식이야말로 여행의 필수품이니 배에 넣지 않고 마음에 넣어 왔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그립고 또 그립다.

 


<밍사산의 이모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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