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Noodle talk

[푸드칼럼] 보양음식, 어탕국수

보양음식, 어탕국수




큰 변화 없이 약간의 육수의 변화나 고명의 변화 정도로 국수의 다양성을 이야기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절실히 느끼며 앞으로 좀 더 과감한 국수에 도전을 해보기로 작정하고 그 첫 번째 대상으로 “어탕국수”를 소개한다.


민물낚시 경험이 많은 사람들은 다소 익숙한 메뉴랄 수 있고 민물고기가 나오는 물가 근처의 음식점이라면 수제비 반죽을 넣어서 끓여내는 매운탕은 그다지 접하기 힘든 음식은 아닌데 어탕국수의 시작도 그런 음식 형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어탕국수에 대한 여러 유래 중 하나는 지리산 줄기의 맑은 개울이 많은 경남지방에서 먹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특히 물이 급하게 도는 여울이 많은 경남 경호강에서 잡히는 고기(쏘가리, 메기, 피라미, 미꾸라지 등)들이 육질이 좋기로 이름이 나서 지금도 주변에 유명한 어탕국수집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울에서 어탕국수집들이 하나같이 “지리산” 운운하는 것도 다 이런 이유 때문이다. 




<어탕국수의 핵심, 민물에서 나는 거의 모든 생선들을 넣고 갈아서 뽑은 육수 사용>


개인적으로 재료의 본래 맛을 살리는 담백한 음식을 좋아하는 편이라 여러 가지를 한꺼번에 넣어 끓이는 음식은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 따라서 국수도 늘 깔끔한 멸치 육수에 국수 고유의 맛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의 고명 만을 선호했기에 이번 어탕국수는 어려운 도전이었다. ‘생선의 비린 맛은 나지 않을까, 비주얼이 맛을 반감시키지는 않을까?’ 등… 


<지리산 어탕국수 합정점>. 체인 사업을 하는 곳은 아니지만 상호에 굳이 합정점이 들어간 이유는 어머니와 따님이 처음 시작한 행주산성의 지리산 어탕국수집을 아들에게 물려주고, 지금 어머니와 두 따님은 합정점을 운영하고 있어서 붙였다고 한다. 시식을 위해 찾아간 날 초저녁엔 손님이 아무도 없어서 ‘어? 역시 사람들이 그다지 선호하는 스타일이 아닌가? 잘 못 왔나?’ 하는 걱정이 들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손님들이 하나 둘 밀려들기 시작하고 이내 넓은 자리가 꽉 차는 것을 보고 역시 음식의 호불호는 그냥 개인적인 취향이었을 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약간의 육수를 담은 뚝배기가 달구어지면 추가로 어탕육수를 담아 끓인다.>


당연한 것이지만 어탕국수의 비쥬얼은 추어탕과 흡사하다. 제피가루가 처음부터 듬뿍 들어간 추어탕만 먹어봐서 향신료를 넣지 않은 추어탕의 맛은 정확히 모르겠지만 아마 이 맛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얼갈이배추, 무청시래기, 잡어와 새우를 넣은 그 위에 부추가 듬뿍 올려져 나온다. 민물생선을 가는 모습을 보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일 주일에 단 한번 육수를 만들어 사용하기 때문에 직접 볼 수는 없었다. 




<어탕육수의 소면이 익으면 마지막에 부추를 듬뿍 얹어 내놓는다.>


시대가 변해서 지금은 어탕국수도 좀 특별한 보양식 개념이 들어가긴 했어도 원래는 보양의 개념보다 먹을게 별로 없던 시절에 여러 사람이 배부르게 나눠먹는데 초점을 맞추어 일단 양을 늘리기 위해 뼈째 갈고 거기다가 밥이나 국수를 말아 먹기 시작한 것이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 집은 뚝배기 크기도 큼직하고 음식 양도 감탄사가 나올 법한 곳이다. 요즘 수익을 위해 음식의 양을 적게 주어서 야박하다고 욕먹는 음식점이 어디 한 둘 인가… 


