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으로도 먹는
재래시장 칼국수
겨울 날씨답지 않게 내내 봄 날씨 같은 날이 계속 되더니 그래도 가는 겨울이 마지막 앙탈이라도 부리듯 며칠 전부터 갑자기 무척 추워졌다. 나의 국수에 대한 기호도 날씨 따라 변덕이 춤을 추게 되니… 사실 이제는 가급적 재래시장의 칼국수는 다루지 않을 작정이었다. 가격 부담감에 따른 재료사용의 제한으로 맛의 한계를 느끼기 시작한 때문이었다. 새로운 국수집을 찾기 시작하면서 조금이라도 이름이 난 집은 방문에 응하기를 귀찮아 한다거나 덜 유명한 집은 자신의 맛에 대한 자신감의 결여로 방문을 회피하는 사태들에 직면하고 있을 때에 찾아온 강한 추위는 결국 뽀얀 수증기와 국수 한 그릇을 주고 받으면서 손님과 주인의 넘쳐나는 정이 새록새록 솟는 재래시장의 칼국수로 발걸음을 향하게 했다.
<고향 손칼국수집 전경>
식사하기에 애매한 오전 10:30경에 벌써 아웃도어 차림의 남녀 몇 사람이 열심히 칼국수를 먹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전부 중국인 관광객들이었다. 주인 아주머니도 장사에 필요한 기초적인 중국단어들은 이미 잘 알고 계신 듯 모든 주문과 대화는 중국어로 척척 통한다. 놀라울 뿐.
고향 손칼국수집(70호)은 광장시장 내의 좌판 칼국수집들 가운데서도 가장 규모가 크고 칼국수로 메뉴가 특화된 유일한 집이다.
<손님에게 서빙되는 칼국수>
남대문시장 칼국수집은 주로 국내 손님 만을 대상으로 하면서 현재의 경기를 반영하듯 시장이 침체하면서 아울러 칼국수집 손님들도 줄어 영업시간도 단축하는 집들도 생겨났다. 이에 비해 광장시장은 오히려 중국인 손님들이 늘어 줄어든 내국인 손님들에서 오는 손실을 잘 커버하고 있다. 중국인들은 관광객인 만큼 일정 식사시간 때만 정해져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방문하면서 항상 붐비는 편이다. 중국인 손님들의 가운데 혼자 앉아 있는 내가 괜히 머쓱해질 정도였다.
사실 이 곳은 처음 방문한 집이 아니다. 벌써 수 차례 방문했던 집이고 오래 전 이 곳을 소개하려고 했던 날 마침 칼국수 육수의 농도에 실망한 나머지 소개를 포기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오늘은 또 그날과 완전히 다르게 썩 괜찮은 맛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국물 맛의 균일하지 못한 점을 단도직입적으로 여쭤봤더니 국물을 미리 준비한 량이 일정한데 갑자기 손님이 많아진다거나 했을 때에 농도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라고 고맙게도 솔직히 말씀해 주신다.
면을 미리 칼질해 놓지는 않는다. 주문 즉시 반죽을 밀어서 칼질하고 삶는다.
<주문 즉시 반죽 미는 작업(왼쪽, 오른쪽)>
<주문 즉시 반죽 밀어 칼질하는 작업>
이 집에 3개의 솥이 걸려있다. 앞 솥은 단순히 삶는 용도. 그 다음은 토렴 및 육수 솥, 마지막 솥은 보충용 육수원액. 이 토렴과 원액 보충의 타이밍을 잘 잡아야 맛있는 칼국수가 된다. 물론 기본적으로 원액 육수가 좋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얘기다.
<칼국수 삶는 작업(왼쪽), 칼국수 준비에 필요한 3개의 솥(오른쪽)>
<국수 삶기 작업(왼쪽), 국수 토렴 작업(가운데), 육수로 국수 농도잡기 작업(오른쪽)>
재료에 대한 내 선입견에도 다소 변화가 생겼다. 단순히 멸치만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새우(남대문시장 칼국수 골목에서는 강하게 부정하던), 파뿌리, 양파 등이 들어간다. 특히 새우가 많이 들어간다고 강조 하시는데 그래서 그런지 건 새우 특유의 향이 국물에서 많이 느껴진다. 그러나 몇 젓가락 뜨다 보면 냄새에 대한 의식은 다 사라지고 자연스레 먹기에만 열중하게 된다.
<광장시장 칼국수집에서 판매하는 만두>
남대문시장 칼국수집들과 달리 광장시장 칼국수집들의 가장 큰 차별 점 중 하나는 거의 모든 가게들이 만두가 있다는 점이다. 명절을 앞두고 만두만 주문하는 손님들이 적지 않다.
칼국수에 들어가는 만두에는 김치만두와 고기만두 2가지 종류가 있다. 만두 2개를 넣은 칼국수가 5,000원이다.
<김치 만두>
평소에는 칼국수 외에 거의 다른 뭔가를 첨가하는 경우는 없었지만 시장 칼국수 시식 사상(?) 처음으로 이번에는 과감하게 만두 두 개를 주문해서 같이 넣어 먹었다. 맛이야 평이하지만 전에 보지 못 한 푸짐한 비주얼 만으로도 조금 부족할 수도 있는 칼국수 맛에 대한 충분한 보상을 받는 느낌이다. 칼국수 재료가 다소 미약하거나 국수를 준비하는 과정에 좀 모자라는 점이 있어도 오늘 이 추운 날씨에 지붕이 없는 좌판에 앉아 뭉글뭉글 피어나는 김을 후후 불면서 먹는 재래시장의 칼국수 낭만은 그것 만으로도 충분히 칭찬 받을 만 하다.
<2가지 만두를 넣어 서빙된 칼국수>
<고향 손칼국수집 간판>
<인심 좋은 모습의 고향 손칼국수집>
인심 좋은 재래시장 칼국수집들. 고향 칼국수집 역시 무척 친절하고 나와 헤어질 때는 당혹스럽게도 합장해서 인사하신다.
이제 곧 추위가 가고 다시 따뜻한 봄이 오면 재래시장은 잊고 좀 색다른 국수를 찾아 나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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