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심전심 n Talk

태국의 정책으로 만들어진 전통, 팟타이

 

 

태국에 여행 와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고, 가장 거부감없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팟타이’이다. 팟타이를 먹어보지 않고는 태국에 왔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팟타이는 가장 태국적이며 동시에 가장 보편적으로 사랑받는 태국의 대표 면요리이다. 팟타이는 저렴한 가격의 길거리 분식에서부터 고급 레스토랑의 메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소비된다. 오늘날 태국인 뿐 아니라 세계인의 입맛도 사로잡은 팟타이는 어떻게 탄생되었을까.
 

 

 

<해질녘 왓쑤텝 사원 앞 자이언트 스윙(좌), 방콕 시청(우)>

 

오후 5시가 지난 시간. 강렬한 태양이 저물어 가면 방콕의 저녁은 서서히 활기를 띤다. 태국은 통상 3계절-여름(3-5월), 우기(6-10월), 겨울(11-2월)-이 있다고 하는데, 12월인 지금은 겨울이지만 여전히 덥다. 실로 태국사람들이 늘 하는 말처럼 그들의 계절은 그냥 덥거나(hot), 많이 덥거나(very hot), 극도로 더운(extremely hot) 3계절인가 보다. 그래도 나름 겨울이라고, 해가 지면 선선한 바람이 불어 낮더위에 마비된 정신을 돌아오게 한다. 보통 중심가가 아니면, 새벽부터 장사를 시작해 점심때쯤 닫는 음식점과 늦은 오후에 시작해 자정쯤 닫는 음식점으로 나뉘는 양상은 이런 태국의 날씨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팟타이로 매우 유명한 음식점인 ‘팁싸마이’는 오후 5시에 점포를 열어 오전 2시까지 영업을 한다. 1966년에 문을 연 탑싸마이는 초기에는 테이블이 3-4개 있는 작은 가게로 시작해 지금은 영문 웹싸이트를 운영할 정도로 크고 유명해졌다. 특히 한국 관광객들 사이에서도 이미 입소문이 난 곳이라 그런지 가게 안에는 한국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한국인에게 달콤하면서 특별한 향이 없는 팟타이는 마치 태국음식의 입문서랄까. 처음 태국음식을 접할 때 이만큼 거부감 없이 입에 착착 감기는 면 요리도 드물 것이다. 가게 안의 벽면에는 여러 나라 잡지에 소개된 팁싸마이 관련 기사들이 걸려있다. 가게 안에는 태국인 뿐 아니라 외국인 관광객도 눈에 띄게 많다.

 

<팟타이 전문점 ‘팁싸마이’의 외부 전경(좌), 내부 전경(우)>

 

팁싸마이에서 가장 잘 팔리는 메뉴는 얇게 부친 계란에 싼 스페셜 팟타이(팟타이허까이)라고 한다. 원래 팟타이는 면을 볶을 때 계란을 함께 넣는 게 일반적인데 스페셜 팟타이는 계란을 따로 얇게 부쳐 덮는 것으로, 일반 팟타이와 맛 보다는 모양에서 차이가 난다. 이런 모양의 차이도 있긴 하지만 팁싸마이가 유명한 것은 특별한 재료를 넣어 맛에 차별을 둔 것이다. 바로 팟타이를 볶을 때 새우머리 농축액을 넣는 것이다. 태국어로 ‘만꿍’이라 불린다. 새우머리 안쪽에 있는 내장은 간(liver)으로, 새우를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태국 요리에서 잘 쓰이는 재료이다. 팁싸마이에서는 이렇게 담백하고 독특한 풍미가 있는 새우머리 농축액을 넣어 손님들에게 ‘다른 집에서는 맛볼 수 없는 깊은 맛을 낸다’는 칭찬을 듣는다고 한다.

 

<‘팁싸마이’ 앞 스페셜 팟타이 조리작업(좌), 완성된 스페셜 팟타이(우)>

 

일반적으로 스페셜 팟타이에 곁들여 먹는 생 야채로 바나나 꽃(banana blossom), 부추, 숙주, 라임이 서빙된다. 또 다른 특징으로 팁싸마이에서는 100% 오렌지 주스가 유명한데, 풍부한 과즙과 톡톡 터지는 오렌지 알갱이가 팟타이의 느끼한 맛을 잡아준다. 오렌지를 통째로 마시는 듯한 상쾌함은 하루의 피로를 풀어준다.