순수한 어탕국수의 맛을 보기 위해 처음에는 제피가루를 넣지 않고 먹어보니 매우 민밋한 맛이다. 냉면을 처음 먹어보는 사람이 느끼는 맹숭한 맛이라고나 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냉면이 점점 중독성을 띄듯 이 어탕의 민밋한 맛에 점차 중독될지 아니면 어쩌다 한 번씩 먹는 별미 보양식에 머물 지는 아직 어느 쪽도 확신할 수 없다. 그러나 단골손님의 증언(?)에 의하면 중독성이 있다고 하니 믿어 볼 일이다.




<어탕국수에 나오는 3가지 반찬(좌), 어탕에 변신을 꾀하게 하는 들깨가루와 제피가루(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약간 민밋한 맛을 상쇄시킬 수 있는 재료 한 두가지가 들어가는 것은 어떨지 아니면 최소한 이 집에 곁들여 나오는 3가지 반찬이 좀 더 자극을 줄 수 있는 것들로 채워지면 어떨까. 심심한 두부조림, 익지 않은 얼갈이배추 김치, 익지 않은 깍두기. 어탕부터 주변 반찬까지 시종일관 비슷한 톤을 유지하는 맛은 보양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어쩌면 더 신뢰감을 줄 수도 있지만 민밋한 이 맛에 좀 낯 설은 사람에게는 만만치 않은 도전이 될 것 같다. 짭짤한 장아찌 종류나 익은 김치 같은 좀 더 자극을 줄 수 있는 반찬을 내면 어떨까 하고 조심스럽게 건의 드렸더니 젊은 손님들이 익은 김치라던가 고추장아찌를 잘 먹지 않더라는 답변을 듣고 좀 의아했다. 신 김치를 먹지 않는 우리 집 아이들을 보면 한편으로 이해가 가는 부분이기도 하다. 




<양이 많고 푸짐한 어탕국수>


또 하나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은 소면이 어탕국수를 1/3정도 먹었을 시점부터 불기 시작해서 원래 걸쭉한 어탕국물과 섞여 마치 죽처럼 변한다. 그래서 면을 따로 삶아 내놓으면 어떨 지도 여쭤봤다. 면에 양념이 베지 않는 단점이 있을 수 있고 또 한편으로는 면이 불어서 죽 같은 형태가 어탕국수 고유의 맛이며, 전통의 맛이랄 수 있기에 기본 맛이 변질될 수 있는 조리법은 있을 수 없다는 단호한 답변을 들었다. 면 따로 어탕 따로 나오면 먹는 사람들이 직접 조금씩 넣어 먹는다면 마지막까지 심하게 불지 않은 상태로 어탕국수를 즐길 수 있지 않을까 했던 생각은 없었던 일로 접어두었다.




<미리 면을 좀 덜어 놓으면 덜 불은 면을 먹을 수 있다.>


어머니가 고향 함양에서 평소에 해 드시던 음식 그대로 서울로 와서 장사를 시작했고 이제는 물려 받은 기술로 두 자매와 또 그 딸과 운영하는 이 곳은 그냥 종업원에게 받는 건조한 서빙이 아니라 손님 또한 가족같이 대하는 모습에서 마음까지 건강해 지는 느낌을 받고 문을 나설 수 있는 집이다. 나의 취향에 아직은 낯 설은 이 맛에 중독이 되면 더 자주 갈 수 있겠지만 그 전에는 건강을 생각하는 보양식으로 가끔 찾을 만한 집이다. 땀 뻘뻘 흘리며 먹을 어탕국수의 계절, 여름이 은근히 기다려 진다. 




<깔끔한 실내와 차림표>




<홀트아동복지 건물 옆길의 큰 길가에 위치(좌), 딸이 운영하는 입구의 커피집(우)>





※ 본 블로그에 게시한 글은 개인적인 것으로 농심의 입장, 전략 또는 의견을 나타내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