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Noodle talk

[푸드칼럼] 삼국지 영웅 장비는 왜 소고기국수의 이름이 되었을까? 중국 4대 고성 랑중의 풍요로운 음식여행

 

삼국지 영웅 장비는 왜 소고기국수의 이름이 되었을까?

중국 4대 고성 랑중의 풍요로운 음식여행


 

 

 

고성으로 들어서면 온 동네가 장페이뉴러우멘(张飞牛肉面) 간판이다. 초록을 칠한 대나무를 문으로 만든 국숫집이 눈길을 끈다. 면발이야 대체로 비슷한데 랑중의 별미는 역시 국수와 함께 먹는 소고기다. 아주 부드럽게 부서질 듯 잘 씹히고 다소 짜다. 그렇다고 중국 특유의 소금기가 입맛을 망칠 정도는 아니다. 이 장비 이름을 단 소고기는 사실 말린 상태이다. 육즙을 완전히 건조시켜 딱딱한 상태도 아니다. 짜지도 싱겁지도 않은 절묘한 맛이 바로 장비 소고기의 진면목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대중의 관심을 끄는 것은 삼국지 영웅 장비(张飞)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조조(曹操)의 부하 장합(张郃)이 진격해 오자 랑중을 지키는 일이 장비의 소임이 됐다. 장비는 랑중에서 통치하다가 애주가의 가장 좋지 않은 결말, 부하에게 살해되고 만다. 이제 소설의 주인공 장비는 랑중고성의 문화상품으로 손색이 없다.

 


고성으로 들어서면 온 동네가 장페이뉴러우멘(张飞牛肉面) 간판이다. 초록을 칠한 대나무를 문으로 만든 국숫집이 눈길을 끈다. 면발이야 대체로 비슷한데 랑중의 별미는 역시 국수와 함께 먹는 소고기다. 아주 부드럽게 부서질 듯 잘 씹히고 다소 짜다. 그렇다고 중국 특유의 소금기가 입맛을 망칠 정도는 아니다. 이 장비 이름을 단 소고기는 사실 말린 상태이다. 육즙을 완전히 건조시켜 딱딱한 상태도 아니다. 짜지도 싱겁지도 않은 절묘한 맛이 바로 장비 소고기의 진면목이다.

 

 

<장비소고기 파는 가게(왼쪽 위), 랑중국수(왼쪽 아래),

랑중고성 거리(오른쪽 위), 장비소고기 상품(오른쪽 아래)>

 

 

서민들의 입방아에 오르는 전설에 의하면 유비, 관우, 장비가 도원결의한 후 술자리를 열었다. 장비는 바로 한나라 유방의 무장인 번쾌(樊哙)와 더불어 도살의 조사(祖师)로 부른다. 요리의 달인이기도 했던 장비는 고기를 준비했고 의기투합했다. 두 형이 ‘맛 좋은 장비소고기(张飞牛肉好吃!)’라고 감탄했다는 것이다. 소설에 생기를 불어넣은 랑중 사람들은 소고기 앞에 장비를 모셔온 것이다.

 


장비는 경극에서 검은색 옷을 입고 등장한다. 검고 붉고 노란 색채가 혼합된 가면을 쓰고 있다. 장비 가면을 디자인한 고기 포장지도 화려하다. 노란색과 검은색 휘장도 사방에 걸려 있다. 장비 캐릭터를 고기에 버무려서 파는 수법은 배울 만 하지 않은가?

 


랑중고성은 리장(丽江)고성, 핑야오(平遥)고성, 후이저우(徽州)고성과 함께 4대 고성으로 손꼽힌다. 네 곳 모두 풍성한 역사와 문화를 보유하고 제각각 특색이 있다. 랑중 역시 과거시험장, 관청, 공자 사당, 도교 및 불교사원은 물론 과거를 통해 입신한 진사나 장사로 갑부가 된 상인의 저택도 온전하게 보존돼 있다.


