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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odle talk

[푸드칼럼] 깔끔한 손맛의 정갈한 도마국수, 김씨도마

깔끔한 손맛의 정갈한 도마국수,

김씨도마


 

 

광화문에 갔다가 근 몇 년 만에 김씨도마에 들렀다. 올 겨울은 따뜻할 거라는 일기 예측을 여지없이 깨고 얼굴이 얼얼할 정도로 추위가 몰아치던 날, 담담한 맛과 정갈한 품새의 따뜻한 멸치국수 한 그릇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김씨도마는 구태여 이름을 붙이자면 돔배기와 한식전문이다.

 

<김씨도마 외관(왼쪽), 테이블 셋팅(중앙), 도마와 독특한 전등으로 꾸민 실내(오른쪽)>

 

 

 

국수전문점이 아닌데도 손국수로 소문이 났다. 사실 국수보다 도마에 더 큰 의미를 둔 곳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모르긴 몰라도 재료가 음식으로 변하기 전 한번은 꼭 거쳐야 하는 곳이니 도마야말로 음식의 깊은 맛과 정성의 근원이 아닐까. 매장 벽 곳곳을 장식한 큼직큼직한 도마들, 주방에 일렬로 걸려있는 도마들까지 합하면 작은 매장이 온통 도마로 둘러싸여 있다.

 

<엄마의 부엌을 연상시키는 주방>


 

 

점심시간이 한참 지난 시간, 매장엔 법석이던 손님, 분주한 주인도 없이 연세 지긋한 어르신들 테이블 하나와 우리 둘, 그리고 달걀지단을 부치는 조리장과 신참 홀 직원뿐이다. 주문한 도마국수(멸치국수)와 비빔국수, 궁중떡볶음이 나올 때까지 느긋하게 앉아 주위를 둘러보니 분위기가 묘하게 ‘음식하는 부엌’으로 우리의 기억을 안내하는 듯하다.

 

<메뉴판(왼쪽), 서빙된 음식 - 비빔국수, 궁중떡볶음, 도마국수(중앙, 오른쪽)>

 

도마국수는 멸치를 기본으로 다시마, 북어머리, 대파 등을 넣어 우려낸 국물이 깔끔하다. 국수는 밀가루에 콩가루, 달걀을 비율대로 섞어 반죽 해 얇게 밀어 도마에서 칼로 썰어내 보통의 칼국수보다 얇고 매끈한 국수 가락이 고소하면서도 쫄깃하다. 잘 삶은 칼국수에 멸치 육수를 붓고, 살짝 데쳐 녹색이 더 진해진 배추 겉잎을 올리고, 그 위에 채 썬 다시마와 지단을 먹음직스럽게 올려 낸다.


맛이 너무 담담해 다소 싱거운 느낌이라면 한 두 젓가락 먹은 후에 삭힌 고추를 다져서 만든 고명을 넣어 먹으면 칼칼하니 또 다른 맛이다. 김치를 국수 위에 살짝 올려먹어도 좋다. 국수를 거의 먹고 나면 테이블 위에 있는 양은 그릇에서 조밥을 한 주걱 퍼 국물에 말은 후 간장양념을 넣어 먹으면 간이 딱 맞다.

 

 

 

<배추잎, 다시마 채, 달걀지단을 올린 도마국수(왼쪽), 함께 제공되는 조밥(오른쪽)>

 

도마곰국수는 닭다리와 뼈, 그리고 콜라겐 덩어리라는 닭발 등을 넣어 푹 고아 육수를 만든다. 언뜻 겉으로만 보면 보통의 사골육수와 비슷한 색을 띠는데 맛은 조금 더 가벼우면서 부드러운 느낌이 난다. 닭고기를 찢어 올리고 채소 고명을 얹어 낸다.

 

 


삶은 국수를 찬물에 헹궈 한층 쫄깃해진 면을 김치 양념장으로 비벼내는 비빔국수는 맵지는 않지만 칼칼하다. 다진 고기볶음에 상추, 김치를 넣고 토마토 한 조각을 쓱 밀어 넣어 비빈 후 마무리는 달걀지단 고명을 올렸다. 담음새가 소박하지만 정성 가득해 보인다.


동그란 가래떡을 4쪽으로 잘라 당근, 쪽파, 버섯 등을 넣고 간장으로 양념한 궁중떡볶음은 간이 심심하고 자극적이지 않아 국수와 제법 잘 어울린다. 여자 둘이서 메뉴 세 개로는 양이 조금 많으니 심사숙고해서 주문해야 한다. 국수 이외 대부분의 음식이 그렇듯 떡볶음 역시 작은 사각 도마에 올려 낸다.

 

<김치양념장으로 비빈 비빔국수(왼쪽), 간장 양념의 담백한 궁중떡볶음(오른쪽)>

 

 

 

메뉴판에 적혀있는 것처럼 화학조미료를 사용하지 않고, 콩가루를 넣은 면이 특징이라는 설명처럼 이곳의 음식들은 보통의 대중식당보다 간이 조금 심심한 편이지만, 고명과 양념장이 세심하게 마련돼 있어 취향 것 간을 맞춰 먹어도 좋다.


저녁에는 돔배기, 문어, 수육, 메밀묵에 막걸리와 안동소주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주로 이곳을 찾는다. 많은 사람들이 이 집 국수를 먹으며 안동국시를 떠올리는데, 의외로 안주인의 고향은 충청도란다. 새로 왔다는 직원이 충청도 양반가의 꼬장꼬장한 맛이 담겨 있다는 얘기를 전해준다. 달걀지단을 부쳐 탑처럼 쌓아 식히고 있던 조리장은 이 집이 햇수로 13년, 자신은 그 중에서 9년간 주방을 지켰단다. 안동국시와 비슷한 느낌이면서도 충청도 양반가 내당의 맛이 스며있다며 말을 거든다.


김치도마의 좁은 매장,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국수를 앞에 둔 채 벽에 걸린 도마에 눈길을 주다 보니 어릴 적 엄마가 끓여주던 칼국수 한 그릇의 뜨끈한 그리움이 새록새록 돋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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