 

<서빙된 스페셜 팟타이(좌), 스페셜 팟타이 시식(우)>

 

 

 

또 다른 메뉴가 눈에 들어온다. 정말 다른 곳에서는 보지 못한 메뉴인데 가격도 300밧(약 만원)이나 하는 것이 뭔가 특별해 보인다. 보통 길거리에서 30밧이면 팟타이를 먹을 수 있으니 10배나 비싼 셈이다. 이 메뉴의 이름은 ‘팟타이쏭크르엉’이다. 큰 새우 2마리, 말린 오징어채, 삶은 게살, 안 익은 망고를 채 썰은 것이 팟타이 위에 올려져 나오는데 여기에 숙주를 함께 넣어 섞어 먹는다. 익지 않은 망고의 새콤하고 아삭한 식감이 해산물과 어우러져 일반 팟타이보다 좀 더 태국스럽다는 느낌이 든다. 이것은 아마도 온면을 생 야채와 섞어 먹을 때 살짝 느껴지는 야채의 비린 맛 때문이 아닐까 싶다. 식히지 않은 온면을 생 야채와 비벼 먹는 것은 한국에선 접해보지 못한 신선한 조합이다.

 

<서빙된 팟타이쏭끄르엉(좌), 숙주를 넣어 비빈 팟타이쏭크르엉(우)>

 

 

 

팟타이를 만들 때 쓰이는 면은 보통 중면에 해당하는 ‘쎈렉’이다. 그런데 팟타이로 유명한 음식점들에선 유독 ‘쎈짠’을 고집하는데, ‘쎈짠’은 ‘쎈렉’의 일종으로 짠타부리 지역에서 생산한 면을 지칭한다. ‘쎈짠’은 다른 쌀면에 비해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하기 때문에 볶음면에 적합하다. 그래서 맛있는 팟타이를 만들기 위해서 ‘쎈짠’을 고집하는 것이다. 이처럼 태국사람들에게 질 좋은 신토불이 면으로 통하는 ‘쎈짠’은 언제 만들어졌을까.


1939년 피분쏭크람 총리가 태국 민족주의(랏타니욤) 정책을 발표한다. 이 정책은 서양식 근대화를 표방하면서도 국수주의적인 성격을 함께 지니고 있다. 특히 국호를 싸얌에서 ‘타일랜드’로 바꾸면서 ‘타이’ 민족성을 강조하고 여러 민족으로 이루어진 태국인의 정체성을 ‘Thai’로 단결시킨다. 이러한 정책은 태국인의 생활양식 전반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식생활에서는 당시 널리 즐겨먹던 중국식 국수 소비를 억제시키기 위한 일환으로 ‘팟타이-팟(볶음)과 타이(Thai)’, 즉 태국식 볶음요리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팟타이에는 돼지고기를 넣지 않는데, 이는 돼지고기가 중국 음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신 새우를 사용한다. 간장도 중국의 음식이라 여기기 때문에 간장 대신 남쁠라(태국 액젓)로 조리한다. 면은 ‘쎈짠’을 사용해서 태국식 볶음인 팟타이를 완성한다. 그러니까 태국음식을 대표하는 ‘팟타이’는 민족주의 정책의 결과물로, 그 역사가 80년도 되지 않은 만들어진 전통인 셈이다.


피분쏭크람 총리의 사진과 당시 민족주의를 표방하여 태국 건설을 재현한 뮤지엄싸얌 전시, 욱일기 [旭日旗]를 연상시키는 팁싸마이의 상표는 팟타이가 만들어질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한다.

 

<태국 건설을 재현한 뮤지엄싸얌 전시(좌), 팁싸마이의 상표(우)>

 

이렇게 탄생한 태국의 팟타이는 똠얌꿍이나 그린커리처럼 태국을 대표하는 음식과 나란히 즉석식품으로 개발되어 태국의 대표 음식으로 각종 마트에서 유통되고 소비된다.

 

<마트에서 유통되는 태국 즉석식품>

 

 

 

팁싸마이에서 저녁을 먹고 나와 조금 걸으니 랏차담는 거리가 나온다. 태국 민족주의-왕실, 불교, 국민이 중심축-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이 거리는 매년 12월이 되면 축제 분위기로 가득하다. 특히 아버지의 날(12월 5일-국왕탄신일)을 기념하기 위해 많은 인파가 몰린다. 이 거리에 민주기념탑과 국왕의 사진이 나란히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랏차담는 거리의 왓라차낫다람 사원과 란플랍플람하쩻다버딘 광장도 야경을 아름답게 장식한다.

 

<민주기념탑(좌), 국왕 사진(우)>

 

<왓라차낫다람 사원(좌), 란플랍플람하쩻싸다버딘 광장(우)>

 

 

 

매년 12월, 랏차담는 거리의 화려한 등불장식은 축제 분위기를 더욱 살려준다. '우리는 국왕을 사랑해요'라고 쓰여진 노란 등불! 노란색은 왕실을 상징하는 색으로, 국민들의 국왕에 대한 사랑과 존경을 느낄 수 있다. 태국 국기의 뜨라이통 등불은 태국 민족주의가 그대로 반영된 모습이다. 연말 랏차담는 거리의 아름다운 등불이 운치를 더해준다.

 

<랏차담는 거리의 등불장식>

 

 

 

 

※ 본 블로그에 게시한 글은 개인적인 것으로 농심의 입장, 전략 또는 의견을 나타내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