 

<과거시험장 용문(왼쪽 위), 관청(왼쪽 아래),

공자사당(오른쪽 위), 장원부 저택(오른쪽 아래)>



중천루(中天楼)는 고성 한가운데에 위치하고 십자대로를 형성한다. 특히 고대 풍수사상이 발원했다고도 하는 곳이라 랑중고성을 천인합일의 ‘천심십도(天心十道)로 비유한다. 중천루에 올라 고성을 바라보면 대체로 집들이 대동소이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뜻밖에도 반달형, 품(品)자형, 다(多)자형 등 다양하다.

 

 

<중천루(왼쪽), 고성 가옥 지붕(오른쪽 위), 고성 골목(오른쪽 아래)>

 

 

랑중고성이 다른 곳에 없는 가치는 역시 장비묘인 한환후사(汉桓侯祠)다. 환후는 사후 받은 시호다. 장비는 부하들이 목을 베 강물에 버렸기에 랑중에는 몸만 남았다. 장비 사당은 모두 세 곳이다. 랑중에는 몸이, 유비가 사망한 펑제(奉节) 근처 장강 도시 윈양(云阳)에는 목이, 고향 줘루(涿鹿)에는 영혼이 봉공되고 있다.

 


사당 앞에는 갑옷을 입고 창을 든 장비가 방문객을 환영하고 있다. 함께 창칼을 들고 싸우는 장면을 연출하고 기념사진을 찍기도 한다. 대문 앞에는 사자 두 마리가 지키고 있다. 17세기 초 처음 세울 때 사자는 철로 만들었는데 항일전쟁 중 일본 비행기의 폭탄 투하로 상처를 입었다가 문화혁명 시절에 완전히 훼손됐다. 지금 서 있는 사자는 돌로 다시 만들었다. 사자의 웅장한 자태와 허리와 다리의 부드러운 곡선이 꽤 정교하다. 발톱이나 새끼 사자의 움직임까지 섬세하다.

 


대문을 들어서면 장비의 부장들이 지키고 있는 이중처마의 누각이 나온다. 소설에서 ‘만인의 적을 상대하는 용기’를 지녔다는 평가를 반영한 적만루(敌万楼)를 지나면 곧바로 대전이다. 가운데 제후의 용모로 앉아 있는 장비의 모습이 왠지 좀 낯설다. 늘 전쟁터 돌격대장 같은 이미지 때문일지도 모른다.

 

 

<장비묘 돌사자(왼쪽 위), 장비와 관광객(왼쪽 가운데), 도원결 동상(왼쪽 아래),

무덤 앞 장비(오른쪽 위), 엄벌 중인 장달(오른쪽 아래)>

 

 

무덤 앞에 있는 장비 소조야말로 무장의 모습이다. 표범의 머리, 부리부리한 두 눈, 제비 같은 턱, 호랑이 수염. 무장 장비를 잘 드러내고 있다. 이 소조 역시 원래 철로 주조됐는데 문화혁명 시절 훼손됐고 다시 제작한 것이다. 재미있는 장면은 무릎 꿇고 있는 장달(张达)과 범강(范疆)의 불쌍한 모습이다. 장비의 목을 취하고 달아난 그들이 사죄의 엄벌을 받는 중이다. 높이 8m, 가로 25m, 세로 42m의 거대한 무덤에는 수백 년 이상 자란 거목이 싱그러운 초록의 풀과 더불어 장비를 보듬고 있다.

 


고성 거리는 한산하고도 평화롭지만 왁자지껄하기도 하다. 온통 장비 가면과 소고기 파는 가게가 즐비하다. 장비만큼 많이 눈에 밟히는 것은 바로 바오닝추(保宁醋)다. 식초에 간장이 섞인 것으로 중국에서 국수를 먹을 때 많이 뿌려먹는 양념이다. 물론 요리에도 필수적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엄청난 소비량을 지녔다. 밀가루, 쌀, 찹쌀 등 곡식을 원료로 약재를 넣고 발효를 거쳐 만든다. 아마도 약재 수준으로 만드는 대표적인 식초일 것이다.

