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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odle talk

[푸드칼럼] 문정훈 교수의 ‘좋은 음식을 먹자’ 시리즈 ① 2016년 대한민국, 무엇이 좋은 음식일까?

문정훈 교수의 ‘좋은 음식을 먹자’ 시리즈 ①2016년 대한민국, 무엇이 좋은 음식일까?

 

 

 

 

<다양한 음식 재료>

 


외로운 사냥꾼과 몰려다니는 사냥꾼

참 이상한 일이다. 사람들은 좋은 일이 생기기만 하면 함께 모여 뭔가를 같이 먹고 마신다. 함께 모여서 수영을 할 수도 있고, 다같이 등산을 할 수도 있을 텐데, 왜 우린 좋은 일에는 언제나 음식을 함께 나눠 먹게 되었을까?

 


선사시대에 혼자 사냥하러 다니는 외로운 사냥꾼들도 있었을 테고, 함께 몰려다니며 사냥을 하는 집단 사냥꾼들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의 혹독한 환경에서는 외로운 사냥꾼들 보다는 함께 몰려다니며 협력하는 사냥꾼들이 살아남을 확률이 높았을 것이다. 일부는 동물을 몰고, 일부는 반대편에 숨어 있다가 활을 쏘거나 창을 던지는 그런 사냥법이 혼자 다니는 사냥꾼들 보다 훨씬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외로운 사냥꾼들은 대부분 굶어 죽었을 것이고, 우리 몸속에 있는 DNA는 외로운 사냥꾼들의 DNA가 아닌, 몰려다니는 사냥꾼들의 DNA의 특성을 물려받았을 것이 거의 분명하다.

 


몰려다니는 사냥꾼들은 함께 사냥하고, 함께 음식을 나누어 먹었다. 그들이 목숨을 건 고된 사냥에 성공해서 먹을 것을 나누어 먹을 때 느꼈던 그 안도감과 행복함이 DNA에 각인되어 지금까지 우리에게 내려오는 것 같다. 그래서 우린 좋은 일이 있을 때 모여서 음식을 나눠 먹으며 그 즐거움을 배가시키나 보다. 적어도 음식은 단지 배를 채우고 생명을 유지하는 역할을 뛰어넘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

 


선사시대의 사냥꾼들에게 가장 좋은 음식은 배부른 음식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야들야들한 닭고기 보단 질기지만 덩치 큰 맘모스 고기가 그들에겐 훨씬 더 중요하고 좋은 음식이었을 것이다. 몰려다니면서 사냥하며, 먹을 것이 부족했던 그들에겐 배부른 것이 최대의 가치였다. 근대까지 들어서도 우리나라 역시 ‘보릿고개’로 고통 받았다. 역시 좋은 음식은 주린 배를 채우고 필요한 영양을 공급받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

 

 

 

고깃국에 이밥

북측 친구들은 한 때 ‘고깃국에 이밥’이 큰 자랑이었다. 당시 대남 삐라에 보면, ‘우리는 고깃국에 이밥 먹는다’고 써 있었다. 자기네는 좋은 음식을 먹는다고 자랑질 하는 것이다. 이 자랑에는 ‘니네는 배고프지? 우린 배부른 건 해결되었고, 심지어는 맛있는 것 먹는다.’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굶어 죽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사라지고 나면, 그 다음엔 맛으로 넘어간다.

 


누구나 알고 있듯, 음식은 배고픔을 해결해 주고 생명을 유지해 주도록 한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음식의 가장 큰 가치는 배고픔을 해결해 주는 것이었다. 맛은 두 번째였다. 유사이래 끊임없는 기아에 허덕이던 인류는 1841년에 비로소 질소와 인산을 근간으로 한 화학비료를 발명해 내었고, 이는 20세기 초반 농업 생산의 혁명을 끌어내고 인류를 기아에서 구원해 냈다. 농업 생산성의 향상은 사료 산업을 탄생시켰고 가축들을 대량 생산해내는 경지에 다다르게 되었다. 이런 대량생산은 음식의 가격을 극적으로 낮출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다수에게 배고픔은 이제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고, 그래서 인류는 맛에 더 많은 집착을 하게 된다. 조리 기술이 더욱 발달하고 우리의 오감을 자극하는 다양한 음식들이 등장하게 된다. 미식의 발달과 보편화의 시대에 들어선다.

