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민족이 개간한 다랑논에서 수확된 붉은 쌀로 만든 국수
운남 원양 하니족 마을과 다랑논에서 본 일몰과 일출
경남 남해의 다랑논을 보면 참 아름답다고 누구나 감탄한다. 자연을 개간한 인간의 노동은 그만큼 위대하다는 감동도 있다. 드넓은 대륙 중국도 웬만한 산간지방에 가면 어디나 있다. 중국의 수많은 다랑논 중에서 단연 첫손가락을 꼽는다면 어딜까? ‘사다리 논’, 제전(梯田)의 으뜸은 누가 뭐래도 원양(元阳)이다.
어느 계절에 가더라도 하늘이 예뻐 ‘구름의 남쪽’이라 불리는 ‘칠채(七彩) 윈난(云南)’의 수도 쿤밍(昆明)까지 직항이 있다. 쿤밍에서 남쪽으로 300km 만 가면 세상 어디보다도 더 풍요롭고 화려한 다랑논이 있다. 1,300여 년 전부터 원양의 다랑논을 일구며 사는 하니족(哈尼族)의 보금자리다. 해발 3천 미터가 넘는 주봉이 9개나 되는 애뢰산(哀牢山) 남쪽에 위치한 원양 다랑논은 50만 평에 이르는 광범위한 너비를 자랑한다. 가는 곳마다 다랑논의 조물주 하니족의 숨결이 느껴진다.
<칭커우 입구(왼쪽 위), 학교 식단(왼쪽 아래),
하니족 아주머니(오른쪽 위), 식당 주방(오른쪽 아래)>
칭커우(菁口)에 들어선다. 180여 가구가 모여 사는 하니족 마을이다. '청(菁)'은 '우거지다'라는 말이니 무성한 다랑논을 뜻하나 보다. 산을 개간해 논농사를 짓는 하니족은 멋진 풍광을 연출한 조상 덕분에 수많은 관광객이 찾는다. 전통문화를 지키며 살아가는데 외지인의 방문이 꼭 좋다고 할 수는 없다.
엄마 등에 업혀 수줍은 듯 얼굴을 붉히는 아이가 정겹다. 아담한 초등학교에는 해맑은 미소를 머금은 아이들이 뛰노는데 장난기가 수북하다. 분필로 쓴 점심 차림표가 인상적이다. 마을 골목을 지나 다랑논으로 내려가는 길에는 벽돌을 옮기는 아주머니들이 오르락내리락 한다. 하늘을 닮은 감청의 전통복장이라니, 다랑논을 일군 민족답다. 청아한 날씨가 대부분인 땅에서 천 년 넘게 살아온 민족이 아니던가?
<칭커우 다랑논(왼쪽/오른쪽 위), 다랑논 바라보는 닭(오른쪽 아래)>
칭커우 다랑논은 아담한 편이다. 하늘과 구름이 반영돼 거울처럼 빛나고 있다. 반사 각도에 따라 하늘도 오고 구름도 온다. 보는 위치에 따라 변화무쌍한 것은 물론이다. 몇 시간 전만 해도 비가 내렸다는데, 곧 청명한 하늘로 둔갑했다. 마치 논에 필요한 물만 때때로 내려주는 것처럼. 이모작, 삼모작까지 이루며 살아온 ‘혜택’이자 ‘지혜’다. 마을 전체가 살아가기에 충분한 땅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에게 복이 있다’고 했던가?
마을 골목마다 닭이 많다. 사람이 지나가도 그냥 느긋하게 모이만 찾는다. 몸통은 다 다르지만 볏이 붉은 닭이 유난히 많다. 닭 한 마리가 모이를 줍다 말고 다랑논을 향해 고개를 든다. 산비탈을 자유롭게 어슬렁거리며 다니는 토종 닭, 투지(土鸡)가 가장 맛이 좋다고 했다. 마을 입구의 농가식당을 찾아 물어보니 역시 닭 요리가 있다.