 


수공으로 직접 발효해 만들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검은 빛깔의 식초를 다양한 기구를 이용해 물 흐르듯, 물레방아 돌 듯 꾸며놓은 가게가 아주 많다. 간장인 듯 식초인 듯 주르륵 흐르는 빛깔이 맑아 보인다. 떨어져 내리는 물방울이 순간 하얗게 변하는 모습도, 그래서 살짝 풍기는 향내도 상큼하다. 바오닝이란 브랜드는 당나라 시대부터 전해 내려오는데 당시에 랑중을 바오닝이라 불렀기 때문이다. ‘바오닝추가 없으면 손님이 사천요리를 찾지 않는다.’고 할 정도로 널리 알려져 있다.


 

<수제 식초 가게(왼쪽), 검은 빛의 수제 식초 바오닝추의 전시홍보(오른쪽)>

 

 

식초가 발달한 곳에는 국수의 면발도 좋다. 고성에서는 수공으로 식초를 만들 듯 국수도 직접 뽑기도 한다. 많지는 않지만 몇 군데 국수를 말리는 집도 있다. 넓은 면을 나무에 걸치고 있는 아주머니 손길이 바쁘다. 2m는 더 길어 보이는 국수는 마치 종이를 넓게 오려놓은 듯 흔들리고 있다. 이 면발에 육수를 넣고 장비 소고기와 함께 바오닝추를 뿌려 먹는 랑중 사람들, 천 년의 문화를 간직한 마을이 이런 곳이구나 하는 생각에 점점 고성에 감정이입을 하게 된다.

 


고성 안은 그야말로 객잔의 천국이다. 인터넷으로 미리 예매한 곳이다. 수많은 객잔 중 우쿠이(武魁)라는 이름이 보이자 바로 예매했다. 괴(魁)는 북두칠성의 별을 상징하며 보통 우두머리라는 의미가 있다. 과거시험장에 가면 많이 보이는 ‘문장’의 신을 부르는 말이기도 하다. 문(文)과 무(武)를 함께 쓰기도 한다. 향시에서 급제한 사람에게 붙이는 말이다. 우쿠이 객잔은 아마도 무과 향시에 오른 조상이 있었을 것이다. 문을 세 번이나 지나야 하는 삼진사합원(三进四合院) 답게 넓다. 마당에는 삼민주의자이자 국부로 대접받는 쑨원(孙文)의 사진도 걸려있다.

 

 

<객잔 실내(왼쪽 위), 쑨원 액자가 있는 마당(왼쪽 아래), 우쿠이 객잔 입구(오른쪽)>

 


바로 더우화판(豆花饭)이다. 일반적으로 두부덮밥은 더우푸판(豆腐饭)이라 부르는데 대체로 매운 요리에 가깝다. 마파두부를 생각하면 비슷하다. 그러나 더우화판(豆花饭)은 ‘두부의 꽃’으로 물 두부이다. 연하게 만든 두부에 은근한 국물을 넣고 바오닝추나 고수를 곁들여 먹는다. 후딱 한 그릇 맛있게 먹었다. 국물까지 다 비우고 나니 그릇에 멋진 문양이 나타났다. 바로 자오차이진바오(招财进宝)다. 돈 많이 벌라는 뜻의 덕담으로 네 글자가 하나로 어우러진 형체다.

 


고성에서 전통과 문화가 어울린 음식도 먹고 두루두루 돌아다니니 정말 마음이 풍성하다. 중국여행을 다니며 고성에서 하루 묵으면 시름걱정 다 잊는다. 여행이란 떠나는 것이기도 하지만, 떠나서 새로 생기는 기억이기도 하다. 배불리 먹은 배속이 금방 잊히지 않을 것이니 말이다.

 

<수공 국수면발(왼쪽), 더우화판 가게(오른쪽 위), 더우화판(오른쪽 가운데),

자오차이진바오 그릇(오른쪽 아래)>

 

 

 

 

 

※ 본 블로그에 게시한 글은 개인적인 것으로 농심의 입장, 전략 또는 의견을 나타내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