 


미식가들은 한끼에 20만원이 넘는 돈을 기꺼이 지불하고 세 시간이 넘는 시간을 투자하며 식사를 한다. 물론, 와인은 별도다. 그들이 생각하는 음식의 최고의 가치는 맛이다. 그들에게 훌륭한 맛을 만들어 내기 위해 노력하는 셰프와 최고의 식재료를 생산하는 농업인은 칭송과 숭배의 대상이다. 2016년 여름 대한민국을 강타한 평양 냉면의 돌풍을 되돌아 보자. 대한민국의 젊은 평뽕족(평양 냉면의 맛이 중독된 사람들)은 이번 여름 한철을 맛있는 평양 냉면을 찾기 위해 전국을 돌며 유명한 냉면집을 뒤지고 뒤졌다. 그들의 목표는 단 하나, 좋은 평양냉면을 찾겠다는 것. 그들에게 좋은 냉면은 무엇인가? 배부른 냉면? 영양가 높은 냉면? 그렇지 않다. 오직 하나. 맛있는 냉면이다.

 

누구나 맛있는 음식을 좋아한다. 맛있는 음식에 아이들은 더욱 강렬하게 반응한다. ‘500원짜리 젤리 먹을래, 1 킬로그램에 100만원하는 송로버섯 먹을래?’라고 물으면 모든 아이들은 젤리를 택한다. 아이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음식의 가치는 맛, 그 중에서도 단 맛이고, 단 음식이 좋은 음식이다. 이처럼 맛이라고 하는 것은 대단히 주관적인 것이다.

 

 

 

건강을 위해 먹는 인류

인류는 오랜 기간 굶주렸다. 먹지 못해 굶으면 죽는다는 것을 안다. 균형 있는 식단을 유지하지 못해서 영양소가 결핍되면 몸에 이상이 온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농업 혁명과 미식이 보편화 된 풍요의 시대에서 인류는 전에 경험해 본적이 없는 질병을 앓게 되는데 바로 비만과 비만에 기안한 다른 여러가지 질병들이다.

 


과학의 발전은 음식의 가격을 전반적으로 더 낮추었고, 오랜 기간 보존하고, 멀리까지 갈 수 있도록 해주었다. 식재료는 더욱 풍부해졌고, 사람들은 더 싸고, 더 쉽게 음식들을 먹게 되었다. 그리고 조리기술과 가공기술의 발전은 음식의 맛을 획기적으로 끌어 올렸다. 이런 변화는 필연적으로 사람들이 더 많은 음식을 섭취하도록 만들었다. 사람들은 비만해지기 시작했고, 비만은 사람들의 건강을 해치기 시작했다.

 


또한 선사시대에 인류가 음식과 생존을 연결 지을 수밖에 없었던 전통은 이 풍요의 시대에선 음식과 건강을 연결시키는 풍조를 만들어 낸다. 배고픔이 해결되고 미식이라는 새로운 문화까지 창조해 낸 인류는 더 나아가서 잘 살고 싶은 욕망, 즉 웰빙의 욕망을 가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웰빙의 핵심은 먹는 데에 있다. 지나친 풍요로움에서 이제 사람들은 맛있게 먹는 것 보다는 건강한 라이프스타일의 중심에 음식을 놓고 삶을 영위해 나가고자 하고 있다. 따라서 음식의 안전성과 건강함이 더 중요한 가치로 등장했다.