<손질 된 닭(왼쪽 위), 닭 백숙(왼쪽 아래),
말린 고기 라러우(오른쪽 위), 홍미 밥(오른쪽 아래)>
주방에 들어서니 닭 머리와 발이 나란히 접시에 담겨 있다. 돼지고기와 채소, 두부, 버섯과 함께 생선도 손질이 끝났다. 볶고 찌고 튀기고 맛 있는 점심이 마련된다. 닭은 마늘만 넣고 오래 삶는다. 추운 계절에 소금에 절여 햇빛에 말린 훈제고기인 라러우(腊肉)는 쫄깃하면서도 고소하다. 재료를 보고 몇 분이 지나지 않아 차례로 금방 요리가 오른다. 무엇보다 하니족 다랑논에서 수확한 홍미(红米)로 지은 밥은 고소하다. 마치 팥이 쌀로 변한 듯한 느낌을 준다. 다랑논에서 이렇게 붉은 기운이 돋는 쌀을 거둔다니 흥미롭다.
<라오후쭈이 촬영(왼쪽 위), 라오후쭈이 표지(왼쪽 아래),
다랑논 전경(오른쪽 위), 제전홍미(오른쪽 아래)>
원양에서 일몰이 가장 아름답다는 라오후쭈이(老虎嘴)로 가는 길에 제전홍미(梯田红米)를 판다. 다랑논에서 생산된 쌀은 칼슘, 아연, 철, 마그네슘, 칼륨 등 광물질이 풍부하다. 홍조가 떠오르는 홍미를 희식(囍食)이라고도 부른다. 쌍 희(喜)는 결혼을 상징할 정도로 길조다. 붉은 색을 좋아하는 중국답다.
<일몰 하늘(위쪽), 일몰 전 다랑논(왼쪽 아래), 일몰 중 다랑논(오른쪽 아래)>
라오후쭈이의 일몰, 다랑논의 환생은 황홀하다. 수많은 사람이 호랑이가 입(嘴)을 벌리고 있는 모습을 담으려고 자리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다. 산을 넘어가는 해의 위치에 따라 다랑논 곳곳에 반영이 펼쳐진다. 변화무쌍한 다랑논 라오후쭈이는 호랑이뿐 아니라 질주하는 두 마리의 준마, 휘감고 하늘로 오르는 용도 표현한다. 대지가 빚어낸 멋진 조소(雕塑)라고도 부른다. 명불허전이라고 했던가? 직접 보면 산 전체를 다듬어 만든 하니족의 위대한 예술품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둬이수 일출(왼쪽 위), 일출 전 다랑논(왼쪽 가운데),
일출 후 다랑논(왼쪽 아래), 하늘과 다랑논(오른쪽)>
일몰이 있다면 일출도 있다. 새벽을 열고 일어나 둬이수(多依树)로 향한다.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순식간에 후다닥 산을 넘어온 해가 광채를 내자 다랑논도 덩달아 반응한다. 일몰보다 더 강렬한 일출이다. 해를 가린 구름, 바람 따라 번지는 구름의 윤곽이 다랑논에 투영되면 더 아름답다. 구름도 빠르게 지나간다. 해도 금세 중천에 오른다. 너무도 짧게 이루어진 일출과 다랑논의 조화다.
일출 다랑논을 보고 서둘러 아침을 먹으러 간다. 윈난의 아침은 얼큰한 쌀국수가 최고다. 홍미가 수확되니 색다른 국수가 있을 법하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홍미센(红米线)이다. 면발이 연갈색에 가깝다. 면발을 살짝 먹어보니 역시 구수한 맛이 난다. 그냥 느낌인지도 모른다. 육수에 양념을 곁들이니 그냥 흰쌀로 만든 국수와 별반 차이가 없다. 그래도 쌀국수에 담긴 다랑논의 향기를 한 그릇 먹었다는 포만감은 남달랐다.
<아침 식당(왼쪽), 홍미 쌀국수 면발(오른쪽 위), 홍미 쌀국수(오른쪽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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