 


건강이 중요한 가치로 등장하자, 오히려 많은 이들이 음식과 관련한 공포를 느끼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공포를 이용한 나쁜 마케팅이 등장한다. 커피믹스에 들어간 카제인, 조미료의 주성분인 글루타민산, 음식의 산화방지용으로 쓰이는 아스코르브산이 건강에 나쁘다는 근거 없는 이야기로 소비자들을 혼란과 공포에 빠뜨리며 자신의 제품이 더 낫다고 광고하기도 한다. 카제인 대신 우유를 넣었다고 하지만 사실 카제인 또한 우유 단백질이고, 마치 위험한 화학물질처럼 오해받았던 글루타민산은 토마토, 간장, 된장 등 자연식품에도 "포함된" 인체에 필요한 신경전달 물질이며, 아스코르브산은 일부 사람들이 찾아서까지 챙겨먹는 비타민C의 또다른 이름이다.

 


전세계에서 가장 까다롭고 꼼꼼한 규정을 가진 대한민국의 식약처가 이렇게 열심히 일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어떤 음식이 더 건강에 좋은지, 어떤 음식이 더 건강에 나쁜지에 대해 고민한다. 또 무엇을 먹으면 더 살찌는지, 무엇을 먹으면 더 날씬해지는 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여기까지가 현재 2016년 대한민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좋은 음식’의 현주소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보자

지난 겨울 스페인 북부 미식의 도시 빌바오에 위치한 미슐랭 쓰리 스타 레스토랑인 아주르멘디(Azurmendi)에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물론 음식은 대단히 훌륭했다. 하지만 눈길을 더욱 끈 것은 그 레스토랑의 식재료였다. 가장 비싸고 좋은 식재료를 쓰는 것 보다는 스페인 북부 지역 생태계의 다양한 로컬 식재료를 소개하고, 그 가치를 고객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노력이 돋보였다.

 


인류의 배고픔 문제를 해결한 대량 생산 농산물을 이 시대에서 피해갈 수는 없겠지만, 이에만 지나치게 의존하면 우리의 식생활은 단조로워지고 다양성은 사라지며 획일화된 방향으로 나가게 된다. 그러다 보면 인류가 쌓아 놓았던 다양하고 찬란한 식문화, 다양한 품종의 즐거움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아주르멘디의 셰프 에네코 아트사는 지속가능한 농업 생산을 지탱하는 음식을 제공하고자 하였고, 이를 요리로 훌륭히 녹여 내고 있었다.

 


로컬 푸드, 슬로우 푸드를 왜 먹는지, 왜 유기농 식재료를 선호하는 지에 대한 질문을 하면 많은 이들이 ‘건강을 위해’라는 이기적인 답변을 한다. 잘못된 대답이다. 로컬 푸드, 슬로우 푸드, 유기농 식재료는 실은 먹는 사람의 건강과는 별 관련이 없다. 이 개념들과 실천은 인류의 문화를 보존하고, 다양성을 인정하며, 다음 세대를 위한 지속가능한 농업 생산을 위한 투자이다. 나만 배부르고, 나만 맛있고, 나만 건강한 음식이 아닌, ‘더불어 행복함’이라는 가치를 일깨워 주는 음식들이다. 음식의 이러한 가치들을 우리가 이해하고, 그 이해를 더 넓히고자 할 때 우리의 삶은 더불어 더욱 풍성해지게 된다.

 


무엇이 좋은 음식일까? 우리는 무엇을 먹어야 할까? 인류는 배부른 음식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갔고, 맛있는 음식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갔으며, 또 이제 건강한 음식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2016년 대한민국의 음식은 이미 충분히 안전하고 건강하다. 나 혼자 배부르고, 맛있고, 건강한 음식에서 한 걸음 더 나가 더불어 행복한 음식을 함께 찾고, 함께 먹어 보자. 앞으로 5회에 걸쳐 좋은 음식, 더불어 행복한 음식에 대해 함께 여행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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